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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인성 교육-45화 (45/170)

45.

단우는 돈을 벌고 그다음으로 스킬 수련장을 지으려고 했는데, 견적을 내다가 깜짝 놀랐다.

‘왜 이렇게 비싸냐.’

그도 청연 길드 출신이었던 것이다. 이미 완비된 수련장을 이용하다가 바닥부터 새로 지으려니 천문학적인 비용이 나왔다.

잘나가는 길드들이 계속 잘나가는 이유가 있었던 셈이다. 미래를 위해 이렇게나 투자를 했단 말인가?

강울림용 ‘스탯 수련장’은 아지트 2층에 지어 놓았으나 그건 기반 비용이 그렇게 드는 공사가 아니었다.

그러나 S급 스킬을 감당해야 하는 스킬 수련장 공사는 얘기가 달랐다.

물론 강울림을 제외한 팀원들은 집에 각자 수련장이 있을 터였다. 다들 헌터 명문가 출신 아닌가?

‘하지만 내가 거기 따라가는 건 모양 빠지잖아.’

이단우는 차우원이 절대적인 리더였던 이유 중 하나가 그가 가진 권위에 있다고 믿었다.

차우원은 독재자였으나 아무도 그의 말에 반기를 안 들지 않았는가? 이단우를 제외하면.

이단우는 그런 리더가 되어야 했다. 일단 그가 ‘맞다’고 하면 다들 ‘그런가?’ 하고 생각할 정도의 권위는 갖춰야 했던 것이다.

‘남들보다 너희 자신의 목숨을 가장 소중히 여겨라’ 같은 말은 <차우원 팀>의 가치관으로는 받아들이기 힘든 소리였으니까.

‘그게 받아들이기 힘든 게 말이 되냐?’

단우는 황당했다.

그것과 별개로 상황은 만족스러웠다.

‘둘은 넘어온 것 같고.’

소서정과 강울림의 태도가 달라졌다. 지금까지도 이단우를 편한 태도로 대한 건 아니었지만 이제는 눈빛에서 존경심이 엿보이는 것 같다.

‘이렇게 돼야지.’

이단우는 쾌감을 느끼며 담벼락을 따라 쭉 돌았다. 보초를 서던 이림 길드원과 만나서 고갯짓으로 인사도 했다. 그리고 그가 가자마자 스킬진을 건드렸다.

이단우의 손끝에서 방어 스킬진이 희미한 빛을 냈다. 문양이 재배치되고 기능이 변했다.

본래 스킬진을 개발하는 건 마법사들이나 하는 짓이었으나…….

이단우는 마법사가 아니었다. 그는 실제로 스킬진을 새로 만드는 짓은 하지 못했다. 하지만 원래 존재하는 스킬진을 건드려 망가뜨리는 일은 가능했는데, 이 스킬진이 내부자를 막는 용도로 설치된 게 아니기 때문이다.

내부에서 자물쇠를 망가뜨리는 정도야 별 기술 없이도 가능하지 않은가?

물론 이단우가 한 짓은 더 괴상했지만.

‘보통 헌터는 이런 짓 못 하지.’

마력 낭비니까. 시도조차 안 한다.

하지만 이단우는 스킬이 없었기 때문에 스스로 마력을 스킬처럼 움직여 사용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남의 스킬을 관찰해야 했고, 그 스킬을 발동시키기 위해서 마력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알아야 했다.

이단우는 과거 소서정이 사용한 대부분의 스킬진을 외우고 있었다. 마력의 움직임까지도.

그가 소서정만 한 천재였다면 그것만으로 스킬북을 만들고 스킬진을 펼쳐 사용할 수 있었을 터다. 그러나 그건 무리였고, 마력도 부족했다.

그래도 이미 존재하는 스킬진의 변형 정도는 가능했다.

* * *

이단우는 며칠 더 수련장을 이용했다.

별로 중요한 사실은 아니었지만, 차우원과 배지슬은 그 뒤로 마주친 일이 없는 듯했다.

배지슬이 자기 아버지를 피해 다녔기 때문이다.

‘사정이 있는 모양인데.’

이단우는 그녀의 집안 사정까진 관심 없었다. 문제는 이단우도 배지슬과 접촉할 시간이 적다는 거였지만.

