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
소서정이 단우를 싫어하는데 단우는 소서정을 좋아했겠는가?
‘이래서 싫어했지.’
타고난 놈들은 제가 받은 재능을 모르고 남이 죽기 살기로 아등바등 따라가는 걸 몰랐다. 소서정이 그 대표 격이어서 단우는 다른 곳을 볼 필요도 없었다.
차우원이 그만큼 잘난 건 부모덕이고 자기가 그만큼 하는 건 제 노력이란 말인가? 그리고 이단우가 그들보다 못한 건 노력이 부족해서고?
이단우는 <차우원 팀>에서 구르다가 결국 A랭크를 찍었는데, 그때 소서정의 표정이 볼만했다.
물론 그 뒤에도 소서정은 이단우를 싫어했다…….
-네가 날 더 싫어하잖아!
라는 이유에서였다.
그럼 지금까지 지랄하던 놈을 이단우가 예뻐해 줘야 한단 말인가?
그런 놈이었으나 소서정은 <차우원 팀>의 <최후의 던전> 공략이 결정됐을 때 두말없이 찬성한 놈이었다.
그리고 그 안에서 희생했다.
‘최악이다.’
뭐 이놈은 마지막까지 그렇게 허세를 부리다 죽을 수 있단 말인가? 허세에 맞는 실력도 없었으면서. 타고난 능력만 믿고 막 살아가던 놈이, 꼴에 사명감은 있어서 <종말>을 막겠다고 목숨을 내던졌다.
이단우는 그 꼴은 다시 보지 않을 작정이었다. 그는 이 팀의 멍청한 팀원들이 다시 눈앞에서 사라지는 꼴은 볼 수 없었다.
‘그러려면 이 새끼 스킬 활용도부터 잡아야 하는데.’
소서정은 저보다 잘난 놈의 말이 아니면 말을 안 듣는다는 특징이 있었다. 단우는 그걸 당근과 채찍으로 뭉개 볼 생각이었다.
여기서 당근은 스킬북이었고 채찍은 수련장에서의 충격이었다. 보통 마법사들이 1대 1로 몬스터와 붙으면 패닉에 빠지기 마련이니까.
‘S급 스킬을 떠안긴 놈이 실전 경험도 출중해 보이면 수련 따라올 마음이 생기겠지.’
물론 그 S급 스킬은 과거 소서정이 갖고 있던 스킬로…….
-활용도가 애매해.
라고 소서정 자신은 대충 던져 놓은 스킬이었다.
-아니, 운 좋은 사람은 넘어져도 돈을 줍는다잖아? 내가 여러모로 좀 타고나야 말이지. 센터 은사님 만나러 갔다가 졸지에 심부름을 가게 됐거든? 근처 헌책방에 들렀는데, 은사님이 찾던 책은 없고 먼지 쌓인 구석에 S급 스킬북이 꽂혀 있던 거야. 다른 책 사이에 끼어 있어서 책방 주인은 그런 게 들어와 있는 줄도 몰랐던 것 같던데. 딱 제 주인을 만난 거지. 나 아니면 누가 익힐 수나 있었겠어?
그 말 하나 믿고 그가 졸업한 센터 주변을 발이 부르트게 돌아다닌 보람이 있었다.
물론 단우의 생각이야 소서정은 알 수 없었다. 그는 자신이 천재라고 생각하며 어린 시절을 보내다가 차우원을 만났다. 차우원과 함께한 센터 생활은, 소서정을 한층 겸손하게 만들었다.
‘흠. 난 수재쯤 되는 것 같다.’
그래도 명문 길드에 들어가서 활약 좀 하면, 어떻게 명성도로는 차우원에게 비벼 볼 수 있지 않을까…….
차문경까지는 아니더라도, <차문경 팀>의 팀원들이 전대 영웅으로 존경받는 것처럼?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또 이단우가 나타나 버렸다.
‘도대체 천재들은 어디서 이렇게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거야? 마음의 준비도 못 하게.’
소서정의 연약한 마음은 언제든 깨질 준비가 되어 있었다. 안 그래도 실전을 겪으며 ‘아, 이 팀 장난 아닌데. 이단우 장난 없는데. 심지어 강울림도 좀 대단한 것 같은데. 얘 자퇴하기 전부터 내가 알아봤어…….’ 따위의 생각을 하는 중이었는데, 이단우가 방금 대단한 전투 판단력까지 보여 주지 않았는가?
소서정은 의기소침할 만했다!
하지만 이단우는 강철 같은 인간이라 사람의 부드러운 마음 따위는 이해하지 않았다.
“이게 뭐라는 거야. 천재는 너 같은 걸 말하는 거고.”
“……?”
‘이단우 삼백안 됐다…….’
