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 인성 교육-12화 (12/170)

12.

‘돈값을 하네.’

단우는 가져온 아공간 아티팩트에 넣을 수 있을 만큼 금화를 털어 넣었다. 그러면서 갈라진 벽의 단면을 슬쩍 만져 봤는데 아직도 마력 작용의 여파가 남아 있었다. 손이 찌릿찌릿했다.

‘얜 진짜 종이 다른가…….’

차우원은 떡잎부터 다른 놈이었다. 단우는 아공간 스킬진과 보호 마법, 은폐 마법, 강화 마법, 기타 등등이 모두 때려 박힌 가짜 벽을 도대체 무슨 수로 한 번에 깨부쉈는지 알 길이 없었다.

“이게 되네.”

그런데 단우가 할 말을 차우원이 했다.

남아 있는 금화를 돌아보며 차우원이 아쉬워했다.

“더 안 챙겨도 돼?”

“충분해. 저대로 두면 녹겠지.”

그 꼴을 기희윤이 보면 피눈물이라도 흘릴 것이다.

‘꼴좋다.’

단우가 웃자 차우원은 의아하다는 얼굴로 쳐다봤다.

“금화 녹는 게 좋아?”

미친 사람처럼 보일 것 같아서 단우는 웃음을 뚝 그쳤다. 그가 냉정하게 말했다.

“안 좋을 건 뭐야?”

“너 기쁘게 해 주려면 돈 많이 들겠다…….”

“……?”

이건 또 무슨 헛소리인가?

어쨌든 그들은 왔던 길을 다시 내려갔다. 이미 열린 창으로 연기가 무럭무럭 빠져나가서, 건물 안도 밖도 아수라장이었다.

몸 튼튼한 각성자들만 뛰어다니며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 애쓰고 있었다.

‘밖으론 못 가겠다.’

더 눈에 띌 것이다.

경찰차인지 소방차인지가 벌써 도착해서, 사이렌 소리가 멀리 울리고 있었다. 불구경은 예로부터 대단한 볼거리여서 건물 타는 꼴을 보고 있는 외부인이 많았다.

동시에 같은 생각을 한 단우와 차우원은 계단으로 내려갔다. 좁은 계단 층은 가관도 아니었다. 찜통인 데다 연기 때문에 숨 쉬기도 어려웠다.

차우원이 복면을 쥐었다.

“이거 필요한 거 맞아?”

“벗어!”

그들은 복면을 벗어 던지고 날듯이 내려갔다.

한 층을 통째로 쓰고 있는 경기장은 이제야 사태 파악을 한 듯했다. 관객들을 내보내느라 진땀을 빼고 있었다.

단우는 철창에 갇혀 있는 강울림을 발견했다.

그가 약간 멍한 표정을 짓고 있어서 심장이 덜컹했다.

‘아니야.’

강울림은 안 죽었다.

다 큰 강울림은 스포츠머리에 뇌까지 근육으로 들어찬 듯한 인상이었는데, 스무 살의 강울림은 그 수준은 아니었다.

하지만 뇌가 근육으로 되어 있는 건 마찬가지여서, 마력 구속구를 차고도 말을 하려고 들었다.

“으으으……” 소리만 내는 강울림에게 단우는 친절하게 제안했다.

“고개 끄덕이면 풀어 준다고.”

강울림은 그렇게 했다.

‘이 자식 약속했다.’

심신미약 상태의 계약이 어쩌고…… 같은 조항은 단우는 신경 쓰지 않았다.

강울림은 항상 약간 심신미약 상태였던 것이다.

무슨 문제가 생기든 ‘훈련을 하면 해결된다’고 말하는 놈이 제정신일 리가 있겠는가?

그런데 강울림이 손가락질을 하면서 외쳤다.

“야, 뒤에 봐!”

비명이 들려서 이단우는 안 볼 수가 없었다. 그리고 난생처음 보는 괴상한 크리처를 발견했다.

그 몬스터는, 일단…….

‘저게 뭐야?’

얼핏 보기엔 늑대에 가까웠는데, 등에는 날개가 달려 있고 손에는 비늘이 붙어 있었다.

띠링!

<라이칸(?)>

한때 라이칸슬로프 일족의 정예병이었으나, 인간에게 사로잡혀 신체 일부를 변형 당했습니다. 그는 자신을 이렇게 만든 모든 인간 족을 증오할 것입니다.

이건 키메라였다.

몬스터를 접붙여 만든 괴물이다.