‘이쯤이면 됐나.’

어쨌든 시간은 끌었다. 이림 길드원들은 외부자뿐만 아니라 서로를 경계하느라 피로가 누적된 탓에 신경이 날카로워져 있었고, 은퇴 길마도 초조해 보였다. 다른 피해자 신원이 밝혀진 것이다. 그리고 그는, 이림 은퇴 길마만큼이나 철저하게 보호받고 있던 전대 헌터였다.

‘사람들은 쉽게 해결하면 쉬운 문제인 줄 안단 말이야…….’

단우는 하품하며 생각했다. 2교대는 헌터에게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이 사건이 쉽게 해결 가능한 입장에선 더욱 그랬다.

이단우는 이 ‘스킬 사냥’을 기희윤이 포기하게 하는 방법을 이미 알고 있었던 것이다.

기희윤은 어린애처럼 유치한 성격이었다. 집착이 강하고 탐욕스러웠으나, 흥이 깨지면 금방 장난감을 내팽개치고 만다.

‘애초에 이번 스킬 사냥은 기희윤이 주도한 것도 아니고.’

은퇴 길마의 스킬이라는 게 기희윤이 탐낼 정도로 희귀하지 않기 때문이다. 좋은 스킬인 건 맞지만.

그렇다면 포기시키는 것도 간단하다.

‘귀찮게 만들어 주면 되지.’

* * *

임시 회의장은 피로한 헌터들로 가득 찼다. 팀장 절반은 경호 임무 투입 중이라 들어오지도 않았다.

듬성듬성한 회의실 구석에는 며칠간 못 본 배지슬도 앉아 있었다.

‘끝나고 말 걸자.’

단우는 차우원의 옆에 앉았다. 역시 며칠간 자주 못 본 차우원은 이 자리의 헌터들 중 가장 멀쩡해 보였다.

강울림이 멀쩡한 것과 비슷한 이치였다. 애초에 기초 체력이 다르다. 다른 헌터들과 외모 골격 자체가 다름은 물론이었다.

-나도 회의 따라갈래.

-이번 모임은 회의라기보다 정례 보고 시간인데.

-어. 그냥 구석에 앉아 있을게.

-음……. 그래. 단우가 가서 앉아 있기만 할 사람이지.

단우를 열받게 하긴 했으나 차우원은 그를 회의장에 데려왔다.

차우원이 옆자리에서 빙그레 웃었다. 단우가 뭘 하나 지켜보겠다는 듯한 태도였다.

‘보고 있어라.’

단우는 등받이에 등을 기댔다. 그 상태로 다리를 까딱이고 있으니 회의에 전혀 관심 없는 사람처럼 보였다.

눈 밑이 검은 고청이 ‘너 왜 왔냐’는 표정으로 단우를 한번 쳐다보고 헌터들을 둘러봤다.

“A구역부터 보고 부탁드립니다.”

“A구역 이상 없습니다.”

“B구역 이상 없습니다.”

“C구역…….”

잡다한 보고가 이어졌다. 단우는 하품을 하다가 차우원에게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근데 기억 조작 스킬은 어떤 식으로 발동되는 거예요?”

‘웬 존대니, 단우야……’라는 표정으로 차우원은 단우를 빤히 쳐다봤다.

‘대답이나 해.’

단우는 눈으로 대답했다.

차우원이 씰룩거리는 볼을 깨물며 말했다.

“응, 시전자의 스킬이 상대의 정신에 간섭하는 방향으로 이루어지는 게 보통이지.”

“아하…….”

‘아하’라니 이단우가 할 만한 소리가 전혀 아니지 않은가?

‘뭘 하고 싶은 걸까.’

차우원은 웃음이 터지려는 걸 참고 장단을 맞췄다.

“왜?”

“아무리 생각해도 내부 협력자가 있어서 범인이 쉽게 범행을 저지르는 것 같긴 한데. 다시 보니 이상해서요. ‘기억 지우기’ 따위의 스킬이라면 범인은 협력자에게 스킬을 한 번 썼겠죠. 범행 순간에.”

