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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인성 교육-8화 (8/170)
  • 8.

    차우원은 본가의 정자에 앉아 있었다. 차가 다 식도록 아버지는 말이 없었는데, 골똘히 정원의 연못을 내려다보는 아버지가 할 말을 속으로 고르고 있다는 걸 차우원은 알고 있었다.

    차우원은 아버지에게 어려운 아들이었다.

    왤까? 아버지를 어렵게 대한 적도 없는데.

    고민할 것도 없이, 그 이유는 가까이서 찾을 수 있었다.

    헬퍼가 차우원에게 물었다.

    “도련님, 차를 새로 따를까요.”

    “두세요. 아버지는?”

    “응, 나도 됐다.”

    헬퍼는 고개를 숙이고 물러갔다.

    차우원의 사회 경험이 그리 넓고 풍부하진 않았으나, 다른 집의 분위기도 이렇지는 않을 것이다.

    헬퍼가 먼저 묻는 대상은 아버지가 되어야 맞을 것이다. 그다음에 차우원의 의사를 물었어야 하지 않나.

    딱히 아버지가 가장이라거나 하는 구시대적 사고 때문이 아니라, 경로 우대나 월급을 주는 사람이 누구인가에 관한 문제가 아닌가 차우원은 생각했다.

    어쨌든 이 집은 그렇지 않다.

    이 집은 차문경의 집이니까.

    차문경이 죽은 지 열여덟 해가 됐어도 이 집은 차문경의 집이었다.

    차우원은 ‘영웅’ 차문경의 아들이었고, 데릴사위인 아버지는 이 집에선 외부인이었다.

    아버지 자신도 그렇게 생각한다는 사실을 차우원은 알고 있었다.

    “길드에 안 들어간다며.”

    아버지가 입을 뗐다.

    ‘아, 역시 그건가.’

    “네. 들으셨어요?”

    “아들 일인데 내가 다른 사람에게 먼저 들어야겠니? 결정했으면 말을 해야지.”

    “말씀드리려고 했어요.”

    ‘거짓말이지만.’

    차우원은 말했다. 그가 동요 없이 차분하게 상황을 설명하면, 사람들은 믿는다. 그렇다는 사실을 수년에 걸쳐 차우원은 깨달았다.

    그가 영웅의 아들이고 모두가 기대하는 천재이기 때문이다. 차우원이 그 기대를 저버린 적이 없어서, 사람들의 기대는 끝도 없어졌다.

    “왜, 당장 길드에 들어가기가 그렇던? 네가 길드장 수제자인 걸 모르는 사람이 없는데 집안 경영 소리 하기도 웃기지 않아.”

    “그런 건 아니고요.”

    “불만이 안 나왔다고? 스무 살밖에 안 된 어린애가 청연 길드를 이어받는다는 소문이 나한테도 들리던데. 쓸데없는 소리가 신경 쓰여서 그런 거라면 말을 하지 그랬어. 아무렴 그런 잡소리 하나 못 잡아 줬겠니.”

    뭐 어떻게 잡겠다는 걸까. 기자들의 입을 다 틀어막나?

    차우원은 의문이었으나 묻지는 않았다.

    “그런 문제였으면 제가 해결했겠죠. 스무 살 어린애가 청연을 이어받는대도 아무런 불만 없게 만들면 되는 거잖아요. ……스승님 자리를 빼앗을 생각은 없지만요.”

    농담이라는 의미로 마지막에 미소를 덧붙였으나, 아버지는 말 그대로 받아들인 듯했다.

    “그래. 네가 어련히 잘했겠냐만…….”

    ‘아버지한테는 내가 뭘로 보일까.’

    차우원은 한숨을 참았다.

    차문경의 환생?

    아니라면 이제 헌터증을 딴 신입이 명문 길드의 주인으로 인정받겠다는데 고개를 끄덕이고 있을 리가 없다.

    안타까운 점은 차문경을 숭배하던 많은 사람들이 차우원에게 같은 태도를 보인다는 점이었다.

