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차우원이 남의 페이스에 휘둘리고 있다. 미래에선 결코 볼 수 없는 일이었고, 그래서 단우는 참을 수 없었다.
‘과거다.’
저런 얼빠진 차우원은 이단우의 창의력으론 도저히 상상할 수 없었다. 이건 현실이었다.
과거로 돌아온 사람들이 보통 뭘 바라겠는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크게 두 가지로 나뉘지 않겠는가?
성공하는 것. 과거의 후회를 반복하지 않는 것.
이단우의 인생은 후회의 연속이었는데, 그중 가장 큰 후회를 몇 개 추리자면 그 안에 전부 엮여 있는 사람이 있었다.
그게 차우원이었다.
쓸데없이 사람 좋고 사명감 있고, 남의 말은 들어 처먹질 않아서 나중에 <최후의 던전>에서 죽어 버릴 이 자식이, 이단우의 가장 큰 후회였다.
‘바꿀 수 있지 않나?’
이단우는 심장이 너무 떨려서 숨이 막혔다.
‘내가 이놈한테 빼앗은 걸 돌려줄 수 있지 않나?’
* * *
경찰차가 시험장에 도착했다.
“두 분, 연락드릴게요!”
“시험 잘 치세요.”
“화이팅입니다!”
뭐라 응원하는 경찰들의 말을 무시하며 단우는 시험장 안으로 들어갔다. 주변이 웅성거리고 시선이 느껴지고, 시험관이 또 뭐라고 하는데 그런 건 아무래도 좋았다.
구석에 선 단우는 벽에 머리를 대고 생각했다.
‘차우원은 이 시험을 통과하고 헌터가 되자마자 청연에 들어간다.’
그리고 길드 공격대 소속으로 활약하다, 훗날 <최후의 던전>이 열렸을 때 그 안에서 죽어 버릴 터였다.
<최후의 던전>은 수백인지 수천인지 모를 헌터들의 무덤이 됐는데, 그 안에서 살아 나온 사람은 이단우 혼자였다.
클리어한 팀도 <이단우 팀> 하나뿐이었다.
애초에 그 던전은 처음 들어간 사람이 깨기 힘든 구조였다. 기본적인 던전의 상식을 파괴하는 함정이 깔려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 함정은 차우원 같은 인간에게는 더더욱 치명적이었다. 그렇다고 살아 나오는 것도 거의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개미지옥이라고 할 수 있었다. 거기 빠져 죽는 건 개미가 아니라 인간이었지만.
생각해 보자…….
‘두 가지 방법이 있다.’
이단우는 벽을 노려보며 생각했다.
1. 차우원이 <최후의 던전>에 못 들어가게 막고, 이단우가 알아서 <최후의 던전>을 잘 깬다.
이 경우 차우원을 어떻게 <최후의 던전>에 못 들어가게 만들 거냐는 문제가 있었다.
이 훌륭한 놈은 <종말>이 시작되자마자 그걸 막기 위해 자기를 내던질 놈이기 때문이다.
‘사지를 부러뜨려?’
힐러는 장식으로 있나?
차우원이라면 그런 짓을 저지른 이단우의 사지를 구체관절인형으로 만들어 주고, 본인은 힐을 받아 <최후의 던전>에 들어갈 것이다.
애초에 차우원을 습격하는 짓 자체가 목숨을 건 행동이었다.
‘한 백 명쯤 끌고 가서 습격해?’
그게 된다면 차우원은 ‘인류의 희망’ 취급을 받지도 않았을 것이다. 애초에 차우원을 습격하자는 말에 백 명이 모일 리가 없다!
2. 차우원을 데리고 이단우가 함께 <최후의 던전>을 깬다.
지금의 이단우는 공략법을 알고 있고, 차우원은 몇 년 뒤 성검의 주인이 될 터였다.
