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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인성 교육-32화 (32/170)
  • 32.

    후드드득……!

    개미들이 차우원에게서 떨어져 나갔다. 단우는 그것들의 주둥이가 전부 베어져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단면이 불에 베인 듯 깔끔했다. 단우의 코에서는 무언가 익는 고소한 냄새 같은 것이 나고 있었다.

    정신이 없어 알아차리지 못했다. 차우원은 자이언트 앤트의 가장 강한 공격 수단을 이미 제거했다.

    그렇다고 차우원이 저지른 짓이 용서가 되는가?

    단우는 온몸의 피가 식었다.

    차우원은 개미 체액으로 범벅이 된 얼굴을 손으로 훔쳐 내고 말했다.

    “태우자.”

    “뭐?”

    “너 좋아하는 거 하자, 단우야. 마법 날아오는 거 피할 수 있지?”

    그런 말을 들으면 이단우가 어떻게 ‘아니’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어.”

    이단우는 피를 뱉었다. 입 안이 비리다 싶더니 피가 고여 있었다.

    차우원이 지시했다.

    “다들 물러나세요. 스승님, 여기 스킬 좀.”

    “너넨 거기서 뭐 하려고?”

    그러면서도 스승님이 팔을 들었다. 과거에도, 차우원에 대한 스승님의 믿음은 절대적이었다.

    “원거리 딜러들, 장전!”

    스승님께 믿음직하지 못한 건 이단우였다.

    이단우는 눈을 깜빡였다. 시야가 까매졌다 하얘졌다 하는데 마력 고갈의 대표적인 증상이었다. 임시방편으로 마나 포션을 하나 따서 입에 넣자, 마력은 차오르는 듯싶더니 이단우의 좁은 그릇을 견디지 못하고 대부분 허공으로 흩어졌다.

    ‘이래서 돈이 아깝다고.’

    한숨을 삼킨 이단우가 명령했다.

    “소서정, 저 알 다 태워 버려.”

    “아깐 스킬 트리 못 올렸다고 뭐라더니!”

    “네 허접한 스킬이라도 다 털어 봐.”

    “안 타는 거 아냐?!”

    단우의 말이 신경 쓰이긴 했는지 소서정이 스킬진을 띄우며 물었다.

    “괜찮아. 너만 쓸 거 아니니까.”

    차우원이 앞에서 목숨 걸고 개미 알을 터뜨린 덕분에 방어의 공백이 생겼다. 몬스터 웨이브가 멈추자, 그들을 방어하느라 모든 마력을 집중하고 있던 원거리 딜러들에게 여유가 생긴 것이다.

    허공에 수십 개의 스킬진이 떠오르더니 붉은빛을 냈다.

    후끈거리는 열기와 함께 수십, 수백 개의 화계 마법이 날아들었다.

    아무리 던전 브레이크 직전이라 던전의 성숙도가 심화됐다 해도, 저만한 포격에 몬스터 알이 안 녹으면 그게 현실이겠는가? 악몽이지.

    이단우는 이미 악몽 속에 한 발 걸치고 있는 듯했으나, 억지로 몸을 움직였다. 보호 아티팩트 이펙트가 그의 머리를 감쌌다.

    마력 고갈과 반응 늦은 몸뚱어리에 익숙한 뇌는 최소의 움직임으로 최고의 효율을 내는 법을 알고 있었다.

    푹, 푹, 푹!

    피부를 스쳐 지나가는 마법 폭격을 피하면서, 단우는 불타는 알에서 기어 나오는 개미들을 찔러 죽였다.

    제대로 자라지 못해 외피가 무른 새끼들은 단우의 검에도 쉽게 절명했다.

    “와…….”

    소리가 들려 돌아보니, 차우원은 일검에 수십 마리의 개미를 베어 버리고 있었다.

    불타며 녹아내리던 알의 산이 무너지고, 그 안에서 또 수백 마리의 개미들이 불길에 휩싸인 채 어기적어기적 튀어나왔다.

    탱커들은 마법사를 보호하며 차우원과 이단우가 놓친 개미들을 확인 사살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런 경우는 극히 드물었고, 간혹 한두 마리가 죽은 척하며 살길을 찾을 뿐이었다.

    탱커들은 하나둘 넋 놓고 두 명의 근거리 딜러가 마력 폭발 속에서 하는 짓을 지켜보기만 했다.

    “미쳤나 봐…….”

    그들이 하는 말을 들으며 강울림은 고개만 끄덕였다.

    ‘우리 팀이 좀 대단하지.’

    “우리 공헌도 1위 찍겠는데.”

    소서정이 기뻐했다.

    어느새 더 빠져나오는 개미도 없었다. 스킬은 태워야 할 것을 전부 불태우고 사그라들었다.

    개미들의 부화실이었던 곳은 이제 알들의 무덤이 되어 재만 남았다.

    띠링!

    [<자이언트 앤트굴>을 클리어했습니다.]

    [보상이 정산됩니다.]

    띠링!

    [믿을 수 없는 업적을 달성했습니다!

