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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인성 교육-17화 (17/170)
  • 17.

    “너 각성 등급 얼마 나왔어. 헌터 자격은 땄어?”

    “야! 그런 소릴 하면…….”

    김지규의 얼굴이 시뻘게졌다.

    이모는 새파랗게 질렸다.

    “이게 대체 무슨 소리니?”

    “아, 엄마. 그런 게 아니라…….”

    “너 시험 치러 갔어? 엄마랑 약속했잖아! 그때 다 확인했잖아. 각성 등급 재확인도 하고, 너 안 될 거 다 알아봤잖아…….”

    ‘이 자식 역시 재능 없네…….’

    이단우의 각성 스탯을 왜 그렇게 집요하게 훔쳐보고 놀려 댔던가?

    김지규도 마찬가지였던 것이다. 각성자라고 다 가치 있는 존재는 아니었다. 전부 헌터가 될 수는 없다.

    오히려 애매한 제약만 생겨났는데, 운동선수가 될 수 없다든가 하는 식이었다.

    각성자의 신체 능력을 비각성자는 무슨 수를 써도 따라잡을 수 없으니까.

    사람들은 그런 스포츠는 보고 싶어 하지 않았다.

    무엇보다 각성자가 서야 할 곳은 경기장 위가 아니라 전장이 아니던가?

    김지규는 그런 의미에서 단우보다 상황이 나빴다. 대학 생각이 없던 단우와 달리 체대 지망이었으니까.

    그는 열아홉 살에 각성했다. 늦은 나이였고, 입시를 생각하면 심각하게 늦은 나이였다.

    김지규는 억지로 지망을 체육교육과로 틀어야 했고…….

    뒤늦게 공부를 해도 성적이 오르지 않아서 강제로 재수가 확정된 상태였다.

    “아, 헌터라고 다 게이트 넘고 그런 거 아니라고. 후방 지원하는 헌터도 많다고. 큰 길드에서는 사무직이 따로 있단 말이야. 현장은 전혀 안 나간다고! 그런 데서 사람을 어떻게 뽑겠어? 다 소개받고 그러지. 내가 다 생각이 있었는데…….”

    ‘그거였냐.’

    길드 사무직이 현장을 안 뛴다는 소문은 어디서 나왔단 말인가?

    ‘아, 그래…….’

    또 생각났다. 김지규가 단우에게 관심이 많았던 이유.

    단우의 부모님이 헌터여서 단우는 각성자일 확률이 높았기 때문이다. 김지규는 정말 헌터가 되고 싶어 했다. 관심받고 싶어 했고 남보다 뛰어난 사람이고 싶어 했다. 어딜 가나 그런 사람들이 있지 않은가.

    과거 <차우원 팀>에도 그런 놈이 하나 있었다.

    “김지규! 헛소리하지 말고! 이미 끝난 얘기잖아. 너 왜 이렇게 엄마 속을 썩여? 네 이모랑 이모부가 어떻게 됐는데…….”

    말해 놓고 이모는 아차 해서 단우를 돌아봤다.

    ‘실수했다.’

    단우는 원래 이모가 어떤 식으로 그를 붙잡을지 알고 있었다.

    그녀는 단우를 걱정하며 그가 이곳에 남기를 바란다는 말을 전했을 것이다. 이모의 손이 따듯해서, 바보같이 기대만 많은 스무 살의 이단우는 망설였을 것이다.

    그러다 부모님의 유산에 대해 알게 됐을 것이고…….

    이모에게 비난을 퍼부은 뒤 이곳을 떠났을 것이다.

    단우는 수많은 실수를 했다. 김지규와 드잡이질을 친 일은 심각한 축에도 들어가지 않을 정도로, 결코 해서는 안 될 실수를 했다.

    그래서 단우는 이모의 실수가 그냥 실수가 아니라는 걸 알았다. 그 말은 나와서는 안 될 말이었다.

    이모가 이단우를 걱정하려고 할 때. 스무 살의 이단우가 거대한 사건을 통과해, 밤을 새우고 집으로 돌아왔을 때.

    그를 앉혀 두고 해서는 안 될 말이었다.

    게다가 그건 이단우에게 한 말도 아니었다. 김지규를 걱정해서 꺼낸 말이다.

    이단우는 웃음이 나왔다.

    그가 미소 짓자 이모와 김지규는 동시에 놀란 듯했다.

    스무 살의 이단우는 거의 웃지 않았다.

    울지도 않았고, 말도 적었고, 그냥 어디서든 약간 곤두선 채로 존재하고 있었다.

