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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인성 교육-27화 (27/170)
  • 27.

    단우는 저 둘이 저렇게 친근히 서 있는 모습을 한 번도 본 적 없었다. 이단우가 차우원을 만난 건, 그러니까 차우원의 공격대에 들어간 건 ‘스승님’이 돌아가신 뒤였으니까.

    “어디, 나한테서 애제자 빼간 그 재능 넘친다는 신입 한번 볼까……. 어?”

    차우원이 이쪽을 돌아보는 모습이 보였다. ‘스승님’도 이곳을 보고 있었다.

    그러나 시야가 맑지 않았다. 두 사람의 표정은 흐렸고 곧 형태도 번져 버렸다.

    “쟤 왜 우니? 나 아직 한마디도 안 했다? 야, 저기…….”

    “단우예요. 이단우.”

    차우원이 설명했다.

    “그래, 이단우 헌터……. 내가 겁을 주려고 그런 게 아니라……. 그냥 원래 말투가 좀, 내가 무례하다는 말도 종종 듣고…….”

    스승님이 변명하는 소리를 듣다가 단우는 웃음이 나왔다.

    “아하하…….”

    “…….”

    ‘저게 미쳤나?’

    스승님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다 보이는데 웃음이 멈추지 않았다. 단우는 숨을 멈췄다. 코를 훌쩍이고, 눈물을 닦고, 계속 흘러나오는 눈물을 닦으며 생각했다.

    ‘정신 좀 차려 봐. 어떻게 보시겠어. 첫인상 완전히 망쳤잖아. 자기 제자 데려간 놈이 완전 돌아 버렸다고 생각하실 거 아냐. 차우원도 이 미친놈 괜찮은가 생각할 텐데……. 아니 계속 처우는데 덜 미친놈으로 보일 방법 없나…….’

    차우원이라고 하니 그 주변에서 눈물만 줄줄 흘리고 차우원의 옷자락을 잡아당기던 자칭 팬들이 떠올랐다.

    “……팬이어서요.”

    “……그, 그래요? 울 정도로 팬이야? 아니, 괜찮은 거 맞아요?”

    “진짜, 너무 팬이어서요.”

    “그 정도로 팬이야?! 사인해 줘요?”

    “그건 됐고요.”

    “…….”

    두두두두두…….

    때마침 할 일을 마친 헬기가 허공으로 날아올라서 단우는 온몸이 흔들렸다. 머리카락이며 옷이 미친 듯이 펄럭이면서 얼굴을 때려 대자 그제야 주변이 보였다.

    여긴 스승님과 훈련하던 비활동 던전이 아니고, 악몽 속도 아니고, 활성 게이트가 블랙홀처럼 소용돌이치는 공터였다.

    단우는 눈물을 닦아 내고 말했다.

    “정말 존경합니다. 제가 세상에서 가장 존경하는 분이세요.”

    “그 정도까지? 근데 왜 사인은…….”

    “괜찮습니다.”

    “내 팬 맞아?!”

    ‘이 부분은 똑같네…….’

    청연 길마 류시환은 전대 영웅들과 같은 시기에 활동하던 사람이었다. 심지어 차문경의 팀원이기도 했는데 함께 <최후의 던전>은 들어가지 못했다. 당시 입은 부상 때문이었다.

    평가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그를 전대 영웅들과 같게 취급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최후의 던전>에 들어가지 않았다는 이유에서였다. 결국 그는 <종말>을 막으러 못 가지 않았는가?

    그러나 그는 차문경의 팀원이었고, 그 자신도 훌륭한 헌터였다. 존경받을 만한 사람이었다. 팬도 많았는데, 어째서인지 남들에게 사인해 주고 돌아다니길 좋아했다.

    E급 헌터였던 이단우는 그에게 사인도 받았고 그의 제자도 됐다.

    두 번째 제자였다.

    단우를 제자로 받고 류시환은 일 년 뒤에 죽었다.

    이단우는 그 이야기의 한 줄도 반복하고 싶지 않았다.

    차우원과는 경우가 달랐다.

    ‘스승님은 정말 내가 아니면 사셨는데.’

    단우는 멍하니 바닥을 봤다.

    스승님이 멀리서 목소리를 낮춰 속삭였다.

    “우원아, 네 팀원 애가 귀엽긴 한데 싸가지가 이상하다.”

    “단우는 그게 매력이에요. 그리고 스승님, 다 들려요.”

    “알아! ……아니, 뭐? 너 뭐라 그랬냐?”

