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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인성 교육-49화 (49/170)
  • 49.

    이단우는 그때의 감각을 떠올리며 바지를 내렸다.

    스물다섯 살의 차우원은 이단우를 뒤에서 끌어안고 아래를 쓸어내렸다. 민감한 곳을 만져 주며 단우에게 괜찮다고 말했다.

    -해도 돼.

    낮은 목소리가 귀를 간질여서 단우는 참을 수 없었다. 어쩔 줄 모르고 차우원의 손을 더럽혔다.

    과거를 떠올리던 단우는 이를 악물고 신음을 참았다.

    ‘차우원이 어떻게 했지…….’

    생각해 내려고 애쓰며 몸을 웅크렸다. 아래를 쓸어내리는데 손은 뜨겁고 예민한 곳은 아프기만 했다.

    ‘쓰라려, 아파…….’

    온몸이 열을 내며 화끈거려서 단우는 머리가 이상해질 것 같았다.

    잘 움직이지도 않는 팔을 더듬으며 단우는 주변을 둘러봤다. 무언가, 윤활제가 될 만한 것이…….

    3층 방엔 침대와 욕실을 들여놨는데 침대는 아무도 사용하지 않았고 욕실만 강울림 차지가 됐다.

    어쨌든 욕실이 있으니 그 앞에 거울도 있었다. 강울림이 가져다 놓았는지 누가 갖다 놨는지 알 수 없는 로션통도 서랍장 위에 덩그러니 쓰러져 있었다.

    “흐…….”

    로션통까지 기어가는데도 한세월이었다. 단우는 거의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다리 사이가 혼자 젖어 드는 것 같은데 실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몸이 달아올랐다가 싸해졌다가 난리였다. 단우만 갈증이 나고 다리에 힘이 풀리면서, 내리다 만 바지에 발이 걸려 넘어질 뻔했을 뿐이다.

    단우는 쓰러지지 않으려고 이불을 붙잡았다. 그러느라 이불 위의 사탕통이 바닥으로 굴러떨어져 문을 치는 소리를 듣지 못했다.

    서랍장까지 도착했을 때 단우는 온몸이 식은땀으로 젖어 있었다.

    “으, 으응, 이것 좀…….”

    심지어 빌어먹을 로션통은 펌프형이 아니었다! 위의 뚜껑을 돌려서 열어야 하는 형식이었다.

    단우의 힘으로 이런 뚜껑 하나 여는 게 힘들 리 없는데, 손이 자꾸 미끄러졌다. 단우는 로션통을 던져 버리고 싶었다.

    “이게 왜……. 진짜…… 좀!”

    단우는 로션통을 꽉 잡고 고개를 숙인 채 훌쩍였다. 서럽고 아팠다. 그런데 누군가 단우의 손에서 로션통을 가져갔다.

    단우의 힘은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가져가서, 단우의 얼도 쑥 빠져나가 버리는 것 같았다.

    “이걸 열어 주면 돼?”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로션통은 뚜껑과 몸체가 분리돼 단우의 손에 다시 쥐였다.

    윤활제가 생겼다는 기쁨보다, 문제가 해결될 거라는 안도보다…… 내장이 덜컥 내려앉는 감각이 먼저 찾아왔다.

    단우는 고개를 들었다. 차우원이 바닥에 무릎을 대고 단우 앞에 있었다.

    턱까지만 봐도 그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단우는 고개를 더 들어 올릴 용기가 나지 않았다. 쾌감도 통증도 일순간 잊었다. 수치심이 모든 감각을 덮었다.

    “단우야.”

    머리가 새하얗게 변한 그를 차우원이 불렀다.

    단우는 평소처럼 ‘왜’라고 할 수 없었다.

    “이런 거 사려고 나갔어? 밤마다 외출한다 싶더니……. 도대체 무슨 짓을 하고 다니는 거야?”

    차우원은 기가 찬다는 듯 웃고 있었다. 그가 무슨 오해를 하는지 깨닫기도 전에, 단우는 그의 손이 향하는 곳을 발견했다.

    “아, 아니야!”

    단우는 사탕통을 낚아채려 했다. 과거에도 그는 마력 촉진제의 후유증에 시달리다 차우원에게 들켰다. 그러나 마력 촉진제 자체를 들킨 적은 없었다.

