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7.
차우원은 청연에 도착했다.
-스승님, 길드에 계세요? 잠시 찾아뵙고 싶은데요.
하는 질문에 스승님은 당장 오라고 흔쾌히 대답했다.
-아이고, 우리 바쁜 제자님이 한번 보러 와 주신다는데 나야 영광이지.
정확히는 이렇게 말했으나.
‘뭐라고 말씀하셨는지가 중요한 건 아니지.’
정문에 도착한 차우원은 눈에 익은 얼굴을 발견했다. 뻣뻣하게 굳어 있는 차치원이었다.
“……형! 어서 와. 스승님이 안내역으로 보내셨는데……. 으음, 형이 공격대 대표로 온 건 아니니까 내가 형으로 불러도 될 것 같아서.”
그가 변명했다. 눈이 마주친 것만으로 그가 안절부절못하는 게 느껴져서, 차우원은 다정하게 말했다.
“응, 그래. 네가 길 안내해 주면 좋지.”
‘이미 청연에서 모르는 장소가 없지만.’
차우원은 각성하자마자 스승님의 제자가 됐다. 그전에도 청연은 자주 놀러 오던 장소였다. 차우원이 원해서는 아니었고 스승님이 끌고 온 것에 가까웠지만.
-어떠냐, 멋지지. 내가 여기 길드장이란다. 이 작은아버지가 다시 보이지 않니. 사실 너희 어머니가 여기 다 만들어 놓은 거나 다름없는데…….
그 뒤로는 어머니의 활약상이 길게 이어졌다. 청연 길드가 넓은 만큼 차우원은 한참 돌아다니며 어머니의 위인전기를 처음부터 끝까지 들을 수 있었다.
그 긴말의 요지는 차우원이 그곳을 이어받아야 한다는 거였고, 차우원은 ‘좋네요.’라고 대답했다. 속으로는 ‘각성도 안 한 애를 붙잡고 무슨 말씀이신 거지.’라고 생각했지만.
그가 차문경의 아들이래도 꼭 각성하리란 법은 없지 않은가?
각성자의 자식은 높은 확률로 각성자로 태어나지만, 예외도 있었다. 일례로 아버지는 헌터 명문 출신인데도 각성하지 못했다. 아버지의 동생인 현 청연 길마 류시환은 <차문경 팀>에 속할 정도로 뛰어난 검사여서, 친척들은 어째서 아버지가 각성하지 못했는지 아직도 의아해하고 있었다.
동시에 불안해했던 모양이다. 특히 외가 쪽 친척들은. 그 불안감의 요지는 ‘왜 문경이 같은 애가 저런 되다 만 애랑 결혼을 하겠다는 거지’였다.
차우원은 어릴 적부터 관심의 중심에 있었다. 어머니는 돌아가셨으나 그는 자라고 있었다. 어린 ‘영웅의 아들’을 모든 사람이 지켜봤다. 차우원은 자신을 향한 관심의 본질을 알았다.
그가 이제 막 말을 이해하고 자신의 생각을 말로 꺼낼 나이였던가? 본가에서 열린 가족 모임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친척들은 그의 앞에서 아무렇지 않게 걱정을 늘어놓았다.
-이 애가 어머니를 닮지 않으면 어쩌니. 문경이 애가 각성도 못 하고 팔푼이같이 살아가는 꼴을 내가 어떻게 봐.
차우원은 그 말을 기억했다. 말의 외면만이 아니라 그 속뜻을 이해할 나이가 되고부터는 생각했다.
‘기대를 충족시켜 주자.’
저 사람들이 그에게 기대하는 건 그럴듯한 ‘영웅의 아들’이 아닌가? 할 수 있는 데까지는 우수한 사람이 되어 보자고 생각했다. 아버지를 여기서 더 불쌍하게 만들 필요는 없으니까.
차우원이 기억도 못 하는 어머니를 착실히 닮아 가서, 아버지는 가족 모임에서 면이 섰다.
친척들 앞에서 웃는 아버지를 보며, 차우원은 자신이 각성하지 못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성년이 될 때까지 각성을 못 하면 보통 ‘각성 확률이 매우 떨어진다’고 하는데, 그 부분은 자신이 노력한다고 어떻게 될 일이 아니었다.
‘그때까진 즐기게 해 드리자.’
차우원은 그럭저럭 효자였다. 그러나 그의 생각과 달리 그는 열다섯 살에 조기 각성했다. 그건 어머니가 각성한 나이와 같았다.
