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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인성 교육-71화 (71/170)
  • 71.

    차우원도 자신이 과했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지 않은가?

    ‘단우는 입만 열면 거짓말인데.’

    평소 팀장인 이단우는 믿을 만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약에 관해서는 헛소리만 늘어놓았다.

    차우원의 주변 사람들이야 약은커녕 감기약도 안 먹는 사람들이었다. 아버지를 제외하고는 전원이 각성자인 데다, 아버지조차 타고난 신체 능력이 일반인 중엔 월등한 수준이었다. 잡다한 질병에 걸린 적도 없고 큰 질병도 마찬가지였다.

    차우원이 본 ‘약을 먹는 사람’은 이단우 정도였는데, 이단우가 먹고 있는 건 감기약 따위도 아니었다.

    ‘마력 촉진제에 중독 증상도 있었나.’

    감각을 예민하게 하고 몸을 달아오르게 한다는 건 알고 있다. 이미 먹어 봤으니까. 먹으면 기분이 조금 좋아지고 들뜨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술에 취하는 게 비슷한 기분일까?’

    차우원이야 알코올을 들이붓는다고 취할 리가 없는 저항 스탯의 소유자라 단우의 상태가 짐작 불가능했다.

    하지만 일반인 중에선 술이나 담배 따위에 쉽게 중독되는 사람들이 있지 않은가? 그러다 죽을병에 걸려도 못 끊는 사람들이.

    헌터는 그런 약물에는 중독되지 않지만.

    ‘단우는 저항도 약하지.’

    역시 다시 생각해도 그건 문제 그 자체인 약이었는데…….

    사실 차우원의 문제는 아니었다. 단우의 문제였지.

    잠든 단우의 발그레한 얼굴을 보다 차우원은 생각했다.

    ‘역시 약은 바를까.’

    거기가 덜 쓰라리면 단우도 자신을 덜 노려보지 않겠는가?

    단우는 자존심이 강했다. 다른 사람의 생각엔 관심이 없었고 모든 일은 자신이 결정했다.

    강울림은 ‘수평적인 리더십’ 운운하며 단우가 독재자 자리에서 내려오기를 바랐는데, 그냥 말로만 하는 소리 같았다. 단우의 말을 가장 잘 듣는 팀원이 그였기 때문이다. 소서정도 ‘쟤는 폭군이고 제정신이 아니다, 성질은 왜 저렇게 못됐냐?’ 같은 불평을 했으나 단우 앞에서는 입도 벙긋하지 않았다.

    ‘예민하고, 성질은 더럽고, 자존심은 강하고, 약 중독자에…….’

    이단우에게 약을 발라 주고 차우원은 천장을 봤다. 남을 치료하면서 흥분하는 사람은 인간으로서 자격 미달인 듯한 기분이 들어서였다.

    울타리를 넘는 양을 백 마리쯤 세다가 차우원은 얼굴을 문질렀다.

    “아…… 망했네.”

    어디를 봐도 좋아해선 안 될 상대다. 제대로 된 곳이 전혀 없다.

    끌리고 있다는 건 알고 있었다. 하지만 더 끌려가면 안 된다고도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생각으로 모든 일이 해결된다면 세상에 문제는 왜 있겠는가?

    ‘이렇게 될 것 같더라니.’

    차우원은 자신에게 득이 될 일과 그렇지 않은 일을 잘 구분하는 편이었는데 이단우에게는 그게 안 됐다.

    처음 이단우를 만났을 때도, 차우원은 그의 제안을 받지 않는 게 좋다는 걸 알고 있었다.

    ‘이단우는 해롭다.’

    그런 느낌이 들었고 실제로 그는 차우원에게 생애 첫 방화를 저지르도록 만들었다.

    이후에는 사기와 협박과 도둑질 등 흥미로운 일을 잔뜩 벌여서 차우원은 이단우가 어떤 인간인지 알았다.

    기본적으로 도덕심도 있고 정의롭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대의가 중요해서, 그것을 위해서라면 과격한 방법쯤은 아무렇지 않게 쓴다.

    차우원은 이런 사람들을 알고 있었다. 그의 근처에도 있지 않은가?

    스승님.

    그리고 어머니…….

    ‘차문경.’