    그래서 이모는 문제 많고 날이 선 어린애를 달래듯 단우를 대했고, 단우는 그게 관심 같았다. 또 애정 같았다.

    ‘외로웠나 보지.’

    이단우는 관심과 적선과, 애정과 동정을 구별하지 못하는 어린애였다.

    차우원을 만났을 때도 그랬다.

    차우원이 보여 주는 동정에 이단우는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빠져들었다.

    스물일곱의 이단우는 그것보다 잘할 자신이 있었다.

    적어도, 이번에는 실수하지 않을 자신이…….

    “이모.”

    “단우야. 너한테도 해당되는 말이야. 나는 네가 위험한 일은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모는 어른이어서 실수가 실수였다는 티는 내지 않았다.

    “네, 알아요.”

    “넌 아직 어려. 우리가 널 나쁘게 대했니? 갑자기 나가겠다니, 이모는 네가 왜 그러는지 모르겠어……. 서운한 점이 있니?”

    “이모.”

    “그래, 단우야.”

    “부모님 유산 안 남은 거 알아요.”

    “…….”

    “안 받아도 돼요. 전 나갈게요.”

    단우는 일어났다.

    밤새 무리한 데다 잠을 자지 못해 눈꺼풀이 감겼다.

    마력이 부족해 입 안이 바짝바짝 말랐다. 몸은 열에 들뜬 것 같기도 하고 납처럼 무겁기도 했다.

    이모는 단우의 손을 잡고 있었는데, 그 손이 왜 뜨거워지고 있는지는 궁금하지 않은 듯했다.

    이모가 뒤에 부르고 김지규가 뭐라고 지껄였으나 단우는 방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짐을 챙겨 아지트로 향했다.

    ‘공격대 본부? 거점?’

    뭐라고 불러도 상관없었다.

    ‘집을 구하긴 해야 하는데.’

    일단은 집 대용인 그곳에 도착해 짐을 풀고…….

    그곳을 인수할 때부터 있던 낡은 소파에 몸을 누였다.

    단우는 잤다.

    스무 살의 이단우는 이모네를 나오며 가족을 잃었다고 생각했지만.

    스물일곱 살의 이단우는 그렇게는 생각하지 않았다.

    이모는 이단우의 가족이 아니었으니 이단우는 잃은 것이 없었다.

    그는 강울림을 얻을 터였고…….

    차우원이 곁에 있었다.

    눈을 떠 보니 몸이 포근했다.

    단우의 위에 담요가 덮여 있었다.

    그리고 맞은편 의자에서는 차우원이 불편한 자세로 앉아 졸고 있었다.

    ‘차우원 건가.’

    여기 있던 것이 아니다. 이 건물에 있던 물건은 모두 낡아서, 그냥 보면 십 년 이상 된 것들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깨끗하고 좋은 냄새가 나는 담요에 코를 파묻고 단우는 숨을 들이쉬었다.

    그리고 잠에서 부스스 깨는 차우원과 눈이 마주쳤다. 그가 잠긴 목소리로 물었다.

    “잘 잤어, 단우야?”

    ‘못 봤겠지.’

    이마가 화끈거렸다.

    단우는 담요를 놓고 물었다.

    “지금 몇 시야?”

    하품을 하며 차우원이 말했다.

    “얼마 안 잤는데. 집에 내려 달라더니 왜 여기서 자고 있어?”

    “집 나왔어.”

    “……?”

    단우는 품을 더듬어 휴대폰을 찾다가 포기하고 물었다.

    “지금 몇 시야?”

    “오후 다섯 시네.”

    ‘강울림 뭐 하냐.’

    이쯤이면 변호사든 관련 공무원이든 만나 상담을 하고도 남을 시간 아닌가?

    “강울림한테 연락 안 왔어?”

    “아직 안 왔는데. 그보다 집 나왔다는 게 무슨 소리야?”

    “원래 내 집 아니었어. 얹혀살던 처지라 돈 번 참에 나왔다고. 내 휴대폰 못 봤어?”

    “네가 왼손에 쥐고 있는 것 같은데. 아니, 내가 이런 내밀한 이야기를 지금 물어봐도 되는지 모르겠는데. 원래 집이 아니야?”

    “이모네야.”

    대충 대답하다가 단우는 멈칫했다.

    ‘이것도 불쌍해할 만한 이야긴가?’

    차우원처럼 동정심 넘치는 삶을 살아 본 적이 없어서 감이 안 왔다.

