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나랑 팀 짜자.
“하하…….”
차우원은 이단우의 제안을 거절할 생각이었다.
이단우는…… 대단했다. 차우원은 ‘마력 소멸’ 같은 현상은 한 번도 본 적 없었는데, 이단우는 강도의 마력을 소멸시켰다. 그 모습을 바로 눈앞에서 봤기 때문에 차우원은 그게 얼마나 말도 안 되는 짓인지 알 수 있었다.
강도는 자신의 스킬을 컨트롤하지 못했고, 불안정했고, 그 <에너지 볼>은 언제든 터질 수 있었다.
강도를 직접 공격했다면 <에너지 볼>은 버스를 전부 집어삼키고 그곳에 있던 모든 사람들을 해쳤을 터였다.
차우원은 강도를 말로 설득하면서도 <에너지 볼>의 동향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이 사람이 저 스킬을 제대로 취소는 할 수 있을까.’
의문이 들었고, 그게 불가능할 것 같으면 버스를 통째로 반으로 갈라 버릴 생각이었다. 버스 안에 갇혀 마력 폭발에 당하는 것보다 달리는 버스에서 굴러떨어지는 게 살 확률이 높을 테니까.
그러나 그 경우, 역시 살아남지 못하는 사람들이 생길 터였다.
‘<에너지 볼>을 몸으로 받을까?’
날아오는 폭탄을 몸으로 덮는 것처럼.
그러면 폭발의 충격을 최소화할 수 있지 않을까?
거기까지 생각이 미쳤을 때, 비슷한 짓을 이단우가 시도했다.
차우원은 자신이 이름도 모르는 옆자리 남자애의 말을 왜 들었는지도 이해하지 못했다.
-고개 숙여.
그 말에 고개를 숙였고, 다음 순간 바로 고개를 다시 들었다. 소름 끼치는 마력 반응 때문이었다.
<에너지 볼>이 이단우의 손안에서 뭉그러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건 놀랍게도 폭발하는 대신 모든 에너지를 빛으로 방출하며 사그라들었다.
‘성질 변화?’
마력의 성질을 변화시켰다.
그것도 타인의 마력을.
이단우는 천재였다.
차우원은 생전 처음으로 또래의 천재를 발견했고, 생각했다.
‘성격 뭐지.’
강도는 아픈 딸을 이야기하며 눈물짓고 있었는데 이단우는 그의 머리를 쳐서 기절시켰다.
뇌진탕 온 거 아닌가? 물론 강도도 각성자이니 목숨에 지장은 없겠지만……. 그렇대도 사람이 보통 저런 짓을 하진 않을 터였다.
‘헤드기어 끼고 있으니 죽진 않을 거다’ 하고 머리에 스트레이트를 날리는 복서와 뭐가 다르단 말인가?
하기야 이단우는 첫인상부터 범상치 않았다.
차우원은 기사가 모는 차를 타고 시험장에 입장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익숙지 않은 대중교통에 올라탔는데 바로 뒤쪽에 앉아 있는 이단우가 보였다. 깜짝 놀랄 정도로 예쁘고 섬세한 얼굴이 무슨 생각에 잠겨 있는 듯했다.
그가 너무 눈에 띄어서 차우원은 그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이단우가 얼어붙은 듯 자신을 응시하는 모습을 봤다.
이단우는 표정 변화도 없이 울었고…….
차우원은 직감했다.
‘얘 좀 이상한데.’
정신이든 신체든 어딘가에 문제가 있어 보였고, 아픈 사람을 돕는 게 어려운 일도 아니었기 때문에 차우원은 그에게 말을 걸었다.
그리고 차우원은 금방 깨닫게 됐다. 이단우의 ‘이상한’ 점은 정신이나 신체 같은, 어디라고 딱 잘라 말할 수 있는 지엽적인 구석이 아니다.
이단우는 총체적으로 이상했고, 무서울 정도로 예뻤으며, 자신만만했고, 제멋대로였다.
-아니, 아니지. 우리가 해야지. 그 사람들은 너무 늙었잖아.
이게 무슨 이전 세대 영웅들에 대한 무례한 소리란 말인가?
물론, 그분들은 현역이 아니긴 하지만…….
‘잠깐. 설득되면 안 되지.’
