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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인성 교육-25화 (25/170)
  • 25.

    이단우는 악몽을 꿨다.

    꿈이라는 걸 금방 알 수 있었다. 자주 꾸던 내용이었으니까.

    ‘그러지 않았더라면.’

    과거를 되짚는 건 아무 의미도 없다.

    하지만 꿈속의 이단우는 그런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러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끝도 없이 같은 일을 반복했다.

    꿈속의, 스물세 살의 이단우는 절박하고 아팠다. 상위 헌터들에게 ‘봉사활동’ 취급을 받는 던전 브레이크 방어 작전에도 몸이 부서지는 E급 헌터였다.

    그런데도 주제를 몰랐다. 자신이 부모님의 시신을 되찾아 나올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당장은 그럴 수 없더라도, 그렇게 되게 만들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헌터가 되어서도 던전에서 살아나올 가망은 보이지 않았다.

    비정기 던전이 다시 개방되면, 단우는 그곳에 들어갈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안에서 생존해 부모님을 모시고 나올 수 있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단우는 하급 던전 공략에서도 목숨의 위협을 겪었고, 그게 자신의 실력이라는 걸 알았다. 도무지 늘지 않는 스탯과 텅 빈 스킬창은 생존에 도움이 되지 않았다.

    이단우는 부모님을 구할 수 없다. 그렇다면 이단우의 돈이라도 부모님을 구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러나 하급 헌터가 벌어들일 수 있는 돈은 한계가 있었다. 소모성 아이템과 장비를 보충하고 부상을 치료하느라 돈은 계속해서 빠져나갔다. 엘리트 헌터에게 개인 의뢰를 하기에는 잔고가 터무니없이 부족했다.

    ‘여기서 죽나?’

    던전 브레이크 방어에 지원을 나갔다가 몬스터와 단둘이 대치하게 되었을 때, 단우는 생각했다.

    그렇다면 개같은 죽음이 아닌가? 이단우의 죽음을 슬퍼해 줄 사람 따위는 아무도 없다.

    -용기는 가상한데, 너 그러다 죽는다. 뒤로 가. 더 뒤로……. 어, 아예 저기로 빠져 있어라. 방해된다.

    그때 ‘스승님’이 단우를 구했다.

    그 말과 함께 살아 움직이던 몬스터는 사체가 됐다.

    쿵!

    쓰러지는 몬스터를 보며 단우는 굳어 있었다.

    단우가 검사가 된 건 그에게 검과 관련한 스킬이 있어서가 아니었다. 다른 사람들이라면 근거리 딜링 스킬이나 검과 관련된 스킬을 각성했기 때문에 검을 무기로 선택했겠지만, 단우에겐 어떤 스킬도 없었다.

    그가 검을 선택한 건 그게 가장 값싼 무기였기 때문이었다.

    방패는 안 된다. 단우의 신체 스탯으로는 탱킹을 할 수 없고, 어그로를 끌 수 있는 스킬도 없었으니까.

    그런데 검은 빌어먹을 무기였다. 툭하면 부러지고 거리를 벌리는 데도 이점이 없다.

    단우는 얇은 검신으로 코앞까지 달려든 몬스터를 막아 내면서 늘 사선의 경계를 넘나드는 기분이었다.

    단우가 생각에 빠져 있건 말건 ‘스승님’은 검을 수납했다.

    그의 손에 들린 검은 단우가 알던 쓸모없는 무기가 아니었다.

    단우는 떨어지지 않는 발을 움직였다. 무리하느라 코에서 흘러내린 피를 막으며 주춤주춤 생명의 은인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매달렸다.

    -제자로 받아 주세요.

    -뭐?

    ‘스승님’은.

    청연 길드 마스터 류시환은 짜증 나는 성격이었으나 좋은 사람이었다. 어린애가 피를 흘리며 매달리는데 뿌리칠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기막혀하는 대신 말했다.

    -요새 애들은 모르나 본데, 내가 아무나 제자로 받아 주는 그런 사람이 아니야. 감동받았으면 사인이나 받아서 가라. 가보로 간직하고.

    -저 아무나 아닌데요.

    -……뭐 얼마나 잘하길래 자신만만하냐. 그래, 한번 실력이나 보자.

    단우의 실력을 본 ‘스승님’은 입을 벌렸다.

    -……너 진짜 아무나가 아니구나. 어떻게 아직까지 살아남았냐?

    -방금 살린 놈 죽는 꼴 보기 싫으면 제자로 받아 주세요.

    이단우는 절박하고 뻔뻔했다. 스승님은 동정심이 많았고 사람이 너무 좋았다.

    그래서 스승님은 죽었다.

    * * *

    소파에 머리를 처박은 채 이단우는 눈을 떴다.

