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
소서정은 마나를 아낄 생각도 하지 않았다.
‘저거 뒷일은 생각을 안 하나.’
과거에도 자주 본 적 없는 거대한 스킬진이 몬스터 위로 떠오르더니 독연을 뿜어냈다.
치이이이익……!
“<강화>!”
보조계 헌터들이 스킬에 버프를 걸었다. 스킬진이 희미하게 밝아지더니 독연이 더 까맣게 변했다.
헌터들이 마나 포션을 먹고 다시 일제히 버프를 거는 소리가 들렸다.
“<강화>!”
몬스터의 날갯짓이 순간 기절한 것처럼 딱 멈췄다.
그 잠깐의 틈을 놓치지 않고 딜러들이 달려들었다.
탱커의 어깨를 밟고 튀어 나간 이단우도 몬스터의 턱주가리를 꿰뚫었다.
푹푹푹푹푹!
정밀하게 뚫을 약점을 계산할 틈도 없었다. 숨은 차기 시작하고 머리가 띵했다.
이단우의 몸은 마나 포션 같은 걸로 돌아가지 않았다. 마나를 품을 수 있는 용량 자체가 적은 탓이다. F랭크의 마나통이라는 건 그런 뜻이었다.
그가 할 수 있는 건 비인가 마나 촉진제로 작은 마나 공장을 계속해서 돌리는 것뿐이었다. 말이 비인가지 실은 불법인 마나 촉진제는, 사용자의 몸에 영구적인 악영향을 가져오기 때문에 유통이 금지된 물건이었다.
‘오래 살 것도 아닌데.’
단우는 이를 악물고 몬스터의 턱에서 검을 뽑아냈다.
몬스터의 체액이 흩날리며 단단한 턱의 일부가 날아갔다. 차우원이 아래에서 꼬리를 잘라 내서, 몬스터는 휘청거리고 있었다.
무리한 몸이 마나 고갈을 호소하며 그만하라고 비명을 질러 댔다.
결국 단우는 바닥으로 내려왔다.
심장이 쿵쿵거리고 숨이 차는데, 차우원의 애검 <육예>가 대검으로 형태를 바꿔 몬스터의 목을 단번에 날려 버리는 모습이 보였다.
쿵!
데구루루……!
몬스터의 사체가 떨어졌다. 반으로 갈라진 몸뚱어리가 한 조각씩 바닥을 굴렀다. 단우의 발치로 그것의 머리가 도착했다.
“하…….”
다들 입을 딱 벌린 채 차우원을 쳐다보고 있었다. 스승님의 얼굴에 좋아 죽겠다는 표정이 떠올라서, 단우는 고개를 숙이고 웃었다.
이게 그에게 익숙한 광경이었다.
과거에는 우수한 팀원들에게 속앓이를 하고 팀에서 버티느라 보이지 않던 것들이, 지금은 보였다.
그걸 실은 과거의 자신이 자랑스러워했다는 것도 알 수 있었다.
그는 차우원을 자랑스러워했다.
차우원을 이길 거라고, 저 자식을 때려눕혀서 입도 벙긋 못 하게 만들어 주겠다고 이를 갈면서도 실은 그랬다.
그때 누가 말했다.
“끝났나!”
6년 차 헌터 단우는 반사적으로 생각했다.
‘닥쳐.’
헌터계에는 알 수 없는 미신이 몇 가지 있었는데, 죽은 몬스터를 앞에 두고 ‘죽었나?’ 따위를 말해서는 안 된다는 게 그랬다.
절벽으로 떨어진 보스몹을 보고 ‘저기선 살아 나올 수 없어’라고 말하는 것도 마찬가지였다.
말에 무슨 저주라도 걸렸는지 그런 소릴 듣는 놈들은 다시 살아 돌아오게 되어 있기 때문이었다.
6년 차 헌터인 단우는 그게 미신이라고도 생각하지 않았다. 어쨌든 실제로 이루어지지 않는가?
마법의 주문을 들은 지하 공동이 부르르 떨리더니 갑자기 이상한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깔짝……! 딸그락……!
