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어쨌든 범죄자의 변명을 듣는 건 단우의 취향이 아니었다. 단우는 강도의 머리를 걷어차 입을 다물게 했다.
“아.”
기절한 강도를 차우원이 내려다봤다.
“넌 뭘 들어 주고 있는 거야?”
“……아픈 줄 알았는데.”
“내가 뭐 진짜 아팠으면, 강도 ATM기 돼서 나 병원이라도 보내 주게?”
“그것도 나쁘지 않지. 안 아파서 다행이다. 각성자였구나. 아까는 왜 울었던 거야?”
차우원이 성격 좋게 물었다.
이단우는 할 말이 없었다.
‘원래 가끔 정신이 나가.’
그렇게 말할 순 없지 않은가?
“신경 꺼.”
“…….”
어린 차우원이 놀란 얼굴로 단우를 쳐다봤다.
‘성격 뭐지.’
그렇게 생각하는 게 눈에 보였다.
다 큰 차우원은 단우의 말투 따위에는 일일이 놀라지 않았다. 그러기에 둘은 너무 자주 붙어 있었다.
단우는 심장이 두근거렸다.
‘뭐야.’
차우원이 너무 어렸다.
단우가 버스에 오르면서 막연히 상상했던, 다시 만난 차우원은 이런 ‘차우원’이 아니었다. 어린 차우원은 단우가 알고 있는, 이미 완성되어 조금의 틈도 없는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
때마침 경찰이 출동해서 단우는 곤란을 면했다.
경찰들이 말했다.
“와, 어린데도 대단하네요. 두 분이 타고 있어서 다행이었어요. 이 사람 미등록 각성자인 것 같은데요. 기록 조회해도 안 나와요. 작정하고 범죄 저지르려던 사람인데 두 분이 막아 낸 거예요!”
“근데 이 사람 왜 기절했냐? 마력 과용인가?”
“…….”
“앗, 두 분. 죄송한데 서로 가서 도움을 좀 주실 수 있을까요? 시간 오래 안 빼앗겠습니다. 표창장도 나올 거예요! 용감한 시민상 같은 거요. 개학해서 학교 가면 교장 선생님이 훈화 시간에 칭찬도 해 주실걸요.”
“잠깐 시간 좀 내주시면……. 두 분 어디 가시던 길이셨어요?”
경찰 한 명이 핵심을 물었다.
이 시간에 센터행 버스에 타고 있던 각성자 두 명이 어디 가는 길이었겠는가? 차우원도 그렇게 생각했는지, 단우에게 묻지도 않고 경찰에게 대답했다.
차우원이 대답했다.
“사실 저희 헌터 자격 시험 치러 가던 길이었는데요.”
“헉.”
“시험 몇 시예요?”
“지각 아니에요?!”
“빨리 타세요!”
“안 돼, 이번에 놓치면 일 년 재수잖아요!”
경찰들이 더 호들갑을 떨어서 이단우는 경찰차 뒷좌석에 앉게 됐다. 기절한 강도는 마력 구속구에 손목이 묶인 채 차 문 쪽에 매달렸다.
강도를 잡았대도 어쨌든 차우원은 시민인데, 뒷좌석에 같이 앉혔단 말인가?
각성자가 마력 구속구를 착용하면 행동 불능이 되긴 하지만…….
‘차우원이 경찰차에서 내릴 때는 귀빈 대접 받는 것 같았는데.’
앞좌석과 철창으로 가로막혀 있어서 이건 무슨 범죄자가 된 기분이다. 옆자리에 붙어 앉은 차우원은 어떤가 봤더니 역시 별로 편해 보이지 않았다.
단우는 기분이 이상했다.
“시험장 어딘가요!”
“C시 A동 1센터요.”
차우원이 대답하더니, 단우에게 고개를 기울였다.
“나 경찰차 처음 타봐.”
‘난 타 봤겠냐.’
“어.”
단우는 차우원이 저런 소리를 하는 게 그냥 이상했다. 20대 초반 남자애 같지 않은가?
“연행되는 것 같은데. 시험장 도착하면 무슨 일 난 줄 아는 거 아냐?”
“알 게 뭐야.”
