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 인성 교육-18화 (18/170)
  • 18.

    “야. 강울림 멍청해, 안 멍청해?”

    단우의 질문에 차우원이 신중하게 말했다.

    “사회적 상황에 대처하는 능력이라면 뛰어나다고 말할 순 없겠지만…….”

    ‘혀가 길다.’

    “변명 말고 딱 보이는 대로 말하라고. 이 새끼 하는 짓 보면 어디서 멍청하게 착취당하다가 죽을 것 같지 않냐고.”

    “부정하기 힘들긴 한데.”

    “이 새끼 구해 준 거 좋은 일이야, 아니야?”

    “좋은 일인 것 같다.”

    “그 건물 쓰레기 소굴이야, 아니야?”

    “쓰레기 소굴……. 어, 그렇네.”

    차우원의 표정이 슬슬 이상해지고 있었다. 그는 한 손으로 입을 가리고 눈만 반쯤 가늘어져서 대답했다.

    이단우는 폭발 직전이었다.

    “거기 폭발시킨 거 잘한 짓이야, 아니야?”

    “그렇게 말하면 아니라고 말하기가…….”

    “‘예’, ‘아니요’로 대답하라는데 아까부터 말이 왜 그렇게 많아?”

    “응. 잘한 일 같다.”

    차우원이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얘 왜 이렇게 웃음이 많지?’

    이단우는 스무 살의 차우원이 낯설었다. 저렇게 웃어 대면 이단우의 정신 건강엔 좋지 않았다.

    이단우는 호의와 동정을 구별 못 하는 놈이었고 웃어 주는 사람에게 금방 개처럼 꼬리를 치는 놈이었으니까.

    차우원이 기분 좋게 펴진 얼굴로 말했다.

    “그래도 목숨은 빼자.”

    “꺼져! 뭐가 문제냐고.”

    “사람마다 정의의 기준은 다르고, 목숨은 소중하니까.”

    “네 목숨도 아니잖아!”

    결국 이단우가 무언가 부도덕한 일을 저지를 거라고 확신한다는 소리 아닌가?

    과거 차우원도 이단우를 그렇게 생각했다. 믿을 수 없고 약하면서, 혼자 둘 수 없는 놈으로 봤다.

    그래서 차우원은 죽었다.

    이단우를 지키다가.

    [언제까지 싸울 거야? 통화 안 끊겼거든!]

    강울림이 소리쳐서 단우는 감정에 집어삼켜지지 않을 수 있었다.

    “변호사가 뭐래.”

    [맞다고, 적어도 나한테는 좋은 계약이라고……. ‘정의로움’에 대한 정의를 내가 할 수 있게 해 놓기도 했고. 진짜 ‘목숨을 건다’는 뜻이라기보다, 이 팀의 성격을 보여 주는 거라고……. ‘정의로운 일만 하겠다’는 그런 결의 같은 거라고. 들어가면 내가 바라는 일만 할 수 있을 거라고……. 오히려 변호사가 너를 걱정하던데?]

    강울림은 연신 입이 마른 사람처럼 침을 삼켰다.

    ‘넘어올 줄 알았다.’

    강울림이 왜 차우원을 존경하는지, 그 헛소리 중에 기억나는 건 얼마 없었다.

    기억하기엔 잡소리가 너무 많았다.

    하나 확실한 건, 차우원이 좋은 놈이기 때문에 강울림이 그를 따른다는 사실이었다.

    이단우는 좋은 사람 같은 건 될 자신이 없었다.

    ‘돼서도 안 되고.’

    좋은 놈들은 일찍 죽지 않는가?

    하지만 ‘정의’, ‘대의’ 따위가 강울림을 유혹하는 데는 적격일 줄 알았다.

    “납득했으면 여기로 와. 계약서는 얼굴 보고 사인해야지.”

    [진짜……. 나 빚 사라지는 거야? 계약만 하면? 가서 조항이 바뀌거나 하면…….]

    “거기 그대로 사인할 건데, 거기 한 줄 추가하든가. ‘위의 조항 중 하나만 바뀌어도 이단우 목 날아간다’고.”

    [너 목 날리는 거 왜 이렇게 좋아하냐?]

    ‘네가 보증하라며.’

    열받게 하는 소리를 하더니 강울림의 목소리가 잠겼다.

    [너흰…… 내 은인이야. 우리 가족의 은인이고. 난 은혜는 갚아.]

    “그래라.”

    [고마워! 당장 갈 테니까……! 주소 알려 줘. 내가…… 택시 타고 갈게!]

    어마어마한 결심을 했다는 듯 강울림이 마지막 말을 덧붙였다.

    그에게는 대단한 짓이기는 했다.

    ‘택시비는 있냐?’

    계약 전이기 때문에 단우는 강울림 집에 금화 한 닢 놓고 오지 않았다.

    C시 외곽은 택시로 오면 할증이 어마어마하게 붙는 위험지대기도 했다. 단우가 충고했다.

    “그냥 버스 타고 와라.”

    [빚 갚아 줘서…… 고마워!]

    강울림은 그 말을 끝으로 전화를 끊었다.

