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
단우는 소서정에게 스킬북을 내밀었다.
“익히실래요.”
“네?”
“네가 익혀서 쓸 스킬이라고.”
“잠깐, 서정이한테 지금 스킬 바로 익혀서 쓰라고 하게? 숙련도 문제가 있을 텐데.”
차우원이 가로막았다.
‘그랬으면 소서정이 천재라고 불렸겠냐.’
단우는 소서정을 향해 턱짓했다.
“쟨 그런 거 없을 텐데요. 천재라고 했잖아요.”
“……!”
소서정이 깜짝 놀랐다.
“어, 나?”
“소서정. 너 자신 없으면 지금 말해. 익히면 바로 쓸 수 있어 없어?”
“아니, 쓸 수는 있는데.”
“됐네요.”
단우는 인벤토리에서 아티팩트를 꺼냈다.
“이게 저희가 쓸 보호 장비입니다. 청연에서 아티팩트 뿌릴 줄 알았다면 준비 안 했을 텐데, 좀 아깝네요.”
‘청연이 뿌릴 줄 알았지만.’
스승님이 돈 아끼자고 남 해칠 사람인가?
보호 장비는 설득용으로 쓰려고 몇 개만 준비해 뒀을 뿐이다.
‘돈도 별로 안 썼단 소리지.’
E급 헌터는 벌이가 좋지 않아서, 단우는 알뜰하게 사는 데 익숙했다.
“청연 설득은 리더가 해 주시고요. 던전 브레이크 코앞이라 다들 탱커 앞세워서 강제로 뚫자는 소리만 하고 있었을 텐데, 이 방법이 더 나을걸요. 안전성 측면이나 속도 면이나 뭐로든요.”
“오…….”
“하나 문제가 있어서, 이 부분을 설득해 주셔야 하거든요.”
“그건 뭘까.”
‘얜 또 왜 웃냐.’
단우는 차우원의 반응이 마음에 들지 않았으나 무시했다.
“개미가 안 죽고 기어 나올 거거든요. 다수가. 엄청나게 필사적으로.”
“굴에 진입할 때보다 동시에 상대할 수가 많겠네.”
“네, 좀 많이.”
“알았어. 해 볼게. 통하면 확실히 좋은 방법일 것 같다. 근데 단우야, 너 화공 같은 거 되게 좋아하네.”
‘이 새끼가 강울림도 있는데.’
단우는 차우원을 노려봤다. 강울림은 그들이 건물에 불 지른 범인이라는 걸 아직 모르지 않는가?
“어, 회의 끝났어요?”
강울림의 질문을 끝으로 회의는 끝났다.
‘리더를 먹으니 이렇게 쉽군.’
<차우원 팀>은 정석 외의 다른 계책이 필요 없는 팀이었다. 정석대로 행동해도 다 대처할 수 있는 팀이었던 것이다.
‘이 던전도 원래는 차우원이 힘으로 뚫었겠지만.’
위험을 무릅쓸 필요는 없다.
차우원이 보통 헌터가 하지 못할 짓을 성공했기 때문에 이 사건으로 인정받은 게 아닌가? 단우는 차우원이 무리하게 할 생각이 없었다.
‘짐은 공평하게 나눠 져야지.’
청연 공격대들도 차우원의 보호를 받기보단 힘을 쓰고 싶을 터였다.
차우원이 청연 길드장을 설득하러 떠났다. 소서정도 스킬을 익히러 걸어가면서 강울림에게 물었다.
“근데 이게 회의야?”
강울림은 이런 회의가 아닌 회의를 몰랐다.
“회의가 아니면 뭔데?”
원래 회의는 이단우 혼자 얘기하고 그들은 듣는 것이 아닌가?
‘이단우 존댓말 하는 거 진짜 안 어울리네.’
그런 생각이나 하고 있는데 소서정이 고개를 끄덕였다.
“너한테 물은 내가 잘못이지.”
“너 그거 무슨 뜻이냐?”
아무튼 강울림은 땅굴 깊이 들어가지 않아도 된다니 좋았다. 달려드는 몬스터만 막으면 된다는 거니까.
밀고 들어가는 것보다 거점 잡고 한 곳을 막는 게 탱커들에겐 더 쉽고 익숙한 싸움이었다.
‘부모님, 죽지는 않을 것 같아요.’
기뻐하는 그의 뒤에서 소서정은 스킬북을 펼쳤다.
