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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인성 교육-11화 (11/170)
  • 11.

    강울림은 몽롱한 정신으로 대기석에 앉아 있었다.

    “으으음…….”

    맞은편 철창에는 털 달린 짐승형 몬스터가 갇혀 있었는데, 정체가 뭐였는지 강울림은 기억나지 않았다.

    ‘들었던 것 같은데.’

    변형 라이칸이었나……?

    몬스터의 목에도 구속구가 달려 있었다. 사지에도 마찬가지다. 마력 구속구로 온몸을 죄어 두고, 거기에 또 쇠사슬을 연결해 칭칭 감아 뒀다.

    몬스터가 갇혀 있는 철창 안에는 마력 구속진이 설치되어 있었다. 몇 중으로 방비 작업을 하여 위험에서 사람들을 보호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가 뭐가 위험해? 너 같은 각성자들은 원래 매일 상대하는 게 몬스터 아니야. 좀 더 스릴 있고 흥미진진한 경기를 보여 주는 거지……. 너 같은 사람들만 보여 줄 수 있는 경기 말이야.

    그에게 이곳을 소개시켜 준 사람은 뭐라든가 하는 회사의 사장이었는데, 강울림이 보기엔 그냥 깡패 같았다.

    -열심히 해라. 빚을 졌으면 갚아야지. 너 아니면 누가 갚겠어?

    -다른 가족들은 건들지 마요.

    평소 같았으면 강울림은 자신의 등을 건방지게 두드려 대는 팔을 부러뜨려 주었겠으나, 그때는 참았다.

    참을 수밖에 없었다. 강울림은 실제로 빚을 졌으니까.

    빚을 진 건 강울림의 부모였으나, 그 남자의 말이 맞았다. 가족 중에 돈을 벌 만한 사람은 강울림밖에 없었다.

    도망간 친구를 찾아오겠다고 사라진 아버지가 빚을 갚겠는가? 충격에 앓아누운 어머니가 일을 하겠는가? 여동생은 어렸다.

    -경기 한 번에 천이 떨어진다고.

    -천……? 그게 뭔데……. 천만 원?

    -그래.

    남자는 담배에 불을 붙이더니 웃었다.

    -뭐 수수료가 좀 떼이지만, 그 정도면 이자에 원금에, 금방 갚고도 남지. 안 그래?

    그 말이 맞지 않는가?

    강울림은 그래서 이곳에 앉아 있었다. 사실 그가 생각한 것보다 수수료는 셌다.

    ‘경기장을 빌리는 값, 각종 보호 장비를 빌리는 값, 치료제…….’

    그런 비용을 제하고 나니 수중에 떨어지는 건 삼백만 원이 됐다.

    하지만 센터 연수생도 중퇴한 강울림이 어디서 그런 거금을 벌겠는가?

    몽롱한 정신으로 강울림은 생각했다.

    ‘목마르다…….’

    목이 간질간질했다. 기침이 나올 것도 같았다. 무언가 좋지 않은 게, 공간을 서서히 채우고 있는 듯한…….

    ‘연기?’

    강울림은 움찔 반응했다.

    연기가 들어오고 있다!

    강울림이 팔을 버둥거리자 대기실 앞을 지키던 직원이 귀찮다는 듯 돌아봤다.

    “뭐야? 왜 갑자기 발작이야? 이제 경기 시작하는데…….”

    “진정제 좀 놓든지.”

    “경기 망치려고 작정했어? 얘 보러 온 손님도 많은데 실망시키면…….”

    “……!”

    강울림은 입을 열고 싶었으나 그의 사지에도 구속구가 달려 있었다.

    마력 구속구가 각성자의 마력 흐름을 방해해, 강울림은 반수면 상태 속에서 거대한 돌에 온몸이 짓눌린 느낌이었다.

    그의 몸에 꼭 맞는 어항에 갇혀 물속에서 입을 뻐끔거리는 기분…….

    “불……!”

    강울림은 철창을 잡았다. 마력 구속구를 달고 그렇게 움직이는 건 거의 초인적인 의지가 필요한 일이었다.

    그가 확 달려들자 대기석을 지키던 직원 둘은 깜짝 놀랐다.

    “워, 이 미친……! 연수생 출신 엘리트라더니.”

    “어이씨, 가까이 가지 말라고 실장님이 그랬잖아!”