단우는 입이 벌어졌다.

‘아니…… 너 어떻게 살아남았는데.’

강울림은 앞으로도 잘 살아남아서 후일 <차우원 팀>에 합류한다. 그가 차우원을 얼마나 경외하는지는 귀가 닳도록 들어서 알고 있었다.

<차우원 팀>의 여러 팀원들은 다양한 이유로 단우를 떨떠름해했는데, 강울림이 단우를 싫어한 이유는 확실했다.

단우가 차우원에게 ‘존경’을 표시하지 않는다는 이유에서였다.

단우로서는 들어오고 싶지도 않던 팀에 멋대로 박아 넣고, 도망치지도 못하게 하는 새끼를 어떻게 ‘존경’할 수 있는지 의문이었다!

미쳐 버린 게 아니고서야 그럴 수 있겠는가?

물론 그때도 단우는 제정신이 아니었지만!

아무튼 당시 강울림이 차우원을 존경하던 이유는 그거였다.

-나는 내가 속고 있는 걸 몰랐거든? 그렇다기보다, 헌터의 사명이 뭔지조차 몰랐던 거지. 아무 생각도 없었는데 어느 날 보게 된 거야. 진짜 헌터가 어떤 일을 하는 사람들인지. 너 하늘에서 계시가 내리는 기분을 알아? 그건 갑자기 날아드는 거야. 새벽에, 눈앞에 뿌옇게 안개 낀 길을 혼자 운전하는데. 그 길이 끝나지 않을 것 같고, 끝날 수 있다는 생각도 들지 않았어. 그런데 어느 순간 끝이 보이는 거지……. 누군가 헤드라이트를 비춰 준 거야!

-뭐라는 거야?

-네가 물어봤잖아! 왜 리더를 존경하냐며?

-그러니까. 그거랑 무슨 상관이냐고.

-넌 비유법도 몰라? 어떻게 인생의 의미를 한마디로 설명해?

‘인생의 의미’씩이나 나올 정도의 일이 뭔가 일어났던 모양인데……. 아무튼 그때가 지금은 아닐 게 아닌가?

차우원은 과거 이맘때쯤 청연 길드에 막 입사해서 동경과 질시의 시선이나 받고 있었을 테니까!

“으아악! 비켜! 비키라고!”

“안전 관리를 어떻게 하는 거야!”

관객들이 비명을 지르며 출구로 몰려가서, 오히려 그 부근이 위험해졌다. 단우는 연기가 자욱한 내부를 보다가 깨달았다.

‘설마.’

단우가 사용한 아티팩트는 불과 연기를 내는 물건으로 진짜 대형 화재를 일으키는 종류는 아니었는데, 몇 가지 설정을 만져 둬서 일정 이상 피해를 입히면 작동이 멈추게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아티팩트는 모든 아티팩트가 그렇듯 마력으로 작동하는 물건이었고…….

대몬스터 마력 구속진 역시 스킬진이 새겨진, 마력을 기반으로 작동하는 물건이었다.

시설 관리자들의 안전장치 관리 미흡과 단우가 저지른 사건이 합쳐져 구속진에 문제가 생긴 것이다.

‘…….’

단우는 입을 다물었다. 그의 탓도 있다는 걸 굳이 설명할 필요는 없지 않은가?

어쨌든 이 도박장에도 상주 헌터 정도는 있을 터였다. 미등록 각성자일 확률이 높았지만…….

“어이, 이쪽을 봐!”

장비를 착용한 헌터가 스킬 <도발>을 사용했다.

탱커의 기본 스킬로, 몬스터의 어그로를 끄는 효과가 있었다.

효과는 굉장했다.

오래도록 갇혀 있어 굶주리고 분노한 키메라는 헌터를 한입에 삼켜 버렸다.

“……!”

강울림은 그렇다 치고 차우원도 압도돼서 그 꼴을 보고 있었다.

“몸 어때. 뛸 수 있겠어? 아니면 내가 업을까.”

먼저 정신을 차린 건 차우원이었다. 그가 강울림에게 물었다.

강울림은 얼떨떨하게 대답했다.

“당연히 뛸 수 있…… 차우원?!”

“나 알아?”

“어떻게 몰라? 같은 센터 연수생이었잖아!”

“아……. 본 것 같다.”

차우원이 아는 척했다.

‘모르잖아.’

단우는 눈치챘다. 차우원은 사람을 원래 잘 기억 못 했다. 아는 척하는 인간들이 좀 많아야 기억할 수 있지 않겠는가?

