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9.
그 안은, 얼핏 아무도 없는 것처럼 보였다. 사무용 테이블에도, 의자에도 이단우가 앉아 있지 않아서 차우원은 천천히 그곳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멋대로 돌아간 채 창문을 보고 있던 빈 의자를 옆으로 꺼냈다.
드르륵…….
의자 바퀴 굴러가는 소리가 들리고, 차우원은 책상 아래 숨어 있던 이단우를 발견했다.
이단우는 예상하던 꼴이었다. 약에 취해 흐트러져서 제정신이 아니었다.
그 상황에도 그가 두 손으로 입을 막은 채 차우원을 올려다보고 있어서, 차우원은 잠시 이를 악물었다.
‘나한테 안 들키겠다고 숨을 참고 있다고…….’
또 혼자 망가져서, 이 모습을 차우원에게 안 보이겠다고.
지금 입을 열면 이단우에게 소리를 지를 것이다. 그럴 거라는 예감이 들었다. 그는 숨을 내쉬었고…….
이단우는 움찔 떨었다.
차우원은 이단우가 왜 저런 표정으로 자신을 올려다보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그가 금방이라도 이단우의 멱살을 틀어쥘 것처럼.
움켜쥔 의자 등받이가 으스러지며 비명을 질렀으나 차우원의 귀엔 들리지 않았다.
그는 화나지 않았다. 이단우가 알아서 자기 몸을 망치겠다는데 왜 자신이 화가 나야 하는가?
눈가를 발갛게 물들이고 이단우는 벌벌 떨고 있었다. 취할 때만 어린애같이 솔직해지는 몸을 추스르지도 못하고. 앞섶이 벌어진 바지가 보였다. 윗옷도 흐트러져 배꼽이 다 드러났다. 약병은 테이블 안 귀퉁이에서 굴러다니고 있었고…….
그 와중에도 이단우는 손을 내밀어 약통을 품속에 숨겼다.
머릿속의 실이 끊기는 듯했다. 실제로 무슨 소리가 들려서 차우원은 손을 내려다봤다. 의자 등받이가 본체에서 떨어져 나간 채 그의 손에 들려 있었는데, 왜 이런 꼴이 되었는지 알 수 없었다. 그걸 바닥에 던져 놓자 이단우는 다시 움찔 떨었다.
‘얘는 왜 겁을 먹었지…….’
차우원은 이단우를 내려다보며 아무런 가치판단도 들어 있지 않은 어투로 물었다.
“너 뭐 했어, 단우야.”
“…….”
“네 입으로 말해. 이러려고 나 내보냈어?”
최근 대부분의 시간을 이단우 곁에서 머물고 있어서, 그는 이단우가 분명히 약속을 지키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이단우는 ‘필요할 때만 약을 복용한다. 알아서 잘 조절하겠다’고 약속했고…….
차우원은 약쟁이의 약속을 믿었다.
‘멍청한가?’
차우원은 스스로를 두고 해본 적 없던 생각을 처음으로 했다. 이런 첫 경험은 필요 없었다.
이단우는 중독자였다. 전의 그 꼴을 보고도 차우원은 몰랐다.
몰랐던 건지, 모르고 싶었던 건지 스스로도 알 수 없었다. 그는 이단우가 왜 이러는지도 알 수 없었다. 왜 사람을 보내 놓고 혼자 발정이 나서 아프고 괴로워하는지. 그 꼴을 기어코 차우원이 보게 해서 눈앞을 새하얗게 만드는지…….
“내가 싫지, 단우야. 내가 돌아 버리는 꼴 보려고 이러는 거지.”
그는 순수하게 의문이 들었다.
차우원이 한 걸음 물러났다. 이단우와의 거리가 너무 가까웠다. 이단우의 동그란 눈이 더 커지는 게 너무 가까이 보여서, 그가 허둥지둥 뻗는 손이 다리에 닿을 것 같아서. 한 걸음 물러선 것뿐인데 이단우는 기어코 그를 잡았다.
‘정말 그런가?’
차우원은 스스로에게 물었다.
그는 이단우의 손을 피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가 다리를 물리면 단우는 엎어질 터였다. 차우원은 더 물러날 수 없었다…….
“아, 아니야……!”
