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
“온다!”
시작은 땅울림이었다.
가벼운 곤충형 몬스터가 대단한 무게를 가지고 있을 리도 없는데, 바닥이 흔들리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무언가 오고 있다.
동시에 피어나는 건 연기였다.
소서정이 지금도 만들어 내고 마법사들이 보조하는 그 독 연기가 아니다. 바닥에서 흙과 모래가 날리며 만들어진 흙먼지다.
무언가 뿌연 것이 바닥에서 일어나더니 검고 매끄러운 머리를 가진 거대 개미들이 떼로 몰려나왔다.
개미용 해충제를 대량으로 얻어맞은 자이언트 앤트 떼가 도망쳐 오고 있었다.
-끼에에에엑!
1열의 탱커들이 방패를 들었다.
이단우는 그 안에서 강울림을 발견했다. 그가 방패 뒤에 몸을 붙이고 기합에 맞춰 개미 떼를 튕겨 내는 모습을 봤다.
“하나, 둘……!”
퍽……!
뒤로 밀려난 개미들이 스턴에 걸려 멈칫했다. 그 위로 원거리 딜러들의 마법과 화살이 빗발쳤다.
“딜러!”
단우와 차우원이 움직였다. 살아남은 개미들을 학살하고 다시 대열로 돌아왔다.
소서정은 스킬 운용 때문에 머리카락까지 붕 뜬 채로 허공을 보고 있었다. 그와 마법사들의 주변은 희미하게 빛나서 이 동굴 속에서도 따로 광원이 필요 없었다.
그가 계속 스킬을 중얼거릴 때마다 허공에 스킬진이 떠오르고 또 추가되고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수십 개의 스킬진을 동시에 운용하면서 그는 독연을 안으로 밀어 넣었다.
“또 온다!”
“하나, 둘……!”
쾅!
강울림은 방패째로 개미를 터뜨려 죽이고 자기가 놀란 표정을 했다.
‘이거 왜 이렇게 약한데?’
그가 할 생각이란 뻔했다.
‘그럼 근력 A로 몬스터한테 깔려 죽을 줄 알았냐…….’
저 수준으로 상식이 없는 게 센터 공부를 중도에 그만둔 것과 관련이 있나? 단우는 아무래도 미심쩍었다. 강울림의 상식 부족은 일반인 이하다.
C랭크 이상의 스탯을 ‘상위 능력’으로 부른다. A랭크의 능력치는 헌터 중에서도 손꼽히는 천재들만이 도달 가능한 영역이 아니겠는가?
강울림이 아니라도 탈출하는 개미 떼에게 고전하는 헌터는 없었다. 청연 길드의 신입 입사 조건은 ‘C급 헌터(베테랑) 이상일 것’이었다. 공격대 입사 조건이 B급 헌터(체이서) 이상이니 이들은 전원 헌터계에서도 손꼽히는 전투원들이었다.
‘청연 들어가고 싶어 하는 거 아니겠지.’
단우는 문득 경계심이 들어 소서정을 쳐다봤다. 다른 팀원들이야 걱정 없었으나, 이놈은 조심할 필요가 있다.
이름값이나 우수함 같은 것에 마음이 잘 팔랑거리는 놈이었으니까.
그 이름값은 단우가 금방 채워 줄 자신이 있었지만.
감지 스킬을 가진 헌터들이 말했다.
“안에 반응 없습니다. 루트 클리어!”
“다음 루트 갑니다.”
“와, 빠르다…….”
“이거 된 거야? 아예 안 들어가고 끝이야?”
헌터들을 혀를 내두르며 다음 굴로 향했다. 비슷한 짓을 몇 번 반복하니 보스룸으로 의심되는 장소만 남았다.
청연 부길마가 길마에게 속삭이는 소리가 들렸다.
“길드장님 좋아한대잖아요. 잘 말해 보세요.”
“그래요, 길드장님. 호의 좀 사 보세요.”
“다른 데 빼앗기기 전에 우리 협력사로 도장을 확 찍어 버려…….”
단우는 사탕을 새로 까며 그 소리를 듣고 있었다. 머리로 들어오진 않았다. 자기 얘기 같진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약간 걸리는 게 있었다.
‘이게 몇 개째지?’
마력 보충제를 네 개까지 입에 넣은 건 기억나는데 이게 다섯 개째인지 여섯 개째인지 알 수 없었다.
여섯 개면 지금 몸이 감당하기에 부담스러운 양이다.