“…….”
차우원은 과거에도 차우원이었다.
‘영웅’ 차문경의 아들, 시그니처 스킬 <검의 주인(S)>의 각성자, 천재, 청연 길드장의 수제자. 그에게 달린 수식어들이었다.
본인 자체가 사건이라 뭘 하든 화제가 됐는데, 저런 소리를 하는 게 역시 이상했다.
어린 차우원이 단우를 빤히 봤다.
단정하니 별 표정 없는 얼굴이었지만 단우는 저 얼굴을 매일 봐 왔다. ‘진짜 얘 뭐지…….’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쯤은 눈 감고도 알 수 있었다.
경찰들이 물었다.
“그러고 보니, 두 분 이름도 안 여쭤봤네요. 성함이 어떻게 되세요?”
“연락처만 남겨 주시면 저희가 시험 끝나고 연락드릴게요. 아니다, 저희 연락처도 드릴까요!”
“넌 일 귀찮게 만들지 말고. ‘버스 강도 잡아 주신 용감한 시민분’이라고 저희가 기록을 해 놓겠습니다. 시험 끝나고 내일 연락드리면 증언 가능하시죠? 시험장 도착하면 바로 내려 드려야 하니까, 넌 빨리 받아 적어.”
“네, 선배! 두 분 성함 알려 주세요!”
후배 경찰이 수첩을 들었다.
“아. 전 차우원이고요.”
“이단우요.”
운전하던 선배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 두 분 친구십니까? 관계가 어떻게 되시는지…….”
“차우원과 이단우, 차……우원과…… 차우원?”
받아쓰던 후배가 뒤를 돌아봤다.
“차우원? 차문경 아들?!”
“……차문경 아들이세요? 센터 연수생 유망주 랭크 1위 차우원?”
“맞잖아요! 올해 자격 시험 치러 가는 차우원!”
“아니, 넌 그만 호들갑 떨고…….”
‘앞이나 봐라.’
그들이 자꾸 뒤를 돌아봐서 단우는 신경이 곤두섰다. 차 사고에 차우원이 어떻게 될 리는 없겠지만, 저 인간들은 공무원들이 무슨 전방 주시도 안 한단 말인가?
“그래서 강도를 잡으셨구나! 위험할 일이 없었네요! 아, 차우원 헌터! 아니, 차우원 씨? 차우원 님! 저희 쪽에 와 주신다는 게 사실이에요? 센터 들어오실 거예요?”
“차우원 씨가 왜 센터를 들어와. 공무원 월급 박봉에 일만 많이 시키고 욕만 배 터지게 먹는데. 하도 욕먹어서 살기는 이백 살까지 살걸. 그 전에 스트레스로 죽을지도 모르지만…….”
“아, 선배! 센터 들어오라고 설득하셔야 하는 거 아니에요? 지금 무슨 말씀 하시는 거예요?”
경찰들이 다퉈서 차우원이 정리했다.
“센터 안 들어가요.”
“아, 역시…….”
경찰이 탄식했다.
“그럼 청연 들어가시겠네요.”
“저 청연 길드장님 팬이에요! 혹시, 괜찮으시면 나중에 사인이라도 한 장…….”
“네. 길드장님 사인받아서 진술하러 갈 때 드릴게요.”
차우원은 귀찮아하지도 않고 말했다.
원래 그런 놈이었다.
후배 경찰은 뻗을 곳을 보고 발을 뻗었다.
“아! 길드장님 사인도 좋지만, 차우원 님 사인이요!”
“제 사인을 받아서 뭐 하시려고요.”
“그야, 가보로 간직해야죠!”
차우원은 조금 웃는 듯하더니 말했다.
“네, 드릴게요.”
“옆에 분은 친구십니까? 이단우 씨?”
“같은 센터 연수생이신가 보다. 당연히 유망주시겠죠! 몇 년 안에 랭커로 활약하실 텐데, 저희가 지금 사인을 받아 놔야…….”
“연수생 아닙니다.”
경찰들이 뒤늦게 관심을 줘서 단우는 끊어 냈다.
그리고 생각했다.
‘진짜 뭐지?’
“아, 그렇구나. 길드 소속 수련생이시구나!”