차우원은 이성적으로 대응했다.
-근데 나 네가 천재인지 모르겠는데. 네 계획에 따르자면 천재들만 모아서 <종말>을 대비해야 하잖아?
이단우의 눈에 순간 빛이 들어오더니 그의 뺨에 생기가 돌았다. 흉흉해진 눈으로 그가 말했다.
-아니, 알게 될걸.
화내는 이단우는 무서울 정도로 예뻤다…….
차우원은 가슴이 두근거렸다.
‘아, 진짜 나한테 덤비네.’
마지막으로 도전받은 게 언제였던가?
센터에서는 차우원의 자리를 넘보는 사람이 없었다.
예측 불가능한 일은 일어나지 않았고 차우원에게는 흥분할 일이 없었다.
그의 인생은 평온했고 가야 할 길이 정해져 있었다.
‘청연에 들어가 공격대에서 경험을 쌓고, <종말>을 막는다.’
사람들이 그에게 바라는 일은 그런 것이었고, 차우원은 그게 가능할지 알 수 없었으나 노력은 해볼 생각이었다.
어쨌든 <종말>을 막는 건 모든 헌터의 사명이니까.
차우원은 길을 벗어나는 일은 하지 않았다. 그에게 기대를 걸고 있는 사람들은 그와 가장 가까운 사람들이었고, 그 가장 앞자리에 서 있는 사람은 아버지였으니까.
차우원은 아버지를 이해할 수 없었으나 싫어하진 않았다.
아들에게 바라는 게 좀 많긴 했지만, 보통 아버지들이란 그렇지 않던가?
길드에 들어가면 아무 문제도 일어나지 않는다.
반면 이단우의 제안은 여느 약소 공격대의 대책 없는 제안과 다를 바 없었고, 차우원은 심지어 그의 계획조차 듣지 못했다.
조건을 다 집어치우고서도.
직감적으로 느껴졌다.
‘이단우는 해롭다’.
차우원의 앞에 있는 건 무언가 위험한 것이었다.
그래서 거절했으나 결국 ‘이렇게’ 되었고…….
* * *
“팀원은 둘이 다야?”
아무리 봐도 낡은 창고처럼 보이는 곳에 들어서서, 차우원은 주변을 둘러봤다. 기사는 차우원을 내려 주며 ‘도련님이 내리시는 곳이 이곳이 맞냐’고 몇 번을 확인했다.
그다지 깨끗한 동네가 아니기는 했다.
이단우는 또 멍하니 차우원을 보고 있다가 자기 뺨을 찰싹 쳤다.
“……?”
그러더니 눈을 비볐다.
잠이 덜 깬 건지 표정이 멍했다. 깜빡거리는 속눈썹은 길고 까맸으며, 눈동자는 동그랗고 눈가가 붉었다.
20년 주기로 찾아오는 <종말>을, 모두가 막기 위해 움직이고 있다.
<종말>이 다가오면 성물이 발견됐고, 누군가는 ‘성물의 주인’이 됐고, 그 사람은 <종말>을 막아 냈다…….
영웅이 되어 모든 영광을 차지했다.
그 영웅들이 다수인 적은 없었다. <차문경 공격대>도 5인 팀이 아니던가?
이후 모든 길드의 공격대는 짜 맞춘 듯 정원을 5인으로 맞췄다.
현재 <이단우 팀>은 두 명이었다.
‘세 명은 더 모아야 하지 않나?’
따위의 생각을 하며 차우원은 의자에 앉았다.
창고에는 낡은 소파와 의자와, 그것도 ‘앉을 곳’이라고 치면 앉을 곳인 낮은 테이블 하나뿐이라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뺨은 발그레한데 표정은 싸늘한 귀여운 얼굴로 이단우가 말했다.
“아니. 팀원 모아야지.”
‘왔어?’라는 인사도 없다. 이단우에게 그런 상냥함을 기대하지 않아서, 차우원은 턱을 괴었다.
“봐둔 사람 있어? 이미 길드 중추에 있는 엘리트들은 빼내기 힘들 테고. 내 또래 유망주들과는 대부분 교류해 왔는데, 네 눈에 찰 정도의 천재는 본 적 없어.”
