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팀원들한테 욕하는 리더가 어디 있어? 리더는 팀의 간판이어야지. 리더가 인품 좋고 따를 만한 인간 같아야 팀원이 채워질 거 아냐.”
“……?”
“단우야, 스스로를 그렇게 탓할 필요는 없어.”
“맞아. 네 성격이 개떡 같긴 하지만…….”
차우원과 강울림이 단우를 위로했다.
단우는 덕분에 속이 뒤집어졌다.
“내 인품에 불만 있으면 지금 말하고. 날 탓하는 게 아니라 네 이름 안 걸어 두면 안 들어올 놈들 때문이거든.”
“그게 누군데?”
“있어. 원거리 딜러.”
‘그리고 힐러.’
단우는 입을 다물었다.
<차우원 팀>의 힐러는 이 팀에선 드물게도 단우와 관계가 괜찮았는데, 본인 성격이 워낙 무던해서였다.
그러나 단우는 그녀가 불편했다.
‘차우원 약혼자여서는 아니고.’
“…….”
사실 맞는 것도 같고.
그녀에게는 이래저래 진 빚이 있었다.
돈 번 김에 새로 들인 TV에서도 차우원이 나오고 있었다. 24시간 뉴스가 방영되는 채널이었다.
[신생 공격대 <차우원 공격대>가 최근 신진 공격대 랭킹 9위에 올라 놀라움을 주고 있습니다. 결성된 지 1년도 되지 않은 공격대가 신진 랭킹에 오른 것은 이번이 처음으로, <차우원 공격대>가 결성된 것은 지난 1월입니다. 세 달 만에 랭킹에 오른 이례적인 기록으로 남을 것으로…….]
‘반응 괜찮다.’
단우는 신문을 내려놨다.
디지털 시대니 뭐니 해도 TV 뉴스와 신문의 공신력은 무시할 수 없지 않은가?
신진 공격대 랭킹에 이름이 올랐다는 게 무슨 소리냐면, 소서정 귀에 반드시 들어갔을 거라는 뜻으로…….
‘이쯤 돼서 한 번 더 찌르자.’
“차우원. 너 인터뷰 하나 하자.”
“그래. 팀장이 팀원 명령을 잘 들어야지. 뭔데, 단우야?”
차우원이 생글거렸다.
‘이 새끼 왜 빈정거리냐.’
하지만 이단우를 짜증 나게 하는 건 차우원에게 숨 쉬는 것과 비슷한 행위였기 때문에 단우는 무시했다.
“잡지 화보 하나 찍자.”
“……?”
“전국에 나가는 걸로. 네 얼굴 표지에 박아서.”
“……?”
* * *
과거 <차우원 팀>의 팀원은 총 다섯 명으로, 리더인 차우원과 이단우가 근거리 딜러. 강울림이 탱커. 그리고 원거리 딜러 하나와 힐러 한 명이 포함된 정석적인 공격대였다.
단우를 제외한 전원이 S급 헌터라는 점과, 차우원이 성검의 주인이라는 점을 제외하면 별다른 특징도 없었다.
‘아니지.’
특징이라면 하나 있기는 했다. 전원이 근본적으로 괜찮은 인성의 소유자라는 것이었다.
이단우는 E급으로 헌터 생활을 시작했다. 그 말은 하급 헌터 팀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겪을 만큼 겪어 봤다는 뜻으로…….
<차우원 팀>에 처음 들어왔을 때 이단우는 충격받았다.
‘이거 뭐 하는 놈들이지?’
곳간에서 인심 난다고……. 다들 살기가 여유로워서 남에게 베풀 정신이 생겼는지 아니면 뭐 어디서 머리를 잘못 맞았는지 알 수 없지만, 이 팀은 <종말>을 막는다는 대의를 명확히 공유하고 있었다.
말이 ‘영웅적인 행동’이지, <최후의 던전>이 처음 열렸을 때 거기 가장 먼저 진입하겠다는 생각을 아무나 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그런 짓을 한 놈들의 인성이 나쁠 리 없었다.
사명감 없고 속이 배배 꼬인 이단우 정도를 제외하면.
그런데 사실 그 팀에도 문제 있는 놈이 하나 있기는 했다.
‘원거리 딜러 소서정.’
이놈은 근본적으로 나쁜 놈은 아니었는데, 사람 급 나누는 버릇이 있었고 칭송받기를 좋아하는 데다 이단우를 싫어했다.
