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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인성 교육-42화 (42/170)
  • 42.

    한때 이림 길드 신입이었던, 현 신분 <차우원 공격대> 원거리 딜러 소서정은 가면을 쓰고 이동 중이었다.

    “헉. 잠깐만 멈춰 봐.”

    “…….”

    “지나갔다. 헉. 저거 사람 그림자 아냐?”

    “야. 네 얼굴에 아무도 관심 없어. 그냥 지나가.”

    강울림이 짜증 냈다. 소서정은 신경이 곤두섰다. 강울림이야 모르겠으나, 소서정도 상당한 유명인이었다.

    ‘차우원이 과하게 유명한 거지.’

    보통 ‘센터의 유명인’이라거나 ‘길드의 대형 신인’이라고 하면 소서정 수준의 유명세를 자랑하게 되지 않던가?

    “너야 관심 없겠지. 네 눈은 얼굴에 없으면 허전할까 봐 짝 맞추는 용도로 존재하잖아. 사람 얼굴을 보고 다니긴 해?”

    “너처럼 보고 다닐 바에야 그냥 안 보고 다니겠다! 하루 종일 거울을 잡고 머리를 만져 대면 근력 랭크가 반 개라도 오르냐?”

    “근력 랭크는 뭘 해도 안 올라! 신체 스탯이 무슨 콩나물도 아니고 그렇게 쑥쑥 자라냐? 하긴, 모르니까 하루 종일 수련장에 틀어박혀서 무슨 훈련인지 하고 있는 거겠지.”

    소서정이 빈정거렸다.

    “뭐? 하지만…….”

    놀란 강울림이 자기 신체 스탯의 콩나물 같은 성장을 자랑하려 들어서, 단우는 말을 끊었다.

    “도착했어.”

    그들 앞에 거대한 건물이 보였다. 대충 체육관 같았고, 이단우가 말한 ‘우리가 맡은 출입구’로는 보이지 않았다.

    “여기가 어딘데?”

    “대몬스터용 스킬 수련장.”

    “출입구 아니잖아!”

    “저기 있잖아.”

    이단우가 턱짓으로 어디를 가리켰다. 소서정이 눈을 가늘게 뜨고 손차양을 만들어 보니, 일반인이라면 보이지도 않을 만한 거리에 담장과 문이 있었다.

    담장이야 드높았고 스킬진으로 도배되어 있었으나, 이 사건의 범인은 이런 장소도 아무렇지 않게 드나드는 놈이라지 않던가?

    이 거리에서 담장을 지키겠다고?

    ‘아. 누가 문 앞을 지키고 있긴 하네.’

    우린 진짜 이 길목만 지키면 되는 건가?

    거의 작은 숲처럼 관리해 둔 울창한 나무 정원이 담장을 둘러싸고 있고, 문에서 수련장을 지나 저택으로 들어가는 길목만 나무가 없었다.

    확실히 길목이라면 이곳이 길목이긴 했다.

    소서정은 문득 궁금해져서 물었다.

    “2교대라던데 우리 셋 다 지키면 누가 교대해? 차우원 혼자 하나?”

    ‘걔라면 가능할 것도 같은데.’

    그건 이단우도 마찬가지 아닌가?

    팀을 짜려면 자신과 차우원, 강울림과 이단우, 이런 식으로 둘둘씩 짜는 게 맞다고 소서정은 생각했다.

    ‘강울림은 멍청하니까 이단우가 시키는 대로 탱킹이나 하면 되겠고, 난 차우원과 호흡을 맞추는 거지.’

    차우원은 탱킹도 가능한 딜러였다. 그가 괜히 유망주 1위가 아니다.

    “아니면 우리한테 좋은 침실 소개시켜 주고 잘 생각은 하지도 말라는 거야? 여기 붙박이장 해?”

    “들어와.”

    이단우는 질문을 무시하고 수련장 문을 열었다.

    철컥.

    ‘방금 잠긴 거 따지 않았나?’

    수련장 열쇠까지 받아 가지고 왔다.

    ‘우리보고 수련장 안에서 편하게 쉬면서 길목 지키라고 배려해 준 건…… 당연히 아닐 테고……?’

    소서정은 헌터 명문가 출신이라 대형 길드에서 하는 짓을 잘 알고 있었다.

    <차우원 공격대>야 차우원의 명성으로 대우를 받는 편이긴 해도, 경호하라고 불러온 신진 공격대 팀원들을 이렇게 편히 둘 리가 없는 것이다.

    소서정이 목소리를 낮췄다.

    “야, 우리 들어와도 되는 거야?”

    “어우. 넌 왜 이렇게 시끄러워?”

    뭣도 모르는 강울림이 인상을 썼다.

    소서정은 발끈했으나 강울림과 싸울 때가 아니었다.

    “우리 안에서 이러고 있는 거 들켰다가 태도 불량으로 적발되면, 망신도 그런 망신이…….”