‘성검의 주인’, ‘인류의 희망’ 차우원이, 이단우의 공략법에 따라 주기만 한다면 그들은 문제없이 <최후의 던전>을 깰 터였다.
차우원이 이단우의 공략법에 따라 주기만 한다면.
‘…….’
스물여섯 살의 차우원은 독재자였다. 귓구멍이 막혀서 이단우의 말 따위는 눈도 깜짝 않고 무시했다.
그러나 지금의 차우원은 뇌가 말랑말랑한 어린애였다.
길드에 들어가서, 엘리트 공격대의 팀장이 돼서, 자기 명령에 한 마디도 토 달지 않는 인간들에게 둘러싸여 성장한 그 차우원이 아니었다.
‘그렇게 하자.’
단우가 결심한 사이 1차 시험 순번이 한 바퀴 돌았다. 헌터 시험은 1, 2차로 이루어졌는데, 1차에서는 신체 스탯을 측정했고 2차에서 실전 능력을 평가했다.
신체 스탯은 바닥인데 스킬 하나로 먹고사는 헌터도 많았기 때문에, 1차 결과는 시험관들도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이단우도 신체 스탯을 측정했다.
‘…….’
쇠공을 들어 올리는데 1센티도 위로 뜨지 않았다.
“……?”
기계가 결과를 알렸다.
[근력 F]
시험관이 안경을 벗고 눈을 비비더니 다음으로 넘어가려는 단우를 붙잡았다.
“그거 한 번 더 들어 볼래요?”
“결과 맞는데요.”
“……?”
단우는 높이뛰기와 달리기, 마지막 마력 측정을 마치고 기계에서 팔을 뺐다.
[마력 F]
과거와 한 치도 변함없는 결과가 나왔다.
단우는 스스로가 대견할 지경이었다.
‘이 스탯으로 잘도 헌터가 되겠다고 생각했군.’
마지막 시험관은 ‘쟨 여기 왜 왔지’라는 표정이었다.
‘마력 F랭크가 진짜 헌터가 되겠다고 찾아온 건가? 아니면 헌터 시험을 한번 쳐 봤다는 위안이라도 느껴 보고 싶었나?’
뭐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터였다.
신체 스탯이 바닥이어도 스킬로 먹고살려면, 그 스킬을 쓸 마력이 있어야 했다.
마력 스탯 측정이 마지막 순서였기 때문에, 마지막 시험관은 단우의 전체 스탯을 확인할 수 있었다.
‘아무래도 좋고.’
그를 지나치며 단우는 시험장을 둘러봤다. 그리고 곧장 차우원에게 다가갔다.
차우원은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었다. 약간 거리를 두고 주위에 서 있는 놈들이 그의 추종자라는 사실을 단우는 알고 있었다.
차우원이 나서서 ‘나를 모셔라’ 하는 성격은 아니었는데, 그의 주변에는 이상하게 그를 추종하는 무리가 꼭 생겼다.
‘근데 쟨 왜 저기 있냐.’
사촌 김지규가 차우원 근처에 어정거리고 있었다.
알 바 아니었기 때문에 단우는 차우원에게 다가갔다. 차우원이 막지 않자, 주변에 있던 추종자들은 두 사람이 편하게 대화할 수 있게 거리를 벌렸다.
단우는 헛웃음이 나올 것 같았다. 이 광경을 또 얼마 만에 본단 말인가?
“차우원.”
차우원의 눈이 동그래졌다.
“내 이름 아네.”
‘당연하지…….’
단우가 무슨 수를 써야 차우원을 잊겠는가? 한순간이라도 차우원을 생각하지 않는 하루를 보내고 싶어, 단우는 뭐라도 했다.
그 시도는 성공한 적이 없었다.
단우가 웃으며 말했다. 웃는 낯에 침 뱉는 놈은 없는 법이니까.
“나랑 팀 짜자.”
“……?”
“너 길드 들어갈 거지.”
“그렇긴 한데…….”