‘근데 걔가 나한테 천재라고 하지 않았나?’
소서정은 스카우트당하기 전엔 이단우를 한 번도 본 적 없었다. 유망주 모임에 얼굴을 비추지 않은 인물이란 뜻인데, 그런 인물은 보통 별 볼 일 없기 마련이었다.
그러나 차우원이 그를 팀원으로 뽑았다. 말을 들어 보니 머리도 잘 돌아가는 듯했다.
‘그리고 눈도 좋은 것 같은데.’
솔직히, 소서정은 재능이 빛나는 인물이 아닌가?
차우원에 가려져 빛을 못 보긴 했으나…….
‘어? 팀원 스카우트가 차우원 의지가 아니라 이단우 추천이었나?’
저도 모르게 진실에 근접하며, 소서정은 스킬을 익혔다.
<해충용 독무(C)>
숙련도: 70%
익히자마자 숙련도가 거의 다 찼다.
‘실력 어디 안 가지.’
소서정은 자신만만하게 웃었다.
이런 애매한 등급의 스킬은 금방 익혀서 활용하는 게 소서정의 특기였다.
이단우가 어떻게 알았는지 모르겠지만…….
* * *
설득을 마친 차우원이 돌아왔다. 그의 뒤로 청연 수뇌부들이 따라왔다.
“좋아! 이러나저러나 위험한데. 한번 해 보자고. 할 수 있겠어?”
스승님이 소서정에게 물었다.
“예. 스킬 계속 써서 통로 하나 채우면 되는 거죠. 열심히 하겠습니다!”
소서정이 싹싹하게 굴었다.
“마력 회복 아이템 있어? 빌려줘?”
“아, 이거 다 마력 아티팩트예요. 마나 포션까지는 필요 없을 것 같은데, 주시면 감사히 받을게요.”
소서정이 양손을 펼쳐 보였다. 열 손가락에 낀 반지가 전부 마력 회복 옵션이 붙은 아티팩트다.
‘돈지랄도 가지가지다.’
단우는 생각했으나 자기 돈도 아니었기 때문에 시선을 돌렸다. 어쨌든 지금은 도움이 되지 않겠는가?
단우가 손을 들었다.
“청연에 바람 계열 마법사 있으시죠. 그분들도 도와주셔야 할 것 같은데요.”
“있는데, 왜?”
스승님이 물었다.
“독 연기 안으로 밀어 넣게요. 우리가 독을 꼭 먹어야 하는 건 아니니까요. 보조계 헌터들이 소서정한테 버프 걸어서 위력 증폭시키고, 개미굴 안이 연기로 가득 찰 때까지 계속 스킬 써 보죠. 잡몹 다 잡고 보스 깨게요.”
개미류는 이동 속도가 빨랐다. 보스 레이드 중에 자기들 보스 보호하겠다고 몰려들면 곤란하다.
“오……. 되려나? 독 연기니까 되겠지? 이런 건 해본 적이 없는데. 젊은 애들이라 발상이 반짝반짝해. 우리 때랑 달라.”
스승님이 청연 부길마에게 말했다.
“젊은 애들 앞에서 ‘젊은 애’라고 하지 마세요. 그러니까 길마가 꼰대 소리 듣는 거예요. 그리고 저도 젊거든요. 길마랑 엮일 연배가 아니에요.”
“야! 나도 아직 사십 대야! 팔팔한 청춘이라고.”
스승님이 성을 내고 단우를 돌아봤다.
“근데 아무리 지원을 해 줘도 던전 하나를 스킬로 채우기는 마법사 한 명으론 힘들지 않냐?”
‘차우원이 뭐라고 설명했냐.’
설득은 됐는데 작전은 제대로 인식이 안 된 느낌이다.
“소서정이 그렇게까지 활약해 줄 필요는 없고요, 어차피 개미굴이잖아요. 통로가 다 이어져 있는 것도 아니니까 작은 통로 하나씩 막고 해충 방역하자고요.”
“어어……. 그런 거였어? 그거 통할 거 같은데?”
스승님이 놀라서 말했다.
‘도대체 뭐라고 생각하고 작전에 동의했던 거지?’
단우는 의아했다.
스승님이라면 애제자가 하자니까 일단 ‘그래라’ 했을 확률도 높기는 했다…….
스승님이 칭찬했다.
