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6.
“뭐가 그렇게 구체적인데요?”
“나야 딱 하면 계산이 나오지. 난 또 뭐라고. 무슨 말도 안 되는 목표를 세우고 있어? 네 부모님은 내가 모시고 나올 테니까 넌 수련이나 해라. 네 실력으로는 우리 길드 말단으로도 못 써.”
그러고 스승님은 숟가락을 내려놨다. 밥을 먹은 게 아니라 마셨는지 벌써 한 공기를 다 비웠다.
단우는 짜증이 나기도 하고 울 것 같기도 해서 입술을 깨물었다. 뭐 저런 약속을 저렇게 쉽게 한단 말인가?
‘나도 안다고.’
단우의 실력으로는 평생 불가능할 것이다. 실은 알고 있었다. 스승님처럼 강한 검사를 앞에 두고 일 년을 배웠는데, 그것도 모른다면 머리가 어지간히 멍청한 놈일 터였다.
이단우는 그렇게까지 멍청하진 않았다.
“……웃기지 마세요. 제가 길드 들어가면 스승님 은퇴시킬 거거든요. 제가 길마 돼서 스승님 연금으로 먹고살게 해 드릴 테니까 노후 걱정은 마시든가요.”
“아이고, 무서워라.”
단우는 참지 못하고 탁자 아래로 주먹을 휘둘렀다. 당연히 닿기도 전에 붙잡혔고, 스승님은 크게 웃었다.
.
.
.
뉴스에서 성물이 출현했다는 예언이 나온 날, 스승님은 식사를 하다 말고 말했다.
“나 외출해야겠다.”
“지금 밖이잖아요?”
매번 오는 국밥집이긴 했지만.
스승님이 숟가락을 흔들며 말했다.
“내가 사실 너만 신경 써줄 만큼 한가한 몸이 아니야. 바쁜 일이 많다는 말이지. 나 없다고 외로워하지 말고, 수련은 적당히 하고.”
“보통 이럴 때는 ‘수련 열심히 하고’라고 하지 않아요?”
“넌 좀 대충 해도 돼. 하늘 같은 스승님이 말씀하시면 좀 찰떡같이 알아들어라.”
“속담을 몇 개 섞은 거예요?”
“대충 알아들어. 혼자 앓고 있지 말고. 밥해 먹는 법은 알지?”
“제가 애예요? 아니, 언제 올 건데 자꾸 당부예요?”
“한 달 안엔 오지 않겠냐. 하, 그 안에 내 재능 없는 제자가 주제도 모르고 엘리트몹한테 덤벼들었다가 다쳐서 울고 있으면 어떡하지.”
“아, 진짜.”
킬킬거리며 단우의 머리를 헤집어 놓은 스승님은 그대로 나가서 돌아오지 않았다.
단우는 몇 달을 기다렸다.
잡몹을 잡아 대다가 엘리트 몬스터와 마주쳤고, 몬스터의 발톱에 배가 뚫린 채 살아남았다.
회복 포션을 몇 통을 비우고 앓아누운 뒤, 단우는 생각했다.
‘나가자.’
스승님은 그를 버렸는지도 모른다.
잊어버렸을지도 모르고…….
발전 없고 재능은 더더욱 없는 이단우가 스승님에게 버려지는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주제를 모르고 그는 스승님을 붙잡고 있었는데, 이제 스승님은 억지로 받은 제자에게 질렸는지도 모른다.
‘며칠을 굶었지?’
생각하며 던전 밖으로 쭉 걸어 내려왔더니 그는 식당 앞에 도착해 있었다. 스승님과 늘 가던 마을의 그 식당이었고…….
열린 문으로 단우는 뉴스를 봤다.
[<속보> 헌터 정보부, “청연 길드장 류시환 사망 확인”]
이단우의 스승님이 죽었다.
그가 죽은 장소는 D시 비정기 게이트였다.
‘그만해.’
이단우는 눈을 떴다. 식은땀에 흠뻑 젖어 화장실로 달려갔고, 변기를 끌어안은 채 먹은 걸 전부 게워 냈다.
“웩…….”
위액을 토해 낼 때까지 헛구역질을 계속하다가 그는 세상이 돌아가는 걸 느꼈다. 벽이 가까워진다 싶더니 머리가 쿵 울렸다. 어딘가 부딪혔다……. 그는 타일 바닥에 고꾸라진 채였다.
‘중독 증상.’
성분 변형된 마력 보충제의 부작용이었다.