-너는 진짜 문경이를 닮기는 했어.
스승님도 신기하다는 듯 말했다.
차우원은 어느새 아버지와 동생도 자신을 ‘차문경의 아들’로 보고 있다는 걸 알았다.
‘아, 이런…….’
그는 낭패다 싶었는데, 스스로 영웅의 자질이 아니라는 건 해가 지날수록 분명히 깨달았기 때문이다.
차우원이 가장 가까이에서 보고 자란 전대 영웅은 스승님이었다. 스승님은 ‘속세가 좋지. 나는 건강하고 부유하게 말년까지 살다가 너 손자 낳는 것까지 보고 죽을 테다.’ 같은 소리나 하는 분이었으나 본질적으로 희생적인 사람이었다.
‘아니면 <종말> 같은 걸 막으려 들 리도 없고.’
그래서 저주에 걸렸고 지금도 고통받고 있으면서, 5대 길드 중에서 정부에 가장 협조적이었다.
‘정부와 사이좋게 지내는 게 저주 해제 아이템을 찾는 데야 좋겠지만.’
청연에서 못 구하는 걸 정부에서 무슨 재주로 만들어 낸단 말인가?
차우원은 ‘내가 오래 살려고 이 고생이다.’라고 말로만 불평하는 스승님을 잘 알았다. 스승님은 그런 사람이었고, 그런 사람이어야 영웅이 될 수 있었다.
성물이 주인의 자격을 심사한다는 건 누구나 아는 얘기가 아닌가?
‘내가 성물의 주인이 될 가능성은 전혀 없지.’
차우원은 스스로를 알았다. 그에게 대의나 목적 따위는 없었고 희생정신은 당연히 존재할 리 없었다. 영웅의 동료로도 부적합할 것 같은데 무슨 성물의 주인이란 말인가?
그러나 주변의 기대는 거기까지 올라갔다.
동생이 긴장해서 삼키는 침 소리가 차우원에게까지 들렸다. 형을 대하는 동생의 태도는 아니라 차우원은 늘 신기했다.
‘보통 형제 관계가 이렇지는 않을 텐데.’
보통의 형제가 어떤지 잘은 모르지만. 아마 강울림과 소서정 같지 않을까.
“이, 이쪽이야.”
“응.”
‘알아.’
라는 말을 삼키며, 차우원은 동생의 뒤를 따라 길드장실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스승님과 대면했다. 스승님이 함박웃음을 지으며 일어났다.
“이게 누구야. 내가 차우원이를 청연에서 다 보고 말이야. 내가 아주 출세했어.”
“자주 왔잖아요, 왜 그러세요. 오늘은 선물까지 가져왔는데.”
“오, 오늘이 내 생일인가?”
스승님이 놀라는 척하며 차치원을 보자 그는 깜짝 놀라서 대답했다.
“아닙니다. 스승님 생신은 2월이십니다.”
“그렇댄다, 차우원아. 무슨 선물인데?”
스승님이 입맛을 다시며 물었다.
‘단우 놓친 거 아직도 아쉬워하시네.’
차우원은 속으로 웃었다. 그리고 품에서 손바닥만 한 상자를 꺼냈다.
‘이걸 보시면 더 아쉬워하실 텐데.’
“치원아, 문 잠가.”
“어, 어! 알았어, 형.”
문 잠기는 소리와 함께 방어 스킬진이 몇 겹으로 작동되는 것을 느끼며, 차우원은 상자를 열었다.
“스승님 거예요.”
“뭔데? 오오…… 네가 나를 사랑하기로 마음먹었구나. 하지만 우리는 스승과 제자야, 이루어질 수 없어…….”
아무 말이나 하던 스승님이 입을 닫았다.
무슨 아이템인지 확인했다.
그가 헛숨을 들이쉬더니 물었다.
“……어떻게 구했냐?”
“하하!”
참을 수 없어서 차우원은 웃음을 터뜨렸다. 그가 소년처럼 쾌활하게 웃자, 옆에서 차치원이 눈을 크게 떴다.
“지금 사용하세요. 그런 종류의 아이템은 아닐 것 같은데, 저주 해제에 시간이 걸리더라도 제가 호위할 테니까요.”
“아니……. 그게 문제가 아니라……. 이거…… 정말로?”
스승님은 적응력이 빠르고 대범해서 차우원의 대충대충인 성격을 형성하는 데 지대한 공을 끼친 사람이기도 했다. 그가 당황한 표정을 차우원은 드물게 봤는데 최근에는 거의 이단우와 관련해서였다.
