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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인성 교육-16화 (16/170)
  • 16.

    이단우는 날이 밝을 때까지 시간을 때우다가 이모네로 돌아갔다. 새벽에 도어락을 눌러 자는 친척들을 죄다 깨울 수는 없었으니까.

    오랜만에 웃어서 머리가 멍했다.

    좀 울었지만, 그건 원래도 자주 그랬고…….

    ‘방부터 얻을 생각이었는데.’

    현관문을 열며 단우는 생각했다.

    팀을 수용할 아지트도 구하고 도박장에 불 지를 아티팩트도 구하느라 수중에 남은 돈이 없었다.

    그러나 이모네서 더 머물 시간이 그리 길지는 않았다. 고생한 보람이 있어서 간밤 수입도 훌륭했다.

    아공간 아티팩트에 넣은 금화의 반만 털어도 강울림의 계약금으로는 충분했다.

    나머지도 쓸 곳이 있었지만…….

    일부만 떼어 월세를 구하는 정도는 가능할 터였다.

    머릿속으로 계산을 하고 안으로 들어가는데 식탁에 앉아 있는 이모가 보였다.

    “왔니.”

    그 앞에는 사촌이 앉아 있었다. 벌 받는 듯한 구도였는데 단우를 힐끗거리며 고소하다는 표정을 짓는 게 이상했다.

    “새벽부터 어딜 다녀왔니. 방에 없어서 놀랐잖아.”

    이모가 걱정하는 듯한 말투로 물었다. 단우는 그녀가 새벽 내내 자신이 방에 없었다는 사실을 눈치챘다는 걸 깨달았다.

    “잠깐 친구가 만나자고 해서요. 걱정하실 줄 몰랐어요.”

    “어떻게 걱정을 안 하니? 네가 뉴스에 나오는데.”

    “…….”

    단우는 TV를 쳐다봤다. 이 가족은 밥 먹을 때 TV를 보지 않는다는 엄격한 원칙을 고수하고 있었는데, 어째서인지 화면이 돌아가고 있었다. 아침 뉴스가 방영되고 있다. 소리를 죽여 놓은 화면에서 차우원과 이단우의 증명사진이 떠올랐다.

    ‘저럴 줄은 알았지만.’

    헌터는 연예인 이상으로 유명한 데다 정치인처럼 공인이라는 인식이 있었기 때문이다.

    선출직도 아니면서 사생활부터 모든 것을 감시당하는 처지였는데, 각성자가 가진 위험성을 따지면 그렇게까지 불합리한 것도 아니었다.

    하급 각성자일지라도 민간인 수십 명을 해치는 일쯤은 쉬웠기 때문이다.

    단우는 간밤 사건이 뉴스를 탈 줄은 알고 있었다. 그들의 신원이 알려질 것도 마찬가지였다.

    그러길 의도하기도 했다. 다음으로 팀에 넣어야 할 소서정은 보이는 것에 민감한 성격이었기 때문이다.

    막대한 계약금과 차우원으로 유혹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 팀 자체가 유망하고 비전 있다는 인식을 줘야 하는 놈이었다.

    ‘신진 공격대 랭크 안에 들어, 소서정을 유혹한다.’

    단우는 다음 계획도 세워 뒀다.

    그러나 지금은 변명이 먼저였다.

    “네가 말했어?”

    “너 요새 어딜 싸돌아다니냐고 엄마가 걱정하는데 그럼, 입 다물고 있을까?”

    김지규는 다시 기가 살았다.

    물론 이모 앞에서 김지규를 팰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단우야, 여기 앉자. 이모랑 이야기 좀 해.”

    이모가 맞은편 자리를 가리켰다. 김지규의 옆자리에 단우는 말없이 앉았다. 그리고 김지규의 발을 밟았다.

    “악!”

    “미안해. 실수로 쳤어.”

    단우가 사과했다.

    “웃기지 마, 고의였잖아!”

    “아침부터 애들처럼 뭐 하는 거니? 둘 다 나이도 찼는데 그만 좀 해. 김지규, 엄마 할 말 있다고 했지. 너 단우한테 시비 걸 거면 그냥 들어가 있어.”

    “아, 아니야. 앉아 있을게.”

    김지규가 굳이 앉아 있겠다고 고집부리는 이유가 단우는 수상쩍었다.