    당신은 가진 바 능력에 비해 대단히 위험한 던전을 클리어했습니다.

    업적 보상: 스킬 <한계 초월>(S)을 얻었습니다.]

    [<한계 초월>(S)

    당신의 신체는 불가능한 일을 가능하게 만들고, 당신의 의지는 당신을 더 높은 곳으로 이끌 것입니다.]

    이 던전에 들어온 또 다른 목적을 달성했는데, 단우는 조금도 기쁘지 않았다.

    던전핵의 가동이 멈추고 던전의 성장이 멈췄다. 클리어 게이트가 보스룸 한복판에 생성되어 밝은 빛을 뿌렸다.

    “와아아!”

    “클리어했어!”

    “던전 브레이크 괜한 걱정이었네, 공략 껌이네!”

    “최단기간 클리어 아냐?”

    공략대가 환호했다. 단우는 그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차우원이 다가오는 모습이 보였다. 그가 웃으며 말했다.

    “와, 살았다.”

    그가 단우를 부축해서, 단우는 자신이 떨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손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찌르면 안 되지.’

    자신이 무슨 짓을 저지를지 모르겠다. 두려워져서, 단우는 검을 검집에 수납했다.

    그리고 떨리는 손으로 차우원의 멱살을 가볍게 쥐었다.

    “……?”

    그 이상은 힘도 들어가지 않았다.

    차우원의 단단한 몸이 자신을 받치고 있는 게, 그의 심장이 뛰는 게 느껴졌다. 그의 체취와 땀 냄새와, 피비린내와 탄내까지 코에 닿았다.

    ……현실감이 들었다. 그래서 더 오싹했다.

    차우원의 목덜미에 코를 박다시피 한 채, 단우는 후들거리는 몸을 붙잡았다.

    “……너 돌았어?”

    튀어 나간 목소리가 자신의 것 같지 않았다.

    차우원의 눈이 커졌다.

    “단우야.”

    “거길 네가 왜 뛰어들어. 미쳤어? 너 말고 알이 문제인 거 알아채는 사람 없었을 것 같아? 다른 사람들은 뇌가 다 짚으로 들어차서 안 움직였겠어?”

    “그렇진 않겠지. ……그렇다고 말한 적 없잖아, 단우야. 당장 방어가 급했고,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이 나뿐이었으니까 움직인 거지.”

    “그러니까 왜 네가 움직이냐고. 신입이 첫 던전에서, 살아 돌아오는 것만 해도 일 인분인데, 누가 너한테 네 몸 바쳐서 던전 깨 달래? 이 던전 터지면, 사람들 다 죽기라도 한대? 던전 클리어는 다 같이 하는데 왜 네가 목숨을 거냐고.”

    차우원이 멱살을 잡은 단우의 손 위에 자신의 손을 얹었다.

    “자꾸 죽는다, 죽는다 하는데……. 내가 그렇게 약하진 않지. 우리 단우는 왜 자꾸 날 무시하지.”

    차우원의 목소리에 힘이 들어갔다. 그가 열받았다는 사실을 깨달았으나 단우는 멈추지 않았다.

    “안 죽어? 개미 떼가 앞뒤로 날뛰고, 넌 개미탑이 돼서 잡아먹히고 있는데 그 꼴로 안 죽는다는 말을 해?”

    이곳은 현실인데 단우는 악몽 속에 있는 것 같았다. 차우원을 잃어버릴 수밖에 없었던 그때를 꿈에서 계속 반복하고 있는 것도 아닌데, 다시 만난 차우원을 단우는 잃을 뻔했다.

    검은 개미 떼에게 덮여 피부 한 조각 보이지 않던 모습이 떠올랐다. 단우는 심장도 뛰지 않았다.

    숨이 모자라고 멍했다.

    “너 미친놈이야? 죽고 싶으면 말해, 내가 죽여 줄 테니까. 왜 던전 안에 들어와서 남까지 미치게 만들어…….”

    단우는 온몸을 떨고 있었다. 스스로는 깨닫지 못했다. 그러나 차우원은 알아차렸다.

    제 옷자락을 붙잡은 손이 차가웠다. 단우의 손은 피가 돌지 않는 듯했다.

    ‘아.’

    화밖에 내지 않고 팀원들에게 ‘곁에나 잘 붙어 있어라’라고 충고하는 입 험한 이단우.

    자신만만하고 영리한 이단우가 이렇게 겁에 질린 이유를 알았다.

    직감적인 깨달음이었다.

    “……날 걱정하는 거지, 단우야.”

    “어떻게 걱정을 안 해!”

    단우는 미쳐 버릴 것 같았다.

    ‘아니, 이미 미쳤는데.’

    더 돌아 버리면 어떻게 되는 건지 알 수 없었다. 그런데 차우원은 사람 빙빙 돌리는 소리나 지껄이고 있었다!

    차우원이 정색했다.

    단우는 심장이 떨어졌다……. 그는 차우원이 미소를 거두면 늘 견딜 수 없었다.

