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 인성 교육-41화 (41/170)
  • 41.

    ‘기희윤의 S급 스킬 <매혹>을 패시브 스킬이라고 부르는 이유가 있다.’

    ‘시그니처 스킬’이 아니다. <매혹>은 기희윤을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그에게 무조건 호감을 갖게 만들었으나…….

    그건 다른 스킬들을 사용하기 위한 준비 작업이었다.

    ‘벌레를 유혹하려고 안에 꿀 담고 있는 파리지옥 같은 거고.’

    기희윤의 시그니처 스킬은 <인형화>(S)로, 상대가 자신을 위해 움직이게 만드는 어처구니없는 사기 스킬이었다.

    그런 스킬을 기희윤에게 쥐여 주다니, 세상이 이 꼴이 되지 않고 남아나겠는가?

    ‘저 스킬이 차우원 같은 인간 손에 들어갔다면 인간 갱생 프로젝트 같은 데나 쓰였을 텐데.’

    당연히 기희윤은 아니었다.

    ‘이 중에서 몇 명이나 인형일까.’

    단우는 회의장을 둘러봤으나 겉으로는 다 멀쩡해 보였다. 애초에 <인형화>는 진짜 사람을 인형으로 바꾸는 스킬이 아니기 때문이다.

    ‘인형처럼 주인을 위해 움직이도록 만들긴 하지만.’

    외형과 평소의 행동, 습관 모두 그 사람의 것 그대로다. 뇌만 살짝 이상해지는 것이다.

    기희윤이 찾아와서 ‘문을 열라’고 시키면…….

    인형이 된 사람은 의문 없이 그 일을 할 터였다.

    ‘그리고 거짓말한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잊어버렸다’고.

    그래야 자신의 주인을 보호할 수 있기 때문에.

    인형에게는 그게 너무도 당연한 일이라 거짓말을 한다는 죄책감조차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물론 이런 소리는 할 수 없었다.

    ‘어떻게 알고 있는지 말할 수도 없고.’

    미친놈 헛소리로밖에 더 들리겠는가?

    이 회의장 안에도 기희윤의 인형이 있을 텐데 쓸데없는 관심이나 끌게 될 테다.

    “이단우 헌터. 그 말은 저희 이림 길드원들을 믿지 못한다는 얘기로 들리는데요.”

    고청이 말했다. 이미 이림 소속 길드원들의 표정은 붉으락푸르락했다.

    ‘내 이름은 어떻게 아냐.’

    단우는 <차우원 팀> 전체가 이림에서도 주목받고 있다는 사실에 소름이 돋았으나 말은 잘 나왔다.

    “제 말이 다른 피해자들 경호원들은 믿는 소리로 들리십니까? 이림 부길드장님은 그럼 그 경호원들이 다들 하나같이 무능해서 경호 대상도 못 지켰다고 생각하세요?”

    “……이림 길드원들은 1년 차부터 특수 교육을 받고, 그때부터 길드에 대한 충성심과 인성 교육도 함께 받습니다. 다른 길드와 비교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전 길드장에 대한 예우로 경호팀도 실전 경험이 풍부한 헌터들만 뽑았습니다. 각기 자부심이 대단한 데다 명예를 알고 부유한 헌터들인데, 저희 중에 배신자가 있다고요?”

    “맞습니다. 이단우 헌터야 길드나 명문 헌터 가문 출신이 아니라 모르겠지만, 저희들의 자긍심은 도둑놈 하나에게 넘어갈 만큼 가볍지 않습니다. 돈이나 아티팩트 따위에 유혹당할 정도로 사정이 급한 녀석들도 없고요.”

    누가 덧붙였다.

    ‘잘났군.’

    이단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예. 다른 길드들은 명문이 아니고 자긍심도 없지만 이림은 다르다고요.”

    “그렇게 말씀드린 건 아닙니다.”

    고청이 움찔했다.

    ‘전대 영웅이 당했으면 5대 길드 중 하나가 뚫렸다는 건데.’

    이림이 다른 길드를 모욕했다는 소리가 나와 봐라. 아주 좋은 관계가 형성될 터였다.

    “명문 길드의 헌터를 포섭하는 게 말이 안 될 만큼 어렵다는 말씀을 드리고자 한 겁니다.”

    “그 명문 길드의 헌터 수십 명을 뚫고 경호 대상이 가진 스킬을 뺏는 게 더 말이 안 되죠. 명문 길드 헌터들이 그렇게 무능합니까?”

    고청은 명문 길드 놈들이 무능하다는 사실과 길드원 중 하나가 배신자일 수도 있다는 사실 중 한쪽을 골라야 할 처지가 됐다.