    하지만 이모가 손을 잡는 바람에 생각은 이어지지 않았다.

    “단우가 이제 스물이고 성인인데, 이모가 신경을 제대로 못 써 줬지. 일하겠다는 얘기는 들었는데, 어디서 일할지도 챙겨 주지 못한 것 같아. 네가 일을 못 구하면 애 아빠 밑에라도 자리를 만들어 주려고 했는데……. 이런 말 하면 네가 자존심 상해할지도 모르고, 또 네가 이모부를 좀 불편해하니까, 어떻게 생각할지 몰라서 조심했던 거야.”

    이모는 단우 어머니의 언니였는데 형제가 자매 둘뿐이었다.

    어려서 이모를 자주 본 기억이 없으니, 둘의 관계가 끈끈하진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모는 단우를 맡았고 김지규의 공부방을 치워 방을 만들어 주었다.

    단우가 기억하지 못하는, 장례식장의 기억 속에서부터 단우 곁에 이모가 있었을 것이다.

    누군가 단우의 손을 잡고 밥을 먹이고, 곁에 있어 줬다는 느낌은 남아 있었으니까.

    넋을 놓고 있던 열다섯 살의 단우를 김지규가 공처럼 걷어찼을 때, 단우는 터지기 직전의 풍선 같았다.

    무언가 계속 안에서 부풀어 오르는데 그것의 정체를 몰랐다.

    부모님이 어느 날 나갔는데 돌아오지 않고, 그는 혼자 남겨져 있고, 그에게는 무엇도 좋지 않았다. 자신이 어떤 감정을 느끼고 있는지도 몰랐다.

    그때 감정을 쏟아부을 상대가 찾아왔다. 김지규가 단우를 걷어차고 욕했다.

    단우는, 현실로 돌아왔다. 그가 멍청해지고 아무 말도 못 하게 되기 전에, 누군가에게 악을 지르고 덤벼들 수 있어서 다행일 지경이었다.

    그는 김지규와 엉켜서 서로를 꼬집고 발로 차고 머리카락을 잡아당겼다. 어른들이 돌아와서 둘을 떼어 냈을 때, 서로의 손에서 떨어진 머리카락이 바닥에 수북했다.

    그날 밤 이모와 이모부는 싸웠다.

    -내가 쟤 이상하다고 했잖아. 하는 꼴을 봐! 애를 다 잡아 놨잖아! 저런 걸 지규 옆에 어떻게 둬? 당신이 그러고도 애 엄마야? 지규가 미친 애랑 하루 종일 같이 있기를 바라? 안 그래도 예민한 시기에 무슨 영향을 받겠어?

    이모부는 단우가 병원에 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가 충격을 받아 실어증에 걸렸으며 자폐 상태에 빠졌고, 타인에게 공격적으로 반응한다고 주장했다.

    이단우는 김지규의 공부방에 누워 그 소리를 듣고 있었다. 이 아파트는 벽이 얇았다. 방 밖에서 싸우는 소리가 이불을 뒤집어써도 들렸다.

    ‘아니야. 아니라고.’

    미친 건 김지규였다.

    감히 부모님의 이야기를 입에 올린 건 김지규였고 이단우는 그 말을 해야 했다.

    ‘그런데 누구에게?’

    상대가 없었다.

    이모는 화내고 울다가 조용해졌다. 한참 뒤에 김지규의 방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난 그냥 말을 걸었는데, 쟤가 갑자기 덤비잖아…….

    김지규가 훌쩍이는 소리가 들렸다.

    이모가 그를 달래고 있었다.

    ‘거짓말하지 마.’

    단우는 기다렸다. 시계 초침이 움직이는 소리를 들으며, 아픈 몸을 웅크린 채 한참을 기다렸다. 자신이 변명할 시간을.

    그러나 이모는 그의 방으로 찾아오지 않았다.

    배가 고팠다.

    새벽녘에 단우는 깨달았다. 그는 오늘 점심부터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

    부모님은 돌아가셨고 누구도 그를 지켜 줄 수 없으며, 누구도 그를 위해 변명해 주지 않을 터였다.

    그게 앞으로 단우에게 일어날 일이었다.

    그 자신이 하는 변명은 아무런 힘이 없었다.

