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 인성 교육-24화 (24/170)
  • 24.

    “그거 드디어 하네.”

    차우원이 말했다.

    E시에 어느 날 생성된 다섯 개의 게이트.

    게이트가 서로 연결되어 있어서, 다섯 개의 공략대가 동시 진입해야 한다는 판단이 내려진 게이트였다.

    그런데 E시를 보호하는 중소 길드 연합의 의견 조율이 이루어지지 않아, 던전 브레이크 직전까지 게이트가 커진 상황이었다.

    정부와 다른 거대 길드들도 여차하면 개입하려고 상황을 보는 중이었는데…….

    어떻게든 결정이 난 것이다.

    “연합에서 몇 개 게이트를 막고 청연에서 3, 4게이트를 뚫는다.”

    “할 거면 좀 빨리하지. 게이트 거의 터지기 직전에서야 협상이 되네.”

    소서정이 혀를 찼다.

    “청연에서 양보했지.”

    단우는 대답하며 차우원을 쳐다봤다.

    ‘양보가 아니라 거의 호구처럼 봉사했지.’

    본래 청연에 입사해 3게이트를 클리어하는 공격대에는 차우원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리고 이 사건으로 청연 내에서 차우원의 입지가 올라간다.

    신입인 그가 게이트 클리어에 가장 큰 공을 세워, 이름이 알려진 것이다.

    길드 내의 일이긴 했으나 헌터들이란 게 다 한 다리 건너면 아는 사이였다.

    ‘배지슬과 약혼한 게 이쯤이었나?’

    단우는 인상을 썼다.

    은 우량주라고 소문만 무성하던 ‘차우원’이 진짜 괜찮은 매물이라는 게 증명된 사건이었다.

    단우는 이림 길드의 전 길드장을 예전부터 좋아하지 않았는데, 모종의 사건 이후로 증오하게 됐다.

    어쨌든 그 이리 같은 인간은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차우원이 스스로의 가치를 증명하자마자 집안끼리 약혼을 맺어 버린 것이다.

    ‘증명하자마자는 아니었을지도 모르지만.’

    이림 전 길드장의 딸 배지슬과 차우원의 약혼이 올해 내로 이루어지는 일이라는 건 확실했다.

    “그래서, 단우야?”

    차우원이 물어서 단우는 자신이 마카로 화이트보드를 계속 치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방금 미친놈 같았나?’

    등골이 오싹했으나 단우는 설명을 계속했다.

    “대형 길드가 준비하는 작전이라 우리는 몸과 장비만 챙기면 되고, 작전 설명도 거기서 할 거고, 우리는 우리 목숨만 챙겨서 나오는 게 작전이야. 세부 사항으로는…….”

    “능력도 안 되면서 나대지 말고, 문제가 생기면 가만히 있으라고?”

    차우원이 웃으며 물었다. 강울림이 머리를 헝클였다.

    “신입이 뭘 해야만 하면 그 공략대는 망한 거라고. 나도 외우겠다!”

    “어. 잘 아네. 무리하지 말고 활약해서, 공헌도 2위 정도 차지한다는 느낌으로 해 보자. 우리 점수는 올려야 하는데 이제 슬슬 너무 눈에 띄면 위험하거든.”

    “뭐가 위험한데?”

    “약혼 들어와.”

    “…….”

    모두 할 말을 잃은 듯해서 단우는 의아해졌다.

    “강울림은 그렇다 치고 너네 다들 명문 출신 아니야? 집안에서 맺어 버리면 거부도 못 할 텐데.”

    “단우야, 조선 시대도 아니고 무슨 약혼자 얼굴도 안 보고 집안에서 약혼을 시키겠어.”

    차우원이 말했다.

    단우는 이게 무슨 소리인지 알 수 없었다.

    “서로 얼굴은 보여 주고 약혼을 시킨다고?”

    “그 말이 아니라……. 우리도 거부권이 있거든? 요즘 시대가 우리 부모님 세대랑 똑같은 줄 알아? 아니, 부모님 때도 서로 얼굴은 보고 ‘영 안 맞겠다’ 싶으면 결혼은 안 하셨겠다!”