    “……그렇지는 않겠죠.”

    ‘그렇게 대답할 줄 알았다.’

    배신자 한 놈 있는 쪽이 길드 전부가 무능하다는 쪽보다 나을 테니까.

    ‘둘 다 쪽팔리기는 마찬가지지만.’

    “하지만 이단우 헌터 말대로라면 범인은 열 곳이 넘는 세력에 배신자를 심어 뒀다는 소리인데요. 그건 너무…… 대단하지 않습니까?”

    ‘또 말이 안 되는 소리라고 했다가 다른 길드를 욕하는 꼴이 될까 신경 쓰고 있군.’

    뭘 저렇게 신경 쓴단 말인가? 어차피 명문이라고 하는 길드들 하는 꼴이 다 거기서 거기인데.

    ‘다 개같지.’

    물론 청연은 제외였다. 기희윤도 감히 청연으로 잠입해 스승님의 스킬을 훔칠 생각은 하지 못했다…….

    “그럼 열 명이 넘는 훌륭한 헌터들의 스킬을 빼앗은 놈이 보통 도둑일 줄 아셨습니까?”

    “…….”

    “내부 협력자라니…….”

    “물론 명문 길드 헌터들이 도둑 하나 못 잡는 것도 이상하긴 하지만…….”

    회의에 참석한 팀장급들이 수군거렸다.

    ‘반은 넘어왔고.’

    실무자들만 설득해도 고청은 무시하지 못한다.

    ‘본인도 바닥에서 올라온 놈이니까.’

    그는 헌터 명문가 출신이 아니다. 그거랑 별개로 이림에서 헌터 생활을 시작했으면 타고난 재능이 넘쳐흐른다는 소리지만…….

    “하지만 그렇게 많은 협력자들이 있었다면, 그들이 아예 입을 다문 것도 이상하지 않습니까? 사건에 관여한 사람이 많으면 어디서든 말이 새어 나올 텐데요.”

    고청이 포기하지 못하고 지적했다.

    “그 헌터한테 기억 지우는 스킬이 있다면서요.”

    “…….”

    “와, 내부자였구나……! 그래서 안 잡힌 거였어!”

    구석에 앉아 있던 배지슬이 감탄했다.

    ‘타이밍 좋다.’

    그녀가 회의에 참석 중이라는 건 알고 있었다. 그쪽을 쳐다보지 않으려고 단우는 노력 중이었다.

    본인이 존재감을 알려 버려서 결국 쳐다보게 됐지만…….

    차우원도 그녀를 보고 있어서 단우는 다시 고개를 돌렸다.

    전 길드장의 아가씨가 단우 말에 동의를 표하는 바람에 고청과 실무자들은 ‘어어’ 하는 상황이 됐다.

    그때 차우원이 의견을 냈다.

    “이림을 비롯한 명문 길드 소속의 헌터들은 대단한 실력의 소유자시죠. 그 사실엔 의문의 여지가 없지만, 다른 길드에서도 이 사건을 다룰 때 외부 침입자에만 집중해서 작전을 짰으리라 생각되는데요. 그런데도 막지 못했다면 저희는 다른 각도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겠죠. 고려 부탁드립니다.”

    그의 말이 모든 의견을 공평하게 종합하면서도 결론을 내리는 듯해서, 회의장에 있는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단우는 미간을 좁혔다.

    ‘같은 말을 했는데 왜 반응이 다르지?’

    아무튼 아가씨가 동의한 데다 차우원의 말이 설득력이 있어서, 고청은 작전을 수립했다.

    “3인 1조로, 지금까지처럼 돌아다니지는 말고 주요 구획을 지키는 걸로 합시다. 외부 침입자를 경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내부 협력자를 적발해 내는 것 역시 마찬가지로 중요도를 높게 둡니다. 모두 경계하고 조심합시다.”

    “예!”

    실무자들이 나갔다. 고청이 눈짓을 보내서 차우원과 단우는 자리에 남아 있었다.

    “차우원 헌터.”

    고청은 단우를 힐끗 보고 차우원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예, 팀장님.”

    고청은 경호팀의 팀장이었다.

    ‘저 둘 센터 선후배 관계 아닌가.’

    보통 센터 출신들은 사이가 끈끈해서 공적인 자리에서도 ‘선배, 후배’ 따위로 서로를 부르기 마련이었다. 그러나 고청처럼 고지식한 인간에게는 통하지 않았고, 그는 차우원의 태도가 마음에 드는 모양이었다.