    ‘순진한 놈.’

    자기가 누구한테 팔렸는지도 모른다.

    이단우는 사채업자처럼 그를 감시 감독할 필요도 없었다.

    강울림은 이단우가 갚아 준 빚 이상으로 충성하려 들 놈이기 때문이다.

    뭐 이단우만 그 빚을 갚아 준 건 아니지만…….

    단우가 쌕 웃는데 차우원이 탄식했다.

    “단우야, 악당 같다.”

    “시끄러워. 그보다…… 네가 하나 해 줬으면 하는 일이 있는데.”

    단우는 내키지 않는 마음을 다잡으며 입을 열었다.

    차우원에게 부탁하면 왠지 빚을 지는 기분을 떨칠 수 없다. 자신을 위한 일이 아닌데도 그랬다.

    “뭔데?”

    ‘일 시킨다는데 왜 좋아하지.’

    차우원은 생글생글 웃고 있었다.

    단우는 인상을 썼다.

    “너희 동네 안전한 데 집 하나 구할 수 있어?”

    “이사 오려고? 나야 좋지.”

    “아니, 나 말고. 강울림네.”

    ‘빚쟁이들 또 찾아올걸.’

    강울림을 기희윤의 ‘도박장’에 소개시킨 놈들이다.

    어떤 식으로든 관련자일 건 당연하고…….

    ‘도박장이 무너졌는데 강울림이 빚을 다 갚는다?’

    인과 관계가 있어 보이지 않는가?

    기희윤의 숭배자들은 집요한 데가 있었다.

    미친놈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바 아니었으나, 강울림네가 다시 평지풍파를 겪을 필요는 없을 터였다.

    “아, 그래. 필요하겠다. 그렇게 할게. 가까이 두고 지켜 주면 되는 거지.”

    긴 설명 없이도 차우원은 이해했다.

    그는 빚쟁이들이 도박장과 연관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만한 조직이라면 채무자 관리도 엄격하지 않겠는가?

    “응. 부탁할게.”

    “그 정도야. 이제 우리 팀원인데.”

    차우원이 선선히 말했다.

    ‘원래 저런 놈이지.’

    이단우는 차우원을 물끄러미 쳐다봤다. 누가 빚을 져도 차우원은 ‘내가 엄청난 일을 해 줬지. 꼭 갚아’라는 식으로 굴지 않았다.

    그게 목숨 빚이어도 그래서, 그와 게이트를 넘었던 사람들은 하나같이 차우원을 따르게 됐다.

    차우원은 그때도 젊었다. 이단우는 그렇게 생각하지 못했지만. 사실 젊다 못해 어린 나이부터 차우원은 공격대로 활동해 왔다.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에게 몸과 마음의 빚을 지게 한 뒤 그를 따르도록 만들었다.

    이단우도 그렇게 빚진 사람 중 하나였다.

    그러나 그들 중 누구도 차우원의 목숨까지 빚지지는 못했을 것이다.

    갚아야 할 것이라면 누구보다 많았다.

    단우는 차우원에게 모든 걸 돌려줄 생각이었다.

    그런데 차우원이 귀찮게 굴기 시작했다.

    “그래서 단우야. 울림이 집은 새로 구할 텐데 네 집은?”

    “알아서 해.”

    “구하기는 했어?”

    “구하는 중이야. 알아서 뭐 하게?”

    얜 왜 이렇게 잔소리가 많단 말인가?

    이단우는 남의 인생에 관심 갖는 인생을 살아오지 않아서 이해할 수 없었다.

    ‘하기야 이런 놈이니 남을 구하고 다니겠지.’

    “집 나왔다는 사람이 이런 추운 데서 웅크려 자고 있으면 당연히 신경 쓰이지.”

    “여기가 뭐가 추워? 길바닥에서 노숙하는 것도 아닌데 뭐 얼어 죽겠어?”

    “얼어 죽어야만 문제는 아니지. 흠, 단우야. 이미 알겠지만 세상에는 감기라는 질병이 있는데, 놀랍게도 각성자도 걸리더라고.”

    차우원이 친절한 척했다.

    “알거든?”

    “아, 병원 먹여 살려 주려고 이러는 거야? 아니면 우리 다음 팀원이 힐러야?”

    “넌 나 짜증 나라고 이러는 거지?”

    “다른 팀원 집 구해 주기 전에 먼저 챙겨야 할 게 있지 않냐는 건데.”

    “알아서 한다고.”

    그러고 있는데 강울림이 도착해서 머쓱하게 안으로 들어왔다.

    “헉…… 차우원.”

    차우원을 보고는 새삼 다시 놀라고, 이단우를 보고는 손을 반쯤 들었다.

    ‘뭔데.’

    “아, 안녕.”

    인사였던 모양이다.

    과거 이단우와 강울림은 서로 눈 마주쳤다고 손 흔들고 인사하는 사이는 아니었다. 오히려 코웃음 치고 무시하는 사이에 가까웠다.

    “아까 통화해 놓고 무슨 인사야? 앉아.”

    “…….”

