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야! 뭐 해!”

한 명이 빠지면 그 자리를 누가 메우겠는가?

혼자 뒤로 빠진다고 안전한 게 아니다. 대열에서 이탈한 옆자리는 몬스터의 표적이 된다!

강울림은 옆자리에게 달려드는 몬스터를 온몸으로 받았다. 방패를 내세워 밀쳐 내자, 그 충격은 강울림의 몸으로 왔다.

‘……버틸 만한데?’

몸 하나는 튼튼한 강울림은 그렇게 생각했다.

“고, 고마워.”

옆자리가 넋이 빠져서 말했다. 강울림은 그의 어깨라도 쳐 주고 싶었으나 사납게 말했다.

“정신 차려! 네 목숨 네가 구해야지 누가 챙겨?”

‘후. 멋있었다.’

쑥스러움을 숨기며 다시 방패를 드는데 뒤에서 거대한 마력들이 솟아올랐다.

탱킹 스킬에 어그로가 끌려 멈칫한 몬스터들을 원거리 딜러들이 폭격하고 있었다.

불꽃과 번개와 바람과, 뭔지 형체도 없는 것들이 폭격하고 지나간 자리로 근거리 딜러들이 달려들었다.

강울림은 거기서 이단우와 차우원을 발견했다.

이단우의 검이 몬스터의 날갯죽지를 찔렀다. 한 번 찌른 것 같은데 날갯죽지가 통째로 늘어지며 몬스터는 도망치지도 못하는 처지가 됐다.

그놈을 차우원의 검이 훑었다.

흰빛과 함께 당연한 듯 몬스터의 목이 날아갔다.

그 과정이 빠르게 반복됐다.

“하…….”

합류해서 공격해야 할 다른 길드원들도 입을 벌리고 두 사람을 지켜보고 있었다.

마지막 몬스터는 이단우가 등을 타고 올라간 뒤 허공에서 정수리를 찔렀다.

몬스터는 비명도 못 지르고 절명했다.

강울림은 이단우의 저 조악한 검이 어떻게 부러지지도 않고 몬스터의 가죽과 뼈를 두부처럼 꿰뚫는지 궁금했다…….

이단우는 피가 튀긴 얼굴을 손등으로 슥 닦았다.

주변에 죄다 피와 흙먼지로 더러운 꼴인데 혼자 깔끔을 떨고 있다. 물론 그게 잘 어울리긴 했는데…….

그 옆의 차우원은 애초에 피를 뒤집어쓰지도 않은 듯했다.

두 사람만 비정상적으로 깔끔해서 강울림은 자기 차림을 돌아보게 됐다. 먼지 구덩이에서 몇 번 굴렀는지 더러운 꼴이었다.

강울림은 머쓱하게 생각했다.

‘그래도 내가 활약은 좀 했지.’

사람 하나를 구하지 않았는가?

그것 말고도, 탱커의 역할은 다했다. 이단우가 하라는 건 다 지킨 것 같다!

딜러들이 활약할 수 있도록 계속 몬스터를 붙잡아 두고, 후방의 원거리 딜러와 지원가들을 지키고…….

그런데 이단우가 강울림에게 손가락질을 했다. 표정이 싸늘했다.

“나, 나?”

강울림은 엉거주춤 다가갔다.

이단우가 물었다.

“너 미친놈이야?”

“…….”

“왜 다 자리 지키는데 너만 앞으로 나가?”

‘그걸 다 보고 있었냐?’

강울림은 억울했다!

“아니, 옆자리가 비어서…….”

“그래서 네가 대신 처맞아 주려고? 센터 쉬어서 감도 없는 게 왜 건방을 떨어.”

“야! 감 안 떨어졌어! 안 죽었잖아! 봐, 상처 하나 없는 거…….”

“어, 또 안 죽는지 해봐.”

“…….”

저렇게 말하면 무서워서 어떻게 해 본단 말인가?

엄마의 ‘그래, 네 맘대로 해’와 같은 급 아닌가?

차우원이 다가와서 말렸다.

“단우야, 너무 그러지 말자. 첫 실전에서 저렇게 잘했는데. 누구나 처음은 있는 거잖아. 나도 처음에 실수했고…….”

“넌 왜 남 일처럼 말해?”

이단우가 미간을 좁혔다.

“앞으로 나가지 말고 네 자리만 지키라고. 능력도 없으면서 나대지 말고. 내가 화이트보드에 팀훈까지 써서 무리하지 말랬는데 왜 자꾸 튀어 나가냐고.”

“…….”

‘차우원이 능력 없으면 누가 있냐?’

강울림의 실전 경험이 많지는 않았으나, 차우원이 대단하다는 사실은 익히 알고 있었다.

그리고 오늘 봐도 차우원과 이단우는 대단했다! 솔직히 중대형 길드에서 참여한 지원팀보다도 훨씬 잘했다.

