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
<차우원 팀>에서, 정말로 자신의 안위만을 생각한 놈은 이단우밖에 없었다. 저 이기적이고 뽐내기 좋아하는 소서정도 결국엔 이타적인 선택을 해서 죽어 버렸다.
그게 이타적인 선택이었는지 오만한 선택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왜 내가 살아남았지?’
단우는 처음으로 고민했다.
‘차우원이 성검을 줘서.’
이건 아니다.
최종적인 이유는 맞지만. 이전에 이미 다른 동료들은 죽어 있었으니까.
그러나 그 동료들은 이단우보다 우수한 헌터들이었다.
S급 헌터 인증을 받은 영웅 후보들이었다.
이단우를 제외하고.
왜 차우원과 이단우가 마지막까지 살아남았지?
차우원이 살아남아야 한다는 걸 알면서, 왜 이단우는 차우원이 ‘나가’라고 명령했을 때 그 말을 들었지?
-단우야, 생각을 해. 네 힘이 약하다는 걸 알잖아. 버릴 건 버리고 취할 것만 취해야지.
이단우의 검술 스승은 두 명이었는데, ‘스승님’은 일 년 만에 돌아가셨고 이후 이단우의 검술을 완성한 사람은 차우원이었다.
그는 이단우가 헌터로서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기초부터 응용까지를 전부 학습시킨 사람이기도 했다.
무엇이 더 중요한가.
무엇에 더 중점을 두어야 하는가?
이단우의 허접한 몸이 생존하려면, 어떻게 움직여야 하는가…….
‘선택과 집중.’
그건 스승님과 같은 가르침이었다.
이단우는 귓등으로도 안 듣는 척하다가, 차우원이 죽고 나서야 미친 듯이 ‘그렇게’ 냉정하게 판단하게 되었지만.
사실은 다 듣고 있었다. ‘그러도록’ 노력하고 있었다. 차우원이 곁에 있을 때도. 인정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스승님의 말과 같으니까.’
그렇게 변명하면서.
차우원의 말이 아니라, 스승님의 말을 듣고 있는 거라고 생각하면서.
스승님과 차우원의 말이었기 때문에, 그 말들은 이단우의 뇌가 아니라 몸에 새겨지듯 박혔다. 세뇌 수준으로 세포를 움직여, 그가 생존하도록 만들었다…….
‘이거다.’
이단우는 생각했다.
그러고 정신을 차려 보니 날이 밝고 있었다. 단우는 의아했다.
‘왜 커튼이 안 쳐져 있지.’
이단우가 항상 사무실에서 자고 있어서, 팀원들은 낮이면 사무실 커튼을 쳐 놓았다.
‘아……. 다들 던전 갔지.’
낡은 사무실이 컸다.
이곳이 이렇게 넓었나?
단우는 쏟아지는 빛에 눈을 깜빡이며 창을 보다가, 팀원들을 호출했다.
* * *
강울림의 추측과 달리 소서정은 이단우와 차우원의 관계가 미묘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모르면 등신이지.’
물론 소서정은 평소 이단우와 차우원이 어떻게 지내는지 몰랐다. 다만 차우원이 저렇게 누군가를 빤히 보며 관심을 표현할 사람이 아니라는 점은 알고 있었다.
그 자신이 차우원을 자주 빤히 지켜보곤 했기 때문이다.
‘……반해서는 아니고.’
차우원은 주목할 수밖에 없는 인간이었다.
왜 그런 사람이 있지 않은가?
어디서나 나서지 않아도 사람들의 중심에 있는 사람. 신경 쓸 수밖에 없고 의식할 수밖에 없는 존재감을 가진 인물.
차우원은 소서정이 되고 싶은 그대로의 인간이었다. 소서정은 어린 시절에는 차우원을 흉내 내 보려고 했는데, 며칠이 지나지 않아 그만뒀다. 일단 차우원 곁에는 사람이 너무 많았고, 차우원은 아주 자연스럽게 그들을 전부 없는 사람처럼 취급하고 있었다…….
차우원은 소서정의 이름도 일곱 번을 말해 준 뒤에야 기억했다.
‘이 자식 머리 나쁜 거 아냐?!’
소서정은 분노했으나, 물론 차우원은 머리가 좋았고……. 그냥 주변 사람들에게 관심이 없는 것뿐이었다.