이단우는 화나면 눈동자가 살짝 올라갔는데, 그렇게 변하면 평소에 새침하게 예쁘장한 얼굴이 세 배는 무서워졌다.
저렇게 생겨서 어떻게 사람을 겁줄 수 있는지 소서정은 그것도 의문이었다.
“야. 너 방금 S급 스킬 익혔지.”
“어, 네가 줘서…….”
겁먹은 소서정이 ‘고마워……’라고 인사를 끝내기도 전에 이단우는 말을 씹었다.
“용량 얼마나 찬 것 같아.”
“……몰라?”
“뭘 몰라. 어떻게 몰라. S급 스킬을 익혔는데. 보통 헌터면 ‘아, 좆됐다. 이제 스킬 한두 개나 더 익힐까.’ 직감이 딱 올 텐데.”
“어?”
소서정은 그런 느낌이 뭔지 몰랐다.
‘아니, 이단우도 모를 것 같은데…….’
강울림도 ‘그런가?’ 하는 표정이지 않은가?
하지만 이단우가 확신하고 있어서 소서정은 입을 닥쳤다.
“너 앞으로 S급 스킬 몇 개나 더 익히면 용량이 찰 것 같아.”
“……몰라?”
“왜 모르냐고. 모르는 이유를 정말 몰라? 너 스킬 삭제해 본 적 있어? 그때 용량 얼마나 빈 것 같았어.”
“……아주 조금?”
소서정은 바보가 아니어서 이단우가 무슨 말을 하는지 깨달았다. 소서정은 용량이 크다.
“나 스킬 용량이 크네?”
“너 마력 랭크 몇이야.”
“어? 그건 아무리 너라도 내가 말해 주기가.”
“A랭크 찍었지. 각성 즉시.”
“헉, 미, 어떻게, 억…….”
소서정은 수습하려다 혀를 깨물고 눈물이 글썽해졌다. 그 와중에도 이단우는 계속 무서웠다.
“그런데 네가 천재인 줄을 몰라? 너 대가리에 뇌세포 대신 닭털 넣고 기워 놨어? 지랄을 하지 말고 생각을 하라고. 네 장점이 뭔지 알고 상대 약점을 파악해서 대처해. 머리 좋잖아.”
태어나 들어 본 적 없는 욕을 다발로 얻어맞느라 소서정은 정신이 혼미했다. 그러나 이단우가 소서정을 말로 죽여 버리고 싶은 게 아니라면, 그가 하고 싶은 말은 아마 이런 것일 터였다.
“그러니까 네 말은…… 나보고 다양한 스킬을 익혀서 상대 약점에 따라 대응하라는 거지? 스킬 용량과 마력이 내 강점이니까?”
“그래.”
잘 알아들은 것 같은데 이단우는 이상하게 화난 기색이었다. 그는 입을 꾹 닫더니, 이내 차분해진 어투로 말했다.
“스킬 만 개쯤 익혀 봐. 누가 알아? 네 이명이 ‘만개의 소서정’쯤 될지.”
“……!”
소름 돋게 멋진 이명이어서 소서정은 주먹이 절로 쥐어졌다. 그건…… ‘영웅의 아들’ 차우원만큼이나 멋지지 않은가? 그보다 더 멋졌다!
옆에서 강울림도 눈을 반짝이고 있었다.
‘뭐야, 이단우 착하잖아.’
그들의 스킬을 잡아 주려고, 임무 중에 시간까지 내주고 있지 않은가? 물론 ‘임무 중에 스킬 수련’이 올바른 행위인지는 차치하고서라도…….
‘아냐. 올바른 행위지! 이단우가 그랬잖아. 뭐랬지, 헌터를 살리면 천 명을 살리는 거라고. 내가 강해지면 이천 명쯤 살리는 게 되니까 맞는 것 같다!’
강울림은 심장이 뛰는 걸 느끼며 이단우에게 물었다. 그는 <차우원 팀> 팀원들의 실력에 매번 놀라고 있었고, 가족의 은인인 차우원과 이단우에게 폐가 되고 싶지 않아서 늘 열심히 수련 중이었다. 그런데도 부족함을 느끼고 있었다.
“난 어떻게 할까! 어떻게 하면 너처럼 되는데?”
이단우는 과거 강울림을 떠올렸다.
-너는 진짜 헌터다. 내 근육도 다 노력으로 키운 거야. 내 생각에 너는 뭐가 돼도 될 사람이다.
이단우가 수련하는 모습을 보다가 강울림은 다가와서 듬직하게 말했다.
-뭐래. 꺼져.
짜증 내는 이단우를 황당하게 보고는 그 뒤로 귀찮은 사이가 됐으나…….
강울림의 이명은 ‘정의의 수호자’로…….