    “안 들켜.”

    “네가 어떻게 알아?!”

    “네가 안 들키게 할 테니까.”

    그러더니 이단우는 아공간 아티팩트에서 뭔가를 꺼내 소서정에게 휙휙 던졌다.

    스킬북이었다.

    하나가 아니다.

    <마력 감지>, <이동 발각 알람>, <도둑용 트랩>…….

    ‘기시감이 드는데.’

    이게 바로 데자뷔……?

    이딴 생각을 할 때가 아니다.

    소서정은 퍼뜩 고개를 들었다.

    “잠깐, 나보고 이거 다 익히라고?”

    “오래 걸려? 한 시간이면 돼?”

    이단우가 휴대폰을 보며 물었다. ‘그렇게나?’라는 투여서 소서정은 속에서 천불이 났다!

    “보통은 스킬 하나 익히는 데 한 시간 더 걸리거든! 물론 나라면 열 개를 익혀도 한 시간은 안 걸리겠지만. 아니, 근데 이런 소리를 하려던 게 아니었지. 너 전부터 나한테 자꾸 잡다한 스킬을 익히게 하려는데…….”

    “경호에 꼭 필요한 스킬이 왜 잡다한 스킬이야? 너 경호 업무 무시해?”

    이단우가 정색했다. 그런데 한 손으로는 아공간 아티팩트를 계속 뒤지고 있어서 전혀 무서워 보이지 않았다!

    ‘조금 무섭긴 한데!’

    “너 솔직히 말해 봐. 나 용량 부족으로 S급 스킬 떠도 못 익히는 꼴 보려고 이러는 거지?”

    소서정은 진지하게 물었다.

    ‘헌터의 용량 부족.’

    컴퓨터 메모리 부족 따위의 문제가 아니다. 목숨이 걸린 심각한 문제였다.

    헌터 개개인에게는 익힐 수 있는 스킬의 개수가 정해져 있었다. 그걸 그 헌터의 용량이라고 불렀는데, 그 용량은 각 헌터마다 달랐다.

    그러니까 헌터가 각성할 때부터 가지고 있는 빈 책 한 권이 있는 것이다. 그걸 그 헌터 개인의 스킬북이라고 한다면, 스킬을 하나 익힐 때마다 페이지가 채워진다.

    모든 스킬이 같은 양의 페이지를 잡아먹는 것은 아니다. S급과 E급 스킬이 같은 취급을 받을 리 있겠는가?

    ‘S급이 한 백 페이지쯤 잡아먹으면 E급은 한 페이지일까.’

    소서정은 S급과 E급 스킬을 모두 가져 본 적 있었는데, E급은 바로 삭제했으나 그때 느꼈던 바로는 그랬다.

    용량 차이가 어마어마해서 심장이 두근거렸던 기억이 난다.

    ‘난 얼마나 더 S급 스킬을 익힐 수 있지?’ 하고.

    S급 스킬을 익힌 헌터가 그렇게 적은 이유는, 헌터 자신의 재능 부족 때문일 수도 있으나 용량 부족 때문이기도 했다. 던전 클리어 보상으로 S급 스킬이 뜬다고 해도, 헌터의 남은 스킬북 페이지가 부족하다면 보상은 자동 취소된다.

    “뭐래. 네가 용량 부족이 왜 떠. 시간 없으니까 빨리 익히기나 해.”

    “아니…….”

    이단우가 너무 아무렇지 않게 말해서 소서정은 따지기가 뭐했다. 하지만 소서정은 원한다면 얼마든 분위기를 무시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이런 잡스킬 다 배우면 내 용량이 남아나겠냐고. 날 걸어 다니는 스킬북 외장 하드 취급하는데, 내가 굉장히 기분 상했다는 걸 네가 알아줘야겠어.”

    “찾았다.”

    ‘이단우 이거 안 듣고 있는 거 아냐?’

    소서정은 의심했다.

    이단우가 아공간 아티팩트에서 꺼낸 건 또 다른 스킬북이었다.

    이번에는 정말로 화가 난 소서정이 가면을 내던지려는데, 스킬북의 등급이 보였다.

    -띠링!

    스킬: <36계>(S)

    손자병법을 좋아하는 제작자가 만든 스킬이다. ‘살아남는 것이 병법의 제일이요, 최후에 웃는 것도 살아남는 자만이 가능한 것이니, 후인은 그것을 잊지 말라.’

    제작자: ?

    “이것도 익히고.”

    “너…….”

    소서정은 소리치려던 말을 어떻게 수습할지 생각했다. 일단 그는 가면을 허리춤에 찼다.

    ‘여기 이림 길드원도 없는데 이거 쓰고 있을 필요가 없지.’

    그리고 자신을 빤히 보는 이단우에게 말했다.