‘이건 참아?’
하지만 그래서야 보스룸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빌어먹을 이단우의 몸뚱이는 혼자 마력을 생성할 생각은 이제 조금도 하지 않는 듯했다. 마른 우물에서 물을 길어 올리려고 빈 양동이만 비명을 지르고 있다.
그때 스승님이 헛기침을 하며 다가왔다. 단우는 당황해서 들고 있던 사탕을 입에 넣었다.
“흠, 흠. 작전이 이렇게 잘 통할 줄 몰랐는데. 평소에도 이런 생각을 하고 사나? 아니면 막 던전 공략을 한다고 하니까 방법이 떠오른 거예요?”
“그런 게 왜 궁금하신데요.”
핏줄을 타고 도는 마력과 함께 내장이 뒤틀렸다. 단우는 통증을 참으려 했으나 인상이 써지는 건 막을 수 없었다.
스승님은 ‘이놈 성격 한번 예쁘기도 하지’라는 표정으로 대꾸했다.
“좀 궁금해할 수도 있지. 이단우 헌터는 내가 ‘오늘 날씨가 좋나요?’ 하고 물어도 ‘날씨가 좋은지는 왜 궁금하신데요’ 하고 대답할 거야?”
“그냥 반말하세요. 어차피 공략팀 지휘도 반말로 하시잖아요.”
“어, 그래. 할 거냐고. 자연스럽게 질문 무시하지 말고.”
참 능청맞고 성격 좋은 사람이었다. 그러니까 그 지랄맞은 이단우를 데리고 일 년을 가르쳤을 것이다.
“그렇게 질문하셨으면 대답했겠죠. 뭐 어려운 일이라고.”
고통은 어느덧 참을 만해졌다. 익숙해져서인지 스승님 때문인지는 알 수 없었다.
이 대화가 좋았다. 스승님과 이런 잡담을 다시 주고받을 수 있다니.
“아 비슷한 질문이라고! 사교적인 인사잖아!”
“저에 대한 질문이잖아요. 별로 청연에 제 신상 정보를 노출하고 싶지 않은데요.”
“아니, 왜?”
“청연에서도 공격대 키우고 있을 거잖아요. <종말> 막을 영웅팀. 그거 저희 팀이 막을 건데요. 라이벌한테 정보 밝히기 좀 그래요.”
‘헛소리지만.’
이단우가 던전 정보를 원래 알고 있었고, 어떻게 파훼할지 일주일 전부터 생각해 뒀다는 얘기는 할 수 없지 않은가?
그럴듯한 변명이라고 생각했는데 이상하게 스승님이 몸을 붙여 왔다.
“흠, 흠. 그거 말인데. 그 영웅팀에 이단우 헌터가 들어오는 건 어떻게 생각하는지 모르겠네. 내가 또 쾌속의 검사를 좋아하거든. 요즘 다 중검을 써서 스피디한 공격의 묘미를 알려 줄 검사들이 없었다고 해야 하나. 하여간 전투하는 모습도 간결하고 아름다워, 머리는 영리해, 말투는 똑 부러져. 아주 인재야, 인재.”
“…….”
E급 이단우가 청연에 스카우트를 다 받고 있다.
-수련이나 해라. 네 실력으로는 우리 길드 말단으로도 못 써.
과거 자신을 앉혀 놓고 스승님이 했던 말이 떠올라서 단우는 웃음이 나왔다.
그때 제 실력은 얼마나 형편없었는가?
“이야, 내 팬인데 나한테 인정받으니까 기쁘지.”
“네. 좋은데요. 됐습니다.”
“…….”
“스승님, 저 없을 때 단우한테 접근하지 마세요. 뭐 하시는 거예요.”
차우원이 몬스터 사체를 갈라 마정석을 회수하다 말고 돌아왔다.
“야, 네 팀원 어렵다. 쟤 애가 아주 똑 부러지고 무서워.”
“우리 단우가 그래요. 더 무서운 말 듣기 싫으시면 그만 말 붙이세요.”
“더 무서운 말이 뭔데?”
차우원은 잠시 고민하다 말았다.
“말씀 안 드리는 게 나을 것 같아요.”
이단우는 그가 뭘 고민했는지 깨달았다.
‘전대 영웅들은 늙었다는 그 소리다.’
단우는 다급해졌다.
“야, 너 말하지 마.”
“말 안 해, 단우야. 내 팀원 내가 지켜야지.”
