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 인성 교육-52화 (52/170)
  • 52.

    운동이든 뭐든 체력이 좋은 쪽이 유리한 건 당연한 일이라, 먼저 정신을 차린 사람도 차우원이었다.

    침대도 놔두고 일을 치른 탓에, 이불은 구겨졌고 바닥은 더러웠다.

    그거야 치우면 되겠지만.

    이단우가 끙끙대고 있었다. 약간 코가 막힌 숨소리를 내며 새우처럼 몸을 굽히고 있는데, 아래가 너무 쓸린 탓인 듯했다.

    “아프다고 했는데…….”

    훌쩍이는 소리가 들렸다.

    ‘어떡하지.’

    그 모습이 견딜 수 없게 귀여워서 차우원은 참지 못하고 동그란 뒷머리에 입 맞췄다.

    그리고 생각했다.

    ‘큰일 났는데. 나 진짜 쫓겨나겠다.’

    알고 봤더니 하루 종일 약을 빨고 있던 이단우는, 오늘도 얼마나 취한 건지 아직 정신을 못 차리고 있었다.

    그러나 흥분은 가신 듯했고 뜨끈뜨끈하던 몸도 한결 열기가 가셨다. 이제 정신을 차리면 이단우는 경멸에 찬 눈빛으로 차우원을 보거나 할 것이다. 그건 그거고…….

    ‘아닌 건 아니지.’

    “이거 금지 약물이지.”

    차우원은 약병을 들어 올리며 물었다.

    마력 촉진제가 왜 금지 약물이 됐는가?

    정부 주도하에 약을 복용했던 헌터들은, 이후 제대로 된 삶을 살지 못했다.

    몸 자체가 망가져서 장기들이 제 위치를 유지하지 못하고, 안에서 출혈을 일으켰다. 다섯 개의 감지 기관은 갑자기 제 역할을 못 하게 됐고 환시를 보거나 환청을 듣는 헌터도 많았다.

    그들의 은퇴 후 삶은 삶이 아니었다.

    대부분 고통 속에 살다 병사하거나 자살했다.

    ‘애초에 급이 맞지 않는 몬스터를 상대하다가 죽은 헌터가 훨씬 많고.’

    마력 없는 헌터가 억지로 마력을 끌어다 쓰게 만드는 약이지 않은가?

    마력 등급이 낮다는 건 헌터 자체의 등급이 낮다는 뜻이었다. 다시 말해 헌터로서의 재능이 없다……. 성장 기대치가 한없이 낮다.

    마력 등급은 노력으로 올릴 수 없는 유일한 스탯이었으니까.

    이단우가 마력 촉진제를 복용했다는 건, 그가 그 성장 기대치 낮은, 등급 낮은 헌터라는 뜻이었다.

    마력 등급이 낮은 헌터가 다른 스탯이라고 높을 리 없다.

    ‘그런 몸으로 헌터 활동을 했단 말이지.’

    “단우야, 오래 살 생각이 없어?”

    몸을 해치는 약이다. 오래 헌터 생활할 생각이 없는, 목숨 아까운 줄 모르는 인간들이나 먹는 약.

    물으면서도 차우원은 대답을 예상했다.

    ‘어쩌라고. 네가 무슨 상관이야. 변태 새끼야. 꺼져.’

    그런데 이단우가 차우원의 옷자락을 붙잡았다. 그는 계속 울고 있었다. 훌쩍이는 소리를, 아파서 낸 게 아니었다…….

    “가지 마. ……응? 팀 나가면 안 돼.”

    이단우의 젖은 속눈썹이 깜빡였다. 차우원은 속이 찌릿했다.

    ‘뭐지.’

    평소 이단우라면 차우원을 당장 쫓아내야 옳았다. 이단우가 아까 그를 붙잡은 건 약에 취해서라고 생각했다.

    아닐지도 모른다.

    ‘이단우는 차우원이 필요하다.’

    이단우는 차우원이, 이 팀을 절대 나가지 않길 바란다.

    차우원은 깨달았다. 이런 일이 일어났는데도 자신을 붙잡을 만큼 이단우에게는 절박한 이유가 있다.

    ‘절박하다.’

    그 표현이 맞았다.

    이단우는 울고 있었고, 눈은 빨갰고, 뺨이 전부 젖었다. 그러면 차우원은 그 뺨을 닦아 주는 수밖에 없었다.

    쓴웃음이 나왔다.

    ‘협상에서 먼저 바닥을 보이면 안 되지, 단우야.’

    이런 말을 할 입장은 아니었지만.

    저쪽에서 먼저 마지노선을 밝혀 버리면, 이쪽에서도 조건을 걸기 쉬워지지 않는가?

    “내가 팀에 남으면 단우는 뭘 해 줄래.”

    “어……?”

