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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인성 교육-36화 (36/170)

36.

차우원은 단우가 휴대폰을 들고 나가는 모습을 봤다. 옆방 ‘보스룸’에서 전화를 받은 단우는 웃는 낯으로 다시 사무실로 돌아왔다.

‘보스룸’이라니 엄청난 작명 센스 아닌가? 차우원은 이단우가 참 재미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지만, 저 미묘한 작명을 진지하게 지었다면 문제가 있는 것 같았다.

단우에게 말할 생각은 없지만.

‘귀여우니까.’

자기 개인 사무실을 ‘보스룸’이라고 명명하다니. 본인이 팀원들에게 보스 몬스터 취급받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걸까? 정말 귀엽다.

이단우가 알면 발끈할 이유였다. 이단우가 그곳을 ‘보스룸’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과거 차우원의 개인 사무실을 팀원들이 물밑에서 ‘보스룸’이라고 불렀기 때문이었으니까!

거기에 대해 이단우는 ‘깡패야 뭐야’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지금 이단우는 과거 차우원과 같은 권위를 얻기 위해 따라 하는 것뿐이었지만!

아무튼 차우원의 속내 따위 모르는 이단우는 활짝 웃으며 말했다.

“임무 땄어.”

“뭔데 그렇게 좋아해?”

“요인 경호 임무. 팀 랭킹 올린 보람이 있지.”

이단우가 웃어서 차우원도 기뻐졌다.

‘귀엽다.’

자주 웃으면 좋을 텐데. 모르긴 몰라도 단우가 원하는 팀 명성 얻기에도 도움 되지 않을까.

“오오오, 요인 누구?”

새 소파에 엎어져서 잡지를 읽던 소서정이 흥미를 보였다.

그가 원해서 사무실에는 어울리지 않는 2인용 소파가 하나 더 들어왔다. 안 그래도 좁은 사무실이 덕분에 더 좁아졌다.

“전 이림 길드 길마.”

“어?”

소서정이 당황했다.

“이림 길드원들이 철통 방어 하고 있어서 우리는 경호 보조 정도로 들어갈 거야. 이림 은퇴 길마가 자기 안위는 끔찍하게 챙겨서 별짓을 다 하고 싶은 모양인데, 우리야 꿀 빨게 해 주면 고마우니까 감사히 들어가자고.”

‘이림 은퇴 길마 놈.’

이단우는 그가 싫었다. 그것과 별개로 꼭 잡고 싶던 의뢰는 맞았지만.

“잠깐! 이림 길드원들이 경호하고 있으면 난 안 되잖아! 내 얼굴 기억할 텐데…….”

“네 얼굴 같은 걸 누가 기억해? 흔한 얼굴이니까 지금쯤 다 잊었을걸.”

단우는 귀찮았으나 팀장답게 다정히 안심시켰다.

소서정의 목에 핏대가 섰다.

“나 미남 소리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거든! 내 얼굴을 몇 달 만에 잊는 게 더 무리지!”

“네가?”

단우는 차우원을 잠시 쳐다봤다. 그림으로 그린 듯 잘생긴 얼굴이 단우를 마주 봤다.

“걔랑 비교하지 말고 객관적으로 보라고!”

“알았어. 너 미남이야. 다들 널 못 잊고 상사병에 걸려 있을 테니까 맨얼굴로는 호위 못 하겠네.”

“누가 그 정도래?! 아니, 나만 작전에서 빠지고 싶단 얘긴 아니고…….”

커리어에 지장이 갈 것 같자 소서정은 다급해졌다.

물론 단우는 그를 뺄 생각이 없었다.

‘너도 같이 가야지.’

그 저택에 배지슬이 있는데.

팀원 전원이 모여야 하지 않겠는가?

물론 배지슬이 당장 합류할 것도 아니니 꼭 갈 필요는 없었지만, 그래도 소서정은 가야 했다.

팀원이 다 함께 있는 광경을 단우가 보고 싶었으니까.

단우는 관대하게 허락했다.

“넌 복면 써라.”

“……?”

소서정은 무슨 소리인지 이해하지 못했다.

“그 복면 우리가 안 버렸던가?”

차우원이 물었다.

“여분으로 하나 더 있어.”

“단우가 준비성이 좋네…….”

차우원이 이를 악물고 웃음을 참는 듯했으나 단우는 신경 쓰지 않았다.

드디어 마지막 팀원을 만날 수 있다.

