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9.
경호팀 부팀장은 전화를 끊고 생각했다.
‘역시 나를 의심하진 않는다니까.’
청연 길드장이 자신의 총애하는 제자를 회의실에 남기고 다른 사람들을 보낼 때부터 생각은 했다.
정부 측 사람들을 내보내고 저들끼리 할 얘기가 있는 모양이라고.
무슨 내용인지는 뻔했다.
‘내부자 중에 문제가 있는 거 아니겠느냐. 정부 측 헌터를 애초에 어떻게 믿냐?’
헌터들의 정부 불신은 대단한 수준이었다. 오죽하면 개인팀 헌터가 ‘정부 측 조사는 못 믿겠으니 우리가 직접 현장을 살펴야겠다’고 요구할 정도겠는가?
경호 팀장이 대단히 분노한 덕분에 그 사이를 중재하느라 부팀장은 고생이었다. 그는 양순한 얼굴로 생각했다.
그렇게 티 나게 악감정을 표출해 주는 사람이 곁에 있다는 건 얼마나 좋은 일인가…….
덕분에 그는 의심의 눈길을 피했다.
똑똑.
문을 노크하고 그는 잠시 기다렸다.
“부르신 대로 왔습니다.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어어, 그래요. 들어와요.”
청연 길드장의 목소리가 들렸다.
부팀장은 웃는 낯으로 문을 열었다. 그리고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입이 틀어막힌 채 강제로 무릎 꿇렸다.
“……!”
버둥거리는 그를 짓누르고, 청연 길드장의 애제자, 그 유명한 차문경의 아들 차우원이 그를 마력 구속구로 제압했다.
순식간에 팔다리가 묶인 채 그는 의자에 앉혀졌다.
얼굴을 본 적 있는 정부 요원이 부팀장 앞으로 다가왔다. 그가 장갑을 벗고 부팀장의 이마에 손을 올렸다.
정부 요원의 손바닥에 문장처럼 새겨진 스킬진이 보였다.
‘……안 돼!’
부팀장은 고개를 어떻게든 움직여 저 손에서 벗어나려 애를 썼으나, 그의 스킬은 조금도 발동되지 않았고 온몸에선 힘이 쭉 빠졌다.
그가 사력을 다해 반항하고 있다는 것도 그의 생각뿐이었다. 다른 사람들 눈에는 그가 힘없이 고개를 떨군 채 흐느적거리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안 돼. 저 사람은…….’
정신계 헌터다…….
대부분의 정신계 스킬은 대단히 희귀했고, 어린 나이에 발현되는 경우가 많았다.
정신계 헌터들이 희귀한 이유는 그러나 다른 데 있었다.
‘그 스킬을 스스로를 향해 가장 먼저 사용하기 때문이다.’
제대로 스킬을 사용할 줄도 모르는 나이에 발현해, 주변 사람들을 미치게 만들거나 스스로를 미치게 만드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뇌는 모든 생물의 신체 부위를 통틀어 가장 섬세하고 알기 힘든 부분이었다. 약간의 자극을 주는 것만으로도 망가진다.
그 뇌, 아니 ‘정신’에 직접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건 얼마나 엄청난 능력인가?
이 정부 요원은 정신계 헌터, 그중에서도 심문 전문가였다.
그의 시그니처 스킬은 <사실 증명>.
대상자의 말이 진실인지 아닌지 가려낼 수 있으며, 대상자가 거짓을 말할 경우 고통을 준다…….
부팀장의 등은 어느새 긴장으로 흠뻑 젖었다.
‘안 돼.’
다른 건 다 말해도 괜찮다. 다만 그가 괴로운 건,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그가 주인님에 대해 발설해 버릴 경우였다.
그는 스스로를 믿었으나, 주인님은 그렇지 않았다. 주인님은 상냥한 분이었다. 그를 따르는 모든 사람들에게 말했다.
-인간은 나약해서 때때로 번민과 유혹이 찾아와. 거기에 넘어가는 것도 어쩔 수 없지. 하지만 난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고통받지 않았으면 좋겠어. 그 잠깐의 유혹에 넘어간다면, 너희는 평생 너희 자신을 미워하며 살게 되겠지……. 난 그게 싫어. 그러니 허락한다면, 너희가 나를 배신할 수 없게 해 줄게.