    이건 정확히 단우가 사용하던 그 마력 촉진제는 아니지만.

    “뭐가 아니야?”

    차우원이 단우의 팔을 잡았다. 단우는 다른 팔을 움직였으나 그 팔목 역시 붙잡혔다. 붙잡은 손을 바닥으로 내리고, 차우원은 두 손을 하나로 모았다.

    “이상한 거 아니야.”

    “그래. 그렇게 보인다.”

    “하지 마. 만지지 마…….”

    차우원이 빈손으로 아무렇지 않게 약통을 들어 올려서 단우는 고개를 내저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약이다. 단우야 이미 먹어도 봤고 죽지도 않았으나 차우원이 만져서 어떤 효과를 낼지 누가 안단 말인가?

    “이상한 거 아니라며, 단우야.”

    “으, 응. 아니야.”

    ‘그러니까 버려.’

    단우는 말하려고 했다.

    “그럼 내가 먹어도 되겠네.”

    차우원이 망설이지 않고 약을 입에 넣었다.

    단우는 새하얗게 질렸다.

    차우원은 미친놈이었다.

    “뱉어!”

    단우는 차우원의 입을 억지로 벌리게 하려고 했다. 뺨을 잡고 입술을 눌렀으나 차우원은 고개를 돌려 단우를 가볍게 떨쳐 냈다.

    차우원이 입을 벌리고 안을 보여 줬다.

    “이미 녹았어, 단우야.”

    “어…….”

    차우원의 얼굴은 처음에는 변화가 없는 듯했다.

    ‘저항 스탯이 높으니까.’

    단우는 생각했다.

    차우원에겐 어떤 문제도 없을지 모른다.

    그런데 그의 표정이 약간 찡그려지는가 싶더니, 차우원은 새삼스러운 듯 단우를 빤히 쳐다봤다. 그의 얼굴이 이상했다……. 눈동자가 평소보다 까맣고 또렷했다. 그의 눈가가 불그스름하게 달아올랐다.

    단우의 손에서 힘이 빠졌다.

    그의 손이 바닥의 이불을 툭 치자, 몸을 반쯤 가렸던 이불이 힘을 잃고 아래로 내려갔다.

    차우원의 시선이 그 움직임을 따라 아래로 내려갔다…….

    시선이 간지러웠다.

    ‘아니다.’

    시선에 느낌이 있을 리 없다. 이불이 다리를 간지럽히는 것이다.

    그러나 단우는 그렇게 느꼈다. 꼼짝도 할 수 없었다. 미친 듯이 수치스러운데 몸이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움직이면 위험하다고, 단우의 목숨을 칠 년간 붙여 놓은 감각이 경고를 보냈다.

    단우는 얼어붙어 있었다…….

    차우원이 한숨을 내쉬었다.

    “단우야, 이런 걸 매일 먹으니까 민감해지잖아.”

    그 목소리가 평소와 같이 차분해서 단우는 한숨과 함께 녹아내리는 듯했다.

    ‘예민해진다고 말하려던 거 아닌가.’

    그런 생각도 할 수 있게 됐다.

    그러나 안도는 일렀다.

    “몸에 마력이 도네.”

    차우원이 말했다.

    ‘들켰다.’

    이단우는 깨달았다.

    아예 다른 약을 넣은 게 아니다. 마력 촉진제의 성분에 무언가를 추가했을 뿐이다. 그래서 이단우도 이상함을 눈치채지 못하고 먹어 버린 것이다. 멍청하게…….

    차우원이 이단우의 비밀을 알았다.

    단우는 공포에 질렸다.

    “이건……. 좀…….”

    차우원이 눈을 찡그렸다.

    “흥분된다.”

    그가 다시 한숨을 쉬었다.

    단우에겐 들리지 않았다.

    그는 과거에도 이런 현장을 들켰다. 후유증에 몸부림치는 이단우를 차우원이 뒤에서 안아서 진정시켰다.

    그러나 이단우는 복용하던 약이 마력 촉진제라는 건 들키지 않았다. 그것만은 끝까지 숨겼다.

    차우원이 알아채면 이단우를 팀에서 제외할 것 같아서.

    그때쯤 이단우는 차우원이 자신을 팀에 넣은 이유도 알고 있었다. 이단우는 차우원의 생각만큼은 멍청하지 않았다. 어디 가서 죽어 버리려던 이단우를 억지로 팀에 넣고, 그가 살도록 차우원이 보호하고 있다는 사실쯤은.