    “약 버리자. 난 우리 팀원이 이런 약 먹고 몸 상해 가면서 뛰는 꼴 못 보겠는데. 그런 팀에선 못 뛰어.”

    “그건 안 돼.”

    “…….”

    “안 돼.”

    이단우가 차우원의 품으로 뛰어들었다. 사실 두 손으로 거의 멱살을 잡다시피 윗옷 자락을 잡아당긴 것에 가까웠으나, 차우원은 그렇다고 느꼈다.

    팔딱팔딱 뛰는 이단우의 심장이 느껴졌다. 물기 어린 까만 눈으로 차우원을 올려다보며, 이단우는 열심히 말했다.

    “나라고 먹고 싶어서 먹는 게 아냐. <최후의 던전>만 깨면 끊을 거야. 완전히 끝이야. 잘 조절해서 쓰면 몸에 그렇게 나쁜 것도 아니고. 난 잘 조절하고 있고…….”

    ‘이단우는 사실 협상의 천재가 아닐까?’

    완전히 약쟁이 같은 헛소리를 하는데, 차우원이 그걸 듣게 만들고 있다.

    “이런 일이 일어났는데 잘 조절하고 있다고?”

    “이, 이건. 그 가게에서 약에 장난을 쳐서…….”

    “그래. 불법적인 약이니까, 루트도 불법이고, 이런 일을 당해도 어떻게 대처할 방법이 없잖아. 독이라도 들어 있었으면 어쩔 뻔했어? 정말 문제가 생길 만한 약이었으면.”

    “안 그래. 난 먹으면 바로 알아. 이것도 실험 때문에 한꺼번에 먹은 거 아니었으면 문제를 바로 알아챘을 거고…….”

    “먹으면 바로 알 정도로 잘 알아? 어떻게 그렇게 확신해. 얼마나 오래 복용했어?”

    “오래는 아니야. 앞으로도 오래는 안 먹어. 우리 금방 <종말> 막을 거잖아. 나 아파하는 거 봤어? 오늘 말고, 한 번도 없잖아. 응?”

    <종말>이 언제일지 누가 확신할 수 있단 말인가? 이단우가 얼마나 약을 먹어 대려고 저런 소리를 자신하는지 알 수 없었다.

    ‘단우가 명령이 아니라 설득을 하네.’

    차우원이 헛웃음이 나오는 부분은 그쪽이었다. 이건 정말로 이단우가 원하는 일이 있을 때만 일어나는 상황인데…….

    ‘나를 팀에 넣었을 때나……. 다른 팀원들을 영입했을 때.’

    차우원은 떠올랐다.

    그리고 깨달았다. 이단우는 정말로 이 팀원들을 원한다. 이단우가 정말 원하는 것 중에는 차우원도 있었지만.

    ‘……그걸 기뻐해야 하나?’

    차우원은 기쁘지 않았다. 기분이 좋은 것도 같고 나쁜 것도 같았고……. 이단우는 여전히 자신의 가슴팍에 달라붙어서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이러면 또 차우원은 넘어가게 되지 않는가.

    사실 이 팀에 들어온 것도, 아버지의 간섭에서 벗어나고 싶으니 뭐니 했지만. 이단우에게 매력을 느끼지 않았다면 생각지도 않았을 선택지였다.

    그렇지 않은가? 소규모 팀은 많다. 물론 차우원을 이길 수 있는 팀장은 거의 없겠지만. 아마 대형 길드에서나 찾아볼 수 있겠지만…….

    ‘와, 나 진짜 위험한 것 같은데.’

    직감이 계속 붉은 사이렌을 울리는데…….

    차우원은 머리를 쓸어 올렸다. 천장을 보며 숨을 내쉬었다. 이단우를 잠깐 안 봐야 정신을 차리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단우야, 마력 랭크 몇이야.”

    고개를 원위치로 돌린 그가 물었다.

    이단우는 필요할 때 아무렇지 않게 거짓말을 했으나, 지금이라면 순순히 불 것 같았다.

    ‘비밀이 오죽 많아야지.’

    과연 이단우는 말했다.

    “C…….”

    “거짓말은 하지 말자. 그러면 내가 실망할 것 같아. 단우야, 이 팀에 남아 달라고 말했지.”

    하지만 순순한 이단우가 정말 바로 비밀을 불 것 같진 않았다. 그리고 C랭크면 상위 랭크 아닌가?

    “랭크 몇이야.”

    이단우는 움찔했다.

    그가 울어서 차우원은 뺨을 문질러 주고 싶었다. 그러면 이단우의 뺨이 발갛게 변할 거라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

    ‘피부가 약하다.’

    쓸데없는 사실을 알게 돼서, 지금 이단우를 만지면 얼마나 기분이 좋을지도 알고 있었다. 그를 끌어안고 달래 주면 차우원의 기분도 나아질 터였다.

    그러나 그럴 때가 아니다.