단우는 깜짝 놀랐다. 머리는 멍하고 온몸의 신경은 비명을 질렀다. 아래는 천에 스치는 것만으로도 아파서 견딜 수가 없는데, 차우원이 돌아왔다. 그리고 자신에게 화를 내고 있었다.
젖은 눈을 크게 뜨고 차우원을 보며, 이단우는 떨었다.
“내가 어떻게 널 싫어해?”
차우원이 멀어질까 봐 두려워서 손을 놓을 수 없었다. 이단우를 불쌍해하는 차우원이 그에게 화를 내고 있다. 땀이 배어난 손바닥이 미끄러져서 단우는 심장이 떨어졌다. 그가 놓치면 차우원은 가 버릴 텐데…….
“내가 어떻게 그래? 내가 이곳에 존재하는 유일한 이유가 넌데…….”
‘왜 모르지? 어떻게 모를 수 있지.’
수치심도 고통도 그 순간에는 잊었다. 단우는 기어서 차우원의 다리에 매달렸다.
단우가 괴로워하면 차우원은 그를 안아 줬는데, 차우원의 손이 꽉 다물려 있었다. 단우는 그 손에 뺨을 문댔다. 그의 젖은 얼굴이 차우원의 허벅지와 바지를 눌러 댔다.
“내가…… 돌아가려고 했어. 그런데 문이 닫혀서……. 내가 열려고 했는데, 열리지 않아서……. 검이 내 말을 듣지를 않아서……. 내 검을 어디서 잃어버렸는지 모르겠는데, 네 검이 안 움직였어.”
이단우는 정신없이 용서를 빌었다. 차우원을 다시 보면 하고 싶은 말이 정말 많았는데, 그때 차우원에게 했어야 하는 말이 있었는데…….
“나 너한테 가려고 했어. 내가 네 옆에 있어야 했는데……. 날 왜 버렸어? 왜 보냈어? 내가 그렇게 도움이 안 됐어? 나도 널 내보낼 수 있었는데, 그 정도는 할 수 있었을 것 같은데…….”
차우원은 그러지 말았어야 했는데. 단우가 그래서는 안 됐는데.
그는 차우원을 버려두고 나왔다. 아니다. 차우원이 단우를 버렸다.
단우는 울었다. 차우원을 다시 보면 욕을 퍼붓고 한 대 치기라도 할 생각이었는데 그러지 못했다. 아니, 실은 사과하고 싶었다. 그런데 차우원이 너무 어렸다. 이단우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어…….’
차우원이 어렸다. 어린 그가 이단우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아무 표정 변화도 없이 미친 이단우를 차분히 살피고 있었다.
단우는 찬물을 맞은 듯했다. 이곳은 과거였다. 단우는 과거로 돌아왔다. 차우원은 스무 살이었고…….
‘방금 무슨 소리를 지껄였지?’
소름이 등골을 타고 내려와서, 단우는 정신이 들었다. 차우원은 어느새 단우의 겨드랑이를 받쳐 들고 있었다.
그의 손이 닿은 곳이 불에 덴 듯했다. 그가 단우를 쑥 들어 올려서 어린애처럼 안았다. 단우는 갈비뼈가 으스러지는 줄 알았다. 겹쳐진 몸이 화끈거리고 다시 추워지기를 반복해서 단우는 연신 떨었다. 차우원이 그에게 벌을 주고 있었다. 아니다, 차우원이 그럴 리 없었다…….
그는 그냥 단우를 안고 계단을 오르고 있었다.
“단우야.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으으응…….”
단우는 차라리 안도했다.
“괴롭지. 안 괴롭게 해 줄게. 조금만 참아.”
그 다정한 목소리는 단우가 기억하는 차우원이었다.
‘됐어.’
뭐가 됐는지 모르면서 단우는 생각했다.
단우는 괜찮아질 것이다. 차우원이 그렇게 말했으니까…….
차우원은 한숨을 삼켰다. 이단우가 누구랑 자신을 착각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얼마나 먹은 거야?’
전보다 상태가 더 심했다. 그때는 상대가 누군지 구별은 할 수 있을 정도였는데, 지금은 정신을 못 차리고 횡설수설하고 있다.
그 와중에도 앓는 동물처럼 제 목덜미에 머리를 문대고 뜨거운 숨을 뱉고 있어서 차우원은 머리가 차가워졌다. 어쩌면 너무 열이 올라 주변이 차갑게 느껴지는 것 같기도 했다……. 꼭 맞는 조각처럼 품에 안긴 이단우가, 너무 무르고 부드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뭐가 그렇게 괴롭고 힘들어서 매번 약에 절어 있는지 모르겠는데…….’