    아무리 멍청한 이단우라도 모를 수가 없었다.

    공격대에서 도망치겠다고 매번 말했으면서, 이단우는 정말로 그렇게 되기를 원하지는 않았다. 처음에는 진심이었으나 나중에는 아니게 됐다.

    -이런 공격대 나가 버릴 거라고.

    -단우야, 도망은 치고 말해야 설득력이 있지.

    그건 그냥 그들의 대화였다.

    차우원과 이단우는 매일 싸웠고 배지슬이 말렸다. 나중에 배지슬은 둘이 싸우고 있지 않아도 둘과 눈만 마주치면 ‘그만 싸우세요’라고 말했는데, 팀원들은 어처구니가 없어서 웃었다. 그럼 배지슬은 깜짝 놀랐다.

    -아, 안 싸우고 계셨어요? 어쩌면 좋아. 그런데 웬일이세요?

    그런 반응에는 이단우도 웃을 수밖에 없었다.

    이단우는 이 팀에서 나가고 싶지 않아졌는데, 그의 마력은 심각했다. 얼마나 심각한 수준인지 알면, 이단우를 살리고 싶어 하는 차우원은 그를 두고 갈 텐데.

    ‘이제 혼자 살 수 있지.’ 하고 그를 버려 버릴 텐데.

    단우는 버려지고 싶지 않았다.

    ‘안 돼, 싫어.’

    단우는 차우원을 붙잡았다.

    “가, 가지 마…….”

    몸이 뜨겁고 아래는 달아오르고, 눈가는 왈칵 젖어서 단우는 자신이 어쩌고 있는지도 몰랐다.

    차우원이 ‘단우야, 이 팀은 안 되겠다.’ 하고 나가 버릴 것 같아서 온몸으로 그를 붙잡았다.

    차우원은 따끈따끈하고 부드러운 몸이 그에게 붙어 와서 이성을 유지하기 힘들었다.

    이단우가 복용하고 있던 건 금지 약물이었다. 차우원의 체내에서도 마력 활성화 반응이 일어나고 있었다.

    ‘뭐 하고 있나 했더니.’

    차우원은 문을 열자마자 본 광경을 떠올리며 이를 악물었다.

    이단우는 이상하게 금욕적인 분위기가 있었는데, 얼굴 탓인지도 몰랐다. 무섭도록 예쁘게 생겨서 사람을 서릿발 같은 눈으로 쏘아보니 그가 평범한 사람처럼 흥분하고 무너지는 모습을 상상하기 힘들었다.

    ‘그런 상상을 왜 해. 팀원한테.’

    차우원은 성실한 사람이었고 상식을 갖추고 있었다.

    -이단우 자주 밤에 나가던데?

    -어딜 가냐고? 내가 어떻게 알아?

    강울림의 말에 갑자기 이단우의 밤 외출이 궁금해져서 사무실에 앉아 있을 때도 그랬다.

    ‘단우가 누굴 만날 수도 있지.’

    그렇지만 이단우는 여자를 좋아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는 생각을 차우원이 왜 하게 됐는지는 알 수 없었다.

    이단우가 권준홍에게 예쁜 눈을 깜빡이는 순간 그런 직감이 들었고, 어느 순간 확신했다.

    그가 밤에 누굴 만나든 차우원이 신경 쓸 바는 아니었으나…….

    ‘……팀원이 누굴 만나는지, 팀장이 정말 신경 쓰지 않아도 되나?’

    C시 외곽은 치안 좋은 지역이 아니다. 이단우만 한 헌터가 어디서 맞고 들어올 리는 없었으나, 이림 전 길마 사건의 예도 있지 않은가?

    이림 길드원 같은 우수한 헌터들도 스스로 자각하지 못한 채 스킬에 걸릴 수 있는 법이다.

    차우원은 이단우가 누굴 만나는지는 알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를 팀장으로 만든 건 이단우였다. 이단우의 요청에 따라 차우원은 온갖 귀찮은 일에 참석하고 있었는데, 단우도 예의상 차우원의 팀원 챙기기에 응해야 할 터였다.

    그럴듯한 핑계를 챙기고 차우원은 사무실 의자에 앉아 있었다.

    그리고 이단우가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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