    가만히 대답을 기다리자 이단우는 고개를 숙였다.

    “F인데……. 내가, 너도 봤잖아. 던전에서 제대로 못 한 적도 없고…….”

    이단우가 뭐라고 변명하는데 차우원은 한 대 맞은 것 같았다.

    이렇게 놀라 본 적이 없었다. 이단우를 만나고는 이상하고 신기한 일들의 연속이라, 차우원은 번번이 놀라게 됐다.

    한숨을 내쉬자 이단우는 다시 움찔했다.

    “단우야, 너 정말 천재였네.”

    “……?”

    놀란 사람이 누군데, 이단우는 자기가 더 놀란 눈으로 차우원을 쳐다봤다.

    ‘눈이 동그랗다.’

    이단우는 양순하게 생긴 얼굴이었는데, 그 얼굴로 항상 사람을 쏘아보는 것처럼 쳐다보는 것도 재주였다.

    그가 자는 모습을 모든 팀원이 좋아하는 이유가 있었다.

    이단우에게 혼나지 않아도 돼서 좋은 것뿐만이 아니라…….

    ‘귀엽잖아.’

    “F랭크 마력으로 A급 던전을 깨네. 아마 전례가 없을 텐데……. 단우 너 나중에 위인전 나오겠다. 천재들 모아서 <최후의 던전> 깨겠다고 자신한 이유가 있었네.”

    그 본인이 정말 천재였던 것이다. 마력 운용이 얼마나 정밀하고 철저하면 F랭크 마력으로 최상위 몬스터들을 도륙하고 다니겠는가?

    이단우는 눈만 깜빡이고 있었다. 놀란 것도 같고 차우원의 결론을 기다리는 것도 같았다. 그 모습이 사랑스러워서 차우원은 속이 근질거렸다.

    ‘정말 큰일인데.’

    차우원의 의문은 이거였다.

    “그런데 왜 그렇게까지 하지? 마력 F랭크면, 각성했을 때부터 애초에 헌터를 꿈꿀 만한 등급이 아닐 텐데. 왜 무리해서 <최후의 던전>을 깨겠다는 거야?”

    ‘꼭 네가 깨야 하는 것도 아니잖아.’

    차우원이 하고 싶은 말은 그거였다.

    마력 촉진제는 몸에 해로웠는데, 사실 몸에 이로우려면 헌터 일 자체를 하지 말아야 했다.

    모든 각성자는 각성하자마자 자신의 능력창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각성자라면 반드시 헌터가 되어야 한다는 법은 없다. 각성자 등록만 하면 법적으로 아무 문제가 되지 않았다. 마력이 F랭크라면, 보통 사람들은 헌터가 되려고 생각하지 않는다.

    ‘아무것도 못 할 걸 아니까.’

    그러나 이단우는 헌터가 됐다.

    가만히 듣고 있던 이단우의 눈이 다시 붉어졌다. 조금씩 발개지고 일그러져서 차우원은 변화를 눈치채는 게 약간 늦었다.

    이단우가 차우원의 가슴을 쳤다.

    “너 때문이잖아!”

    “……?”

    정확히 명치를 쳐서 차우원은 꽤 아팠다.

    손이 맵다고 할 정도는 아니었으나, 급소를 한두 번 쳐본 솜씨가 아니다…….

    “내가 너 때문에!”

    이단우는 몇 번이나 차우원을 쳤다. 가슴을 퍽퍽 때려 대니 차우원도 수가 없었다. 이걸 안 맞아 주면 안 될 것 같은데, 이단우는 울고 있었다.

    “나 때문이라는 게 무슨 소리야?”

    “왜 나한테 물어!”

    이단우가 화를 냈다. 분을 이기지 못하고 이제는 자기 가슴팍을 치고 있다.

    때릴 데가 어디 있다고 스스로를 때린단 말인가? 차라리 차우원을 치는 게 낫지 않나? 놀란 차우원은 수가 없어서 그를 끌어안았다.

    다시 밀쳐지고 맞겠지만…….

    그런데 이단우의 손이 차우원의 등으로 갔다. 등 뒤의 옷자락이 꼭 늘어나서 차우원은 영문을 알 수 없었다. 심장이 이상하게 뛰긴 했다. 다시 한숨이 나왔다.

    “내가 잘못했어.”

    뭔지 몰라도 사과하자, 이단우는 차우원의 가슴팍을 적시며 울었다. 그의 어깨가 떨려서 차우원은 가슴이 아팠다.

    그 사실이 어처구니없었다. 얻어맞은 건 자신인데 이단우가 안쓰럽고 난리다. 쓴웃음이 나왔다.

    ‘아, 이건 진짜 최악인데…….’

    ※ 본 저작물의 권리는 저작권자에게 있습니다. 저작물을 복사, 복제, 수정, 배포할 경우 형사상 처벌 및 민사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52)============================================================

    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