    목은 이상하게 꺾였고 코는 소파 틈에 처박혀 있었다. 온몸이 아프고 두통이 이는 것도 당연했다.

    커튼을 걷어 보니 날씨는 좋았다.

    그는 찌뿌둥한 몸을 풀며 마력 촉진제를 입에 넣었다.

    마력이 온몸을 돌며 감각이 예민해지고 머리가 깼다.

    위층에서 우당탕탕 소리가 나더니 강울림이 뛰어 내려왔다.

    “야! 이단우! 나 근력 A 달성했어!”

    “어.”

    “’어’가 아니지? 칭찬을 해야지? 세 달 만에 스탯을 올렸는데……!”

    ‘체근 S 찍던 놈이 A 찍었다고 좋아하냐.’

    우습기도 하고 이걸 언제 키우냐 싶어서 단우는 예의상 웃어 줬다.

    “잘했어. 이제 일 인분은 하겠네.”

    “후…….”

    강울림이 허리에 손을 올리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이게 이게 이단우지. 사람이 갑자기 바뀌면 죽는다는데…….”

    ‘뭐라는 거야.’

    “아침부터 시비 걸러 왔어?”

    “아니! 시비는 네가 거는 거고! ……나 던전 안에서 일 인분 할 수 있는 거 맞아? 네 말대로 A 찍었으니까 일 인분은 가능한 거지?”

    단우는 강울림이 신기했다.

    ‘아무리 멍청해도 신체 스탯 A로 활약을 못 할 수 있다는 생각이 가능한가?’

    강울림은 그만큼 멍청했기 때문에 단우는 설명했다.

    “어.”

    “대충 대답하지 좀 말고! 민폐 끼치기 싫다고!”

    “너 지원팀 활동 안 해 봤어? 센터에서 해 봤을 만한데.”

    ‘이만한 놈을 안 뽑아 줬을 리가 있나.’

    실전 경험 쌓는 의미에서라도 한번 넣어 줬을 터였다.

    “안 해 봤는데. 그런 건 차우원이나 소서정 같은 애들이나 시키는 거 아니야? 나도 언제 시켜 준다고 얘기 듣긴 했는데, 난 센터 금방 나오기도 했고…….”

    ‘그래선가.’

    단우도 던전 공략이 두려웠던 적이 있었다. 자신의 실력으로 그 안에서 살아 나올 수 있을까 두렵지 않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나중에는 아무래도 상관없게 됐지만.

    그런데 이놈 불안은 진짜 쓸데없지 않나?

    어쨌든 헛소리하는 게 신입 티가 났다. 귀염성이 있는 것도 같아서 단우는 다정하게 달랬다.

    “네가 마이너스 일 인분 해도 팀에서 메꿀 테니까 티도 안 날걸. 신경 쓰지 말고 해. 첫 던전 공략에 뭐 얼마만큼 하길 바라는데?”

    “아, 그게 싫은 거잖아! 다른 팀원들이야 당연히 몇 인분씩 하겠지! 지원팀 경험이 있어서 던전 들어가 보기도 했을 거고, 넌 뭐 하는 놈인지 몰라도 잘났고! 내가 팀 구멍 되기 싫다고! 은혜 갚겠다고 했으면서 계속 너한테 구박만 받고 있는데…….”

    강울림이 투덜거렸다.

    이 자식 입에서 ‘잘났다’ 소리를 듣다니…….

    <차우원 팀>은 전원이 천재여서 단우는 이 악물고 쫓아가기도 바빴는데, 세월이 무상했다.

    여러 가지 드는 감정과 별개로 단우의 안에서 감탄이 치밀어 올랐다.

    ‘호구 새끼…….’

    이놈들은 뭐가 문제일까?

    강울림은 이 팀에 존재하는 것만으로 도움이 됐다. 본인은 무슨 자기가 팀의 짐이라는 듯 얘기하고 있지만, 그건 과거의 이단우였고…….

    그때 역시 강울림은 투덜거리면서도 어그로란 어그로는 다 끌어서 이단우를 지켜 줬다.

    오히려 강울림이 민폐를 끼쳐 줘야 이단우가 빚 갚을 기회가 생길 지경이다.

    “신입은 안 죽기만 해도 제 몫 하는 거야.”

    ‘애초에 이 팀에서 스탯 가장 낮은 건 나고.’

    이 팀에서뿐이겠는가? 공략대 전체를 통틀어서 단우의 스탯이 가장 바닥을 길 것이다.

    청연 내부에서 감사가 들어왔다면 컷도 못 통과했을 스탯이다. 외부팀으로 참가해서 다행이었다.

    단우도 이 스탯을 유지하고 싶은 건 아니었으나 수가 없었다. 이단우의 육체는 강울림처럼 열심히 펌핑한다고 근육이 붙고 장거리 달리기를 한다고 체력 등급이 오르는, 그런 축복받은 육체가 아니었던 것이다.