그렇게 살면 미움받아 마땅해야 할 것 같은데, 차우원은 딱히 그렇지도 않았다.
-차우원 성격 좋잖아.
-나 걔랑 안 친한데.
-걔 주위에 사람이 얼만데 어떻게 다 기억하겠냐?
그런 식이었다.
‘언제부터 그렇게들 이해심이 넓었다고?’
센터 연수생이면 각성 이후 줄곧 엘리트 취급 받으며 살아온 놈들이다. 그런 놈들이 ‘차우원이라면 그럴 수도 있지’ 같은 반응을 보이고 있으니 소서정은 속이 터졌다.
물론 차우원을 미워하는 무리도 있었다.
-재수 없는 새끼. 지가 뭐라도 된 줄 알고…….
-쟤야 부모 잘 만난 것밖에 없지 않냐? 솔직히 우리도 차문경 자식으로 태어나서, 어렸을 때부터 청연 길마한테 조기 교육 받았으면 차우원만큼 했지!
-맞아, 맞아.
-…….
‘그건 아니지 않냐?’
소서정은 저런 엑스트라 같은 놈들과 어울리고 싶지는 않았다.
소서정은 차우원의 라이벌이 되고 싶은 거지, 악역이 되고 싶은 건 아니었다.
‘악역.’
말 그대로였다.
소서정은 이 세계에 주인공이 있다면 차우원 같은 놈이 아닐까 싶었다. 소서정 말고도 많은 사람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터였다.
센터 동기 연수생이라면 더욱 그럴 수밖에 없었다. 차우원의 유망주 시절 활약을 눈으로 봤을 테니까. 차우원에게서 느껴지는 격차는, 직접 느끼지 않으면 뭐라고 설명할 수 없는 종류의 것이었다.
소서정은 차우원의 관심을 받고 싶었고, 그와 나란히 설 수 있는 존재가 되고 싶었다.
그 차우원은 지금 누군가에게 깊은 관심을 보이고 있었다.
‘쟤 기분 안 좋은데.’
소서정은 차우원을 오래 보아 왔다. ‘언젠가 이겨 주마’ 시절부터 지금까지 이어져 온 관찰이라 차우원의 무표정도 다양하게 해석할 수 있었다.
이단우의 기분이 좋지 않아서 차우원의 기분도 좋지 않았다.
그건 이상한 일이었다. 차우원은 누군가에게 영향을 받는 사람이 아니니까.
그는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주는 사람이었다. 그 반대의 경우는 없었다.
그런데 소서정은 눈앞에서 그 반대 상황을 보고 있었다.
‘저 둘 뭐지?’
이단우는 뭐지?
그가 머리도 잘 돌아가는 데다 사람도 요상하게 잘 다룬다는 건 지난 던전 공략으로 확인했다.
차우원의 동료이니 능력이 특출난 건 당연한 일일 터였다.
그런데 저런 게 어디서 등장한 거지?
헌터계는 좁아서 명문들은 서로 다 아는 사이였다. 이단우라는 이름은 들어 본 적도 없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이단우가 화이트보드 앞에 섰다. 그리고 마카로 보드를 툭 쳤다.
“며칠 고민을 했어. 두통 때문에 이번 공략에 못 따라가서 미안하고, 다들 고생했고, 잘했어.”
‘이단우가 칭찬을?’
다들 귀를 의심하고 있는데 이단우가 본론을 꺼냈다.
“이 팀의 방향성에 대해 중요하게 할 말이 있는데. 몇 가지 질문을 할 거야. 진지하게 임해 주면 좋겠어.”
“……?”
“뭔데?”
“우리 혼나는 거야?”
강울림이 속삭이며 물었다. 소서정은 이 자식이 목소리를 좀 낮췄으면 했다.
다행히 이단우는 이쪽을 쳐다보지 않았다. 그가 보드에 이상한 그림을 그렸다.
“그럼 수락한 걸로 알고 시작할게. 철길이 있다고 생각해 보자. 양 갈래로 갈린 철길이야. 길 끝에서 기차가 달려오고 있고……. 한쪽에는 민간인 한 명이 묶여 있고 다른 쪽에는 헌터 한 명이 묶여 있어. 원래는 레버를 당겨서 둘 중 하나만 구할 수 있다는 잡소리가 있는데, 그딴 건 관계없고……. 둘 중 한 명만 구할 수 있다면, 누구를 구해야 할까?”