-두 분 그만 좀 싸우세요.

배지슬의 상냥한 얼굴이 떠올랐다.

심장이 약간 따끔거렸으나 단우는 무시했다.

차우원이 배지슬에게 첫눈에 반한대도 어쩔 수 없다. 이단우는 차우원에게 빼앗은 걸 돌려주러 돌아온 거지, 그가 사랑하는 사람을 빼앗으러 온 건 아니니까.

이단우는 그렇게 이기적인 짓은 하지 않을 것이다. 한 번 죽은 놈이, 두 번째 삶에서도 후회할 짓을 반복하겠는가?

사람이 죽으면 변한다는데 이단우 같은 놈도 변화가 있어야 할 터였다.

* * *

이단우와 통화한 사람은 현 이림 길드의 부길드장이었다.

-경호는 저희만으로 충분하다고 말씀드렸지만, <차우원 공격대>에 대해서는 전 길드장님 개인적으로 호감이 있으신 듯합니다. 차우원 헌터를 여러 번 칭찬하시기도 했고, 한번 만나보고 싶은 마음이 더 크신 게 아닐까 싶습니다. 경호에 대해서는 너무 부담 갖지 않으셔도 됩니다.

무뚝뚝한 목소리에서 자신감이 느껴졌다. 명문 3대 길드니 5대 길드니 하지만, 청연은 3대 길드에는 좀 못 미치고 5대 길드 안에 들어가는 정도의 수준이었다.

이림 길드는 3대 길드 중에서도 가장 앞선 명성을 자랑하고 있었으니 그곳의 부길마가 자부심이 없을 리 없다.

‘고지식한 놈.’

저렇게 말하면 차우원에게 무슨 제안이 들어올지 이단우가 다 알게 되지 않는가?

이단우는 이 통화 상대를 잘 알고 있었는데, 그가 과거 <이단우 팀>의 탱커였기 때문이다.

‘이놈이 경호팀장인 건 괜찮다.’

도움이 될 것이다. 유능하고 말귀를 잘 알아듣는 놈이니까.

머리가 좀 굳었다는 단점이 있었는데, 그 점은 그곳에 있는 누가 또 해결해 줄 테니 걱정 없었다.

‘이용하기 쉽다.’

이림 부길마를 한마디로 정의하고, 단우는 차 등받이에 등을 기댔다.

이림 측에서 차를 보내 준 덕분에, 단우는 봉고차를 호출할 필요가 없었다. 차 내부에 도청 방지 스킬과 각종 보호 스킬이 걸려 있어 안전성 측면에서도 든든했다.

‘대형 길드가 이런 건 좋아.’

단우는 주름이 지려는 미간을 손으로 폈다.

“사건 간단히 브리핑 할게. 이림 길드의 은퇴 길드장인 배청균이 호위를 요청했어. 요인 경호 임무지. 그런데 정확한 호위 대상은 배청균이 아니야.”

“그럼 누군데?”

소서정이 물었다. 그는 복면은 죽어도 못 쓰겠다고 주장해서 대신 가면을 쓰고 있었다.

‘저게 더 멍청해 보이지 않나?’

단우는 의문이었다.

“배청균의 능력이지.”

“능력?”

“스킬 말이야. 지금부턴 비밀 유지 조약이 들어간 내용이니까 외부 발설 금지야. 마력 랭크 떨어지는 꼴 보고 싶으면 어디 가서 말하든가 하고……. 최근 ‘이전 세대에 활약한 헌터들’의 스킬이 사라지는 현상이 일어나고 있어.”

“……난 그런 소리 들은 적 없는데.”

소서정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야 못 들었겠지. 언론에도 안 풀렸고 다들 쉬쉬하니까.”

“그래도 집안끼리 커넥션이 있는데, 아예 소문이 안 퍼질 수가 있나? 나나 차우원 정도면 이런 중요한 일은 암암리에 다 듣게 되어 있는데…….”

“있지. 누가 막으면.”

“그런 힘을 가진 사람이 누구…….”

말하다 깨달았는지 소서정의 눈이 더 커졌다.

“있기는 하네. 전대 영웅들.”

차우원이 대답했다.

‘머리 좋은 놈.’

단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전대 영웅 중 하나가 당한 것 같은데, 누군지는 모르겠고. 다음 타깃이 이림 은퇴 길마인 걸 보니 범인이 자신만만하잖아.”

“이림 전대 길마가 타깃인 건 어떻게 알고 호위를 불렀대?”

