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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인성 교육-63화 (63/170)
  • 63.

    차우원은 할 말이 없어서 그렇게 대답했다. 이단우가 답답하다는 표정으로 그의 팔을 잡았다.

    “아니. 이건 진짜라니까.”

    정확히는 옷자락이라 손가락 두 개가 작은 힘으로 차우원을 잡아끌고 있었다.

    차우원은 이유를 알 수 없었으나 다리에 힘이 빠져 소파에 그대로 앉았다.

    “음……. 우리가 도둑질하려는 곳이 어딘데?”

    혹시나 싶어서 차우원은 물었다. 강울림 건처럼 나쁜 놈들의 소굴일 수도 있지 않은가?

    “이림 은퇴 길마 놈 집.”

    “……지금 지슬이 집 말하는 거야?”

    “어. 아무튼 거기.”

    어째서인지 이단우의 표정이 나빠졌다.

    “…….”

    그런데 그 집에 사는 사람은 둘뿐이지 않은가? 이림 전 길드장 배청균과 그의 딸 배지슬.

    영웅과 그 영웅의 딸이 사는 집에 도둑질을 하러 간다…….

    차우원은 변명을 생각해 봤다.

    생각나지 않았다.

    “단우야.”

    “들어 봐.”

    차우원은 입을 닫았다. 이단우의 손이 그의 허벅지를 누르고 있었다. 따듯하고 부드러웠다. 검사의 손이 어떻게 이렇게 부드러울 수 있는지 이해가 안 되는데…….

    이단우가 설명을 시작했다.

    “네 스승님 저주 걸렸잖아.”

    차우원은 감탄했다.

    “스승님 팬이 맞긴 했구나.”

    ‘스승님 서러워서 어쩔 줄 모르시던데.’

    ‘내가 제자로 받아 주겠다는데, 걔는 내 팬이라면서 무슨 벌레 쫓듯 손이나 내젓고 거들떠보지를 않냐. 너는 네 팀원이 그러는데 말리지도 않더라.’ 하면서 자신을 잡고 푸념한 기억이 떠올랐다.

    물론 스승님이 저주에 걸린 일화는 전 국민이 알 정도로 유명하긴 했지만…….

    <종말>을 막다가 저주에 걸린 분 아닌가? <최후의 던전>을 깬, ‘성창의 주인’ 차문경만큼은 아니더라도 스승님은 유명 인사였다. 그 던전을 클리어하는 데 힘을 보태지는 못했으나, 스승님도 영웅으로 불려야 하는 게 아니냐는 얘기는 꾸준히 있어 왔다.

    이단우는 왜 그런 소리를 하냐는 듯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당연하지.”

    그러더니 인상을 썼다.

    “너 설마 초등학생도 아는 얘기 했다고 나보고 스승님 팬이라느니 하는 거 아니겠지. 쓸데없이 얘기 끊지 말고 들어.”

    “응, 그래.”

    차우원은 웃음을 참았다. 그리고 이를 악물었다.

    ‘허벅지가 간지러운데…….’

    그 소리를 했다간 이단우가 손을 뗄 것 같다.

    “저번에 임무 갔을 때 은퇴 길마 놈 손가락 봤어?”

    “배청균 전 길드장 호칭은 ‘은퇴 길마 놈’으로 통일인 거야?”

    “끊지 말라고. 그놈 손가락에 끼워져 있던 반지 봤냐고 묻잖아.”

    이단우가 성질을 냈다. 차우원은 기억을 더듬었다. 이단우야 열 손가락에 아무것도 끼고 다니지 않았으나, 배청균은 뭘 끼고 있었던 것 같긴 했다. 악수할 때 손이 답답할 정도였으니까.

    “반지가 너무 많아서 뭘 말하는지 모르겠는데. 다 아티팩트인 것 같긴 했어. 그런데 그 정도 반지는 서정이도 끼고 다니지 않나.”

    ‘사치스러워서 싫어하는 건가?’

    배청균은 전대 영웅이었다. 차우원도 그에게 개인적인 호감은 없었으나 존경해야 하는 사람이라고는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단우는 <최후의 던전>에 들어가지 않은 스승님도 굉장히 존경하고 있지 않은가?

    본인 스스로가 영웅이 되고 싶어 하는 인물이기도 했다.

    ‘전대 영웅이면 존경 대상 아닌가.’

    이단우의 평가 기준을 알 수 없었다.

    “소서정은 지가 쓰려고 끼는 거고. 그 새끼 약지에 끼고 있던 거대한 반지는 한 번도 작동 안 했어.”

