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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인성 교육-7화 (7/170)
  • 7.

    1차 신체 측정이 전부 끝났다. 시험관들은 2차 실전 대진표를 게시판에 가져다 붙였다.

    시험장 안에 설치되어 있는 여러 개의 대련장이 활성화되며 원형의 빛의 기둥이 생겼다.

    데미지 프로텍터 이펙트였다.

    이단우는 대진표를 확인했다.

    ‘77번.’

    차우원의 상대에게 다가간 이단우는 자신의 번호표를 내밀었다.

    “교환할까요.”

    “네?”

    “차우원 좋아하세요?”

    “네?”

    “차문경 아들이랑 붙고 싶어요?”

    “아, 아니요?”

    “나랑 바꿔요.”

    상대에게 자기 번호표를 쥐여 주고 이단우는 77번 번호표를 강탈했다. 그리고 차우원에게 보여 줬다.

    ‘넌 죽었다.’

    차우원은 천재적인 유망주였으나, 단우는 완성형인 그와 수백 번을 붙었다.

    6년 차 헌터가 유망주 하나 못 때려잡으면 그 자리에서 혀 깨물고 죽어야 하지 않겠는가?

    “하하!”

    차우원이 웃었다.

    이단우는 멍해졌다.

    과거에도, 차우원은 가끔 저렇게 소년처럼 웃었다. 그럴 때면 이단우는 그에게서 눈을 뗄 수 없었다. 차우원은, 재수 없고 잘생긴 놈이었다.

    이단우는 차우원의 모든 면이 싫었으나 저 얼굴만은 좋았다.

    ‘아니, 정신 차려라.’

    단우는 자기 뺨을 쳤다.

    어린애를 보고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건가?

    이단우가 생각해야 할 건 차우원을 어떻게 상대할지였다.

    ‘이 새끼를 때려눕혀야 첫 단추를 꿴다.’

    차우원은 자기가 말한 건 지키는 놈이기 때문이다.

    그가 말하지 않았는가?

    ‘이단우가 천재임을 증명하면 <이단우 팀>에 합류하겠다’고.

    단우가 여러 개소리를 늘어놨으나, 차우원이 청연 길드에 들어가면 안 되는 이유는 따로 있었다.

    ‘내가 길드에 못 들어간다.’

    청연 길드는 5대 명문 길드 중 하나로, 입사 조건부터 까다로웠다. 그중에서도 공격대는 천재들만 모이는 곳이었다.

    ‘청연 공격대 편입 조건이 B급 헌터(체이서) 이상이었나.’

    단우는 공격대는커녕 길드 입사 자체도 불가능했다.

    과거 <최후의 던전>을 공략하고, 무너지는 던전을 보면서.

    다가오는 차우원의 동생을 보며 단우가 생각했던 것은 하나였다.

    ‘이렇게 돼야지.’

    차우원이 이단우를 구하고 죽음으로써, 단우는 그의 목숨을 빼앗은 셈이 됐다.

    차우원이 살아남았다면 틀림없이 <최후의 던전> 재공략에 성공했을 것이다. 차우원은 천재였고 정말 영웅다운 사람이었으니까.

    이단우 같은, 사명감 하나 없이 ‘차우원이 결정한 일이니까’ 끌려가듯 던전에 들어갔던 그런 인물이 아니었다.

    이단우가 아니라 그가 살았다면, <종말>은 더 빨리 종식됐을 테고 더 많은 사람들이 살아남았을 것이다.

    ‘내가 <최후의 던전>을 클리어한다고.’

    클리어하고 나가서, <종말>을 막은 영웅이 된다고?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그 자리는 차우원의 것이었다.

    이단우는 차우원에게서 영웅 소리까지 빼앗을 생각은 없었다.

    ‘돌려줄 수 있어.’

    팀을 만들어서, 차우원과 <차우원 팀>의 옛 팀원들을 모아서. 그 쓸데없이 사람 좋은 놈들을 다시 모아서, 그들에게.

    그들이 가져야 마땅한 영광을, 이단우는 돌려줄 수 있었다.

    ‘그럴 수 있어.’

    그러려면 일단 차우원을 이겨야 했다.

    과거 이단우와 차우원의 역대 전적은 백 번 싸우면 이단우가 백 번 지는 수준으로…….