이단우는 첫 팀원으로 차우원을 골랐다.
그렇다는 건 그의 눈이 어지간히 높다는 뜻 아니겠는가?
“어. 있어. 근데 그 전에 우리 일 하나 하자.”
“무슨 일?”
“도박장을 털자.”
“……?”
차우원은 귀를 의심했다.
* * *
이단우는 보드 판 앞에 서서 설명했다.
“우리 돈 필요해.”
차우원이 손을 들었다. 그의 표정에서 돈쯤이야 내줄 수 있다는 속내가 훤히 보였다.
“얼마나 필요한데?”
물론 차우원이 부자인 건 이단우도 알았다.
‘안 어울려.’
이단우가 서 있고 차우원이 앉아서 질문하는 상황이 어색했다. 이단우는 태연한 척했다.
“네 돈은 필요 없고.”
“내가 리더 의견에 초반부터 반발하는 걸로 보이긴 싫은데, 나 대형 길드 버리고 여기 왔잖아.”
“근데?”
“리더가 도박 중독자면 곤란할 것 같다. 도박장에서 공격대 운영자금을 따자는 의견이면 나는 반대야.”
“어. 그거 아니야.”
단우는 차우원을 안심시켰다.
“팀원 구하자며? 팀원 구하러 갈 거야.”
“도박장에서? 잠깐, 도박 중독자 팀원도 그렇게 좋진 않은데…….”
“도박 중독자 팀장보다 낫잖아. 그리고 걔 도박 안 해.”
‘강울림이 무슨 도박이냐.’
과거 <차우원 팀>의 탱커 강울림은 단순한 성격의 소유자였다. 동시에 훈련 중독자여서, 임무가 없을 때는 훈련장에 틀어박혀 있는 게 하루 일과였다. 그가 도박이나 노름을 좋아하는 꼴은 상상이 안 된다.
“도박을 한 건 걔 가족이지.”
“아, 가족 문제 어렵지.”
차우원이 동의했다. 말은 그런데 이해가 됐다는 표정은 아니었다.
“근데 새로 구할 팀원 가족이 중독자인 거랑 우리가 도박장을 터는 게 무슨 상관이야?”
“걔 가족이 보증 서서 집안 망했거든. 그래서 걔 집이 빚더미에 올랐단 말이야.”
“그 빚을 갚으려고 가족들이 또 도박에 빠졌나?”
차우원이 이해를 시도했다.
“아니, 그 가족이 한 도박은 남의 빚보증 서준 거고.”
미친 게 아니고서야 남의 빚보증을 왜 서 준단 말인가?
“……?”
“그 와중에 강울림이 각성을 했거든.”
“응, 그래……. 새 팀원 이름이 울림이구나.”
“걔가 빚 갚겠다고 거기 가서 일하고 있어.”
“……?”
차우원은 잠시 생각하더니 물었다.
“빚 갚겠다고 도박장에서 일하는 애를 팀에 넣자고? 단우야, 도박이 불법인 건 알지.”
단우는 뭐가 문제인지 깨달았다.
“아, 그 도박장 불법 결투 도박장이야.”
‘몬스터랑 사람 싸우게 해서 돈 거는 데다.’
“우리가 할 건 거기 금고 털어서 강울림 빚 갚아 주는 거고. 불법적인 건 전혀 없지. 나쁜 놈들을 가난하게 만들어 준다는 데서 거의 의적이라고 할 수 있을걸.”
“……?”
강울림 쫓아다니는 빚쟁이들을 사적 제재 하겠다는 것도 아니니 이 정도면 정의롭다고 할 수 있었다.
‘그런데 사채업자 잡는 게 도덕적으로 지탄받을 일인가?’
영웅적인 행동 아닌가?
차우원의 도덕 기준은 미묘한 데가 있었다.
아무튼 단우는 쇼핑백에서 복면을 꺼내 차우원에게 하나 줬다.
“너도 써. 출발은 밤에 하자.”
차우원이 복면을 받더니 말했다.
“단우야, 나 도둑질은 처음이야.”
“아직까지 안 해 보고 뭐 했어?”
※ 본 저작물의 권리는 저작권자에게 있습니다. 저작물을 복사, 복제, 수정, 배포할 경우 형사상 처벌 및 민사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