    “이모가 나 학대한 적 없고, 이모부도 그런 적 없고, 사촌은 전에 너도 봐서 알겠지만 멍청한 놈이고……. 아무 문제 없었는데 그냥 나이 차서 나온 거고. 내밀한 이야기도 아니야.”

    “…….”

    차우원은 오묘한 표정이었다.

    ‘저게 무슨 생각 하는 표정이냐.’

    단우는 얼굴을 찡그리며 왼손을 봤다. 정말로 휴대폰이 손에 들려 있었다. 그 휴대폰이 징 울리더니 화면에 이름이 떴다.

    ‘강울림.’

    양반은 못 되는 놈이다.

    “계약서 확인했어?”

    [넌 무슨 전화를 그렇게 받냐?]

    “내가 너랑 ‘여보세요’ 하고 있어야 돼? 이 시간까지 뭐 했어?”

    [계약서 확인했지!]

    근데 뭐가 불만이라 소리를 지르고 있단 말인가?

    ‘독소 조항 하나 없이 퍼 주는 계약이다.’

    눈 멀쩡한 변호사가 봤다면 자기 눈을 몇 번 확인한 뒤 강울림에게 ‘꼭 사인해라’라고 당부했을 것이다.

    [확인했는데! 야! 이 조항 뭐야!]

    ‘……?’

    “뭐가?”

    [‘목숨 건다’ 뭐냐고! 이거 완전 독소조항 아냐!]

    강울림의 목소리가 워낙 커서 방을 쩌렁쩌렁 울렸다. 스피커폰의 의미가 없을 지경이다.

    “목숨을 걸어?”

    차우원이 옆에서 물었다.

    역시 스피커폰으로 돌려놓은 건 아니었으나, 깡스탯으론 누구도 따라갈 수 없는 강울림은 그 소리를 또 들었다.

    [그래! ‘정의가 뭐 어쩌고…… 아무튼 조항을 어기면 목숨을 건다’고 계약서에 분명히 명시가……!]

    강울림의 옆에서 누가 뭐라고 말했다. 강울림과 달리 신체 스탯이 바닥을 기는 이단우는 그 내용을 못 엿들었다.

    [……야! 이거 그냥 계약서도 아니잖아! 어기면 진짜 목 날아가는 거잖아!]

    그럼 헌터 간의 계약을 일반 종이에 글자 몇 개 적어서 할 거라고 생각했단 말인가?

    ‘이거 센터에서 아예 교육을 안 받고 나왔나?’

    단우는 합리적인 의심이 들었다.

    헌터 계약이라면 마력, 목숨, 신체 일부, 아이템, 아티팩트 기타 등등의 가치 있는 것을 걸고 하는 게 기본이다.

    그리고 그것을 자신의 마력과 이름으로 보증한다.

    단우는 입술을 꾹 닫았다.

    ‘화내지 말자…….’

    강울림이 멍청한 게 본인의 탓이겠는가?

    여러 가지 문제가 있을 터였다.

    주의력이 부족하고 센터 교육을 못 받았으며, 사채업자는 믿으면서 이단우와 차우원은 믿지 못하는 놀라운 감식안을 가진 게 꼭 강울림 자신만의 문제는…….

    ‘맞잖아.’

    “야, 너 진짜 눈 없어? 변호사가 너 대신 갑을 관계는 안 읽어 줘? 어기면 목 날아가는 건 나고. 넌 그냥 계약 해방돼서 자유의 몸 된다고.”

    노력을 기울인 덕분에 단우는 ‘야 이 멍청한 새끼야’라고는 하지 않을 수 있었다!

    [어? 뭐? 잠깐만…….]

    휴대폰 너머로 또 숙덕대는 소리가 들렸다. 단우는 이 멍청한 놈 옆에 제대로 된 변호사가 붙어 있기를 바랐다.

    ‘아니, 제대로 될 필요도 없고.’

    강울림에게 악의가 있는 게 아니고서야 이 계약을 반대할 변호사가 있겠는가?

    차우원이 단우의 어깨를 잡았다.

    “단우야, 그건 아닌 것 같다.”

    “……?”

    “네가 정의로운 일만 할 것 같진 않은걸.”

    ‘이 새끼가…….’

    단우가 누구 때문에 저 조항을 넣었는데.

    아니다 싶은 일은 절대 안 할 놈이 무슨 소린가? 애초에 차우원이 팀에 있는 이상 이 팀은 무조건 훌륭한 일만 하게 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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