“범인 취미가 타깃한테 경고장 보내는 거라던데.”

“……?”

“잠깐, 나 온다고 미리 경고를 한다고?”

“미친놈인가?”

강울림이 핵심을 짚었다.

‘미친놈 맞지.’

단우는 이 사건의 범인을 알고 있었다.

이 건을 원한 데에는 여러 이유가 있었지만, 그중 하나가 범인을 방해하기 위해서였던 것이다.

‘기희윤, 이 개새끼 엿 먹어 봐라.’

* * *

이림에서 은퇴한 전 길마 배청균은 대문 앞까지 나와서 <차우원 팀>을 맞았다.

“아이고, 이거 얼마나 오랜만이지? 모임에서 못 본 지가 좀 됐어. 안 그래? 하기야 워낙 능력이 출중하고 수련에 바쁜데, 모임에 나올 시간이 어디 있었겠어? 그래도 가끔은 우리 늙은이들한테도 인사 와 주고 그러지. 이렇게 얼굴을 보니까 좀 좋아.”

은퇴 길마가 차우원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태도만 보면 거의 오랜만에 본 친척이었는데, 차우원은 모든 사람에게 보여 주는 사람 좋은 표정을 짓고 있을 뿐이었다.

‘안 친하군.’

이단우는 안심했다.

“오랜만에 뵙네요, 아저씨.”

“아저씨라니, 삼촌이라고 불러. 내가 너희 어머니와 몇 년을 활동했는데, 우리는 가족이나 다름없지.”

“네, 삼촌.”

차우원이 사교성 좋게 굴어서 분위기는 화기애애했다. 은퇴 길마가 버선발로 튀어나온 이유도 뻔해서 팀원들은 찬밥 취급 받는 게 별로 어색하지도 않았다.

“오! 소서정 헌터 아니야. 요즘 활약은 들었어. 엄청나다지? 젊은 헌터들이 잘나가는 걸 보면 기분이 좋아. 나 젊었을 때도 생각이 나고. 하룻밤 지나면 랭킹이 올라 있었는데…….”

“아, 그럼요. 들었죠. ‘귀살영’ 위명을 제가 왜 모르겠어요.”

은퇴 길마 만난다고 가면을 벗은 소서정이 싹싹하게 말했다.

“이명도 알아? 요즘 애들은 잘 모르던데. 참, 소서정 헌터도 전에 봤던가? 우리 딸애 말이야, 지슬이. 지슬이도 공부다 뭐다 해서 한창 바쁘다고 모임 참석이 없기는 했는데, 셋이 어려서는 잘 지냈잖아…….”

은퇴 길마가 차우원과 소서정의 허리를 잡고 저택 안으로 데려갔다. 어깨를 감싸 안고 싶은 것 같은데 키가 안 닿는 듯했다.

그 꼴을 보던 강울림이 말했다.

“……저게 그거구나! 약혼 들어온다던!”

“어.”

강울림이 알아챌 정도로 노골적이라니, 어떤 의미로는 대단하지 않은가?

이단우는 심장이 떨렸다. 티 내지 않으려고 신경 썼더니 머리도 아팠다.

‘이제 곧 차우원과 배지슬이 만난다.’

둘이 어릴 적 친한 사이였을 줄은 상상도 못 했다.

하기야 이단우가 상상도 못 한 게 그뿐이겠는가?

‘둘이 원해서 약혼했다고…….’

약간 구역질이 나서 이단우가 걸음을 늦추는데, 복도 끝에서 대화 소리가 들렸다.

“……우리 아빠가 돌아가셔도, 내가 안 슬퍼하면 어쩌지?”

“안 그럴 거야.”

“아니야, 그럴 것 같아. 장례식장에서 눈물도 안 나오면 어떡하지……. 난 틀림없이 불효녀일 거야.”

“아니라니까. 지금도 걱정돼서 곁에 있잖아.”

“…….”

눈물을 글썽이는 듯한 여자 목소리와 위로하고 있는 남자 목소리였다.

이단우는 저 두 목소리가 귀에 익었다.

기억하던 것보다 어리긴 하지만, 분명히 그 두 사람이다.

‘배지슬과 권준홍.’

<차우원 팀>의 힐러 배지슬과, <이단우 팀>의 힐러 권준홍.

착해 빠지기로는 단우가 기억하는 탑 2 안에 드는 힐러 두 명이 저택 구석에서 이상한 대화를 주고받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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