눈이 있다면 누구든 최고의 활약이라고 말할 터였다. 몬스터의 반 이상이 두 사람한테 썰려 나가지 않았나?

“자리 지키면서 저쪽에 있는 몬스터를 어떻게 공격해?”

차우원이 팔짱을 끼고 물었다.

강울림은 두근두근했다.

“그걸 왜 못 해?”

“…….”

강울림은 할 말이 없어져서 이단우를 쳐다봤다.

‘이 말을 내가 하네.’

단우는 쾌감을 숨기느라 마주 보지 않았다.

과거 진심으로 어리둥절해하며 그렇게 말하는 차우원 때문에 열받았는데, 그대로 돌려줄 수 있다니!

단우도 두근두근해서 차우원을 쳐다봤다. 그는 어떻게 반응할까?

차우원이 고개를 좌우로 꺾더니 검을 꺼냈다.

“그런가? 해 볼게.”

그의 검에서 검기가 날아가더니 몬스터 사체를 썰어 버렸다. 한참 멀리 있던 사체가 반으로 갈리고, 죽은 피와 내장을 쏟아 냈다.

“아, 정말 되네. 네 말이 맞다, 단우야.”

“…….”

단우는 태연한 척했다.

“된댔잖아.”

몬스터가 전멸해서 각 길드와 팀에서는 상태를 점검하느라 모여들고 있었다.

몬스터 사체 부속물은 정해 둔 조건에 따라 나누기로 했기 때문에, 그곳에 얼쩡거리는 헌터는 아무도 없었다.

도둑으로 몰릴 필요는 없지 않겠는가?

그러나 차우원이 하는 꼴은 누구나 볼 수 있었다. 단우는 그들도 자신과 같은 생각을 하고 있으리라고 확신했다.

‘미친놈…….’

검사가 저럴 수 있으면 원거리 딜러가 왜 필요한 건지.

그러나 저 짓은 스물여섯 살 차우원의 특기이기도 했다.

‘진짜 이게 되네.’

차우원은 신기해하고 있었다.

그가 검사의 가능성을 너무 좁게 보고 있었던 게 아닌가?

차우원은 스스로가 엘리트 교육을 받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 말은 정석을 몸에 배길 정도로 익혔다는 뜻으로, 그의 판단력은 그의 생각보다 경직되어 있을 수 있었다. 이단우가 여러모로 특이한 인물인 것과 별개로…….

하지만 역시 특이하긴 했다.

‘이런 발상은 어떻게 할까?’

차우원은 즐거웠다. 이단우 같은 인물이 어디서 튀어나왔는지 의아할 지경이었다.

뛰어난 헌터끼리는 보통 사제 관계 등으로 연결되어 있어서, 윗대를 캐다 보면 다 아는 사이이기 마련이었다.

그런데 이단우는 연관점을 바로 알 수 없었다.

저 실력으로 센터나 길드의 망에 걸리지 않았다는 것도 그랬다.

그 두 곳이야말로 치어까지 잡는 비양심 어선처럼 온 사방에 그물을 뿌려 두고 있는 곳이 아닌가?

‘수수께끼라니까.’

그리고 강울림은 두 사람을 보며 생각하고 있었다.

‘이 괴물들…….’

나 이 팀에서 살아남을 수 있나?

* * *

이림 길드 소속의 신입 헌터는 인터넷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이림은 5대 명문 길드 중 하나로, 길드장이 과거 <종말>을 막은 영웅 중 하나였다.

그곳의 신입이라는 건 그가 기대받는 유망주라는 뜻이었다.

그러나 훈련장에는 그 외에도 ‘기대받는 유망주’가 몇 있었다.

앉아서 쉬는 신입에게 동기가 다가와 물었다.

“뭐 재미있는 거 봐? 아까부터 보고 있던데.”

신입은 픽 웃었다.

동기의 말이 ‘넌 당연히 지원팀 뽑힐 줄 아나 보네. 되게 여유롭다’는 뜻이라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물론이지. 날 안 뽑으면 뇌가 어떻게 된 거 아니야?’

신입은 그렇게 생각했으나, 그를 입 밖으로 내지는 않았다.

“어. 재미있는 게 있던데. 볼래?”

“……뭔데?”

동기에게 화면을 넘기고 신입은 턱을 괴었다. 화면을 넘기던 동기의 눈이 커졌다.

“와, 씨. 차우원 랭킹 들었네.”

“뭐? 차우원이 뭐 어쨌다고?”

“걔 청연 안 들어갔다지 않았나. 이상한 짓 한다고 들었는데.”

다른 동기들이 하나둘 모여들었다.

차우원의 이름에는 그런 힘이 있었다.

‘어디서든 주목받는다니까.’

신입은 차우원을 떠올리며 코웃음을 쳤다.

차우원과 신입은 같은 센터 연수생이었다.