    ‘아니, 스무 살 차우원도 못 이기면 안 되지.’

    이단우는 벽에 이마를 박았다.

    그리고 쥐톨만 한 마력을 체내에서 회전시키기 시작했다…….

    * * *

    2차 시험은 데미지 프로텍터가 설치된 원형 경기장에서 치러졌다. 우승자를 가리는 경기가 아니라 헌터 활동이 가능한지, 실전 능력이 어떤지 확인하는 시험이기 때문에 그에 맞는 룰로 진행되었다.

    ‘일정 데미지 이상 감지되거나 응시생이 경기장 밖으로 떨어지면 시험 종료다.’

    차우원은 모르겠지만, 단우에게 더없이 유리한 조건이었다.

    애초에 지금의 이단우 상태로는 데미지 프로텍터가 걸러 내는 ‘일정 데미지’ 이상의 공격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힘 조절은 너만 해라.’

    “룰 알지.”

    “그럼.”

    차우원이 장갑을 끼며 대답했다.

    “그 정도 컨트롤은 가능하겠지.”

    “……그럼.”

    두 번째 대답은 조금 늦었다.

    “컨트롤 실패하면 그쪽이 패배한 걸로 하자. 서로 죽이자고 하는 짓도 아니고.”

    “그래.”

    둘이 보호 장비를 착용하는 동안 주변에는 구경꾼들이 몰렸다. 담당 시험관이 시험용 검을 두 사람에게 나눠 줬다.

    날이 없는 투박한 검을 앞뒤로 뒤집어 보더니, 차우원이 물었다.

    “그런데 단우야, 너 검사야?”

    ‘단우야?’

    언제 봤다고 이름을 막 부르고 있다.

    “나 뭐 들고 있는 것 같아?”

    “검이네.”

    “그럼 검사겠지.”

    차우원이 짧게 웃었다.

    “그렇네.”

    “뭔데.”

    단우는 찜찜해졌다.

    “아니, 나 검사한테 져본 게 언제인지 기억이 안 나서. 좀 오래됐네.”

    “…….”

    단우는 스무 살의 차우원도 환상적인 도발 솜씨를 지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어, 이제 금방 기억나게 될 거야.”

    “하하!”

    시험관이 호루라기를 불었다.

    차우원은 팔을 늘어뜨리고 있었다.

    ‘이 새끼가 방심을 해?’

    이단우는 차우원에게 못해도 수백 번을 맞아 봤다. 차우원의 특기는 마력 대결로…….

    이단우가 어디로 도망쳐도 갈 곳 없게 검로를 막아 두고, 하나의 길을 걷도록 강제한 뒤 쥐어패는 게 차우원이 잘하는 짓이었다.

    물론 그 짓도 준비 동작이 있었다.

    차우원의 손에 들린 검이 희게 빛났다. 단우는 심장이 다 오싹했다. 얼마나 거대한 마력이 모이는지 피부로 느껴져서였다.

    저만한 마력으로 쳐 대니 사람이 피하지 않고 맞설 수 있겠는가?

    저 검을 피하다 보면 단우는 얻어맞게 되어 있었다.

    ‘그래도 지금은 아니지.’

    차우원의 검에 빛이 견고하게 모이다가 일순간 흐트러졌다.

    “……!”

    ‘컨트롤 잘하라고 했잖아, 새끼야.’

    단우가 왜 친히 경고씩이나 해 줬겠는가?

    차우원은 명가 출신이다. 열다섯 살에 각성한 뒤 처음 받은 검이 <육예>였는데, 그건 A급 아티팩트였다.

    차우원은 형편없는 검을 써본 적이 없다.

    한마디로 자기 마력을 감당 못 하는 검을 다뤄 본 적이 없는 것이다.

    ‘더 마력 부으면 그거 깨진다.’

    단우도 아는 사실을 차우원이 모를 리 없었다. 그가 당황해서 잠시 컨트롤에 집중한 사이, 단우는 차우원의 코앞에 붙었다.

    초단거리 접전은 단우의 특기였다.

    마력도 힘도 없는 놈이 상대에게 데미지를 주려면 선택과 집중이 필요했다.

    단우가 포기한 건 중거리 베기와 몸의 안전이었다.

    그의 신체 스탯은 형편없었다. 그러나 하나 C급을 찍은 스탯이 있지 않은가?

    ‘민첩.’