“너 진짜 한마디만 해봐!”
스승님한테 애제자 빼간 놈이 되는 건 그렇다 치고 뒤에서 모욕한 놈까지 될 수는 없지 않은가?
차우원이 곤란해했다.
“단우야, 그러면 스승님이 더 궁금해하시잖아.”
“너네 무슨 말 하는 건데? 이단우가 뭐라고 했냐? 이단우 헌터, 뭐라고 했어요? 나에 대한 말이야? 내 욕 했어?”
“아니요.”
“거짓말하지 마! 근데 왜 청연 안 들어와? 내 팬이라며!”
“검술만 좋아해서요.”
말하며 단우는 입술에 검지를 붙였다. 차우원이 그 모습을 보고 웃음을 터뜨렸다.
“내 성격은 싫다는 소리야!? ……내가 이해해. 친구들이랑 만든 공격대로 영웅 되고 싶은 마음 다 알지. 근데 나한테 검술 안 배우고 싶어?”
스승님은 단우와 차우원을 번갈아 보더니 입맛을 다셨다. 표정이 묘하게 흐뭇한 게 조카 친구라도 보는 얼굴이라 단우는 기분이 찝찝했다.
“네. 저 검은 잘 써서요.”
“…….”
이단우의 검은 스승님에게서 기초를 배우고 차우원이 완성시켰다.
스승님에게서 스물이 되기 전에 ‘검에 대해서는 더 배울 게 없다’는 소리를 들은 차우원이니 이단우의 검은 스승님에게 배운 것과 다름이 없었다.
‘같은 걸 두 번 배울 일 있나.’
스승님은 이제 오기가 생긴 듯했다.
“청연 안 들어오고 제자 되는 건?”
“제가 바빠서요.”
“너 내 팬 맞냐?!”
유치한 사람이다.
‘사실 가장 큰 이유는 과거를 반복하기 싫어서지만.’
또 스승과 제자 같은 관계가 됐다가 그 일이 일어나면 어떻게 되겠는가?
물론 이번에는 완전히 다를 테지만. 혹시나, 어쩌면…….
“길드장님. 사적인 욕망은 내려놓고 협력사 계약이나 따시라니까요.”
“맞아요. 이단우 헌터 꼬셔도 차우원 헌터가 원 플러스 원으로 낚여 오는 것도 아니잖아요.”
“아니, 이단우 쟤 물건이라고.”
“저희도 알아요. 그러니까 빨리 협력사 계약하시라고요.”
또 앞에서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이번에는 이단우도 자기들 이야기인 걸 알았다.
‘하하…….’
정말로, 과거와는 달랐다.
본래 스무 살의 이단우는 헌터 자격 시험에 떨어지고 이모네서 나온 뒤, 세상에 혼자밖에 없다며 멍청하게 고독이나 씹고 있을 즈음이었다.
‘세상은 원래 혼자야, 멍청한 새끼야.’
이단우는 과거의 자신에게 말해 주고 고개를 들었다. 거대한 보스룸 입구가 보였다.
“이야, 초단기간에 보스룸 클리어다.”
스승님이 말했다.
탱커들이 문을 열었다.
보스룸은 어둡고 약간 습했다. 그리고 덥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따듯한 온도를 유지하고 있었다.
단우는 눈을 가늘게 뜨고 보스룸 뒤편의 희미한 흰 덩어리들을 응시했다.
“……알?”
개미알이었다.
띠링!
<자이언트 앤트퀸>
자이언트 앤트는 지하에 거대한 왕국을 만들고, 나무뿌리를 영양분 삼아 자식들을 길러 내는 부지런한 종족입니다. 자식들을 사랑하는 여왕은 침입자들이 저지른 잔인무도한 악행을 용서치 않을 것입니다.
파바바박!
흙바닥이 갈라지더니 그곳에서 지금까지 본 것보다 훨씬 거대하고 다리에 털이 부숭부숭한 개미가 튀어나왔다.
날개 달린 게 왜 땅속에서 나온단 말인가?
‘던전 클리어 기록지 누가 썼냐.’
에서 강조되어 있던 기록은 ‘시간 부족’뿐이었다.
어쨌든 몬스터의 생태는 단우의 관심 분야가 아니었다. 그보다 급한 일이 있지 않은가?
‘이 새끼 퇴로 막아야 한다.’
단우는 반사적으로 외쳤다.
“탱커 어그로 끌고, 마법사들 땅 굳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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