“야, 네 팀원 머리 좋다.”
“준비성도 좋아요. 귀엽죠.”
차우원이 대꾸했다.
“……?”
“그러면 이대로 갈까요? 통로 하나 막은 채 서정이가 스킬 쓰고 바람 계열 마법사가 보조하는 걸로. 보조계 헌터가 버프 걸어서 스킬 증폭하고. 저희는 마법사들 보호하는 진영 짜서 몬스터 웨이브 대처.”
“아, 좋지. 누구 제잔지 어떻게 해야 할지 계산이 딱 서. 어, 일단 해 보자고.”
“길드장님 편애가…….”
“둬, 길드장님 취미야.”
청연 길드에서 수군거림이 튀어나왔으나 금세 무마됐다. 차우원이 웃으며 돌아왔다.
“서정아, 스킬 익혔어?”
“어. 숙련도 70퍼.”
소서정이 자기 키만 한 스태프를 흔들며 거만하게 말했다.
“아, 대단하네. 별문제 없겠다. 단우 말이 맞았네.”
하더니 차우원은 단우의 어깨를 툭 쳤다.
‘단우 말이 맞다’니.
차우원 입에서 또 듣는 희한한 소리였다.
뭐…….
작전은 시작됐다.
게이트 너머로 넘어간 공략팀은 어두운 굴속에 떨어졌다. 시작부터 세 개의 통로가 보였다.
“<감지>!”
감지 스킬을 가진 헌터들이 앞장서서 마력 반응을 탐색했다. 던전 공략의 필수 스킬이었다.
‘사실 감지 스킬은 마력 반응을 추적할 뿐이라, 던전 보스 자체를 찾을 수 있는 건 아니지만.’
몬스터는 마력을 품고 있고, 그들이 지키는 곳이 보스룸으로 가는 길목일 확률이 높기 때문에 던전 공략에는 감지 스킬을 가진 헌터가 꼭 필요한 것이다.
과거 <차우원 팀>에서도 소서정이 감지 스킬을 가지고 있었다.
그가 아니어도 마력 감지를 해낼 사람이 두 명은 더 있었지만.
‘차우원.’
차우원은 감지 타입이었다. 아예 눈 자체가 다른 사람과 달라서, 보통 사람은 볼 수 없는 마력의 흐름을 맨눈으로 포착 가능했다.
그리고 이단우, 자신은…….
‘마력에 예민하다.’
마력을 스킬 없이 체내에서 돌리다 보니 마력 자체에 예민해졌다. 마력 촉진제 과다 복용 문제도 있어서, 나중에는 마력을 움직이는 것 자체가 통증을 일으킬 정도였다.
그러고도 차우원 같은 재주는 부리지 못했다. 마력이 지나가면 감지할 수 있는 정도였지.
‘300미터 정도였나.’
그 안에서의 마력 반응이라면 감지가 가능했을 것이다.
아직 마력에 충분히 노출되지 않은 지금의 몸은 그렇게까지 예민하진 못했지만.
어쨌든…….
차우원이 한곳을 보고 있었다. 감지 스킬을 가진 헌터들 역시 그 통로를 가리켰다.
스승님이 손짓했다.
“가자!”
탱커를 1열과 마지막에 세우고 중간에 원거리 딜러와 보조계를 세운, 정석적인 조합으로 그들은 전진했다.
그 과정에서 개미 몇 마리를 발견했다.
그건 순식간에 앞 열의 딜러들에 의해 녹아 버렸고…….
-끼에에엑…….
제대로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공략팀에 의해 짓밟혔다.
그들은 좁은 통로 하나를 막았다.
그리고 소서정이 스킬을 사용했다.
소서정이 입은 로브가 흩날리고, 어두운 동굴 속에 빛의 원이 그려졌다. 허공에 스킬진이 형성되며 복잡한 무늬가 궤를 그렸다.
스킬진에서 <해충용 독무>가 튀어나오더니, 무럭무럭 피어나 통로 속으로 들어갔다.
“<윈드>!”
바람 계열 마법사들이 스킬을 보조했다.
독 연기는 바람에 떠밀려 통로 안으로,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다들 보호 아티팩트 착용해.”
스승님은 혹시 몰라서 명령했으나, 문제는 없었다.
잠시 뒤 통로 깊은 곳에서 몬스터들의 비명이 들렸다.
-끼에에에에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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