    “지금까지는 경호 대상을 저와 팀원들이 돌아가며 경호하고 있었지만, 새로운 작전이 수립된 이상 경계 태세를 바꾸는 편이 나을 것 같아서요. 결코 내부 협력 따위를 하지 않을 만한 헌터들이 경호 대상을 지켰으면 합니다. 제 팀원들을 믿지 못해서가 아니라…….”

    고청이 얼굴을 붉혔다.

    ‘인간은 유혹에 약한 생물이다.’

    그럴 리 없다고 믿은 인물이 뇌물에 넘어가는 일은 얼마나 비일비재한가?

    차우원이 대답했다.

    “예. 무슨 말씀이신지 알겠습니다. 언제부터 합류할까요.”

    그가 체면을 세워 줘서 고청의 얼굴이 편해졌다.

    “지금 당장입니다. 차우원 헌터가 충분히 휴식을 취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시간이 필요하다면 저녁때 합류하는 걸로 할까요.”

    “경호 임무인데 경호인 저택에서 쉴 수는 없죠……. 가겠습니다.”

    차우원이 차분하게 대답해서 고청은 미소 지었다.

    차우원이 단우를 돌아봤다.

    ‘이러면 되는 거야?’

    단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고청에게 물었다.

    “그럼 리더만 빠지고 저희 팀원들은 지정 구역을 담당하면 될까요.”

    “예. 그래 주시면 됩니다. 비상 호출이 울리면 합류해 주세요.”

    “명심하겠습니다.”

    ‘됐다.’

    외부 세력에게 담당시킬 구역이란 뻔하지 않은가?

    ‘중요도가 낮은 지역.’

    다시 말해 주요 길목이 아닌 곳이다. 저택의 외부.

    그리고 이 저택은 이림 은퇴 길마, 그러니까 전대 영웅…… 헌터의 저택이었다.

    그것도 헌터 명문가.

    ‘그게 무슨 뜻이냐.’

    저택 외곽에 반드시 수련장이 있다는 뜻이다.

    담당 구역을 정할 때 살짝 수작을 부린 것만으로 단우는 원하던 구역을 할당받을 수 있었다.

    ‘기희윤은 근처에 없다.’

    고청을 만난 덕분에 단우는 확신했다.

    단우가 복용하는 마력 촉진제는 금지 약품이었다. 여러 부작용 때문이었는데, 그중 단우에게 치명적이었던 건 복용자가 마력 작용에 예민해진다는 점이었다.

    단우가 마력 촉진제에 가장 절어 있었을 때는 <최후의 던전>에 <이단우 팀>을 모아 들어갔을 때였다.

    그때 단우는 작은 마력에도 불에 덴 듯 고통을 느꼈다.

    고통처럼 쉽게 학습되는 감각도 드물지 않은가?

    단우는 당시 <이단우 팀>에 속한 모든 헌터들의 마력을 감지할 수 있었다. 그들이 가까이서 마력을 사용하는 것만으로 이가 악물렸으니까.

    ‘상급 헌터쯤 되면 늘 마력을 몸에 두르고 다닌다.’

    상급 헌터들은 저항 스탯이 높았는데, 그건 그 헌터들의 신체 능력이 뛰어나서만은 아니었다.

    ‘뭐 그 이유도 있겠지만.’

    그들이 의식하지도 못하는 사이에 마력으로 스스로를 방어하고 있기 때문이다.

    단우는 저택에 들어설 때부터 고청의 마력을 희미하게나마 감지할 수 있었다.

    이만한 근거리에서는 선명하게 느껴졌다.

    ‘마력 촉진제를 더 복용하면 더 멀리까지 감지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단우는 가슴팍에 든 사탕통을 만지작거리다가 그만뒀다.

    수상한 놈들이 대낮에 활동하는 거 봤는가?

    기희윤은 한밤중에나 쳐들어올 것이다. 클래식한 쓰레기였기 때문이다. 그가 스승님의 무덤을 도굴한 것도 한밤중이었다…….

    ‘개새끼.’

    어쨌든 단우는 그 개자식을 족치기 전에 해둘 일이 있었다.

    지금까지 돈이 없어서 못 지었던 스킬 수련장이, 이곳에는 이미 튼튼하게 완비되어 있지 않은가?

    ‘답답해서 죽는 줄 알았네.’

    강울림과 소서정은 저 재능을 가지고 스킬을 저따위로밖에 못 쓴단 말인가?

    앞으로 4년간 무슨 일이 있기에 저 어처구니없는 활용 능력이 그만큼 발전하는 거지?

    ‘거기까진 알 바 아니고.’

    단우는 더는 못 참았다.

    ‘이 새끼들 스킬 교육 좀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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