    차우원이야 어릴 적 돌아가신 어머니에 대해 아무런 기억도 없었으나, 아는 사람들 눈에는 차우원이 어머니를 빼닮은 것으로 보인다지 않는가?

    뭐 어떻게 행동해야 달라 보일지도 알 수 없어서, 차우원은 주변의 기대에 따라 차문경 주니어의 삶을 착실히 살아가고 있었다.

    “아니면? 센터에서 붙잡던? 연수생으로 성의 표시한 걸로 부족하다 그래? 네가 센터에 남기를 바라는 건 아니겠지. 설마 정부 부처에 배치하겠다고 제안한 건 아닐 거야. ……뻔뻔하게. 너도 그런 소릴 들었는데 그러자고 하지는 않았을 거 아니냐! 네가 아무리 좋은 마음을 먹고 행동해도 그쪽은 그렇지 않아. 지난 <종말>에 그런 희생을 강요해 놓고, 이젠 너에게까지……. 네가 아무리 길드와 정부의 긴장 관계를 완화시키고 싶어도,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어!”

    “네. 아니에요.”

    지난 <종말>에서 정부 대처는 실망스러웠다. 길드 입장에선 그랬다는 모양이고, 아내를 잃은 당사자인 아버지는 더더욱 그랬던 듯했다. 엘리트 헌터들이 정부에 적의를 갖는 것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런 긴장 관계야 차우원은 아무래도 좋았으나, 센터에 더 남을 생각은 없었다.

    애초에 그가 센터 연수생으로 들어간 이유는 아버지와 거리를 두기 위해서였기 때문이다.

    청연의 길드장 류시환은 차우원의 검술 스승이었으나 아버지에게는 친동생이었다.

    아버지가 연락해서 ‘애 요즘 어떠니’ 물어보면 술술 대답할 만큼 입이 가벼운 사람이기도 했다.

    길드 측이 정부를 원망하는 만큼 정부에서는 길드를 껄끄럽게 여겼다. 말이 길드고 각 시의 치안을 유지하는 자경대지, 결국 국가 권력 이상의 힘을 쥐고 사적 제재를 휘두르는 집단이 아닌가?

    길드는 자치권을 휘두르는 지역의 영주이자 왕이었고 그 권한은 정부도 침범할 수 없었다.

    최초의 던전 브레이크 이후 세상은 변형된 봉건제로 뒤바뀌어 버렸다.

    ‘센터에선 좋았지.’

    아버지의 감시도 없고 자유로웠다. 그곳에서도 차우원은 차문경의 아들이었으나, 또래의 동경이나 질시야 간지럽지도 않았다. 그런 시선쯤은 차우원이 향하는 곳마다 존재하는 공기 같은 것이 아니던가?

    그러나 센터 연수생도 졸업했고 헌터증도 나왔다.

    스승님은 어서 길드로 돌아와 실무부터 구르라고 재촉하는데, 거절할 명분도 없어서 차우원은 그러겠다고 말해 둔 차였다.

    물론 스승님 외에도 차우원에게 접근하는 사람은 많았다.

    -요즘 세상이 어떤 세상입니까, 가족 경영, 뭐 이런 거는 남들 보기에도 안 좋고 그렇지 않아요? 영웅의 아들이 특혜받았다 소리 들으면 우리도 마음이 아프잖아요. 이림 길드에 들어오면 그런 논란에서 자유로운 건 물론, 공격대면 공격대, 척후대1)면 척후대, 원하는 곳에 바로 꽂아 줄 텐데…….

    ‘그것도 특혜 아닌가.’

    청연 외 다른 5대 길드 전부와 스스로 ‘10대 길드’니 ‘신성 7길드’니 하는 집단들에서도 접근했다.

    -저희 팀에 들어오셔서 이끌어 주시면 충성을 다 바치고…….

    라는 식으로, 팀장이 B등급인 공격대에서도 한 번씩 찔러보는 판이었다. 차우원은 제안을 듣는 것만으로도 졸업 시즌이 바빴다.

    “청연도 아니고 센터도 아니면 어디에 들어가게?”