    “아니, 저걸 매달고 움직일 줄 누가 알았냐고?”

    ‘불이 났다고!’

    강울림은 외치고 싶었으나 직원이 기다란 막대기로 그를 밀쳤다. 강울림은 철창 사이로 어깨를 맞아서 바닥을 나뒹굴었다. 쇠사슬이 쩡그랑 소리를 내며 강울림의 등에 깔렸다.

    강울림의 몸이 식은땀으로 젖었다. 등이 아픈 건 느껴지지도 않았다.

    이곳에 불이 나면, 모두가 타 죽는다.

    그때 지직, 하고 방송 켜지는 소리가 나더니 마이크 소리가 울렸다.

    -안내 말씀 드립니다. 건물 내에 침입자가 발생해 소란이 일고 있습니다. 손님들은 안내에 따라 천천히 건물 밖으로 대피해 주시기 바랍니다. 다시 한번 안내 말씀 드립니다. 건물 내 침입자가 소란을 일으켜…….

    강울림은 그제야 몸에 힘이 풀렸다.

    ‘살았다.’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관객들이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무슨 소란?’, ‘어디로 가라는 거야.’ 같은 대화를 주고받고 있었다.

    강울림은 그들이 정신 나간 도박 중독자들이라고는 생각했으나 죽기를 바라진 않았다.

    ‘불은 끄려나 보다. 화재는 불 자체보다 연기가 더 위험하다는 소리를 들은 것 같기도 한데……. 쟤는 어떻게 하지?’

    축 늘어진 강울림이 맞은편을 봤다. 철창 너머에 갇힌 몬스터는 기력이 전혀 없이 웅크리고 있어서 강울림에게 같은 처지라는 희한한 동질감을 주던 녀석이었다.

    ‘쟤도 연기에 죽나?’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몬스터가 고개를 들었다.

    ‘……?’

    강울림은 눈을 깜빡였다.

    “…….”

    몬스터가 들리지도 않는 낮은 소리로 울었다.

    강울림은 각성자였다. 그 말은 그가 이 자리에서 가장 마력에 예민하고 기감이 뛰어나며 위기 대처에 탁월하다는 뜻이었다.

    그는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움직이잖아!’

    “억!”

    순간 퍽 소리가 나더니 강울림의 눈앞에 서 있던 두 명의 직원이 쓰러졌다.

    ‘고등학생?’

    몇 살이나 됐을까, 곱상하게 생긴 남자애가 직원의 주머니를 뒤지더니 열쇠를 꺼내 강울림의 대기실을 열었다.

    철창이 내려갔다.

    “뭐 해? 나와.”

    “……?”

    “단우야, 구속구를 풀어 주고 말해야지. 저것 때문에 말도 못 하는 것 같은데.”

    어째서인지 익숙한 목소리가 이어서 들렸다. 그러나 쓰러져 있는 강울림에겐 두 번째 남자의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넌 협상도 몰라? 강울림, 너 풀어 주고 빚 갚아 줄 테니까 우리 팀 들어와라.”

    “……?”

    강울림도 입을 열고 싶었다.

    ‘뭐라고 지껄이는 거야?’

    그러나 그의 입에선 “으으으……” 하는 소리만 나갔다.

    단우라고 불린 남자가 인상을 썼다.

    “아니, 쓸데없는 노력 말고. 고개 끄덕이면 풀어 준다고.”

    강울림은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풀려나서 할 말이 있었기 때문이다.

    단우라고 불린 남자가 강울림의 팔다리를 풀어 줬다.

    강울림이 외쳤다.

    “야, 뒤에 봐!”

    변형 라이칸이 날개를 펼치고 있었다…….

    몬스터를 가둔 마력 구속장이 터져 나갔다.

    “꺄아아아악!”

    * * *

    이단우와 차우원은 마주치는 경비원마다 전부 때려잡고 위로 올라갔다.

    “단우야. 이거 맞아?”

    차우원이 합리적인 의심을 던졌다.

    “다 내려와서 기절해 주잖아. 위에는 지키는 사람 없겠네.”

    “오…….”

    차우원이 감탄했다.

    ‘그 자식 없네.’

    단우는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기희윤이 이 건물에 없다. 그랬다면 반응이 이럴 리가 없기 때문이다.

