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
그런데 이단우는 오히려 차우원이 이상한 사람이라는 듯 쳐다봤다.
“리더가 하실 거예요?”
‘단우에게 시킬 바엔 차라리 그게 낫지 않나?’
차우원은 순간 생각했다.
그는 쓰러진 이림 길드원을 내려다봤다. ‘죄송합니다.’ 하고 일으켜 세우자 길드원은 ‘아, 아니요.’ 하고 손을 내저었다.
차우원은 그의 입술을 쳐다봤다.
‘어려운 일도 아니고.’
그냥 남의 입술에 자기 입을 갖다 대는 거 아닌가?
그런데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이단우가 자신을 빤히 보고 있었다.
왜 저렇게 보는 걸까?
어려운 일은 분명히 아닌데, 이단우가 저렇게 보고 있으니 하기 싫었다…….
“하는 게 기본 전제야?”
“외부인 침입을 경계하는 것만으로도 헌터들이 고생하는데, 내부 배신자까지 감시하느라 다들 눈도 못 붙이고 있잖아요. 내부 협력자만이라도 걸러 내면 임무도 좀 더 할 만해지지 않겠어요?”
‘단우가 내부 협력자를 감시하게 만들지 않았나.’
범인이 경찰 생각해 주는 소리 하고 있다.
차우원은 그 점을 지적하는 대신 물었다.
“그런데 그 방법이 왜 네가 입 맞추는 게 돼야 해? 그 점이 의문인데, 단우야.”
“그러네요…….”
배지슬이 깨달았다는 듯 끼어들었다.
이제 다른 참석자들은 못 들은 척하던 것도 그만둘 모양이었다.
“입맞춤은 소중한 건데, 아무리 아버지를 지키기 위해서라지만 호위해 주시는 헌터님께 입술을 희생하라는 건 이치에 맞지 않아요. 저희 집안일이니까 제가 하는 게 옳겠어요.”
“……?”
“……?”
모든 헌터들이 ‘저게 무슨 소리야’라는 표정으로 서로를 쳐다봤다.
이단우는 배지슬이 회의 자리에 꼬박꼬박 참석하던 이유를 그제야 깨달았다.
‘자기 아버지 호위 일로 회의하는데, 아버지는 참석도 안 하니 자기라도 책임자 입장에서 같이 고생해야 한다고 생각한 것 같은데.’
딱 배지슬이 할 만한 생각이었다.
오히려 헌터들 입장에서는 아가씨가 회의에 참석하고 있으면 신경만 쓰일 뿐이었지만…….
실제로 엄청난 일이 일어나지 않았는가?
고청도 몰래 엿듣던 걸 그만두고 진지하게 논의에 끼어들었다.
“아니요, 아가씨. 그건 아닌 것 같습니다.”
“왜요? 제 아버지 일이니 제가 책임지는 게 맞는 것 같은데요.”
배지슬이 반발했다. 특별 취급이라면 사양이라는 태도였다.
그러나 고청이 반대한 이유는 ‘아가씨를 지키자’ 따위가 아니었다.
‘그런 걸 생각할 만큼 사회생활 잘하는 놈도 아니고.’
이단우는 고청을 알았다.
“아가씨는 미인이시니까요. 헌터들의 정신계 세뇌가 풀릴 만큼 충격을 주지 못할 겁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단우 씨나 차우원 씨도 문제가 있을 것 같고요.”
“……!”
‘아, 그런 이유……?’
회의장의 모든 인원이 고청의 말에 언급된 세 사람을 힐끗거리는데, 배지슬이 턱을 치켜들었다.
“그런 이유라면 걱정 없어요. 모든 분들이 아시다시피, 아버지는 저를 끔찍하게 아끼시니까요. 감히 별것 아닌 헌터가 제 입술을 가져갔다는 말씀을 들으면 그 헌터의 미래를 영원히 망쳐 주실 거예요.”
“……?”
“아, 물론 이건 아버지의 생각이세요! 여기 계신 헌터분들은 모두 훌륭한 분들이시죠! 저랑 입을 맞추고 결혼을 해도 모두가 축복할 만한 상대시지만, 아버지 생각에서는 그렇다는 말씀이에요!”
배지슬이 얼굴을 붉히며 항변했다.
‘아버지를 싫어하긴 엄청 싫어하는군.’
이단우는 생각했다.
공개적으로 오만한 속물 새끼라고 까고 있지 않은가?
아무튼 오만한 속물 새끼 은퇴 길마에게 죽고 싶지 않았던 헌터들은 얼굴이 창백해졌다.