    이미 돌아가신 어머니의 일기장은 ‘일기장’이 아니었다. 그건 앞으로의 계획과 문제에 대한 대처 방안을 적어 놓은 기록장이었다.

    돌이 지나 걸어 다니던 차우원과 갓난아기인 차치원을 두고 어머니는 <최후의 던전>으로 들어갔다.

    그녀에겐 가족들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었다.

    언제나 세상에는 관계나 감정 같은, 평범한 인간들이 무엇보다 소중히 여기는 것들을 뒤로하고 더 먼 곳을 목표로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런 사람들을 이 세계는 영웅이라고 불렀는데, 차우원은 그런 건 질색이었다.

    그러나 이단우는 그런 사람이었다.

    차우원은 그에게 ‘던전 깰 팀원’ 역할만 기대하는, 예쁘고 엉망진창인 이단우에게 정신이 나갔다…….

    ‘하지만 단우는 아니지.’

    다른 사람들은 차우원에게 많은 걸 기대했다. 들어주는 게 어렵지는 않아서 차우원은 기대에 응했다.

    그러면 사람들은 더 많은 걸 원했다. 그들과 관계를 쌓아 주길 원했고…….

    차우원은 벽을 쳤다.

    그들이 원하는 ‘영웅의 아들’ 역할을 해줄 테니까, 더 들어오지 말라고.

    귀찮으니까.

    하지만 단우는 그에게 더 기대해 줬으면 했다. 단우가 왜 그러지 않는지 의문이었다. 왜 차우원에게 더 많은 역할을 요구하지 않는지.

    영웅의 아들, 동경과 질투의 대상. ‘그냥 차우원에게 맡겨 버리면 될’ 문제들을, 왜 넘기지 않는지. 왜 기대지 않는지…….

    지쳐서 잠든 단우를 차우원은 물끄러미 내려다봤다. 어느새 단우는 차우원의 옷자락을 잡고 있었는데, 잠결이라 손에 전혀 힘이 들어가 있지 않았다. 차우원은 자신이 일어나면 그 손이 떨어져 나갈 걸 알았다. 조금만 움직인대도 손에서 힘이 빠지고 옷자락은 미끄러져 빠져나올 것이다.

    차우원은 그러고 싶지 않았다.

    작게 들리는 이단우의 숨소리가 온순했다. 그는 온전히 편해져서 차우원에게 기대 있었다. 잠든 이단우는 평소처럼 곤두서 있지 않았다. 그는 누가 들고 가도 모를 것처럼 잠들곤 했고, 그때마다 소파 구석에 틀어박히는 게 버릇이었다.

    그 버릇 때문에 자신에게 기대고 있다는 것도 안다. 그래도 미소가 나왔다. 가슴은 따끔거렸고…….

    “단우야……. 너 어떻게 할래. 어떻게 책임질래? 네가 날 끌어들였잖아. 원래 이렇게 될 게 아니었는데.”

    차우원이 물었다. 잠든 이단우가 깨지 않을 만큼 낮은 소리로 말하며 그의 머리카락을 손끝으로 쓸었다.

    단우는 깨지 않았다. 차우원은 큰 손바닥으로 이단우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동그란 뒤통수에서부터 목덜미까지. 귀와 웅크린 어깨까지. 어린아이를 보듬듯, 사랑스럽고 약한 걸 만지듯 조심스럽게.

    ‘영웅 같은 건 될 계획이 아니었는데.’

    이단우가 원해서, 꼭 되어야만 하게 생겼다.

    ‘망했네…….’

    그러나 이단우의 머리카락은 부드러워서 총체적으로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그렇다는 게 더 안 좋은 점이었다.

    * * *

    한편 소서정과 강울림은 2층 육체 단련실에 있었다.

    강울림을 위해 이단우가 구비했다는 이 단련실은, 안이 최신식 설비로 가득해 돈이 상당히 깨졌을 만한 물건이었다.

    사실 단우의 눈에는 이미 몇 년 전의 기구들이었으나, 단우가 아는 ‘최신식 장비’는 만들어 낼 방도가 없었다. 주문 제작을 하기엔 돈이 너무 들었을뿐더러 단우는 신체 단련 장비의 구조 같은 건 궁금해한 적이 없었다. 자신이 아무리 수련해도 신체 스탯이 안 오르는 몸이라는 걸 깨달은 뒤로 그 근처에 얼씬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뭐……. 괜찮겠지.’