    “이혼보다 파혼이 낫긴 한데, 어느 쪽이든 안 하는 게 제일 좋잖아. 서로 괜찮다고 안 하면 약혼까진 안 시키지.”

    소서정의 말에 뒤이어 차우원이 덧붙였다.

    단우는 마카를 내려놨다.

    ‘그 말은…….’

    배지슬과 차우원이 서로 좋아서 약혼했다고?

    그렇다기엔 두 사람 사이엔 아무것도 없었다. 약혼자와 같은 팀으로 활동하면서 그렇게 동료답기도 어려울 터였다.

    무엇보다 차우원은 단우와 그런 짓까지 하지 않았는가…….

    -단우야, 괜찮아. 괜찮아질 거니까…….

    ‘아니, 그건 착각인 줄 알고 있었잖아.’

    하지만 차우원은 성실한 성격이었다. 진심으로 결혼하고자 하는 사람이 있는데 다른 사람과 그런 짓을 할 놈이 아니었다.

    단우는 혼란스러웠다.

    “차우원, 너 약혼하고 싶어?”

    “그렇지는 않은데.”

    “너 이상형이 어떻게 돼.”

    “단우야, 나 되게 소개팅받기 직전 같다. 딱히 생각해 본 적은 없는데.”

    생각해 본 적 없다는 건 이상형을 만나면 깨닫게 될지도 모른다는 뜻 아닌가?

    단우는 차우원이 배지슬을 보고 한눈에 반하는 꼴 같은 건 보고 싶지 않았다…….

    상상해 본 적도 없었다.

    심장이 덜컹거렸다.

    단우는 마카를 세게 쥐었다. 손이 저렸다.

    “얼굴 하얗고 성격 좋은 사람은?”

    “음. 단우가 얼굴이 하얗긴 한데 성격이 좋지는 않은 것 같은데…….”

    “개소리 말고. 긴 생머리 좋아해?”

    “누굴 말하는 거야, 단우야?”

    차우원의 얼굴에서 갑자기 웃음기가 사라졌다. 그는 정색하더니 말했다.

    “단우야, 나 네가 우리 팀 계획 하나부터 열까지 세우는 거 좋은데, 내 인생 계획까지 짜 주진 말았으면 좋겠다.”

    “…….”

    ‘왜 화를 내지…….’

    단우는 차우원의 인생 계획을 짜 주려고 한 적이 없었다.

    차우원을 살리려고 드는 것도 ‘인생 계획’에 포함되나?

    “나한테 누굴 소개시켜 주려고?”

    “안 그럴 거야…….”

    차우원이 정색하면 단우는 무서워졌다. 그는 단우를 늘 짜증 나게 했지만 단우에게 화를 낸 적은 없었다.

    과거에도 그런 적이 없는데 왜 지금 화를 내는지 알 수 없어서, 단우는 차우원만 뚫어져라 쳐다봤다.

    “응. 그러지 마. 네가 그러면 기분이 안 좋을 것 같다.”

    “안 그래.”

    “좋아. 문제는 그게 끝이야? 우리가 잘못하면 약혼할 수도 있다?”

    “응.”

    “그럼 약혼은 하지 않는 방향으로, 다치진 말고, 활약은 해 볼게. 그게 단우가 원하는 거지.”

    “응.”

    “하긴 우리가 약혼하면 상대 쪽에서 팀에 영향력 행사하려 들 수 있겠다. 그게 걱정됐겠네.”

    “응.”

    그런 생각 따윈 들지도 않았지만…….

    단우는 말 잘 듣는 어린애처럼 말했다.

    “열심히 할게.”

    차우원이 다시 다정하게 말했다.

    분위기가 이상해진 채 회의는 끝났다.

    * * *

    단우는 기껏 구해 놓은 집을 두고 사무실 소파에 누워 있었다.

    강울림이 위에서 훈련하는 소리가 들렸다.

    “와아악!”