    “작동 안 할 만했지. 전투 상황이 없었잖아.”

    차우원은 이단우 성질을 건들 걸 알면서도 왜 한 번씩 답하고 싶어지는지 알 수 없었다.

    이단우는 대체로 냉정했는데, 차우원과 설전이 시작되면 미간이 좁아지고 눈에 생기가 돌아서 무섭도록 예뻐졌다.

    ‘봐.’

    이단우의 미간에 힘이 들어갔다. 까만 눈동자가 살짝 위로 올라가며 인상이 사나워졌다.

    한껏 털을 세우고, 이단우는 황당하다는 듯 차우원을 쳐다봤다.

    “아니. 그게 아니라. 그건 한 번도 작동을 해본 적 없는 아티팩트라고.”

    “무슨 의미야?”

    “그냥 비상용으로 가지고 다니는 거라고. 세상에 존재한 이래 한 번도 사용된 적이 없다니까?”

    “한 번도 작동 안 한 아티팩트인 건 어떻게 알았어?”

    “나 감지 타입이야.”

    ‘아.’

    이단우의 손이 허벅지에서 꼼지락댔다. 차우원은 다리에 힘이 들어갔다. 그러느라 이단우의 말을 잠시 늦게 이해했다.

    “뭐?”

    “너랑 같다고. 너처럼 1km 반경 안에 마력 품은 놈이 몇 명이나 있다거나 이런 건 못 알아채지만, 그런 건 보면 알 수 있어.”

    차우원은 감지 타입을 살면서 처음 봤다……. 어머니 차문경도 감지 타입이라고 들었지만, 그분은 이미 돌아가신 지 오래였고.

    ‘감지 타입도 여러 질인가?’

    차우원도 그런 건 알 수 없었다. 애초에 감지 타입에 대한 기록 자체가 적었던 것이다.

    ‘그런데 단우는 왜 자꾸 손을 움찔거리지…….’

    “그 새끼 현역도 아니잖아. 앞으로 영영 던전 들어갈 일 없을 텐데 무슨 비상시를 대비해서 그걸 손가락에 끼고 다니냐고.”

    “그럴 수도 있지. 지슬이 지키려고 그러시는 걸지도 모르고.”

    이단우의 미간이 더욱 좁아졌다.

    “아니. 그거 소유자만 치료 가능한 물건인데.”

    “그런 것도 감지 가능해? 네 손에 들어온 물건도 아닌데.”

    차우원은 놀랐다.

    설명창을 띄울 수 있는 것도 아닌데 아이템의 사용법까지 알 수 있단 말인가? 그렇다면 이단우의 감지 능력은 자신보다 뛰어날 터였다.

    “아니. 이건 그냥 그게 뭔지 알아서 아는 거고.”

    “무슨 아이템인데?”

    “1회용 저주 해제 아이템. 대상이 ‘모든 종류의 저주’인 S급 아이템 <용의 눈>.”

    “…….”

    차우원은 할 말이 많아졌다.

    가장 먼저 든 의문은 이것이었다.

    ‘단우는 이걸 어떻게 알지?’

    그러나 중요한 문제는 아니었다. 이단우가 그에게 거짓말을 할 리도 없었으니까…….

    그는 다른 것이 궁금해졌다.

    ‘그런 물건을 가지고 있었는데, 왜 스승님의 저주를 해제하는 데 쓰지 않았지?’

    차우원의 스승님, 청연의 길드장 류시환은 저주에 걸려 있었다. <종말>을 막다 걸린 저주였고, 이건 이단우의 말대로 초등학생들도 알고 있을 법한 이야기였다. 그 저주가 류시환의 몸을 망가뜨려서, 그는 <최후의 던전>에 들어갈 수 없었다.

    당시 이름난 엘리트 힐러들은 전부 류시환에게 달라붙어 저주를 해제했다. 그건 어느 정도 성공한 듯 보였다.

    그 덕분에 류시환은 헌터로서 계속 활동할 수 있었다. 대부분의 헌터가 이미 은퇴하고도 남을 40대의 나이에도 현장을 뛰었다.

    그러나 그 이유는 세간에 알려진 것처럼 그가 강건해서, 의지가 굳건해서가 아니었다…….

    ‘저주를 해제하려고.’

    살아 보려고.

    류시환은 현실적인 사람이었다. 삶을 즐겼고 인생은 살 만한 것이라고 생각했으며, 헌터들에게 살아남으라고 조언하는 사람이었다.

    그는 살아남기 위해 은퇴하지 않았다. 무리해서 상위 던전 클리어를 주도하고 정부와 공조했다.