    ‘지금은.’

    이번 던전을 깨면 그 스킬이 개방될 것이다.

    <한계 초월>(S)

    E급 헌터 이단우를 A급까지 찍게 만든 스킬이었다.

    그걸 얻으려면 단우는 한번 죽기 직전까지 무리해야 하지만.

    “뭐?! 죽는 신입도 나와? 아니, 원래 신입은 던전 들어가서 죽는 게 보통이야?”

    강울림이 사색이 됐다.

    ‘지금이 20년 전도 아니고 그럴 리가 있냐.’

    단우는 헌터의 역사를 설명하려다가 귀찮아져서 그만뒀다.

    “어. 그러니까 쓸데없는 짓 하지 말고 팀에 잘 붙어 있어. 어차피 어려운 건 청연에서 다 할 거고.”

    “너 제대로 딱 말해. 나 유서 써 놔야 돼? 아니야? ……차우원이나 소서정은 어디 간 거야? 이단우 왜 제대로 말을 안 해?!”

    “무슨 일이야. 단우가 또 울림이 괴롭혀?”

    사무실로 들어오던 차우원이 물었다. 이단우는 기가 막혔다.

    “내가 저걸 언제 괴롭혔는데?”

    강울림은 듣고 있지 않았다.

    “신입들 던전 들어가서 잘 죽어? 나 대비해야 돼? 이 던전이 특히 위험한 거야? 우리 팀 왜 처음부터 이렇게 위험한 던전을 고른 거야!”

    “어려운 던전은 맞지만……. 울림아, 몰라?”

    “몰라! 그게 뭔데? 알아야 돼?”

    ‘알아야지.’

    단우는 생각했으나 차우원은 상대에게 ‘이 무식한 새끼야’라고 말하는 성격이 아니었다.

    “아……. 뉴스에 가끔 나왔을 텐데, 몰랐을 수도 있겠다. 상황이 나빴으니까. 공략권을 가진 길드 연합에서 빠르게 조치하지 않아서, 숙성이 상당히 진행된 상태거든. 언제 폭발할지 몰라서 단우는 조심하자고 저러는 걸 거야. 그렇게 위험하진 않아.”

    차우원이 차분하게 설명했다.

    강울림은 안절부절못했다.

    “그래서 위험해, 안 위험해? 신입들이 죽을 만해, 아니면 그럴 일은 절대 없어?”

    “절대라는 말은 하기 어렵지. 그냥 길거리에서도 차에 치여 죽는 게 사람인데.”

    차우원이 쓸데없이 이성적인 말로 강울림의 겁을 증폭시켰다.

    “엄마! 나 오늘이 마지막일지도 몰라! 이럴 줄 알았으면 사랑한다고 말하고 나왔을 텐데……!”

    강울림이 휴대폰을 들고 뛰쳐나갔다.

    ‘유언이라도 남기려고?’

    이단우는 황당했다…….

    “너는 쟤를 왜 겁주고 있어?”

    “겁은 단우가 줬지. 난 안심시키려고 했는데.”

    “넌 그런 말을 듣고 안심이 되겠냐? 애초에 왜 이렇게 일찍 온 건데?”

    모임 시간은 정오였다. 그때 다 같이 모여서 게이트까지 출발하기로 했는데, 소서정은 ‘공격대 전용기도 없다니 믿을 수 없어’ 하며 혼자 따로 가겠다고 했다.

    ‘웃기는 놈.’

    단우는 그러라고 허락했다.

    차우원이 허락도 없이 소파 옆에 앉더니 단우를 돌아봤다.

    “어제 내가 말을 심하게 해서, 단우가 울고 있으면 어쩌나 걱정돼서 와 봤지.”

    “울긴 누가 울어?”

    단우는 낯이 화끈거렸다.

    그런 말을 들었다고 우는 놈이 어디 있단 말인가?

    “응. 단우는 무슨 일이 있어도 안 울지. 눈물이라곤 조금도 없고 냉철하지.”

    차우원이 웃음을 참으며 말했다.

    ‘일곱 살 어린 놈이랑 말다툼하지 말자.’

    단우는 입술을 꾹 물었다.

    “어.”

    “안 울고 잘했어. 착하다, 우리 단우.”

    ‘이 새끼랑 어떻게 안 싸울 수 있지?’

    단우는 궁금했다.

    “기분 안 나쁜 상태면 묻고 싶은 게 있는데.”

    자기가 기분 나쁘게 만들어 놓고 차우원이 고개를 기울였다. 잘생긴 옆얼굴에 빛이 비쳐서, 단우는 짜증을 잊고 단단한 옆선을 잠시 쳐다봤다.

    “뭐.”

    “저 둘은 왜 뽑았어?”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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