이단우는 <차우원 팀>에 끼기에 명백히 급이 안 되는 놈이었기 때문이다.
-이 팀 너 빼고 전원이 S급 헌터거든. 양심이 있으면 보통 나갈 텐데 말이야.
-어쩌라고? 네 팀장한테 따져.
-…….
누가 들어오고 싶어서 붙어 있던 것도 아닌데, 찾아와서 지랄하면 함께 지랄하게 되는 게 사람 아니겠는가?
아무튼 이단우를 꼽주던 게 취미인 놈이었다.
남 앞에서는 이미지 관리하느라 이단우에게 욕도 못 해서, 단우는 이 새끼가 왜 자꾸 덤비는지 궁금했다.
‘욕먹는 데 희열을 느끼나?’
<차우원 팀>은 후원이 필요 없는 팀이었다. 청연 길드 소속인 데다가 팀 자체가 금전적으로 여유로웠기 때문이다.
때문에 차우원은 홍보 활동 한번 나가지 않았는데, 그걸 유일하게 아쉬워하던 사람이 소서정이었다.
‘차우원 얼굴을 잡지에서 보면 뒤집어지겠군.’
겉으로 티는 못 내도 얼마나 배가 아프겠는가?
이림 길드는 5대 길드 중에서도 규율이 엄격해서, 신입을 쉽게 외부로 돌리지 않았다.
돌리더라도 단체 행동에 보조 격으로 끼워 넣는 정도다.
모르긴 몰라도 소서정 성격에 속이 타서 이미 재가 됐을 것이다.
활약을 하고 싶어도 기회를 안 주니 수가 없었을 테고.
‘그때 찌른다.’
차우원은 잘난 얼굴을 스타일리스트에게 내주고 있었다.
“세상에, 피부 좀 봐. 따로 만질 게 없겠어요.”
“머리칼이 숱도 많고 까만 편이라 이렇게 드라이해서 넘기면 야생적이고 남자다운, 그런 색다른 느낌도 낼 수 있을 것 같은데 어떠세요?”
“공격대 리더로서 인터뷰하시는 거니까, 분위기도 좀 더 강렬하게.”
“네, 좋네요. 그런데 제가 결정하는 게 아니어서. 단우야, 나 안 보고 뭐 해.”
차우원이 불렀다.
그가 부르면 이단우는 그를 보게 됐다.
차우원이 턱을 살짝 들었다. 무표정한 얼굴에 머리카락을 이마 뒤로 넘겨서 평소와 느낌이 달랐다.
모델처럼 구는 게 웃겨야 하는데 별로 우습지는 않았고, 약간 쑥스러운 듯 씩 웃는 얼굴이 눈에 박혔다.
소년 같은 느낌이 사라져서 기억 속의 차우원 같았다.
‘아…….’
이래서 보기 싫었는데.
눈이 시큰거렸다.
남의 촬영 현장 보고 우는 미친놈은 되고 싶지 않아서, 단우는 눈을 비비고 대답했다.
“어, 잘 어울리네. 근데 넌 덮는 게 나은데.”
“별로인가? 단정한 게 보기 좋아?”
차우원이 머리를 헝클였다.
“아앗, 그렇게 막 만지시면……!”
“저희가 해 드릴게요! 까고 안 까고가 뭐가 중요하겠어요! 근데 떡 지는 건 큰일이거든요!”
“아, 죄송해요.”
“물론 차우원 님 잘못은 아니시지만요!”
“제가 잘못했네요! 멋대로 까 버리다니!”
앞에서 벌어진 아수라장을 보며 강울림은 하품했다.
“근데 우린 여기 왜 있는 거야?”
“인터뷰한다고 했잖아.”
“알겠는데, 왜 화보 촬영까지 따라와서 보고 있냐고.”
이단우는 그가 왜 뻔한 질문을 하는지 의아했다.
“볼만하잖아.”
“……?”
실제로 촬영장 분위기는 화기애애했다.
피사체가 보기 좋은 데다 말도 잘 들으니 분위기가 나쁠 리 없었다.
꺄아꺄아 하는 분위기를 보니 다른 이유 때문인 것 같기도 했지만…….
분위기가 워낙 좋아서 촬영하는 쪽도 흥이 났다.
감독 쪽에서 누가 쪼르르 달려왔다. 각종 잡일을 도맡아 하던 젊은 남자였다.