이 얼마나 다정한 제안인가?
부팀장의 눈을 덮은 손이 빛났다. 부팀장은 눈꺼풀이 닫힌 채로도 망막에 빛이 가득 들어차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 빛은 눈을 덮고, 자신의 모든 것을 장악하는 듯했다. 머리카락이 쭈뼛 곤두서고 코가 먹먹해졌다. 이어서 혀가 마비된 듯 굳었다.
멍청해진 부팀장에게 정부 요원이 물었다.
“당신이 마정석 탈취 사건의 범인입니까?”
부팀장은 진땀이 쏟아졌다. 그러나 입을 열고 모든 힘을 다해 말했다.
“아……니요. 아아악……!”
발가락 끝까지 전류에 감전된 듯했다. 그는 비명을 지르다가 폐부에 바람이 들어가서 헛숨을 내쉬었다.
그가 발작적으로 기침을 내뱉었다.
그것으로 대답은 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예, 아니요.’로 대답할 수 있는 질문에 ‘아니요’로 대답했으나 그게 거짓말이지 않는가?
부팀장이 범인이다.
정부 요원이 그의 얼굴을 손으로 덮고 다음 질문을 했다.
“공모자가 있습니까?”
“아니……. 아아! 아아아아!”
부팀장은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묶인 몸을 펄쩍대다가 까무룩 기절했다. 그리고 다시 이어지는 통증에 정신을 차렸다.
그는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다.
하나만 떠올랐을 뿐이다.
“하하…… 하하하.”
부팀장이 갑자기 웃었다. 정부 요원은 얼굴을 찌푸린 채 그를 내려다봤다.
‘내부자 소행이라니. 망신이란 망신은 다 시키고는.’
미쳐 버린 건가?
청연 길드장이 정부를 어떻게 보겠는가? 그는 한동안 청연 사람들을 멀쩡한 얼굴로 대면할 자신이 없었다.
그런데 부팀장이 말했다.
“역시 주인님의 말씀이 틀릴 리 없는데, 나 같은 게 의심하다니.”
‘주인님?’
정부 요원은 그 단어를 기억했다. 그리고 부팀장의 얼굴에 손을 얹었다. 부팀장은 넋이 나가서 평소의 무골호인1) 같던 얼굴에 표정이 전혀 없었다.
‘심문이 쉽겠군.’
이렇게 변한 상대는 스킬에 저항하지 못했다. 정부 요원이 다시 질문을 이어 가려는데 갑자기 건물이 흔들렸다.
쾅!
“뭐, 뭐야!”
이어서 들리는 소리는 총소리 같았다.
탕, 탕, 탕, 탕……!
총이 맞았다!
문이 총탄 모양대로 우그러지더니 천둥 같은 발소리가 들렸다. 단단한 발들이 문을 마구 걷어차고 짓밟았다.
텅! 콰직……!
문이 안으로 떨어졌다.
정부 요원은 그 광경을 믿을 수 없었다.
‘센터 방벽이 총에 뚫렸다고?’
총을 무기로 사용하는 헌터가 있기는 했다. 그러나 그들은 그런 스킬을 가진 원거리 딜러였고…….
지금 우르르 문밖에서 총을 겨누고 있는 자들은 아무리 봐도 이상했다!
방호복 같은 걸 온몸에 껴입고, 얼굴은 스키 마스크로 가렸다. 구시대 권총 강도 같은 꼴로 들어와서는 그들이 외쳤다.
“다 죽어라!”
정부 요원은 억울했다.
‘권총 강도의 단골 대사는 ‘손 들어’잖아……!’
* * *
단우는 예민해져 있었다.
‘저 자식 때문이잖아.’
그는 차우원을 의식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기희윤이 약에 수작을 부린, 그날 이후 좀 더 어려워졌으나 노력하고 있었다.
그런데 차우원이 이단우를 자꾸 의식하게 만들지 않는가?
-단우는 쉬는 게 어떨까.
‘마력 없다고 무시하냐.’
과거와 같은 일이 반복돼서 단우는 신경이 곤두섰다. 물론 그때와 달리 차우원은 단우가 그의 제안을 잘라 내자 쓸데없는 소리는 하지 않았으나…….