실은 ‘철완의 강울림’이라는 이명으로 더 유명했으나 본인은 낯간지럽기 짝이 없는 앞의 이명을 더 좋아했다.
강울림의 시그니처 스킬은 <무결의 벽>(S)으로, 그는 그야말로 탱커가 되기 위해 태어난 듯한 인간이었다.
성격도 우직하고 샛길을 잘 모른다. 누가 ‘맞다’고 하면 ‘맞구나’ 하고 따르는 놈이라 이단우는 사실 강울림이 싫지 않았다…….
마지막까지 강울림은 강울림다웠다.
이단우는 눈을 깜빡이다가, 마음이 관대해져서 말했다.
“넌 생각을 하지 마.”
“……?”
“판단하지 않는 게 장점이니까. 대기만성형이고. 그대로만 하면 돼. 지금 하는 대로 신체 스탯 수련 계속해. 네 스킬은 신체를 담금질할수록 더 좋아지니까.”
단우의 따듯한 말을 듣고 강울림은 생각했다.
‘멍청하단 욕인가?’
하지만 함께 욕해 줄 타이밍을 놓쳐서 뭐라 하기도 머쓱했다.
“그럼 수련해.”
하고는 이단우는 수련장을 나가 버렸다.
‘너는?’
남겨진 소서정과 강울림은 의문이었으나 역시 이단우에게 물을 수는 없었다. 서로 궁금한 처지라, 소서정과 강울림은 눈길만 주고받았다.
‘네가 물어봐.’
‘네가.’
그리고 둘 다 고양이에게 방울 달 용기는 없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그렇다면 할 일은 하나밖에 없지 않은가?
이단우의 명령을 따르는 것…….
그들은 홀로그램을 띄워서 다음 단계를 깨기 시작했다.
‘이단우는 혼자 경계 돌려나 보다…….’
그렇게 여겨야 마음이라도 훈훈했기 때문에 그들은 애써 좋게 생각했다.
“아니 어차피 우리 챙겨 주는 거면서 성질은 드러워서.”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강울림이 먼저 투덜거렸다.
소서정은 잠시 기다렸다. 이단우가 어디서 노려보는 것 같지는 않았다.
‘험담이 들릴 거리는 아닌가 보지.’
충분히 멀어진 것 같다.
확신하고서야 소서정은 동조했다.
“내 말이. 걔는 성격이 더러워서 죽어도 지옥에서 안 받아 줄걸.”
“그래도 이단우가 지옥에 갈 정도는 아니지 않냐? 성격 더럽다고 지옥에 보내진 않지.”
강울림이 옹호했다. 소서정은 황당했다.
“야, 넌 이단우가 있는 천국에 가고 싶냐?”
어쨌든 이단우라는 씹을 거리가 있어서 그들은 모처럼 싸우지 않고 대화를 했다…….
* * *
밖으로 나온 이단우는 생각하고 있었다.
‘돌겠네…….’
진짜 천재들이 그에게 배우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이다. 인정받는 기분은 나쁘지 않지만.
실은 좋지만…….
‘와…….’
기분이 너무 이상했다.
강해져야 하는 건 <차우원 팀>이었다. 이단우도 스탯을 성장시키겠지만, 그는 자신의 한계를 알았다.
그가 지난 던전에서 얻은 <한계 초월>(S)은 과거 이단우도 얻은 스킬이었다. 그는 자신이 이 스킬을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이단우는 진짜 미친놈이어서 죽을 위기에 스스로를 잘 빠뜨리는 놈이었기 때문이다.
몇 번을 요단강 물에 발을 담그고 돌아왔더니, 누가 불쌍하게 여겼는지 스킬이 하나 떨어졌다.
<한계 초월>을 익히고 이단우는 깨달았다.
‘와…….’
나 이제 스킬 하나쯤 더 배울 수 있으려나?
소서정에게 한 얘기는 이단우의 자기 고백이었다.
생각에 잠긴 채 저택 외곽 숲을 걷는데 눈앞의 상이 두 겹으로 보였다 하나로 겹쳐졌다.
이단우는 눈을 잠시 비비다가 품에 손을 넣었다. 사탕통에 넣어 둔 ‘마력 촉진제’를 하나 입에 넣고 우물우물 빨았다.
세상은 다시 명료해졌고 이단우의 뺨은 혈색이 돌아 약간 붉어졌다.
‘중독 증세 시작됐네.’
이 몸의 사용 기한은 앞으로 몇 년일까?
‘7년은 쓰겠지.’
<최후의 던전>을 막을 때까지만 잘 움직이면 되기 때문에 이단우는 신경 쓰지 않았다. 그러나 <한계 초월>로도 마력 스탯을 올릴 수 없다는 사실은 안타까웠다.
‘진짜 필요한 건 마력인데.’
뭐 어쨌든 다른 목적도 이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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