“그런데 <차우원 팀> 다른 팀원분들은 촬영 안 하시나요? 인터뷰만 하신다고 얘기는 들었는데, 저희끼리 의견을 나눠 봐도 너무 아까워서요! 이렇게 다들 멋지시고 또 화면에 나오면 진짜 장난 아니게 근사하실 것 같은데, 너무너무 아쉽잖아요!”
“맞아요, 전원이 미남인 공격대라니, 찍히면 잡지 판매 부수도 장난 아닐…….”
“넌 좀 조용히 해봐.”
옆에서 호응했다.
귀가 코끼리처럼 팔랑거리는 강울림은 칭찬만 듣고 얼굴이 붉어졌다.
“예? 아니 저는, 카메라 앞에서 서는 건 좀……. 그렇게 볼만한 얼굴도 아니고요.”
“볼만한 얼굴이 아니라니요! 평소에 미남이라는 칭찬 많이 들으셨을 텐데! 고백도 많이 받으셨을 거 아니에요. 설마, 아니라는 말씀은 못 하시겠죠!”
“고백이요? 그게 무슨 관련이……. 진짜로 아닌데요. 어…….”
“역시 많이 받아 보셨구나! 저희가 딱 알아보거든요. 외모도 성격도 실력도 좋으신데, 다른 사람들은 또 못 알아보겠어요? 와, 차우원 님이랑 나란히 서시면 너무 멋지시겠다. 상상해 보세요, 잡지에 딱 찍혀서 나오면 가족들은 얼마나 자랑스러워하실지…….”
“어어…….”
강울림이 넘어올 것 같아서 스탭들은 더욱 적극적으로 밀어붙였다.
‘이 새끼는 백 명이 사기를 치면 아흔아홉 번은 걸릴 것 같은데.’
단우는 한심해졌다. 저놈이 성인이 맞단 말인가? 그는 어물거리는 강울림을 대신해 잘라 냈다.
“안 찍습니다.”
“아아아, 왜요? 얼굴이 나오는 게 부끄러워서 그러세요?”
“<차우원 팀>이 이렇게나 활약하는데, 저희가 아니라도 얼굴은 알려지실걸요! 아예 공식으로 딱! 이렇게 빡! 우리가 이렇게 멋진 팀이다! 보도 자료 가져다 쓰려면 이 사진을 봐라! 이렇게!”
“괜찮습니다.”
“아아아…….”
몇 번을 찔러도 넘어올 것 같지 않자 스탭들은 물러났다. 치고 빠질 곳을 아는 사람들이었다.
단우의 한심하다는 시선에 강울림이 변명했다.
“아니, 사람 부끄럽게 만들잖아! 넌 안 부끄럽냐? 그렇게 막, 칭찬을 해 주고 그러는데 말이 안 나올 수도 있지…….”
“칭찬에 맞게 실력을 키워. 당연한 소리를 듣는데 왜 부끄러워?”
“아니……. 저 사람들이 칭찬한 건 외모잖아!”
“헌터한테 외모가 무슨 상관이야? 얼굴로 밥 먹고 살 거야?”
“…….”
할 말을 잃은 강울림을 두고 단우는 차우원을 쳐다봤다.
“이게 마지막이에요. 아 좋습니다! 아주 좋아요.”
그는 포토그래퍼가 하는 말에 맞춰 표정을 바꿔 주고 있었는데, 생긴 게 괜찮아서 그런지 볼만했다.
강울림이 진지하게 말했다.
“너 어디서 교육받고 오는 거지? 아니면 말을 그렇게 재수 없게 할 수가 없어.”
“뭐래.”
이단우도 말을 개떡같이 하지만 그건 차우원도 만만치 않았다.
그런데도 사람들에게 욕을 안 먹는 이유는 역시 얼굴 때문이라고 단우는 생각했다.
저 얼굴로 웃어 대는데 기분 나빠 하기도 힘들지 않은가?
“촬영 끝났습니다!”
“고생 많으셨어요!”
“다들 수고했어요!”
오랜 시간 이어지던 촬영이 마무리되자 스탭들이 기뻐했다.
“단우야, 끝났다.”
차우원은 예의 상쾌한 표정으로 단우에게 다가왔다.
단우는 확신했다.
‘소서정은 틀림없이 본다.’
저 얼굴이 표지인데 잡지가 안 팔릴 리 있겠는가?
* * *
단우의 예상은 맞아서 그 잡지는 소서정 손에 들어갔다.
그리고 단우가 예상하지 못한 사람의 손에도 들어갔다.
그 사람은 평소라면 그런 젊은 애들이 읽는 잡지는 손도 대지 않을 사람이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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