과거에도 겪은 일이라 단우는 즉시 깨달았다. 그러나 알아도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아니, 있지…….’
단우는 움직여야 했다. 이 꼴을 다른 팀원들에게 보일 순 없었다.
‘3층으로 올라가야 돼.’
그는 판단했다. 몸에게 명령했으나 손이 움직이지 않았다. 바닥을 지탱하고, 몸을 일으켜야 하는데……. 움직이려는 의지 자체가 생기지 않았다.
‘일어나.’
그건 명령이 아니었다. <최후의 던전>을 깬 헌터 이단우의 판단이었다. 단우는 3층으로 올라가 침실 문을 잠가야 했으나 이내 다른 생각이 들었다.
‘……뭘 바꾼 거지?’
단우는 과거로 돌아왔다. 뭔가를 바꾸기는 했으나 그게 뭔지 알 수 없었다.
‘차우원이 알았잖아.’
이단우가 마력 촉진제 따위에 의존해, 되지도 않는 몸을 끌고 던전에 뛰어드는 걸 알아 버렸다. 차우원을 구하겠다고 과거로 와서는 결국 그의 도움을 다시 받았다. 들켜 버렸다. 이단우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걸. 그런데도 차우원은 이 팀에 남았다.
……이단우가 불쌍해서.
‘그런데 차치원이 <육영>을 갖는 건 또 싫다고…….’
스승님의 두 번째 제자에게 정당하게 돌아가야 할 검을 빼앗겠다고 욕심부리고 있다.
단우는 <육영>에 대해 떠올리지도 않을 작정이었다. 스승님의 제자가 되지 않겠다고 결심했으니 <육영>도 단우의 것이 아니었다. 그러니까 그는 다른 검으로 시그니처 스킬을 각성해야 했는데…….
‘싫어.’
단우는 스승님에게 두 번째 제자가 생기리라곤 상상도 하지 못했다. 단우가 제자로 들어가기 전까지 스승님의 제자는 차우원뿐이었으니, 앞으로도 그러리라 생각했다. 이번 삶에서 자신은 스승님의 제자가 되지 않을 거라고 결심했으면서, 스승님의 두 번째 제자는 영영 자신뿐일 거라고 믿었다…….
단우는 기억을 되짚었다. 그가 뭐라도 제대로 한 게 있나 떠올리고 싶어서였다. 그러나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았고 물방울 떨어지는 소리만 들렸다.
그 젖은 소리가 차우원을 떠올리게 했다.
-괜찮아.
단우는 괜찮지 않았다. 아무것도 잘되고 있지 않았다. 과거보다 최악이었다.
과거에 차우원은 너무 좋은 놈이어서 이단우를 살렸다.
‘뭐가 다르지?’
지금도 차우원이 팀에 남아 있는 이유는 단우를 동정해서가 아닌가? 불쌍한 놈이 울고 매달려서, 어쩔 수 없이…….
차우원은 단우의 저항 스탯이 얼마나 낮은지도 확인했다. 그는 이단우의 바닥을 확인하고 깨닫게 될 터였다. 그가 <종말>을 막기 위해 한 선택이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하지만 이단우를 버리지 못할 거고…….
단우는 전부 망쳐 버리고 있었다.
심장이 갑자기 누가 짓밟는 것처럼 뛰었다. 온몸이 하나의 기관인 것처럼 쿵쾅쿵쾅 울려서 단우는 몸이 터질 것 같았다. 몸이 뼈와 살로 이루어진 무언가가 아니라, 부드러운 가죽에 바람을 넣어 만든 풍선 같은 것처럼 느껴졌다……. 단우는 몸을 웅크렸다. 그러자 내장이 뒤틀렸다.
“헉…….”
단우는 이렇게 강한 중독 증세는 겪어 본 적 없었다.
과거, 약의 성분이 바뀌었다는 걸 알아챈 뒤에도 단우는 복용을 끊지 못했다. 그는 팀의 짐이 되고 싶지 않았다. 차우원이 죽은 뒤에는 끊을 이유를 찾지 못했고…….
갈수록 복용량이 늘어 증세가 일어나는 텀은 짧아졌다. 단우가 <최후의 던전>에 들어가서 종종 권준홍의 부축을 받아야 했던 이유도 이것이었다.
-내 품도 비어 있는데.
개소리하는 기희윤에게 계속 약을 받아야 했던 이유도 마찬가지였다.