    차우원이 단우에게 다가왔다. 단우는 그가 눈물을 언급하며 한마디 놀릴 거라고 생각했으나 그는 단우의 바람막이 지퍼만 목 끝까지 채워 줬다.

    “이 정도로 만나 뵙고 싶어 하는 줄 알았으면 소개해 줬을 텐데.”

    단우는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 깨달았다.

    “그 정도는 아니야.”

    “그렇지? 너무 존경해서 못 견딜 정도였으면 청연에 들어갔을 테니까. 하지만 단우는 나를 선택했잖아.”

    차우원은 목깃 부분을 펴 주더니 미소 지었다.

    “스승님이 현역으로 활동은 하시지만 너무 노장이시지. 이번 <최후의 던전>에서도 활약하시긴 힘들 거야. 단우에게 필요한 분은 아니지.”

    ‘필요?’

    이상한 단어가 튀어나왔지만. ‘네 스승님을 뭐 그렇게 말해?’라고 하기에는 단우도 똑같이 생각했기 때문에, 그는 “그렇긴 해.”라고 대답했다.

    “하하. 정말 모르겠다니까.”

    차우원의 손이 단우의 뺨을 닦아 냈다.

    “이렇게 울면서. 무슨 기준으로 사람을 평가하는 거야?”

    “……?”

    단우야말로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 수 없었다.

    ‘지가 먼저 말해 놓고, 지 스승님 낮춰 봤다고 꼽주는 건가?’

    “나 네 스승님 정말 존경해.”

    그가 오해할까 봐 단우는 진지하게 말했다.

    차우원은 고개를 끄덕였다.

    “응, 그런 것 같아.”

    그리고 단우를 빤히 봤다.

    “날 봤을 때도 울었잖아.”

    “…….”

    “날 존경하는 건 아닌 것 같은데. 단우는 왜 자꾸 울지.”

    차우원은 머리도 좋고 감도 좋았다. 단우는 자기 뺨을 치고 싶었다.

    ‘정신 좀 차려.’

    설마 단우가 자신을 죽이고 과거로 돌아왔다는 상상은 못 하겠지만, 다른 건 눈치챌지도 몰랐다.

    이단우가 과거부터 품고 있던 개같은 감정을.

    ‘그만둬.’

    단우는 그런 건 반복하고 싶지 않았다. 차우원에게 동정받는 일은 한 번으로 족했다.

    차우원은 동정심으로 너무 많은 걸 해줄 수 있는 사람이었고, 그건 단우 같은 사람에게는 독이었다.

    “가서 준비해. 시간 없잖아. 애들도 챙기고.”

    단우는 차우원의 손을 떼어 냈다. 차우원은 당황한 듯했다.

    “내가?”

    “네가 팀 리던데 네가 해야지.”

    “으으음. 그런 컨셉이었지. 알았어.”

    차우원은 뉴 <차우원 팀>을 모아서 장비를 착용하게 하고 무기를 소지하게 했다. 단우는 인벤토리에서 바람막이 안에 걸칠 경량 갑옷만 꺼내 입고 허리춤에 검집을 찼다.

    저 멀리서 각 팀의 리더를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공격팀 리더들 모여 주세요. 작전 회의 시작합니다.”

    천막 안으로 차우원이 들어갔다. 그가 한번 단우를 돌아보는 듯했으나 단우는 마주 보지 않았다. 멍하니 바닥을 보며 늪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

    이단우는 늪 같았다. 무엇이든 빨아들였고 그것이 호의라면 붙잡고 놓아주질 않았다.

    부모님이 돌아가신 뒤 이단우에게 주어진 것이 대부분 적의나 무관심이었기 때문에, 단우는 개 같은 성격을 유지하며 이모네서 살아남을 수 있었다.

    스승님은 그런 이단우에게 처음으로 호의로 다가온 사람이었다.

    스승님이 돌아가셨을 때 이단우는 제정신이 아니었다. 정말로, 제정신이 아니었다.

    미친 게 아니고서야 차우원을 찾아갈 수 없었을 테니까.

    미친 이단우를 붙잡아 놓고, 차우원은 말했다.

    -단우야, 생각을 해. 넌 너무 감정적이야.

    이단우가 어디로도 갈 수 없게 그를 길드 안에 가두고, 차우원은 계속해서 말했다.

    -네가 화내고 우는 것의 절반만 머리를 써도 길드 건물 밖으로 탈출은 할 텐데.

    차우원이 너무 미워서 단우는 하루 종일 울던 걸 멈췄다. 그리고 차우원의 말대로 생각을 시작했다.