과거보다 더 쓸데없는 소리는 잘만 지껄였다!
-얼마 전에 무리도 했고.
무리라니? 그건 단우가 한 게 아니었다!
사람이 쓰라려서 일어서지도 못할 만큼 만져 댄 게 누군데 책임 전가인가?
-너 좀 닥쳐!
-그래. 이번에 내가 실수한 것 같다. 밖에서 할 말은 아닌데.
-밖에서고 안에서고 닥치라고!
-그래.
그 일은 서로 암묵적으로 닥치기로 한 일 아닌가?
그것뿐만이 아니다.
단우가 낮잠을 자지 못하는 것도 차우원이 아지트에 버티고 앉아 있어서인데, 사실 밤에 잠을 못 자는 것도 차우원 때문이었다.
단우를 과거부터 밤에 못 자게 만들어 놓은 놈이 차우원이니까.
차우원이 단우를 끌어안고 침대 밖으로 못 나가게 막기 전까지 단우는 밤에 잘 잤다. 사실 수련 때문에 몸이 지쳐서 곯아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차우원은 단우에게 불면증을 만들어 준 채 죽어 버렸고, 단우는 그 침대에서 다신 잘 수 없게 되었다.
밤에 누우면 쓸데없는 생각이 꼬리를 물고 이어져서 한없이 바닥으로 가라앉았고…….
그러면 도무지 그냥 누워 있을 수가 없었다.
뭐라도 해야 했다. 공략집을 읽거나 소리를 지르거나 생각을 멈추려고 머리를 벽에 박아 대거나, 뭐라도.
과거에는 그랬다.
쓸데없는 생각이 떠올라서 단우는 눈을 문질렀다. 심문 과정을 멍하니 지켜보는데 밖에서 마력 반응이 느껴지더니, 한 무리의 사람들이 문을 부수고 쳐들어왔다.
“다 죽어라!”
그놈들은…….
누가 봐도 기희윤 숭배자라 단우는 잠시 반응 없이 보고만 있었다.
그들이 자신을 향해 총을 겨누고 있는 상황이 언젠가 겪어 본 일과 똑같아서였다.
기희윤 숭배자들이 일제히 총을 쐈다. 온몸에 보호 아티팩트를 두른 채, 두 팔을 부들부들 떨며 무거운 마정석 총을 쏘는 꼴이 정말 언제 봤던 광경을 떠올리게 했다…….
탕, 탕, 탕, 탕!
총이라고 하기 뭐한 거대한 총구에서 불꽃이 뿜어져 나왔다.
“미친, 이게 뭐야!”
총알을 튕겨 낸 스승님이 기함했다. 벽에 홈이 파였다!
“이상해. 저 사람들, 각성자가 아니야.”
차우원이 침착하게 말했다.
소서정은 강울림을 방패로 삼고 있었다.
“각성자가 아닌데 무슨, 위력이……!”
‘엄폐물 찾으란 소린 잘 지키네…….’
단우는 생각했다.
각자 직격타는 어떻게 막았는데, 방이 폭격이라도 맞은 꼴이 되는 건 피하지 못했다.
당연히 그냥 총은 이런 위력을 내지 못했다. 이 센터 건물은 마정석을 통째로 퍼부어서 만들어진, 방어 요새라고 해도 무방한 곳이었으니까!
“주인님이 우리에게 무기를 주셨지. 우리가 안타깝다고…….”
스킬에 당해 넋이 나간 부팀장은 아무렇게나 떠들어 대고 있었다. 그가 고통 없이 떠들 수 있는 말은 진실뿐이었기 때문에, 그 내용은 전부 사실이었다.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약해서 나를 위해 싸우지 못하다니. 불쌍하잖아. 목숨만큼 소중한 자원도 없는데. 그들의 소원을 들어서, 소중히 써 줘야 하지 않겠어?
기희윤이 마정석 총을 개발한 논리가 그거였으니까.
그리고 단우는 저 총의 상대법도 알고 있었다.
‘식히면 마력 회로 망가지잖아.’
미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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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무골호인無骨好人: 줏대가 없이 두루뭉술하고 순하여 남의 비위를 다 맞추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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