무언가 얇은 껍데기를 두드려 대는 듯한…….
소름 끼치는 소리가 사방에 들려서, 헌터들은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뭐야? 이게 무슨 소리야?”
“헛소리한 놈 나와!”
‘설마.’
단우는 장식물처럼 공동 안쪽에 늘어져 쌓여 있던 알들을 쳐다봤다. 유백색 알들 안쪽에서 거무스름하게 무언가 움직이는 형체가 보였다.
한둘이 아니었다. 그것들은 똑똑, 하고 껍데기를 두드리는가 싶더니, 주둥아리와 몸을 이용해서 알을 깨는 듯했다.
스승님이 침을 삼켰다.
“저거 몇 개냐?”
“그게 중요할 것 같진 않은데요.”
차우원이 침착하게 말했다. 그의 검은 다시 얇은 형태로 돌아가 불그스름한 빛을 내고 있었다.
저렇게 변한 <육예>에 베이면 단면이 타 버린다는 사실을 단우는 알고 있었다.
“뭘 봐? 마나 다 써서 저거 녹여 버려! 나오면 우리 좆된다!”
스승님이 말했다.
2열의 마법사들이 일제히 스킬진을 펼쳤다. 공동을 물들이는 수십 가지 색의 빛들로 눈이 부실 지경이었다.
그러나 단우는 알만 노려보고 있었다. 알 수십 개가 동시에 깨지며 그 안에서 뾰족하고 검은 개미의 머리가 튀어나왔다. 그것들이 재빠른 속도로 헌터들에게 달려들었다.
띠링!
<엘리트 자이언트 앤트>
병정으로 키워질 예정이었던 엘리트 병사들은 왕국의 주인과 후계자의 죽음에 슬퍼하고 있습니다. 이들의 분노는 스스로를 다 태울 때까지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탱커! 1열 방어!”
탱커들이 방패를 들고 몸을 낮춘 순간, 마법사와 원거리 딜러들의 폭격이 쏟아졌다.
단우는 그 모습도 보고 있었다. 스킬이 펼쳐지고 탱커들이 탱킹을 하고 힘겨루기를 할 때마다 바닥이 조금씩 흔들리는데, 그것마저 단우에게는 고통이었다.
‘죽겠다…….’
잡몹 썰 때 마나도 거의 안 썼는데 보스 잡느라 쓸데없이 낭비를 했다. 그 둘은 차우원과 청연에 맡겨 둬도 괜찮았을 것이다.
‘괜히 팀원들 앞에서 기강 잡겠다고 나댄 거 아닌가.’
하지만 <차우원 팀>의 팀원들은 팀장이 능력을 보이지 않으면 따르지 않을 놈들이기도 했다……. 특히 소서정이.
단우가 스스로에 대해 합리적 의심을 하고 있는데 먼지가 걷히고 엘리트 앤트들의 사체가 드러났다.
그리고 그 뒤로 계속 깨어나는 알들과 또 다른 엘리트 자이언트 앤트 웨이브가…….
“소서정.”
“안 돼. 쟤네 죽이려다 우리도 질식사할 일 있어?!”
말만 꺼냈는데 소서정이 질색했다.
‘약 쳐서 죽이기엔 수가 너무 많고.’
“그거 말고. 너 염계 스킬 트리 어디까지 올렸어.”
<화룡창> 숙련도만 높으면 본진부터 불태우는 방식으로 대처할 수 있다.
소서정의 시그니처 스킬 <화룡창>(S)은 그만한 물건이었다.
저 숫자도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알들이 저놈들 부화 기지 아닌가?
당장 몬스터 웨이브 상대하느라 정신없는 마법사들은 끌어들일 수 없다. 본진을 스킬 하나로 깰 만큼 강한 소수가 필요했다.
엘리트 공격대의 존재 의의가 그것 아니던가?
‘이걸 말해야 하나?’
헌터들에게 스탯이나 스킬을 밝힌다는 건 상대를 어지간히 믿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짓이라 소서정은 망설이는 듯했다. 그러나 그는 속삭이듯 말했다.
“<파이어 스피어>에서 <화우>로 이어지는 트리인데…….”