    방음 시설을 해 놓아도 기합이 들린다. 목청 하나는 컸다.

    그 소리를 들으면 단우는 잠이 와야 했는데, 계속해서 심장이 뛰었다. 피로한 몸이 긴장하고 혼자 놀라기를 반복했다. 단우는 소파에 머리를 파묻었다.

    ‘생각하지 마…….’

    차우원이 단우에게 화를 낸 적 없다고?

    아니다, 그렇지 않았다. 있었다…….

    여러 번 있었다.

    전부 이단우가 제정신이 아닐 때였고, 그가 가장 끔찍할 때였다.

    청연 길드가 ‘같이 일하자’고 호의를 보인 지는 오래됐다.

    거의 공격대가 만들어지자마자 그랬으니 오래되기는 정말 오래됐다.

    신생 공격대가 거대 길드의 호의를 뿌리치기도 어려운 일이었으나, 단우는 아무렇지 않게 무시했다. 그건 청연 길마의 성격을 잘 알기 때문이었다.

    ‘그 사람은 감히 신생이 우리의 호의를…… 같은 생각은 안 한다.’

    단우가 을 받아들인 이유는 크게 세 가지였다.

    하나는 공략에서 보인 차우원의 ‘활약’이라는 게 클리어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칠지 알 수 없어서였다.

    던전 브레이크는 단우가 가장 싫어하는 사태 중 하나였다.

    그걸 누가 좋아하겠냐만.

    차우원이 빠지면 혹시 모르지 않는가?

    청연 공격대에서 차우원을 빼낸 단우는 그 자리를 메워야 할 의무가 있었다.

    ‘그리고 두 번째.’

    기본적으로 이 공략 자체가 큰 프로젝트이기 때문이다.

    강울림이야 모르는 듯했으나, 소서정은 게이트 이름을 듣자마자 무슨 건인지 알았다.

    그만큼 헌터계에서 주목하고 있는 사건이었다. 해결하면 주가가 올라간다.

    <차우원 팀>의 힐러 배지슬은 성안의 공주였다.

    ‘이림 전 길드장의 딸’이라는 게 웬만한 이름값으로 접근할 수 있는 상대가 아니다. 을 해결한 공격대 정도는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게다가 배지슬은 지금 아직 각성하지 않았을 터였다.

    ‘배지슬이 언제 각성했더라?’

    앞으로 4년 안에는 각성하겠지만, 그녀를 다른 곳에서 채 가기 전에 단우가 먼저 침 발라 놓을 필요가 있었다. 배지슬은 사람이 선해서 은혜를 입혀 두면 갚으려 들 터였다. 단우는 그녀에게 입힐 ‘은혜’도 이미 정해 놨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이유가 있었다.

    ‘스승님.’

    차우원과 단우의 검술 스승이자, 청연의 길드마스터.

    이단우가 죽인 그 사람을 단우는 다시 만나고 싶었다.

    그의 생존을 확인하고, 그를 지키고 싶다.

    그가 죽는 곳은 E시 3게이트가 아니지만.

    -아니지, 단우야. 그렇게 말하면 안 되지. 네가 약한 게 모든 일의 면죄부가 될 수는 없지.

    -스승님이 왜 그곳에서 돌아가셨는지 알아.

    -단우야, 잊어버려. 내 말은 잊어. 내가 잘못했어. 거짓말이야. 난 아무것도 몰라. 잊어…….

    이단우는 차우원에게 늘 화를 냈는데, 차우원은 그때 이단우를 원망했을 뿐이다.

    아니다, 그때도 차우원은 화내지 않았다.

    그는 단우에게 사과하고 단우의 눈을 감기고, 계속해서 말했다.

    잊으라고.

    하지만 이단우는 잊을 수 없었다. 그런 일은 결코 잊을 수 없다.

    ‘이번에는…….’

    차우원에게 그런 아픔을 겪게 하지 않을 것이다.

    이단우는 스승님을 살릴 것이다. 차우원이 스승님을 잃게 하진 않을 것이다. 고작 이단우 같은 것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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