단우는 참아야 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물소리가 들렸다. 갑자기 추워졌고……. 이곳에 혼자라는 사실이 새삼스럽게 다가왔다. 이 건물에는 아무도 없었다. 공격대 사무실에는, 차우원의 침실에는 단우밖에 남지 않았다…….
‘혼자 남겨졌어.’
단우는 미쳐 버릴 것 같았다.
‘한 번만. 조금만이야…….’
앞이 잘 보이지 않았다. 단우는 바닥을 짚고 간신히 욕실을 빠져나왔다.
‘소파는 안 돼.’
입이 말랐다. 개인 사무실로 들어가는 문이 손에 닿았다. 단우는 비틀거리며 몸으로 문을 억지로 열려다 정신을 차렸다. 그의 손이 문고리를 열었다.
달칵…….
사무실에 들어가고, 문을 닫고, 문고리를 잠근 뒤…….
단우는 품에 손을 넣었다. 그리고 마력 촉진제 한 알을 꺼내 삼켰다.
“…….”
사방이 조용했다.
별 이상이 없었다. 몸이 이상할 정도로 흥분하지도 않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손이 미친 듯이 떨리던 것만 멈췄다. 약들이 통 속에서 부딪히며 내던 소음이 멎어서, 단우는 자신이 손을 그렇게 떨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나는 괜찮아.’
정말로 괜찮았다……. 너무 괜찮아서 통증이 조금도 줄지 않았다. 단우는 잇새로 욕이 튀어나왔다.
‘어차피 마력 회로도 최대로 키워 놔야 하잖아. 이 몸이 견딜 수 있는 한계까지 아직 도달 못 했는데. 이제 약도 더 못 구할 거고, 차우원 감시 뚫기도 어려울 텐데…….’
왜 차우원의 감시를 뚫기 어렵게 되었는지 떠올라서 단우는 한 알 더 먹었다.
마른 논바닥 같던 회로에 마력에 흘렀다. 수돗물처럼 흐르더니 잠시 뒤엔 시냇물 수준이 됐다.
단우의 몸에 열기가 퍼지며 긴장되었던 근육이 느슨해졌다. 단우는 문에 등을 기댄 채 눈을 깜빡였다.
‘……이따위 걸 중독 증세라고 심어 두냐.’
이 정도 통증과 패닉 정도야 숙련된 헌터라면 참아 낼 수 있다.
……언젠가 끝난다는 걸 알고 있기만 하면. 아마도. 다음번에는……. 견딜 수 있을 터였다.
하기야 기희윤이 뭘 알겠는가? 제 몸이 너무 귀해 던전은 못 들어가시겠다는 놈이.
‘이제 증상도 알았고,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도 알겠는데…….’
단우는 생각했다. 그리고 한 알 더 먹었다.
‘마력 회로는 지금 키워 둬야 한다.’
마력 촉진제는 복용자의 마력 생산량을 일시적으로 높여 주는 약이었다. 약을 자주 복용할수록 감응도가 높아져, 몸이 생산해 내는 마력량도 는다.
단우는 차우원의 눈치를 보느라 잠시 복용을 쉬었는데, 그새 감응도가 떨어졌다.
‘여기서 더 쉬면 영영 떨어진다.’
마력 회로를 키운다는 건, 본래의 회로 크기로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의 마력량을 일순간 생산해 내 돌리겠다는 소리로…….
단우는 <최후의 던전>에 들어가기 전 자신의 마력 회로 크기를 정확히 기억하고 있었다. 그곳으로 매일 마력을 돌리던 게 그의 일이었으니까.
‘그만큼은 키워야 돼.’
그리고 이 약은 끊어야 한다.
애초에 이딴 게 품에 들어 있던 것부터 문제였다. 그러니 화장실에서 한번 넘어졌다고 얼이 빠져 약부터 찾게 되는 게 아닌가?
기희윤의 약국에는 이런 약쟁이들이 많았다. 단우는 그 꼴은 되고 싶지 않았다.
지난번에 무식하게 다량을 복용한 덕에 부작용에도 내성이 생긴 모양이었다. 몇 알을 넘겨도 문제가 없었다.
원래 모든 약은 내성이 생기기 마련 아닌가? 공기마저 아프게 느껴지는 건, 원래 마력 촉진제가 감각을 예민하게 만드는 놈이라 신경 쓰지 않았다.
그는 남은 약을 입에 털어 넣었다. 그리고 마력을 돌리기 시작했다.
“……어?”
동시에 기분이 고양되고 배 속이 뜨거워졌다.
‘잠깐, 분명히 괜찮았는데…….’
단우는 앞으로 허물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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