“저, 아가씨. 그 말씀은 아가씨께서 저희 모두와 입 맞추면 저희 모두의 인생이 나락으로 갈 거라는 뜻으로 들리는데요…….”
누군가 총대를 메고 물었다.
“아! 그럴 수도 있죠. 목숨의 위협이 느껴지시죠? 강한 정신계 스킬이라도 목숨이 위험한 상황에서는 깨지니까요.”
좋은 방법이지 않냐는 듯 배지슬이 웃었다.
아무도 따라 웃지 않았다.
“…….”
‘어?’
배지슬이 당황하는데, 이단우가 맞은편에서 소리 없이 파안대소하는 게 보였다. 그가 한 번도 본 적 없는 얼굴로 활짝 웃어서 배지슬은 어쩐지 기분이 좋아졌다.
저 모습을 예전에도 본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런 날이면 팀원 모두가 행복해졌다.
‘……응? 나 방금 무슨 생각을 한 거지?’
배지슬이 고개를 갸웃하는데 이단우가 손을 들었다.
“경호하러 오신 분들의 인생을 모두 나락으로 보낼 필요는 없죠. 지금 2교대 구역별 경호팀들 다 정해져 있으니까, 휴식 취하는 인원들만 싹 불러오죠. 팀원들끼리 서로 입 맞추라고 하면 되잖아요.”
“……!”
애초에 단우는 이럴 생각이었다. 그가 왜 이림 은퇴 길마를 위해 다른 헌터들과 입 맞추고 있어야 한단 말인가?
‘입은 맞춰야 하지만.’
기희윤의 시그니처 스킬 <인형화>(S)의 조건은 이랬다.
상대가 기희윤에게 호감을 느끼고 있는 상태로, 그와 스킨십을 할 것.
그러니까 ‘인형’이 되는 놈들은 하나같이 기희윤과 약속한 셈이다.
‘그의 사랑의 포로……가 되겠다고.’
뭐라 표현할 말이 없어서 그렇게 설명하긴 했으나, 어쨌든 배신하지 않고 기희윤을 사랑하겠다는 서약을 한 것과 다름없었다.
‘그리고 모든 강력한 능력에는 그 대가가 따르지.’
<인형화>는 강력한 능력인 만큼 제약도 강했다.
‘인형’이 사랑의 서약을 배신하고 다른 사람과 스킨십을 하면, 스킬의 효과도 풀리는 것이다.
인형이었던 사람이 기희윤에게 잠깐 혹했을지는 몰라도, 상대가 자신을 어떻게 이용해 먹었는지 깨달으면 그 마음은 금방 증오가 되지 않겠는가?
‘결혼 사기범 같은 새끼.’
기희윤을 속으로 마음껏 멸시하면서, 단우는 고청을 쳐다봤다.
“이림 헌터분들도 아가씨께 키스 받는 것보다 서로 입 맞춰서 결백 증명하는 걸 더 좋아할 것 같은데요.”
“……그러기는 할 것 같습니다.”
고청이 대답했다.
그를 포함해 제정신인 헌터들은 이성적인 생각을 하고 있긴 했다.
‘충격 주는 방법이 근데 왜 키스여야 하는데……?’
물론 그들도 서로를 고문하고 싶은 건 아니었다…….
하지만 헌터들은 다들 피곤했고, 이단우와 배지슬이 번갈아 가며 현란한 헛소리를 해 대서 정신도 혼미했다. 서로 감시까지 해야 하는 기분 나쁜 상황을 어서 종결하고 싶었다.
“예. 너무 좋습니다.”
“저희는 늘 서로 입 맞추고 싶었습니다.”
“그건 아니고. 아니 진짜 이 짓까지 해야 하나…….”
“졸려 죽겠는데 빨리 끝내.”
“팀원들 다 튀어오라 그래. 뭐? 자고 있어? 어쩌라고. 회의실 있잖아. 아니, 회의실 말고…….”
통화하던 헌터가 당황한 듯 고청을 돌아봤다.
“쉬는 애들만 불러도 다 모이면 수가 좀 될 것 같습니다. 회의실 미어터질 것 같은데요.”
“아, 후원이 넓어요. 지금 분수 작동을 꺼 놔서 시야도 트여 있을 거예요.”
집주인 딸 배지슬이 알려 줬다.
“후원으로 갑시다…….”
고청이 말했다. 그리고 그는 허공을 쳐다봤는데, 자신이 제정신이긴 한지 이 상황이 과연 현실인지 의문을 품고 있는 듯했다.