“들어가지 마.”
차우원의 표정이 오묘해졌다.
‘근데 너 뭐 하는 새끼인데 아까부터 명령이야?’라고 하지 않는 데서 차우원의 인성이 보였다.
어린 차우원은 말랑말랑하고 인내심이 좋다.
“나랑 공격대 만들자. 소속 없이, 천재들만 모아서 소수 정예로. 목표는 <종말>을 막고 <최후의 던전>을 깨는 거야.”
“난 네가 나 마음에 안 들어 하는 줄 알았는데.”
‘……?’
둘은 아직 개처럼 싸운 적도 없는데 이단우가 왜 차우원을 마음에 안 들어 한다고 생각한단 말인가?
“내가 왜? 내 팀에 처음 넣을 사람은 무조건 너라고 생각해 놨는데.”
“아, 진짜? 안 그래 보이던데.”
차우원이 온화하게 말했다.
“그런데 난 들어갈 길드가 정해져 있어서. 제안은 고마워. 네가 날 높이 평가해 주는 줄은 몰랐네. 기쁘다.”
‘기쁜 거 맞냐.’
누구에게나 할 만한 대답으로 거절하고 있다.
하지만 단우는 실망하지 않았다. 차우원 같은 유망주에게 한두 길드가 접근했겠는가? 센터에서도 잡으려고 기를 썼을 것이다.
‘계약금이든 뭐든 불러 댔겠지.’
그러나 차우원이 넘어갈 리 없다.
차우원의 목적은 그런 세속적인 데 없기 때문이다.
이단우는 차우원을 알았다.
‘20여 년 주기로 돌아오는 <종말>.’
“너 <종말> 막고 싶잖아.”
“……?”
“그럼 길드 들어가면 안 되지.”
“잠깐……. 반대잖아. 막으려면 길드에 들어가야지. 5대 길드에는 이전 <종말>을 겪어 온 영웅들이 있잖아. 이미 경험한 사람들이 다음 <종말>을 대비할 수 있겠지.”
차우원은 고결하고 책임감 있는 성격이다. 그림으로 그린 듯한 영웅이었는데, 이단우는 예전부터 그런 놈들을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차우원의 논리가 이렇게나 확고하다는 건 고무적인 지점이었다.
저 논리를 깨면 설득된다는 소리 아닌가?
“아니, 아니지. 우리가 해야지. 그 사람들은 너무 늙었잖아.”
“…….”
“지금도 길드에 이름만 걸어 놓고 활동도 안 하는데, 그 사람들이 뭘 대비해? 그리고 그 사람들이 제 역할을 했으면 이전 종말은 그 사람들이 막았겠지. 근데 못 막았잖아. 성물을 가진 영웅이 자신을 희생해서야 막아 냈잖아? 기존 길드는 답 없어.”
이단우가 말한 ‘성물을 가진 영웅’은 차우원의 어머니였다.
그래서 차우원이 ‘영웅의 아들’이라고 유망주 시절부터 기대를 한 몸에 받아 온 것이다.
‘죽은 어머니 입에 올렸다고 화낼 놈은 아니다.’
그러려면 ‘영웅의 아들’ 소리를 들을 때마다 화내야 하지 않겠는가?
차우원의 입이 벌어졌다.
그러더니 미간을 좁히고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가 팔짱을 끼더니 단우를 봤다.
“그럴듯하다.”
‘그렇지.’
“근데 나 네가 천재인지 모르겠는데. 네 계획에 따르자면 천재들만 모아서 <종말>을 대비해야 하잖아?”
이단우는 차우원의 멱살을 쥘 뻔했으나 참았다.
“아니, 알게 될걸.”
“어떻게?”
차우원의 얼굴에 가벼운 미소가 돌았다. 저 무뚝뚝하고 여유로운 놈이, 이단우를 열받게 할 때만 실실 웃어서 이단우는 열불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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