    “그럼 그렇게 말해, 단우야. 화내지 말고, 명령하지 말고 말해. 내가 걱정돼서 제정신이 아니게 된다고 해.”

    떨어져 있던 심장이 목구멍까지 올라왔다가, 뭍에 나온 물고기처럼 펄떡거렸다.

    단우는 언제나 제정신이 아니었다. 차우원 때문에 제정신일 수가 없었다. 그런데도 멍해졌다.

    “그게 뭐야……? 그렇게 말하면 뭐가 달라지는데…….”

    차우원이 눈을 깜빡였다. 그는 생각하는 듯하더니, 미간을 찡그리더니, 고개를 기울이고 말했다.

    “나도 몰라.”

    “…….”

    “그럼 내가 기분이 좋을 것 같아.”

    ‘무슨 개소리야…….’

    단우는 멍하니 차우원을 쳐다보고 있었다. 차우원도 그래서, 한 명이 한쪽의 멱살을 잡은 채 서로 대치하는 형국이었다.

    멱살을 잡고 있는 쪽은 단우였고 차우원은 그걸 떼어 내지도 않고 그냥 손만 겹치고 있었다.

    잘생긴 얼굴은 아직 어렸고, 소년 같은 순진함이 있었다. 차우원은 의아한 듯 단우를 보고 있었다. 무언가 생각에 잠긴 듯이…….

    ‘얘는 뭐지.’

    단우는 언제나 품었던 의문을 다시 떠올렸다.

    차우원은 이상한 놈이었다.

    단우의 인생에서 만난 어떤 사람보다 이상했다. 이해할 수가 없었다.

    과거부터 그랬다.

    이단우가 아무리 부당한 일로 화내도 같이 화내지 않았다. 단우에게 ‘그렇게 말하면 다른 사람이 제대로 안 듣잖아.’ 같은 소리를 해 대서, 단우는 그에게 ‘네가 내 부모야?’라고 화내곤 했다.

    ‘뭔데.’

    그렇게 화냈지만.

    단우는 차우원이 그렇게 말하는 게 좋았다. 그는 침착하고 동요하지 않으며, 언제나 믿을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는 이단우를 청연 길드에 감금하고 자신의 공격대에 넣은 채 나가지 못하게 했으나, 그건 이단우를 보호하기 위해서였다.

    이단우도 알았다.

    차우원은 이단우가 대단히 멍청해서 그런 사실을 모르는 줄 알았겠지만.

    단우는 생각보다 많은 것을 알고 있었다.

    차우원은 이단우의 보호자였다. 언제나 그랬다…….

    그렇게 다정했으니 이단우가 차우원이 자신을 좋아할지 모른다고 착각하는 것도 어쩔 수 없지 않았는가?

    스승님의 장례식이 진행되고 있었을 때, 단우는 제정신이 아니었다. 스스로 무슨 짓을 저지를지도 모르고 장례식장으로 향했다.

    그곳에서 상주를 맡고 있던 차우원은 검은 양복 차림이었다. 스물네 살의 차우원의 멱살을 잡고, 단우는 말했다.

    -네 탓이야. 너 때문에 스승님이 돌아가셨어.

    그 터무니없는 트집을 차우원을 받아 줬다.

    지금도 그렇지 않은가?

    차우원은 잘못된 일을 한 게 아니다. 아니, 그건 잘못된 일이지만. 차우원의 입장에선 아닐 것이다.

    그런 그에게 단우가 화를 내고 있는데, 그는 짜증도 내지 않고 ‘부드럽게 말하면 좋잖아’라고 충고하고 있다.

    ‘이 새끼는 인성이 잘못됐어.’

    단우는 깨달았다.

    공략 방법이고 실력이고 뭐고, 저 대책 없이 좋은 인성이 문제였다.

    <최후의 던전>에서 차우원이 왜 죽었는가?

    단우는 오래도록 자신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아니.’

    그보다 시급한 문제가 있었다.

    저 대책 없이 좋은 인성 때문에 저놈은 언제고 남을 위해 죽어 버리고 말 놈이었다.

    -몸을 사려.

    -조심해.

    -나대지 마.

    그 정도의 명령으로 될 일이 아니었다.

    지금도 그런데, <최후의 던전>에 들어가면 팀원들은 결국 이성적인 판단을 못 하게 될 터였다.

    ‘근본적으로 좋은 놈들이니까.’

    이단우와 달리, 무리하더라도 다른 사람을 살리는 쪽으로 움직이는 게 옳다고 본능 단위에서 판단하는 놈들이니까.

    스승님이 이단우 때문에 죽었듯이.

    차우원이 이단우를 살리다 죽었듯이…….

    ‘이 사람 좋은 새끼…….’

    단우는 차우원에게서 눈을 뗄 수 없었다. 이걸 어떻게든 해야 한다.

    “너…….”

    “응, 단우야.”

    차우원이 대답했다. 완전히 감정을 갈무리한 목소리였다. 다정하고 평소와 같았다.

    단우는 기가 막혔다.

    ‘이 인성.’

    차우원에게 필요한 건 인성 교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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