    안으로 들어올 때만 해도 강울림은 몸이 굳어 있었는데, 갑자기 어깨에 힘이 빠지더니 이단우를 황당하다는 눈으로 쳐다봤다.

    “……?”

    뭐 어쩌라는 건가?

    일단 앉아서 얘기하자 싶었는지 강울림은 자리를 찾아 두리번거렸다. 남는 자리는 소파밖에 없었다. 강울림이 옆에 앉아서 이단우는 일어났다.

    강울림이 움찔하자 차우원이 대신 변명했다.

    “단우가 네가 싫어서 저러는 건 아닐 거야.”

    “어…… 정말? 같이 앉는 거 싫어하는 것처럼 보이는데?”

    이단우는 앞으로의 플랜을 설명하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난 거였다!

    그런데 두 놈은 알아서 떠들고 있었다.

    “원래 성격이 조금 그래.”

    “둘이 원래 친구야?”

    “아니? 오늘 세 번째 봤는데.”

    “……?”

    강울림이 차우원과 단우를 번갈아 쳐다봤다.

    ‘이놈들 대체 뭐지’라고 생각하는 얼굴이었다.

    그가 이 집단을 불신하게 되면 곤란했기 때문에, 단우는 상을 두드렸다.

    “좋아. 계약서를 쓰자.”

    “그, 그래.”

    그들은 강울림이 검토받고 돌아온 계약서에 그대로 날인했다.

    ‘위의 조항을 지키지 않을 시 이단우는 죽는다’라는 문구는 추가되지 않았다.

    아니어도 이단우의 목숨은 걸려 있었지만.

    과거 차우원이 <최후의 던전>에 진입했을 때, 공격대에 속한 팀원은 총 다섯이었다. 이단우를 포함해서.

    별 의욕 없이, 그저 ‘이 팀이 아니면 누가 종말을 막겠냐’고 태평하게 믿었던 이단우와 달리.

    다른 팀원들은 사명감이 있었다.

    모두 좋은 놈들이었다…….

    근본적으로 쓸데없이 사명감 있고 괜찮은 놈들이어서, 단우는 뉴 <차우원 팀>의 성격도 확신하고 있었다.

    ‘어차피 그놈들을 데리고는 대충 꿀이나 빨자는 발상도 안 통한다.’

    쉽게 명성 작업이 가능하고 돈도 벌 수 있는, 대형 길드에 빌붙는 짓은 애초에 할 수 없었다.

    ‘그래서도 안 되고.’

    과거 단우는 차우원의 추측을 들은 적 있었다.

    <최후의 던전>이 왜 생기는지에 대한 가설이었다. 왜 <종말>은 찾아올까. 왜 계속해서 돌아오는 걸 멈추지 않나…….

    그런 쓸데없는 일에 이단우는 관심이 없었으나.

    차우원이 그를 끌어안고 나른한 목소리로 중얼거렸기 때문에 입 다물고 들었다.

    두 눈을 감고, 안 듣는 척을 하면서.

    두근거리는 심장이 너무 뛰지 않도록 호흡을 조절하면서…….

    정식 팀원이 된 강울림이 물었다.

    “그럼, 나 이제 무슨 일을 하면 돼? 내가…… 사실 고백할 게 있는데. 센터 연수생 생활 하다 중간에 자퇴했거든? 차우원이 기억할지 모르겠는데. 어머니 쓰러지셨다는 연락이 오고, 어머니를 병원까지 그놈들이 모셔다드렸다고 해서…….”

    “너 제대로 못 배웠다고. 알아.”

    “그래도 괜찮아?”

    강울림이 눈치를 보며 물었다.

    “이미 사인해 놓고 뭘 물어? 문제 될 사안이라고 생각했으면 그 전에 말하든지.”

    “아니…….”

    ‘내내 얼빠진 상태라 아무 생각도 못 했겠지만.’

    강울림은 솔직한 놈이라 뭘 숨기지도 못했다. 정신 차리자마자 약점부터 고백하는 꼴을 보면 알 수 있지 않은가?

    강울림이 죄책감을 좀 갖게 만들어 준 뒤, 단우는 관대하게 말했다.

    “괜찮아. 훈련하면 되지.”

    “……그래! 열심히 할게!”

    강울림의 표정이 달라졌다.

    ‘어. 넌 열심히 해야 할 거다.’

    “근데 훈련만 할 수는 없고. 다음 팀원도 구해야 하거든?”

    “응. 다음에는 조직 본거지를 쳐들어가?”

    차우원이 헛소리를 했다.

    이 인원으로 지금 기희윤 쪽과 붙으면 전멸을 못 면하지 않겠는가?

    “웃기지 말고. 신생 공격대를 만들었으면 해야 하는 일이 있지.”

    “……?”

    “그게 뭔데?”

    강울림은 감도 안 잡히는 모양이었고 차우원도 마찬가지였다.

    이단우는 이놈들이 정말 엘리트라는 사실을 절감했다.

    ※ 본 저작물의 권리는 저작권자에게 있습니다. 저작물을 복사, 복제, 수정, 배포할 경우 형사상 처벌 및 민사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18)============================================================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