    단우는 강울림의 재능을 믿었다. 아마도…… 장비를 타지는 않을 것이다. 강울림이 더 좋은 수련장이 있다고 다른 길드로 떠날 놈도 아니고…….

    어쨌든 단우의 생각을 모르는 소서정은 육체 단련실을 보고 감탄했다.

    “뭐야, 이단우 사람 차별하냐?”

    “단련실 청소 내가 혼자 다 해. 그거 확인하러 왔어?”

    강울림은 대꾸하며 역기를 들었다. 사람 키만 한 봉에 몇 킬로인지도 모를 거대한 철근이 달려 있는 역기였는데, 그는 그걸 1kg짜리처럼 올렸다 내렸다 하고 있었다. 그때마다 근육이 꿈틀대고 가슴팍에서 훅훅 김이 나와서, 소서정은 입을 딱 벌리고 잠시 쳐다봤다.

    ‘……하지만 저런 근육은 별로 인기 없잖아.’

    소서정은 <차우원 팀>의 인기 순위 3위가 자신이라는 걸 분명히 알고 있었다! 매일 여론을 체크하고 있었으니까.

    그는 헌터는 일종의 공인이라고 생각했다. 아니어도 상관없었고. 어쨌든 얼굴이 팔리고 인기를 얻을 수 있으며, 세상에 영향을 끼치는 직업인 건 명백했다. 그렇다면 인기 관리도 당연히 해야 하지 않나?

    ‘사람들이 우리 얼굴을 다 아는데, 이왕이면 이미지가 좋은 게 좋지.’

    물론 인기 순위와 이미지는 의미가 다른 단어였으나……. 소서정은 이 팀의 이미지가 나쁠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인기 순위만 신경 쓰고 있었다.

    “내가 너 청소 잘한다고 칭찬하러 왔겠어? 그거 말고. 너 하나 쓰는 시설은 이렇게 돈 들여서 지어 주고, 나는 챙겨 주지도 않잖아!”

    “너 재벌이잖아. 집에서 수련해. 이단우 관심 받고 싶으면 그 앞에서 얼쩡대든가.”

    ‘흡’ 하고 역기를 들어 올린 뒤 강울림이 말했다. 소서정은 속이 터졌다.

    “그 소리가 아니라고! 내 말은, 이단우가 이렇게 공정하지 못하고 성격이 더럽다는 사실을 세상 사람들이 모른다는 거야!”

    “그걸 사람들이 왜 알아야 하는데? 뭐 이단우 욕 먹이자고?”

    강울림이 역기를 내려놓고 일어났다. 물론 소서정은 그러려는 게 아니었다.

    “걔가 욕을 먹으면 안 되지! 우리 팀 이미지 나빠지잖아.”

    “만약 그게 세상에 알려지면 넌 팀 이미지보다 이단우가 범인이 너인 거 언제 알아챌지를 걱정해야 하지 않냐? 걔 금방 찾아낼 텐데.”

    “헉, 그 생각을 못 했……, 아니! 좀 들어 봐. 내 말은 우리 팀에 문제가 있다는 거야. 이단우가 그렇게 독재자인데 이 팀이 왜 이렇게 잘 굴러가느냐, 차우원이 너무 잘 맞춰 줘서잖아!”

    소서정은 확신에 차서 말했다. 자기가 이단우의 말을 대단히 잘 듣는 팀원이라는 사실은 그의 머릿속에 없었다.

    “그건……. 맞네.”

    강울림이 설득됐다.

    ‘됐다.’

    소서정은 생각했다. 일단 팀의 반수가 동의하는 사안이다!

    강울림이 아지트로 출근하는 시간에 와서 바로 2층으로 올라온 보람이 있었다. 마침 이단우도 소파에 없었다. 있었더라도 자느라 소서정이 오든 말든 몰랐겠지만.

    지금 이단우는 사무실에서 뭔가 일을 하고 있는 모양이었는데, 소서정이 이 시간에 온 걸 알아채면 그가 수상쩍어할 위험이 있었다. 소서정은 임무 없는 날에는 농땡이 치는 게 일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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