    이곳에 단우의 말을 듣고 싶어 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기 때문에.

    단우는 이모의 손을 내려다봤다.

    스무 살의 이단우는 이미 이모보다 훨씬 큰 손을 가지고 있었다. 키는 말할 것도 없었는데도 이 집을 벗어나기가 어려웠다.

    ‘이모부 사업에 빚이 있었지.’

    스무 살에 독립하기 위해 알아보다가, 단우는 자신의 앞으로 유산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 유산은 이모부의 사업체로 전부 들어간 지 오래였다.

    단우는 그때 이모에게 화를 내야 할지 배신감을 느껴야 할지도 알 수 없었다.

    ‘아니, 이모가 알고 있기는 하나?’

    그렇게도 생각했다.

    스무 살의 이단우는 바라는 게 많았다. 그를 맡아 준 사람이 그를 챙겨 주길 바랐다. 부모님이 남긴 유산을 몰래 빼서 쓰지 않기를 바랐고……. 자신의 자식과 이단우를 똑같이 대해 주길 원했다.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나.’

    원래 어린애들은 현실감 없는 꿈을 꾸기 마련이었다.

    스물일곱을 겪고 돌아온 이단우는, 그런 꿈은 꾸지 않았다.

    그는 이곳을 나가고 싶었다.

    “괜찮아요. 이미 일 구해서, 도와주실 필요는 없어요.”

    “그게 헌터 일이야?”

    이모는 믿을 수 없다는 듯 물었다.

    ‘이미 보셔 놓고 뭘 묻는 거지…….’

    단우는 의아했다.

    “네. 안 그래도 오늘 말씀드리려고 했어요. 저 독립하려고요.”

    “뭐?”

    “일로 수입이 생겨서 독립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아시겠지만, 일 자체의 위험성 때문에 따로 나가 사는 게 나을 것 같아서요. 헌터는 원한을 사는 직업이기도 하고……. 이모네를 휘말리게 하고 싶지 않으니까요.”

    이모가 그를 붙잡는 이유를 안다. 이모에겐 단우에게 돌려줄 유산이 없었다.

    그래도 괜찮았다. 과거에는 괜찮지 않다고 생각했지만, 지금의 단우는 그랬던 자신을 이해할 수 없었다.

    ‘양육비라고 생각하면 되지 않나.’

    양육비치고는 큰 금액이었지만.

    “단우야…….”

    “봐! 쟤 헛바람 들어서 저런다니까?”

    김지규가 흥분해서 끼어들었다.

    “방송에 나온 저 차우원 있잖아. 차문경 아들! 걔랑 친해져서 뭐 유명해져 보겠다고 저러는 거잖아! 차우원 옆에서 얼쩡거리다가, 운 좋게 눈에 띄었다고 지금 보이는 게 없다니까? 걔한테 잘 보이면 청연에 다이렉트로 꽂힐 거 다 알고…….”

    ‘왜 시험장에 찾아갔나 했더니.’

    이단우는 깨달았다.

    “김지규. 너 시험장에 차우원 올 거 알았지.”

    차우원은 유명인이었다. 헌터가 되기 전부터 그랬는데, 차문경의 아들이라는 이유도 있었으나 본인의 실력이 워낙 뛰어나서였다.

    헌터계에 관심 있다는 사람 중에서 차우원의 이름도 모르는 사람은 없었을 터였다.

    그리고 그의 이름을 알고 있다면 그가 청연 길드장의 제자라는 사실도 모를 수 없었다.

    “뭐?”

    “헌터 시험장에 차우원 올 거 알았지. 걔 옆에서 얼쩡거린 거 그래서였지.”

    “뭐…….”

    김지규는 전부터 헌터라는 직업에 관심이 많았다. 단우가 각성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김지규도 각성했는데, 그때 김지규가 얼마나 흥분했는지 단우는 기억하고 있었다.

    하지만 김지규는 헌터가 되지 못했다.

    당시에는 단우 본인의 재능 부족에 몰두하느라 김지규의 상황은 신경 쓰지 않았다.

    이유도 궁금해하지 않았던 것 같다.

    ‘이모나 이모부가 반대했겠지.’

    대충 생각하고 말았던 것 같은데…….

    다른 문제가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게 뭔지도 단우는 이제 알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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