    기희윤을 위해 무슨 짓이든 하는 이 엉성하고 과격한 숭배 집단은, 가까이에 기희윤이 있으면 다른 사람이 됐다.

    과격하기는 그대로였으나 기희윤이 머리 역할을 해 줘서 덜 멍청해졌던 것이다.

    주인이 없다는 걸 확인했으니 다음 일은 어렵지 않다.

    불꽃놀이에 어그로가 끌린 경비병들과 직원들을 전부 중앙 층으로 끌어내고, 그들은 최상층으로 올라갔다.

    다들 밖에서 무슨 일이 벌어져도 신경 못 쓸 정도로 정신이 없는 듯했다. 덕분에 단우는 더 편한 방법을 쓸 수 있었다.

    “너 벽 탈 줄 알지.”

    “해본 적은 없는데.”

    “넌 안 해본 일이 왜 그렇게 많아?”

    ‘이 자식은 어렸을 때 무단횡단도 안 해 봤겠지.’

    단우는 확신했다.

    “그래. 보통 벽도 타고 사는데 말이야. 내가 잘못했네.”

    차우원이 대답했다.

    단우는 이게 빈정거리나 싶어 속으로 발끈했지만 싸울 시간이 없었다.

    “잘 따라와.”

    단우가 유리창을 깨고 창틀에 발을 디뎠다. 그리고 건물 외벽을 기어 올라갔다.

    나약한 팔다리가 부들부들 떨리고 바람이 불 때마다 온몸이 휘청거렸으나, 마력으로 붙여 놓은 손발은 떨어지지 않았다.

    스킬 하나 없는 E급 헌터가 살아남으려고 무슨 짓을 안 해 봤겠는가?

    다양한 잡기를 익힌 탓에 단우는 직선거리로 최상층에 도착했다. 아래를 슬쩍 보니 차우원은 알아서 잘 올라오고 있었다.

    <블링크>.

    단거리 순간 이동 스킬로 창틀만 밟아서 위로 올라오는데 그렇게 한가롭고 편해 보일 수 없었다.

    말끔하게 최상층에 도착한 차우원은 어리둥절해졌다. 이단우는 그를 노려보고 있었다.

    “왜 그렇게 봐?”

    “저것 좀 부숴 봐.”

    “……?”

    단우가 가리키는 걸 차우원은 의문 없이 부쉈다.

    차우원의 검 <육예>는 여섯 가지 형태로 변화할 수 있는 검이었는데, 차우원이 무식하게 마력을 때려 박아 쓸 때는 대검의 형태로 변했다.

    차우원이 발검했다. 얇고 장식적인 검집에서, 물리 법칙을 무시한 크기의 검이 빠져나왔다. 차우원이 마력을 담자 대검은 희게 빛났다.

    마력 그대로 칼날이 된 듯한 모습이었다. 그 형태로 벽을 그어 내리자 벽은 반으로 갈렸다.

    차르르르르――!

    그 안에서 금화가 터져 나왔다.

    기희윤의 숭배자 가운데는 미친 마도 공학자가 한 명 있었는데, 기희윤은 그놈에게 어떤 물건을 만들게 한 적이 있었다.

    -난 그걸 <가치 교환기>라고 부르지. 절대로 가진 가치 이상이나 이하의 값을 내놓지 않거든.

    기희윤은 은행 따위를 믿지 않았기 때문에 그의 업장에서는 성실하게 수익금을 내부에 저축하고 있었다.

    그 수입이 대단해 어지간한 아공간 아티팩트로는 감당이 안 될 지경이었다. 그래서 기희윤과 그의 숭배자들은 다양한 방법을 생각해 냈다.

    단우는 그 미친놈들이 대단한 사업 수단을 가지고 있어서 그렇게 많은 수입을 올렸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게 가능했던 건 기희윤이 대단했기 때문이다.

    기희윤의 도박장에서는 뭐든 걸 수 있었다. 말 그대로 ‘뭐든’ 걸면, 그걸 그에 맞는 가치의 금으로 바꿔 주는 아티팩트가 있었으니까…….

    ……기희윤은 효율적인 사고방식의 소유자였다.

    ‘…….’

    단우는 언젠가 기희윤을 죽여 버릴 테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지금은 과거의 팀원을 구하러 갈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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