    “아, 그 일 말인데요. 새로 팀을 짜려고요.”

    “뭐?”

    “젊고 반짝반짝한 신입들이 모여서 힘을 합치면 재미도 있고 활기도 차고 하지 않겠어요?”

    차우원이 싱긋 웃었다.

    잘나가는 대기업 다 버리고 스타트업 창업한다는 소리라 아버지가 기함할 건 예상하고 있었다. 그 전에 전의를 꺾어 두려는 의도에서였다.

    그런데 아버지의 반응이 이상했다.

    “그거 정말 좋구나.”

    아버지는 약간 넋이 나간 것 같았다.

    “너는 그런 점도 닮았니. 네 어머니도 젊었을 땐 스스로 공격대를 꾸렸지. 그게 청연 길드의 전신이 아니니.”

    ‘아 이런…….’

    차우원은 탄식이 나왔으나 뭐 이렇게 된 이상 어쩔 수 없었다.

    “네, 뭐, 그렇게 훌륭한 일은 못 할 것 같고요. 재미있을 것 같아서요.”

    “그래, 그래. 네가 다 알아서 하겠지.”

    아버지는 그러더니 대문 앞까지 따라 나와서 차우원을 배웅했다.

    “뭐 더 필요한 건 없고?”

    “네.”

    “공격대 거점은?”

    “알아서 하지 않을까요.”

    주체가 차우원이 아닌 말이었는데 아버지는 알아듣지 못했다.

    “그래. 자주 연락하고…… 바쁜데 무리하지는 말고.”

    “네. 아버지도 건강 조심하세요.”

    “나야 무슨 일이 있겠니. 네 소식이야 어디서든 확인할 수 있겠지만…….”

    말끝마다 넘치는 기대가 느껴질 지경이다.

    ‘어디서’가 어딘지 몰라도 그렇게 소식이 퍼지려면 무슨 활약을 해야 하는 건가?

    차우원은 쓴웃음이 나오려는 걸 참고 차 뒷좌석에 탔다.

    역시 차문경 대부터 일해 온 기사가 차우원에게 목적지를 물었다.

    “도련님, 어디로 갈까요?”

    “C시로 가 주세요.”

    차가 부드럽게 출발했다. 차우원은 턱을 괴고 이단우를 생각했다.

    차우원은 감이 좋았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을 직감적으로 알 수 있어서, 그는 주변에서 자신에게 기대하는 일들을 제가 ‘할 수 있다’는 점까지 알고 있었다.

    그리 어렵지도 않은 일이다. 해 주는 데 힘이 드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그렇게 맞춰 주다 보니 여기까지 왔다.

    사람들이 가라는 길에는 이유가 있어서, 차우원은 인생이 쉬웠다. 다 닦아 놓은 길을 걷기만 하면 됐으니까.

    차우원의 걱정은 하나였는데, 그가 <종말>을 막을 수 있을지에 대한 것이었다. 다들 차문경의 아들에게 대단하고도 막연한 기대를 품는 모양인데, 그렇게 천재였다는 차문경도 <종말>을 막느라 스스로를 희생하지 않았는가?

    차우원은 죽고 싶진 않았다.

    ‘무리한 일은 하고 싶지 않은데.’

    애초에 세상에…… 인재가 차우원 하나뿐인가?

    영웅 지망생이라면 수도 없었다. 차우원이 있던 센터에도 전국의 유망주란 유망주는 전부 모여 있었고, 그들의 목표 역시 종말을 막은 영웅이 되는 것이었다.

    그중 누군가는 성물의 주인이 될 테고, <종말>을 막을 터였다.

    뭐 차우원 대의 센터 유망주들 가운데 천재는 없었지만.

    ‘다들 실력이 영…….’

    하지만 세상은 넓었고 역시 인재는 많았다. 센터 밖으로 벗어난 순간, 차우원도 이단우를 만나지 않았는가?

    미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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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적의 형편이나 지형 따위를 정찰하고 탐색하려고 조직하던 소규모 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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