    이 빌어먹을 차우원의 방과 청연 길드를 탈출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그리고 생각하는 건 차우원이 죽은 뒤에도 이단우의 힘이 되었다.

    단우가 어떻게 <최후의 던전>을 깼겠는가? 차우원과 팀원들이 죽어 버렸는데. 고작 이단우가…….

    이단우는 생각하는 미친놈이었기 때문에 남들이 안 할 짓을 생각해 냈고 실행도 했다. 아마 제정신인 인간이었다면 떠올랐대도 안 할 만한 방법을.

    작전 회의에 참석하지 않았으나, 그는 이미 이 던전이 과거에 클리어된 곳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최후의 던전>을 깨기 위해 이단우는 안 읽어 본 던전 클리어 기록이 없었다.

    이 던전을 어떻게 단기간에 깰 수 있는지도, 이단우는 생각해 놨다.

    * * *

    차우원이 설명했다.

    “척후팀이 들어가서 확인했는데, 필드는 대지, 굴 타입이고 적은 개미 같아. 굴이 너무 깊어서 보스룸은 확인 불가. 안으로 진입해서 하나하나 찾아야 할 것 같다는데.”

    “뭐야, 이거 시간이 관건 아냐? 하나하나 확인하다 던전 터지면 어떻게 하려고?”

    소서정이 바로 물었다.

    잔머리가 좋은 놈이다.

    ‘자기 안위는 잘 챙기지.’

    던전 공략 중 던전 브레이크가 터지면 악몽이었다. 공략대는 말 그대로 몬스터에 쓸려나갔다.

    “그러면 큰일이지.”

    차우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대책이 없단 소리야? 아니 청연 마스터가 여기 있는데 뭔 소리야? 마스터 죽어?! 아니구나. 청연 마스터는 살겠구나! 우리가 문제잖아?”

    “대책이 없진 않고, 보호 아티팩트 지급 받았어.”

    “와……. 우리 들어가서 진짜 큰일 나니? 나 여기 진입하는 거 맞아?”

    “야! 너 시끄러워! 너 때문에 더 불안하잖아!”

    소서정과 강울림이 또 싸우려 드는데, 단우가 손을 들었다.

    “저 발언하고 싶은데요.”

    “…….”

    “……?”

    차우원과 강울림이 ‘뭐야, 쟤 왜 저래’라는 눈빛을 보냈으나 단우는 이곳이 청연 길드 앞임을 잊지 않았다. 스승님이 눈 똑바로 뜨고 지켜보는데 수상한 짓을 하고 싶지 않다.

    ‘이미 미친놈 같겠지만.’

    “……어, 단우야. 들어 보자.”

    차우원이 한 박자 늦게 반응했다.

    “어렸을 때 개미 잡아 보셨나요.”

    “……?”

    “아니요. 흙 놀이 질색이었는데요. 그런데 저희 회의할 때 존댓말 하나요?”

    소서정이 물었다.

    “제 발언 시간에 조용히 하시고요.”

    단우가 쳐다보자 소서정은 조용해졌다. ‘네가 물어봤잖아……’ 하고 억울해하는 표정을 단우는 무시했다.

    “……그래, 단우 발언 시간인데 단우 말 듣자.”

    차우원이 웃음을 참으며 말했다.

    “개미 잡아 보셨을 필요는 없고, 아무튼 안에 틀어박혀 있는 거 잡으려면 뭐 집어넣는 게 최고거든요.”

    “’뭐’가 뭘까?”

    “여러 가지 있겠죠. 근데 여기서는 연기가 최고 같지 않나요. 게이트 안이니까 달리 탈출로를 파 놨을 리도 없고, 개미한테 독성 있는 연기 살포하면 다 튀어나올 것 같은데요.”

    “저 질문 하나 있는데요.”

    소서정이 조금 공손해져서 손을 들었다.

    ‘이 새끼가 웬일이지.’

    단우는 허락했다.

    “하세요.”

    “개미형 몬스터가 죽겠다 싶어서 튀어나올 정도의 연기면 저희도 죽지 않나요? 그 전에 그런 연기는 어떻게 구하나요?”

    ‘너 잘 말했다.’

    단우가 인벤토리에서 스킬북을 꺼냈다.

    스킬 <해충용 독무>.

    시장에서 싸게 구했다.

    모 마법사가 던전 캠핑용 해충 쫓기 스킬로 만든 건데, 위력이 없어서 스스로 ‘실패작’이라고 생각하고 내놓은 스킬이기 때문이다.

    ‘개미한테만 듣는 거니까 모기는 못 쫓았겠지.’

    스킬이란 게 원래 좀 불합리하지 않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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