“잡소리는 됐고 최종 스킬 숙련도 몇이냐고.”
“20……?”
“…….”
‘이 게으른 새끼가 지 시그니처 스킬 숙련도도 안 올리고 지금까지 뭐 한 거지.’
단우가 경멸의 눈빛으로 쳐다보자, 소서정은 변명했다.
“아……. 사실 13 정도인데, 아니 나도 이게 왜 안 오르는지 알 수가…….”
“연습을 안 하면 스킬 숙련도는 원래 안 올라.”
단우는 이를 악물고 어린아이도 알 만한 상식을 알려 준 다음, 마력 촉진제를 하나 더 까서 입에 넣으려고 했다.
‘수가 없다.’
누군가는 저 알을 직접 공격해야 한다.
그때 희끄무레한 형체가 눈앞을 스쳐 지나갔다. 그 속도가 너무 빨라, 단우는 그게 지나간 뒤에야 무엇이었는지 알아볼 수 있었다.
<육예>를 대검의 형태로 바꾼 차우원이었다.
자신의 키보다 더 거대한 검을 들고, 차우원은 마법사들의 스킬 위를 넘어갔다. <블링크>를 쓸 때마다 그의 몸이 잠깐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꼴을 단우는 경악에 차서 쳐다봤다.
개미알 군영 허공에 <블링크>를 쓴 차우원이 검을 휘둘렀다.
파가가가가각……!
무언가 파쇄되는 소리와 함께, 알들이 터져 나갔다.
차우원의 검이 다시 형태를 바꿨다. 불에 타오르는 듯한 붉은 <육예>가 채 부화하지 못한 개미 떼를 몰살시켰다. 붉은빛이 춤을 추듯 허공을 너울거리고, 그때마다 몬스터의 머리가 날아가며 비명이 터졌다.
완전히 부화하지 못한 엘리트 앤트들은 자신에게 일어나는 일을 인지하기 전에 몸이 갈라졌다.
그러나 범위 공격의 효과가 너무 컸다. 대검에 깨진 알들에서 또 태어난 개미들은, 그들의 가장 큰 적에게 몰려들었다.
“마법 쓰지 마! 쓰면 안 돼! 탱커! 라인 끌어 올려!”
스승님은 순간 냉정하게 판단했다. 차우원에게 어그로가 끌린 몬스터 떼를 폭격하면 차우원은 죽는다.
딜링 능력은 탱커가 원거리 딜러를 따라갈 리 없으나, 지금 필요한 건 어그로의 분산이었다!
‘차우원, 이 개새끼가.’
단우는 마력 촉진제 몇 개를 한꺼번에 입에 넣고, 탱커들과 함께 1열에서 뛰쳐나갔다. 이 사이로 사탕이 씹히며 아득거리는 소리가 났다. 그게 멍하니 고막 안에서 울리는 것처럼 들릴 정도로 몸 상태는 맛이 갔다.
강울림이 바로 옆까지 도달한 단우를 돌아봤다.
“야! 너 뭐야! 탱킹 스킬 있어?”
“없어.”
“미쳤어?”
그건 단우가 차우원에게 할 말이었다!
탱킹 스킬도 없고 아직 스탯 성장도 부족하며, 성검을 갖고 있지도 않은 놈이 혼자 적진으로 뛰어들어?
미치지 않고서야 할 짓인가?
“하나, 둘……!”
쾅!
거의 개미탑처럼 보이는 차우원을 탱커들이 사방에서 쳤다.
-키이이익……!
비명을 지르며 개미 몇 마리가 떨어져 나가자 차우원의 얼굴이 보였다. 단우는 입술을 너무 강하게 물고 있어서 피가 나는 줄도 몰랐다.
‘관절을 끊어야 해.’
죽이는 것보다 떼어 내는 게 먼저다.
단우는 검을 쥐고 차우원에게 달라붙은 개미들의 다리 관절을 공격했다.
눈을 한 번 깜빡일 순간에 수십 번의 공격이 개미들에게 쏟아졌다.
푹, 푹, 푹, 푹, 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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