“……?”
‘……트롤리 문제 변형이잖아?’
그림이 낙서 수준이라 알아보기 힘들었으나, 아마 저 꼬챙이 같은 건 철길이고 그 위의 네모난 게 기차일 터였다.
‘저 졸라맨이 민간인이랑 헌터야?’
소서정이 이게 뭔가 고민하기도 전에 강울림이 손을 들었다.
“근데 헌터가 왜 철길에 묶여 있어?”
“마력 구속구에 붙잡혔나 보지.”
이단우가 귀찮다는 듯 대꾸했다.
“그래도 헌터가 기차에 치여서 죽을 리가 없잖아. 걜 구해야 할지를 왜 우리가 고민해야 되는데?”
“기차가 아다만티움으로 만들어졌다고 생각하든가. 이제 쓸데없는 질문 하지 말고.”
“아니 질문은 네가 먼저 했으면서 왜 나한테…….”
“누가 너한테 질문하래? 대답을 하라고.”
“…….”
강울림이 혼나는 동안 소서정은 고민했다.
‘출제자의 의도가 뭘까?’
이단우가 무슨 생각으로 저런 질문을 하고 있는가?
기본 인성 파악 문제인가?
그렇다면 답은 정해져 있다. 여러 번의 인성 평가 면접을 통과한 경험으로, 소서정은 자신 있게 손을 들었다.
“민간인을 구한다!”
“무슨 소리야. 당연히 헌터를 구해야지.”
이단우가 미간을 좁히고 말했다.
“……?”
“답이 정해져 있으면 왜 물었냐?”
강울림이 물었다. 이단우가 무표정하게 대답했다.
“원래 모든 질문엔 답이 있어.”
“없는 것도 있을걸. 근데 단우야,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우리한테 들려줘야지.”
차우원이 입을 열었다. 소서정은 그를 곁눈으로 보다가 깜짝 놀랐다.
‘……다시 기분 좋아 보이네?’
뭐지?
이단우와 싸워서 기분이 안 좋은가 싶었는데 그게 아니었나?
“생각해 봐. 헌터 한 명을 구했어. 그럼 그 헌터는 앞으로 활동을 계속해 나가겠지. 그가 노쇠하고 능력이 없어서 몇 년 활동을 못 한다고 쳐. 그래도 은퇴하기 전까지 던전 클리어를 할 거고 던전 브레이크를 막아 낼 텐데, 이 헌터가 구하게 될 사람이 몇 명일까?”
“……몰라?”
“대답하라고 한 질문 아니고.”
강울림에게 말한 이단우가 덧붙였다.
“적으면 백 명, 많으면 수천 명을 살리겠지. 이게 민간인 한 명 대신 헌터 한 명을 살려야 하는 이유고.”
‘……?’
소서정은 정신이 약간 혼미했다. 뭔가…… 뭔가 이야기를 듣는데 설득력이 있는 것 같으면서도, 평소 교육받아 온 내용과 정면으로 충돌되는 듯 아닌 듯한…….
이 아스트랄한 느낌을 전에도 받은 것 같았다.
‘나 여기 스카우트받을 때 이러지 않았나?’
소서정은 생각 없는 강울림이 어쩌고 있는지 보려고 했다.
“……그런가?”
강울림은 넘어갔다!
“그렇구나……. 단우 생각은 그렇구나.”
전체적으로 혼란에 찬 상황을, 차우원은 다정하게 말하고 모면하려 했다.
소서정은 깨달았다.
‘이단우가 살아나서 쟤 기분 좋아진 것 같은데.’
소서정이 이 팀에 합류한 지 오래되지는 않았으나, 이단우가 헛소리를 그럴듯하게 하는 재주가 있다는 건 알았다.
이단우가 입을 열어 또 정신이 아득해지는 말을 냉정한 어투로 하고 있는데, 차우원의 기분이 좋다니…….
아무래도 추측이 요상한 방향으로 향할 수밖에 없지 않은가?
저 개소리가 차우원이 평소에 좋아할 만한 소리는 전혀 아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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