    그의 주무기는 레이피어로, 검 끝에 모든 마력을 때려 부어 상대를 수십 번 꿰뚫어 절명시키는 게 단우의 시그니처 스킬이었다.

    그렇다고 알려져 있었다.

    ‘스킬 같은 소리 하네.’

    단우는 이를 악물었다.

    깡스탯을 퍼부어 팔과 검에 마력을 모으고, 단우는 차우원의 가슴을 찔렀다.

    쾅!

    차우원이 막아 냈다!

    ‘그럴 줄 알았어.’

    그러나 차우원의 검은 아니었다.

    쾅, 쾅, 쾅!

    단우는 쉴 틈을 주지 않고 달라붙었다. 그가 노리는 건 차우원이 아니었다.

    챙……!

    고막이 아닌 온몸을 울리는 소리와 함께 차우원의 검이 산산조각 났다.

    “헉…….”

    구경꾼들은 입을 다물었으나 단우는 저게 자신의 솜씨가 아님을 알고 있었다.

    ‘차우원의 마력을 검이 감당 못 했다.’

    공격을 막으려고 순간 마력을 끌어 올린 것이다. 저 조악한 검이 그만한 마력을 견뎌 내겠는가?

    검을 잃은 차우원의 턱밑에 검을 겨누고, 단우가 말했다. 폐가 터질 듯 펌프질했다.

    “오늘 며칠이야.”

    “……1월 7일?”

    차우원은 무심결에 대답했다.

    단우는 온몸으로 아드레날린이 달렸다. 마력은 텅 비어서 구역질이 나는데, 그 꼴을 내보일 순 없었다.

    ‘와.’

    입을 열면 탄성이 나올 것 같다. 동시에 헛구역질도 나올 것 같아서 헐떡이는 숨을 참고 있는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 말을 어떻게 참겠는가?

    “언제 져 봤는지 기억 안 난다며. 이제 기억하겠네.”

    “하…… 하하…….”

    차우원이 웃었다. 허탈한 듯 어깨를 떨더니, 손잡이만 남은 검을 던져 버리고 웃음을 터뜨렸다.

    “와!”

    그가 말했다. 단우는 숨도 못 쉬고 그를 쳐다봤다.

    “와! 나 동갑한테 져본 거 처음이야.”

    “……처음인 적 많아서 좋겠네.”

    단우는 멍청하게 말했다. 차우원에게서 눈을 뗄 수 없었다.

    단우의 반응에는 아랑곳하지도 않고 차우원이 크게 웃었다.

    “그러게. 가슴이 두근거리네.”

    단우는 압도당했다.

    ‘차우원이 지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단우는 늘 궁금했는데 본 적이 없었다.

    단우가 지는 건 일상이라 늘 씨근덕거리고 열받은 기억밖에 나지 않는데, 차우원이 졌다.

    스무 살의 차우원이 웃고 있었다. 너무 신기하고 이상하다는 듯이. “와…….” 하고. 연신 감탄하며, 단우와 눈을 마주치면서.

    ‘얜 어떻게 이러지?’

    단우는 차우원에게 질 때마다 울 것 같았다.

    그에겐 재능이 없고, 그는 부모님의 시신을 가져올 수 없으며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확인을 되풀이해서 받는 기분이었다.

    비참하고 속상해서 차우원이 미웠는데, 차우원은 웃고 있었다.

    차우원은 이단우와 근본적으로 다른 인간이었다.

    이래서 단우는 차우원을 미워했고 또 동경했다.

    차우원은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자신에게 압도당하도록 만드는 인간이었다.

    과거 <차우원 팀>에 들어간 것에 이단우의 의지는 없었다. 그러나 <종말>이 시작되고 차우원이 <최후의 던전> 공략을 준비했을 때, 이단우는 아무 의문 없이 따랐다.

    차우원이 <종말>을 종결할 거라고 믿었기 때문에.

    차우원은 이단우조차 그렇게 만드는 인간이었다.

    하지만 단우는 미래를 알고 있었다.

    차우원은 <최후의 던전>에서 죽어 버릴 거고 이단우에게 빌어먹을 성검이나 쥐여 준 채 던전 밖으로 내보낼 것이다.

    ‘아니.’

    차우원은 그렇게 안 될 터였다.

    이단우가 미래를 바꿨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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