    “……너무 좋다고. 왜 이것부터 주지 않았어? 내가 널 오해할 뻔했잖아. 인간관계가 이렇게 사소한 데서 오해가 생길 수 있다고. 나를 소중히 여기는 네 마음을 먼저 보여 줬으면, 나도 서운한 마음이 순간 들지는 않았을 텐데…….”

    “어휴, 시끄러워. 미안하면 그냥 미안하다고 말하고 냉큼 받으면 되지.”

    강울림이 새끼손가락으로 귀를 팠다.

    ‘저 새끼가 진짜.’

    내가 여기서 스킬을 쓸 수도 없고, 맨주먹으로는 못 이겨서 참는다…….

    소서정은 이를 악물었다. 그러다 눈알이 튀어나올 뻔했다.

    “어…….”

    갑자기 이단우가 소리 없이 활짝 웃었다.

    “하하…….”

    그가 뭣 때문에 웃는지 몰라도 그 모습이 무서울 정도로 예뻐서, 소서정은 폐에서 헛숨이 새어 나갔다.

    ‘내 눈이 헛것을 보나.’

    하고 옆을 돌아보니 강울림이 멍청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소서정은 정신이 들었다.

    “왜, 왜 웃니?”

    소서정은 저도 모르게 더듬었다. 그새 이단우는 언제 웃었냐는 듯 싸늘해져 있었다.

    그가 소서정에게 설명했다.

    “그거 다 익혀 봐. 임무 끝나고 쓸데없다 싶으면 삭제하든지.”

    “어, 어어……. 그래.”

    “그리고 이 근방에 알람 스킬 쭉 깔아 두고 우린 이거 시설 이용이나 하자.”

    “어?”

    당당하게 땡땡이치자는 말에 소서정은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물론 요령 부리는 건 소서정이 가장 좋아하는 일이긴 했다…….

    ‘그래도 이건 <차우원 팀> 이름으로 들어온 일인데……?’

    공적인 일 아닌가? 게다가 전대 영웅 스킬이 걸려 있는…….

    ‘목숨은 안 걸려 있으니 괜찮은가?’

    멋대로 생각하려던 소서정은 스스로를 부정했다.

    ‘……그럴 리가 없잖아!’

    헌터의 시그니처 스킬만큼 그 헌터에게 중요한 게 또 어디에 있겠는가? 시그니처 스킬을 잃을 바에야 대부분의 헌터들은 스스로의 목을 날려 버릴 것이다.

    눈앞에 자신의 시그니처 스킬을 각성도 못 한 헌터가 있다는 사실은 상상도 못 하고, 소서정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혹시 그러다가 우리가 범인을 놓치기라도 하면…….”

    “맞아. 이단우 네가 이상한 짓만 벌이는 데다 성격은 더러워도, 일은 확실히 하는 사람이잖아! 소서정 같은 게 방금 전에 익힌 스킬을 어떻게 믿고 경호 없이 수련하자는 소리를 할 수 있어? 물론 이 수련 시설이 엄청나게 좋아 보이고, 여기서 수련하면 스탯이 쭉쭉 늘 것 같은 기분이 들긴 하지만…….”

    ‘이 자식 이거 돕는 거야, 마는 거야?’

    소서정은 강울림을 노려봤다.

    어쨌든 이단우가 말했다.

    “나 사실 감지 타입이야.”

    “뭐?!”

    “그게 뭔데?”

    “뭐?!”

    이단우의 고백에 놀랐던 소서정은 강울림의 헛소리에 다시 놀랐다.

    ‘뭐라는 거야, 이 자식?’

    “차우원이 감지 타입이잖아!”

    “그러니까 그게 뭔데?”

    “너 헌터 맞냐?!”

    소서정은 가슴을 치다가 강울림이 센터를 금방 자퇴했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그래도 보통 그걸 모르나?’

    소서정은 인내심을 가지고 설명했다.

    “마력을 감지할 수 있는 헌터를 그렇게 부르거든…….”

    “와, 그거 대단한 거 아냐?”

    강울림이 놀랐다.

    “대단한 거야…….”

    소서정은 강울림의 무식함에 놀라야 할지 뭐에 놀라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그럼 그 경계 스킬인지 뭔지 없어도 되는 건가? 어차피 이단우가 다 알 수 있다는 거잖아.”

    “아니. 그런 식으로 작용하는 건 아니고. 차우원이면 가능할지도 모르겠는데 난 열성이라 좀 더 접근해야 알거든.”

    이단우가 대충 말했다.

    ‘개뻥이지만.’

    그의 마력 감지는 마력 촉진제 부작용이었으나 누가 이단우를 해부해 볼 것도 아니지 않은가? 마력 타입은 드문 능력이라 차우원을 제외하면 근처에 예시도 없었다.

    강울림이 감탄했다.

    “오오, 그렇구나.”

    “그러니까 수련이나 하자고. 너 빨리 익혀. 몬스터 홀로그램 띄울 테니까.”

    “…….”

    소서정은 뭐라 할 말이 없어서 그 자리에 앉아 스킬북을 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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