이단우가 뭐 하던 사람인지 차우원이 어떻게 알겠는가? 말해 준 적도 없는데. 차우원이 아는 건 이단우가 앞으로 무엇을 하고 싶은지였다.
그 과정에 차우원이 필요하다는 것뿐이었다.
이단우의 과거 같은 건 알고 싶지 않았다. 알게 되면 더 궁금해질 테니까.
차우원은 2층 층계참에서 강울림과 소서정을 발견했다. 그들과 눈이 마주쳤으나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는 단우를 안고 3층 침실로 향했고 들어가자마자 문을 잠갔다.
침대 위에 누이자 단우는 뼈가 없는 생물처럼 허물어졌다. 그가 벌어진 바지 안으로 손을 넣어 스스로 만지려고 해서, 차우원은 손목을 잡았다.
“단우야, 그러면 안 되지.”
“안 돼……? 아파…….”
단우가 끙끙거렸다. 차우원은 침대 헤드에 등을 대고 앉아 단우를 끌어당겼다. 단우는 차우원에게 등을 보인 채 순순히 품에 안겼다.
“약 얼마나 먹었어.”
차우원은 단우의 배 위에 손을 올리고 물었다. 안으로 근육이 만져지는 몸은 약간 말랐으면서도 부드러웠다. 그 손을 천천히 아래로 내리자 단우는 착하게 대답했다.
“한 알…….”
턱도 없는 거짓말을 하고 있다.
“단우야, 시간 낭비 그만하자. 너 계속 괴로운 거 보기 싫은데.”
“조금…….”
“조금?”
차우원은 조금도 믿지 않고 단우의 아래를 움켜쥐었다. 가볍게 뿌리를 잡자 단우의 몸이 품속에서 움찔 튀었다.
“조금…… 많이…….”
“그게 얼마야?”
단우가 고개를 흔들었다.
‘말하기 싫어.’
어리광을 피우는 태도라 차우원은 마음이 흔들렸다. 동시에 머리는 냉정해졌다.
‘엄청 했나 본데.’
“이단우.”
“그렇게 부르지 마!”
이름을 부르자 단우는 펄쩍 뛰었다. 그 때문에 아래가 움직여서 쓸린 모양이었다.
“아……!”
단우가 앞으로 허물어져서 차우원은 팔로 받았다. 그러느라 의도치 않게 손가락에 가슴이 눌렸다.
콩알만 한 게 단단해져 있었다.
‘흥분하면 바로 반응이 오네…….’
그게 신기해서 차우원은 손끝으로 짓눌렀다. 콱 잡아당기고 누르다가 한 움큼 움켜쥐었다.
크게 의미 있는 행동은 아니었다.
“아, 흑……!”
그런데 단우의 몸이 부르르 떨려서 차우원은 놀랐다. 아래는 쥐고 놓아주질 않았는데 단우는 느끼고 있었다.
“이게 뭐……. 내가 아, 아프다고…… 계속……!”
“그래. 계속 거짓말했지. 얼마나 먹었어?”
“이거 놔……. 거짓말은 네가 하잖아. 안 아프게 해 준다고…….”
단우가 훌쩍거렸다. 마른 등이 차우원의 배 밑에서 들썩이고, 엉덩이는 아래를 비비고 있어서 괴로웠다.
“기분 좋았잖아, 단우야.”
차우원은 한숨을 참았다. 그리고 다른 것도 참느라 이를 악물었다.
“아니야!”
단우가 또 거짓말했다. 차우원은 흥분을 억누르며 그를 달랬다.
“그래. 착하지. 그만하고 얼마 먹었는지 말하자. 안 아프게 해 줄게.”
‘정말?’ 하고 묻는 듯 단우가 차우원을 돌아봤다. 그 순진한 태도가 어처구니없게 귀여웠다.
차우원은 조금 웃을 뻔했으나 이내 이어지는 말을 듣고 손에 힘을 줬다.
“거, 거의 다……. 아!”
※ 본 저작물의 권리는 저작권자에게 있습니다. 저작물을 복사, 복제, 수정, 배포할 경우 형사상 처벌 및 민사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6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