단우가 눈치챈 걸 강울림이 알아챘는지는 모르겠으나, 그는 일단 반발하고 나섰다.

“뛸 수 있지만, 그걸 왜 묻는데?”

“안 도망치려고? 단우야, 우리 계획에 저거 잡는 거 포함되어 있어?”

“아니, 없는데.”

이단우는 헌터 경력 없는 유망주 둘을 데리고 등급도 모를 키메라를 레이드할 생각은 없었다.

그런 무모한 짓은 차우원이나 성공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차우원은 스무 살짜리 헌터는 아니었다!

“안 돼! 불 꺼야 한다고!”

강울림이 헛소리를 해서 차우원과 이단우는 동시에 인상을 썼다.

“뭐?”

“여기 불 꺼야 돼! 나 여기 망하면 갈 데가 없다고! 내가 여기서 일을 해야 우리 집 빚을 갚는다고!”

강울림이 가슴을 치며 답답해했다.

답답한 건 이단우였다.

“봐, 쟤 범법 가담할 머리도 없어.”

“어……. 그런데 그런 소리를 당사자 앞에서 하면 실례잖아. 다 들릴 것 같은데. 팀에 포섭할 거 아니었어?”

차우원이 그러면서 ‘저런 멍청한 걸 진짜 포섭할 거야?’라는 시선을 보냈다.

물론 단우의 해석이 들어간 시선이었고 실제는 ‘정말 얘로 괜찮은 거야?’ 정도쯤 될 터였다.

“어. 쟤가 우리 팀 탱커야.”

“우리 탱커 죽겠다.”

차우원이 검을 빼 들었다. 강울림은 ‘경기장’에 걸려 있던 결투용 방패를 집어 들어 키메라에게 달려들고 있었다!

단우는 강울림을 쥐어패서 끌고 나가고 싶었으나, 저건 깡스탯으로는 절대 기절시킬 수 없는 놈이었다.

〔강울림〕(S)

▷직업: 수호자

▷체력: S

▷근력: S

▷마력: B

▷민첩: C

▷운: C

▷저항: A

단우는 강울림의 신체 스탯 표를 과거에 본 적 있었는데, 그때 든 생각은 이거였다.

‘저런 놈이어야 탱커를 하나…….’

체근민은 차우원보다 높을 것이다.

-힘 대결로는 못 이기지.

차우원이 그렇게 말한 적 있었기 때문이다.

어쨌든 멍청하고 튼튼한 강울림은 죽으러 달려가고 있었다. 차우원이 단우에게 물었다.

“어떻게 할까, 리더.”

단우는 잠시 입을 닫았다.

이럴 때 <차우원 팀>의 대처는 항상 정해져 있었다. <차우원 팀>은 애초에 계획 같은 걸 필요로 하지 않는 공격대였다.

전원이 엘리트 헌터 이상으로 구성된 팀이, 무슨 잔머리를 필요로 하겠는가?

그들은 문제가 생기면 해결했고…… 누군가 위험에 처하면 구했다.

나머지 임기응변은 리더의 명령에 따랐다.

그 리더는 차우원이었다.

그 차우원이 단우에게 묻고 있었다.

단우는 혀로 입술을 한번 훑고 물었다.

“내가 틈 만들면 너 저거 썰 수 있어?”

“얼마나 만들어 줄 수 있는데?”

“몰라. 1초?”

‘안 되면 강울림 기절시키고 튀자.’

이단우는 마음을 정했다.

속내를 모르는 차우원은 망설임 없이 답했다.

“응.”

레이드에 집중하고 있는 강울림이라면 이단우가 뒤에서 쳐도 기절시킬 수 있을 터였다.

어쨌든 강울림은 당장 키메라의 어그로를 잘 끌고 있었다.

이단우는 이를 악물고 키메라의 뒤를 잡았다. 그리고 등판을 따라 내달렸다. 그 과정에서 균형이 조금도 흐트러지지 않아서, 그는 평지를 달리고 있는 듯했다.

물론 이단우는 조금이라도 정신을 팔면 떨어져 죽을 것 같았다.

속으로 강울림을 욕하며 그는 검을 뽑았다.

“……!”

키메라의 목에 이단우의 검이 내리꽂혔다.

※ 본 저작물의 권리는 저작권자에게 있습니다. 저작물을 복사, 복제, 수정, 배포할 경우 형사상 처벌 및 민사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12)============================================================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