둘 다 헌터 명문 출신이었고, 그곳에서 가장 뛰어난 졸업생들이었으며, 센터에서 바짓가랑이를 붙잡아도 뒤돌아보지 않고 떠났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애초에 헌터 가문에서는 센터에 자기 후계자를 보내지 않는다. 그런데 두 사람이 센터에 들어갔다는 건 특이한 일이었다.

차우원은 왜 신입이 센터에 들어갔는지도 모를 테지만.

“<차우원 팀> 신진 공격대 랭킹 10위 찍었는데.”

“그거 만들어진 지 일 년 채워야 올라가는 거 아냐?”

“아니지, 만들어지고 3년? 아무튼 그 이하인 공격대만 랭킹 진입할 수 있을걸. 그래서 보통 두각 나타내는 팀들이 2년 차부터 이름 올리는…….”

“차우원 언제 팀 만들었지?”

누군가 물었다.

신입은 계산했다.

‘헌터증 따자마자 만들었어도 이제 세 달…….’

“미쳤네…….”

“짜증 난다…….”

동기들이 흩어졌다. 몇몇은 개인 훈련을 하러 돌아갔으나 몇은 아예 의욕을 잃은 듯했다.

신입에게 말을 걸었던 동기도 벽에 등을 대고 앉아 물이나 마시고 있었다.

그가 신입을 괜히 건드렸다.

“야, 오후에 팀장님이 보러 온댔어. 너도 그만 놀고 훈련하는 척이라도 해.”

“아냐, 나 훈련하고 있어.”

동기가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뭐, 숨쉬기 훈련?”

“마음은 훈련하고 있다고. 심상 훈련이라고 있잖아? 마법사들은 또 그런 게 중요하거든.”

신입이 아무렇게나 말했다.

“아, 그래.”

동기가 한숨을 쉬며 떠나는 모습을 보던 신입은 벽에 기댄 채 늘어졌다.

물론 머릿속으로 심상 훈련 따위는 하고 있지 않았다.

‘아, 유명해지고 싶다…….’

차우원보다 유명해지고 싶다…….

과거 <차우원 팀>의 원거리 딜러, 소서정은 생각했다.

* * *

‘반응이 온다.’

이단우는 휴대폰으로 기사를 읽으며 생각했다.

무슨 화보처럼 찍힌 차우원의 얼굴 밑으로 그의 활약을 정리해 놓은 게시 글이 보였다.

잡다한 사이트에서 사람들이 자체적으로 ‘차우원’을 언급하고 있다.

얼굴만으로 화제가 될 만한 놈이니 금방 반응이 올 줄 알았다.

‘거기다 이 랭킹.’

또 한 자리가 올랐다.

[신진 공격대 9위: <차우원 공격대>]

‘이럴 줄 알았지.’

‘던전 브레이크 정리’는 정부와 그 지역을 보호하는 길드가 합작하는 대규모 작전이었다. 참여자의 수가 많은 만큼 보수도 적었다.

어차피 가장 위험한 지역은 길드와 정부에서 방어하기 때문이다.

나머지는 머릿수 채우는 용도로 불려 와서 민간 지역 피해를 줄이는 역할을 했다.

훗날의 S랭크 헌터들을 머릿수 채우기 따위에 동원한 보람이 있어서 팀 공헌도는 쭉쭉 올라갔다.

이래서 사람들이 봉사 활동을 하는 게 아닐까?

“왜 그렇게 웃어? 아.”

차우원이 뒤에서 얼굴을 내밀었다.

“원하던 대로 됐네. 이렇게 빠를 줄 몰랐는데. 근데 이거 이름이 왜 이래?”

차우원의 손이 팀 이름을 찍었다.

“팀명 잘못 알려진 것 같은데. 정정 신청 할까?”

‘뭐라는 거야.’

단우는 의아했다.

“아니. 제대로 된 건데.”

“……?”

“이 팀 <차우원 공격대> 맞잖아. 공격대 결성할 때도 리더에 네 이름 적었는데.”

“……?”

훈련을 마친 뒤 씻고 나온 강울림도 단우를 쳐다봤다.

그가 무언가 떠오른 듯 말했다.

“리더가 어쨌다고? 아, 야! 내가 다 알아봤어. 요새 다른 공격대들 팀원 존중한다고 서로 존댓말도 쓴대! 너 <창의적 리더십> 같은 책 안 읽어 보냐? 서점 베스트셀런데. 리더 자격이 없네!”

“울림아. 사실 내가 이 팀 리더였대.”

차우원이 말했다.

“뭐래.”

강울림이 대답했다.

이단우는 미간을 좁혔다.

‘이 자식들은 리더가 뭔지 모르나?’

※ 본 저작물의 권리는 저작권자에게 있습니다. 저작물을 복사, 복제, 수정, 배포할 경우 형사상 처벌 및 민사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