‘쟨 <최후의 던전>에서도 자주 저랬고.’
이단우는 신경 쓰지 않았다.
현실 감각이 뛰어나다는 건 얼마나 피곤한 일인가? 이단우는 고청처럼 상식적인 삶은 살고 싶지 않았다.
‘팀원들에겐 상식적으로 보여야겠지만.’
미친놈이 팀장 노릇 하려면 드는 노력도 보통은 아니었다. <이단우 팀>일 때는 팀원들이 다 조금씩 미쳐 있어서, 오히려 이단우가 미친놈인 건 수용되는 분위기였지만.
그때로 돌아가고 싶진 않았다…….
배지슬이 순수한 호의로 헛소리를 하는 이 상황이 기뻤다. 그녀를 어서 팀에 넣고 싶었다.
그러면 이단우는 완벽해질 것이다. <차우원 팀>은, 완전해질 것이다…….
‘그러면 차우원도 기뻐하겠지.’
어떤 차우원이?
과거의……? 아니면 지금의……?
갑자기 이단우는 혼란스러워졌으나 곧 머리를 비워 버렸다.
그의 생각은 정상적이지 않았으므로 가끔은 싹을 잘라 버리는 게 나았다.
어쨌든…….
2교대 근무를 마치고 꿀 같은 휴식을 취하던 이림 헌터들은 강제로 후원으로 끌려 나왔다.
그리고 청천벽력 같은 소리를 들었다.
가운데 선 그들의 믿음직한 팀장, 리더, 이림의 부길드장 고청이 머뭇거리며 명령한 것이다.
“각자 구역을 맡은 팀원들이 보일 겁니다. 2열로 서 주십시오. ……서 주셨군요. 그럼 서로 입 맞춰 주세요. 하나, 둘, 셋 하면 바로.”
“……?”
“기, 길드장님. 제가 명령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자다 깨서 머리가 몽롱한 듯합니다.”
명문 이림의 길드원들은 냉정하게 자신들의 상태를 판단해 보고했다. 그들의 부길드장이 ‘서로 키스해라’ 같은 말도 안 되는 명령을 내릴 리는 없지 않은가? 그들은 꿈을 꾸고 있거나 아니면 귀가 막혔거나, 머리가 이상해졌거나 셋 중 하나의 상황에 처한 게 틀림없었다.
고청은 눈을 감았다 떴다.
‘팀장이 확신을 갖고 명령을 내리지 않으면 팀원들도 따르지 못한다.’
그는 명문 이림에서 교육받았다. 팀장의 자세와 책임을 인지하고 있었다.
팀원과 입 맞추라니, 그만한 정신적 충격이 어디 있겠는가? 자신만 해도 길드장과 입을 맞추라고 누가 명령하면 그 사람에게 결투를 신청할 용의가 있었다. 하지만 아가씨가 길드원들에게 입 맞추는 것보다 차라리 저들끼리 하도록 시키는 게 나았다.
‘……하자. 당당하게 명령해.’
고청은 입을 열었다. 이번에는 목소리가 흔들리지 않았다.
“2열로 짝지은 옆 팀원과 입 맞춰 주십시오. ‘셋’ 하는 신호에 맞춰서. 하지 않는 분은 내부 배신자로 혐의를 두고 따로 조사하겠습니다. 부디 따라 주시기 바랍니다.”
“……!”
“하나, 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도망치는 몇 명이 있었다.
이림의 규율은 엄격했다. 팀장의 명령을 어기고 탈주하는 일은 있을 수 없다.
고청이 명령하기도 전에 차우원과 이단우가 반응했다.
차우원이 제자리에서 검을 한 번 휘두르자, 도망치던 세 명이 동시에 허공에서 날아온 뭔가에 맞은 것처럼 ‘퍽’ 하고 쓰러졌다.
이단우는 보이지도 않는 속도로 움직여서 두 명을 기절시켰다.
‘…….’
고청은 입이 저절로 벌어졌다.
이단우가 제안했다.
“심문할까요.”
“……예.”
“다들 키스는 마저 하게 하시고.”
“……예.”
하나…… 둘…… 셋…….
아련한 카운팅이 울리고, 이림 헌터들은 짧고 괴로운 시간을 보냈다.
그들은 모두 울고 싶은 기분이었으나, 그들 중 또 하나가 빛에 휩싸였다. 정신계 스킬에서 벗어났다는 이펙트였고, 그 모습을 본 회의 참가자들은 충격 받았다.
‘아니 이게 진짜였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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