회의 중에 잡담하는 소리를 다른 헌터들은 귀를 세우고 듣고 있었다. 그들도 피곤하고 지루했기 때문이다.

“그렇겠네.”

“그러면 내부 협력자에겐 ‘협력 거래’를 한 순간의 기억은 남는다는 건데……. 이걸 남겨 둘 리 없으니. 이것도 지운다고 하면 두 번.”

“응.”

“그럼 그사이 범인을 위해 수상한 행동을 했던 자기 자신에 대한 기억은 내부 협력자에게 남아 있을 텐데……. 협력자가 그 기억을 어떻게 합리화하나 궁금해져서요. 경호팀장님 말씀대로 다들 명문 길드의 훌륭한 헌터시잖아요? 기억에 이상한 점이 있으면 보고를 안 했을 리가 없는데요.”

“…….”

듣고 있던 헌터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단우는 그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만했다.

‘말할 리가 없지.’

자신이 혹시라도 범인의 스킬에 걸려, 배신했을지 모른다?

상상만 해도 끔찍하고 자신의 미래에 득도 안 될 비밀을 왜 상급자에게 까발린단 말인가?

그런 짓을 했다간 승진 대열에서 영구 탈락인데.

“그래서 궁금했던 점이…… 내부 협력자가 ‘지금도 스킬에 걸린 상태인 걸까?’였거든요. 협력자가 범죄 공모를 한 시점에 범인의 스킬에 걸렸다고 쳐 볼까요.”

“응.”

“그리고 범죄가 끝난 순간 효력이 다하는 스킬인 거죠. 그래서 ‘범죄에 협력한 처음부터 끝까지의 기억’이 조작됐다면. 대명문 길드의 바르고 훌륭한 길드원들이라도 보고를 못 했겠구나. 아예 기억이 없으니까. 싶었거든요.”

“그렇구나…….”

차우원은 간신히 대답하고 입을 꾹 닫았다.

‘그래. 웃지만 마라.’

이 새끼는 왜 단우가 뭐만 하면 웃는단 말인가?

이단우는 스무 살의 차우원을 도통 이해할 수 없었다.

“근데 ‘기억 지우기’가 그런 식으로 발동하는 게 아니라면 소용없겠네요.”

“아니, 난 일리가 있는 것 같아. 그런 식으로 발동되는 스킬도 있을 수 있지.”

“정말요? 그럼 내부 배신자 색출이 더 어렵겠네요. 정신계 스킬 발동은 보통 어떤 식으로 깨나요.”

단우가 걱정하는 어투로 물었다.

차우원은 웃음을 참느라 뺨을 잘근잘근 씹으며 대답했다. 단우에게 눈으로 욕을 얻어먹고 싶진 않았으니까…….

“음……. 보통 충격을 주면 스킬이 깨지기도 하지. 정신적으로 받는 충격이 크면 클수록 정신계 스킬은 유지되기가 힘들거든.”

‘그래서 고문을 하지.’

이 말은 단우가 듣기에 너무 험한 말인가?

차우원은 입을 닫았다.

물론 단우는 그 말을 듣자마자 ‘길드원들 한 명씩 돌아가며 가볍게 패 보는 건 어떨까요.’ 같은 제안도 할 법한 사람이었지만.

이미 회의는 중단됐고 단우의 잡담을 모두가 엿듣고 있었다.

차우원은 원하는 바를 쟁취하는 이단우의 능력이 얼마나 탁월한지 감탄 중이었다.

‘이번엔 뭘 또 원해서 이러는지 모르겠는데.’

아마 그가 원하는 바대로 될 터였다.

그때 갑자기 단우가 옆자리에 앉아 있던 다른 이림 길드원의 멱살을 쥐더니 자신에게 끌어당겼다.

“아. 이런 충격인가요.”

이단우가 이림 길드원에게 키스하려고 했다!

차우원은 손바닥으로 이림 길드원의 얼굴을 밀어 버려 반사적으로 막아 낼 수 있었다. 이림 길드원은 의자째로 뒤로 넘어졌다.

“어억!”

차우원의 귀에 그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심장이 땅으로 떨어졌다.

“무슨 짓이야, 단우야.”

그가 정색했다.

진짜 이단우는 무슨 생각을 하고 사는 사람이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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