“사용하세요.”
차우원이 다시 권했다.
<용의 눈>(S)
위대한 용종의 눈은, 구름 위를 보고 땅 위를 굽어살핍니다. 죽은 뒤에도 용종의 지혜는 그 눈에 남아, 세상의 잔악함을 치유할 것입니다.
-효과: 모든 저주 상태 해제.
-1회용.
정말인지 알려면 아이템을 사용해 봐야 한다.
스승님은 아이템을 착용했다. 차우원은 무심코 그 투박한 손을 봤다. 스승님은 검사여서 손에 끼는 아티팩트는 잘 착용하지 않았다.
‘단우가 스승님을 굉장히 존경하지…….’
스승님의 저주 해제를 위해 전대 영웅의 집을 월담할 정도였다.
차우원도 손에 아티팩트는 착용하지 않았다. 그래서 단우의 몸을 만질 때 거추장스러운 게 전혀 없었다…….
‘단우도 싫어하지 않았던 것 같고.’
차우원의 손을 싫어하지 않았던 건 분명했다. 만질 때마다 기분 좋은 반응을 보여 줬으니까.
……그다지 스승님 앞에서 할 만한 생각은 아닌 듯해서 차우원은 그쯤에서 멈췄다. 그리고 눈앞의 광경에 집중했다.
스승님의 손가락에서 반지의 붉은 알이 녹아내리더니, 이내 아이템이 반으로 쪼개졌다.
이펙트가 어마어마한 아이템은 아니었다.
“어떠세요.”
“음…….”
하더니 스승님은 검을 쥐고 반대편 거울을 향해 휙 휘둘렀다.
거울이 예리한 단면으로 잘렸다.
“이게 무슨……?”
차치원이 영문을 모르고 물었다.
“음……. 뭐라고 할까…….”
스승님은 인상을 쓰고 단어를 고르는 듯했다.
“……안 아파. 스킬을 쓰는데 아프지가 않네.”
“좋네요.”
차우원은 대답했다.
차치원만 눈을 굴리며 두 사람을 번갈아 보고 있었다.
스승님이 팔짱을 꼈다. 얼굴은 여전히 인상을 쓴 채였다.
“나는 이 순간이 오면 굉장히 감격스럽고 그럴 줄 알았는데 말이지. 저주랑 너무 오래 함께해서 그런가, 갑자기 이렇게 떠나보내려니 아쉽기도 하고…….”
“음……. 네…….”
차우원은 뭐라 할 말이 없었다. 그는 항상 스승님이 재미있는 분이라고 생각했다. 단우가 제자로 들어가도 잘 맞았을 텐데…….
“……그럴 리가 있나! 개뿔, 속이 시원하다! 마력 쓸 때마다 아파 죽겠는 거, 사람 환장하겠는데 명색이 길드장씩이나 돼서 티도 낼 수 없고 말이야!”
스승님이 책상을 쾅 내리쳤다. 그러더니 입이 찢어져라 웃으며 차우원을 끌어안았다.
“너 이거 어디서 구했어! 내 제자지만 왜 이렇게 천재냐! 나 당장 은퇴할 테니까 너 길드장 해라. 이제야 속 시원히 노후를 즐기겠네! 나 이 자리 리더가 부탁해서 맡고 있던 거야, 알지!”
“스승님, 저주가……?”
차치원이 드디어 깨닫고 입을 벌렸다.
“어! 네 스승 오늘 은퇴한다. 길드 일 없어지면 시간도 많아지고 좋네. 늘그막에 들인 둘째 제자랑 오순도순 지내볼까!”
스승님이 흥분해서 말했다. 차치원도 눈이 휘둥그레져서 차우원을 돌아봤다.
“여, 역시 형이야.”
그가 감탄해서 차우원은 꼭 해야 할 말이 떠올랐다.
“아, 그거 단우 작품이에요. 아시잖아요. 단우 머리 좋은 거.”
“오…….”
차우원이 대단히 자연스럽게 팔불출처럼 굴어서, 이번에는 스승님이 감탄했다. 이단우가 대단한 검사인 데다 머리도 좋고 자신의 저주까지 풀어 준 은인이라는 건 둘째치고…….
‘이 녀석 사방에 티 내고 다니는데.’
그 머리 좋은 이단우한테 아직도 안 들켰나? 아니면 지금 열심히 들이대고 있는 중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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