“아닌데요.”
“어…….”
“둘 다 떨어졌고 그냥 민간인입니다.”
“어어…….”
‘센터 연수생이나 길드 수련생은 아무나 되는 줄 아나.’
정부나 길드에서 선점한 유망주라는 건, 후에 랭킹 100위 안에 들어갈 대단한 재능의 소유자라는 뜻이었다.
이단우는 턱도 없었다.
“떨어졌다고?”
차우원이 다시 물었다.
이단우는 이 피부 보송한 차우원이 자기가 몇 살인 줄 알고 친근하게 구는지 의아해졌다.
“어. 근데 왜 반말이야?”
차우원이 멈칫하더니 태도를 바로 하고 물었다.
“나이가 어떻게 되세요?”
‘스물일곱이다.’
라고는 말할 수 없어서 단우는 잠시 침묵했다.
“스물인데.”
“……동갑이잖아?”
그야 보통 각성자라면 성년이 되자마자 헌터증을 따러 가지 않겠는가?
차우원이 이단우를 스무 살로 보고 반말한 건 당연한 추측의 결과라 할 수 있었다.
물론 스무 살 차우원에게 반말을 듣는 이단우의 기분은 여전히 이상했다…….
“혹시 연수생 시험 인성 평가에서 떨어졌어?”
차우원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이단우는 무시하고 그의 팔을 잡았다.
“……?”
차우원의 맥박이 뛰고 있었다. 이단우는 차우원의 가슴을 짚었다.
“……!”
차우원이 이단우의 팔목을 잡았다. 그러나 밀어 내지는 않았다.
손바닥으로 펄떡펄떡 뛰는 심장이 느껴졌다. 폐가 숨을 쉬며 부풀고 꺼져서, 단단한 늑골이 함께 움직이는 감각까지 온몸으로 느껴졌다.
단우는 차우원의 얼굴을 감쌌다.
두 손으로 뺨을 붙잡고 쳐다보자, 눈앞이 뿌옇게 번졌다.
-이단우, 나가. 이 검 들고, 뒤돌아보지 말고, 이번에는 내 말 듣기로 했잖아.
그렇게 말하던 단단한 얼굴은, 솜털이 보송보송해서 부드럽고 따듯했다.
“저기, 죄송한데 저희 병원부터 가야 할 것 같은데요.”
차우원이 앞을 보고 말했다.
“네? 부상 있으세요? 지금 돌리면 시험 늦을 텐데……!”
“눈에 보이는 외상은 없었는데, 어디 어지러우세요?”
경찰들만큼이나 단우도 심장이 덜컥했다.
“너 어디 아파?”
“아니, 아픈 건 너잖아…….”
차우원이 단우의 얼굴을 훔쳐 냈다. 그리고 난처한 듯 물었다.
“왜 자꾸 울어?”
‘내가 처우는 건 원래 그렇고.’
차우원의 손이 따듯했다.
‘네가 살아 있잖아.’
살아 있는 차우원의 손이었다. 부드럽고, 피가 말라붙어 있지도 않고, 차갑고 딱딱하지도 않고……. 단우를 만져 줄 수 있는 손이었다.
그런 소리를 할 순 없었다.
“신경 꺼. ……저희 아픈 데 없으니까 시험장 가 주세요. 진짜 지각할 것 같은데요.”
단우는 시계를 봤다.
심장이 계속 뛰었다.
선배 경찰이 물었다.
“정말 괜찮은 거 맞으세요? 안 괜찮으신데 내려드리면 저희도 안 괜찮아지거든요.”
“강도 잡아 준 시민분 방치했다고 방송이라도 타면 저희 감봉 아니에요?”
“그게 차우원 씨라는 거 알려지면 감봉으로 끝나겠냐? 그리고 뒤에 다 들려, 너 좀 조용히 말해……!”
경찰들이 소리 낮춰 싸우는 소리가 들렸다.
차우원은 뭐라 할 말을 잃은 듯했다.
그 이유가 단우가 여전히 차우원 얼굴을 잡고 있어서인 것 같아서, 그는 손을 내렸다.
그리고 생각했다.
‘진짜 7년 전이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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