    정부에서는 저주 해제 아이템을 찾는 대신 개발하는 게 더 빠르다고 판단한 듯했다. 약을 만들어 내기만 하면 청연을 굴종시킬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게 빤히 보였다. 차우원이 센터에서 연수생 생활을 보낸 일도, 어느 정도 류시환 때문이라고 믿는 듯했다. 청연에게 매번 도움을 청하면서도 약 개발을 협상 대상으로 넣으려 들었다.

    차우원은 진절머리가 났다.

    ‘영웅이 되어 봤자 별거 없지 않나.’

    스승님은 사실상 영웅이었다. 그러나 정부의 영웅 대우가 이따위다.

    그 꼴을 보지 않았다면 차우원은 어쩌면 센터에 남았을 수도 있었다.

    ‘청연으로 돌아가야겠지.’

    차우원은 막연히 생각했다. 스승님이 돌아가실 때, 자신이 그 곁을 지켜야 하지 않나…….

    스승님은 계속 치료받고 있었고 차우원도 그가 어느 날 갑자기 죽어 버리리라 생각한 건 아니었으나.

    ‘곁에서 은퇴하라고 매번 말씀드리면 들으실지도 모르니까.’

    큰 기대는 없는 생각이었다.

    류시환을 스승님으로 모시기 전부터, 또 그의 제자가 된 후로도 차우원은 자주 ‘은퇴하고 쉬시라’고 말씀드렸다. 그러나 그는 듣는 척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이고, 늙으면 죽어야지. 제자한테 별소리를 다 듣네! 내 팬이 얼마나 많은지 네가 몰라서 그래. 활동 그만둔다고 하면 다들 운다. 청연 일대에 호수 하나 새로 생긴다고.

    그러는 분께 차우원이 뭐라고 하겠는가?

    스승님은 강건한 분이니 계속 사실지도 모른다.

    차우원은 사실 스승님의 몸 상태가 어떤지 정확히 알지 못했다. 그가 검으로 스승님을 이긴 건 벌써 몇 년 전 일이었고, 그 뒤로 스승님은 그와 대련 같은 건 하지 않았으니까.

    그런데 이단우가 분노하고 있었다.

    “그 개자식이 아이템을 가지고도 스승님 저주 푸는 데 안 쓰고 있었다고.”

    ‘계속 은퇴 길마 놈이라고 부르더니…….’

    죽어도 이름으로 불러 주기 싫었던 모양이다.

    이림의 전 길드장 배청균은 스승님의 팀원이기도 했다. 둘 다 <차문경 팀>의 팀원이었으니까.

    ‘팀원이 죽어 가는데 아이템을 아꼈다고.’

    차우원은 분노하지 않았다.

    그는 배청균을 이해했다. 세상에는 이단우나 강울림처럼 ‘당연히 팀원은 보호해야 하는 존재’라고 생각하지 않는 헌터가 많았다. 그들이 이기적인 게 놀랍지도 않았다. 오히려 이단우나 강울림이 별종이지 않은가? 소서정도 자신과 같은 생각을 할 터였다.

    ‘하지만 단우는 아니지.’

    ‘그럴 수도 있지’라고 차우원이 대답하면, 단우는 놀랄 것이다…….

    이단우가 이 팀의 팀원들을 굉장히 좋은 사람들로 판단하고 있다는 것도 차우원은 알고 있었다.

    그가 매일 하는 잔소리가 ‘너희 목숨까지 희생해서 남 구하려 들지는 말아라’였으니까.

    ‘그런 짓은 아마 울림이나 할 것 같은데.’

    그리고 이단우도.

    정신계 스킬을 깨겠다고 이림 길드원에게 입 맞추려 든 건, 지금 생각해도 어처구니가 없는 일이었다.

    ‘왜 남이 걸린 스킬을 자기가 입 맞춰서 깨 주려고 하지?’

    이단우는 차우원이 남을 구하려고 자신을 희생해 개미굴로 뛰어들었다는 듯 말했으나, 그건 사실이 아니었다. 차우원은 거기서 멀쩡할 자신이 있었기 때문에 뛰어든 거였고…….

    이림 길드원과 입 맞추는 건 이단우의 입술에 분명히 해가 갈 만한 일이었다.

    ……그게 무슨 해인지는 모르겠지만.

    “배청균 헌터를 처음 만났을 때부터, 손에 끼고 있는 게 저주 해제 아이템인 걸 알고 있었어?”

    차우원은 자신이 어떤 인간인지 밝히는 대신 이단우에게 물었다.

    “어.”

    “왜 그때 안 훔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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