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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인성 교육-4화 (4/170)
  • 4.

    “입 열지 마! 신고하는 순간 다 터지는 거야! 전화기 바닥에 던져! ……기사! 운전 똑바로 하고! 밖에서 이상하다는 거 알아채기만 해봐, 누구부터 죽을 것 같아!?”

    남자가 외쳤다. 그가 식은땀을 흘리고 있어서 승객들은 창백해졌다.

    남자가 말할 때마다 에너지 볼이 부풀었다 작아졌다를 반복했다. 강도도 해본 놈이 잘하는 법인데 이놈은 초짜였다.

    ‘강도 해결하고 시험 치러 간 거였냐.’

    단우는 사태를 파악했다.

    그래서 경찰이 차우원을 시험장까지 태워다 줬던 것이다.

    차우원이 입장할 때 시험 시작 시간이 아슬아슬하긴 했었다.

    헌터증도 안 나온 놈이, 중요한 시험 앞두고 강도 잡기나 동참하고 있었던 것이다.

    ‘용감하다고 해야 할지 무모하다고 해야 할지…….’

    그냥 차우원다웠다.

    “하…….”

    다시 웃음이 나올 것 같아서 단우가 얼굴을 가리는데, 차우원이 한 손을 단우의 무릎에 올렸다.

    단우는 굳었다. 눈만 크게 뜨고 차우원을 보자 그가 부드럽게 말했다.

    “괜찮아. 아무 일도 없을 거야.”

    “…….”

    “내가 해결할게.”

    “……?”

    낮고 온화한데도 힘 있는 말투였다. 누구라도 저런 말을 들으면 ‘그렇구나, 쟤가 해결하겠구나’ 믿게 될 것이다.

    단우는 아니었다.

    ‘아니, 아니지.’

    차우원의 말투가 너무 다정해서 정신이 확 들었다. 단우가 아는 차우원이라면 지금 이렇게 말하고 있어야 했다.

    -우리 단우 운이 좋네. 실전 경험도 하는데 옆에 내가 있어서 다치지도 않겠다. 그렇지, 단우야.

    -너 없어도 안 다치거든?

    -그건 좀 생각을 해 봐야겠다.

    단우를 열받게 하는 게 차우원 삶의 의미 아니었던가?

    물론 아니었겠지만. 의도 없이 사람을 열받게 한다는 점이 차우원의 정말 짜증스러운 점이었다.

    어쨌든 차우원은 좋은 놈이었다. 헌터 자격이 있든 없든, 눈앞에 강도가 있고 누가 다칠 것 같으면 앞으로 나서는 놈이었다.

    어린 차우원이라고 그 점은 다르지 않았다.

    “너 뭐야! 뭐 하느라 얼굴 가리고 있어! 손 들라고 했잖아!”

    남자가 소리쳤다.

    그와 눈이 마주쳐서 단우는 깨달았다.

    ‘나한테 하는 말이었군.’

    차우원이 두 손을 들고 공손히 말했다.

    “죄송합니다. 제 친구인데, 몸이 안 좋아서요. 아까부터 계속 구역질을 하면서 아파하고 있어서요. 친구만 내려 주시면 안 될까요.”

    ‘되겠냐.’

    단우는 차우원의 순진한 대처가 놀라웠다.

    “내가 말하지 말라고 했지!”

    “돈이 필요하신 거면, 지금 제 지갑을 드릴게요. 다른 분들 현금 빼앗는 것보다 제 지갑을 가져가시는 편이 더 쉽고 괜찮으실 거예요. 액수 확인해 보시고, 부족하면 가까운 ATM기에서 뽑아 드릴게요. 지갑 받고, 확인하시고, 같이 내리시는 게 어떠세요? 그냥 평범한 승객처럼. 아무도 신고 안 할 거예요. 제 친구만 병원에 데려다주고 싶어서 그래요.”

    차우원의 목소리는 차분해서 듣는 사람까지 침착하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식은땀을 흘리며 자기가 하는 짓에 스스로 겁을 집어먹고 있던 강도도 그랬다.

    “너! 지병이야?”

    그가 갑자기 단우에게 물었다.

    ‘알아서 뭐 하게.’

    저놈이 의사인가?

    “너, 너 그러면…… 지갑 내놔! 아니, 휴대폰부터 버리고! 다른 짓 하기만 해봐! 내가 지갑 확인하면서 스킬 못 쏠 것 같아?”

    “아니요. 아니에요. 지갑 드릴게요. 그쪽으로 건너가서 드릴까요? 아니면 던질까요.”

    강도보다 차우원이 더 차분한 그 꼴을, 이제는 승객들도 차분해져서 지켜봤다.

    다들 긴장해서 심장이 쿵쾅쿵쾅 뛰는 와중에도 이 사태가 잘 해결되리라는 기대를 하고 있었다. 차우원 지갑에 거금이 들어 있기를 모두가 바랐다. 모르긴 몰라도 아마 강도가 가장 바라고 있으리라.

    물론 이단우는 지갑에 거액이 들어 있으리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강도의 예상을 뛰어넘는 금액일 것이다.

    “던지지 마! 던지기만 해봐! 내가, 내가…… 그리로 갈 테니까. 너 거기 가만히 있어!”

    “네.”

    “가고 있으니까!”

    단우는 고개를 숙인 채 강도가 가까워지는 모습을 지켜봤다. <에너지 볼>이 강도의 움직임을 잘 따라가지 못해 위태롭게 허공에서 흔들렸다.

    어설프고 위험했다. 강도가 조금만 컨트롤을 잃어도 이 버스는 날아갈 것이다.

    이따위 폭발에 차우원은 죽지 않는다. 각성자는 죽지 않는다. 그러기엔 <에너지 볼>의 마력량이 적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은 죽거나 그에 준하는 중상을 입을 터였고, 차우원도 그걸 걱정하고 있을 터였다.

    가까워진 강도의 신발이 바닥에 처박힌 단우의 시야에 들어왔다.

    “이제, 손만 뻗어! 지갑만 내미는 거야! 한 손만 써서!”

    “네.”

    차우원은 망설임 없이 품에서 지갑을 꺼내 내밀었다.

    그는 자신의 지갑 따위는 줘도 상관없다고 생각할 터였다.

    ‘어쨌든 이곳에 있는 사람들을 구한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겠지. 강도를 잡는 건 차우원에게 그다음의 일이다.

    ‘일단 나가게 두고 지 혼자 쫓아가서 잡겠지.’

    단우는 차우원의 다음 행동도 예측할 수 있었다.

    차우원은 그런 놈이기 때문이다. 남을 먼저 생각한다.

    하지만 단우는 아니었다.

    “고개 숙여.”

    차우원은 옆에서 들리는 말에 바로 반응했다.

    우수한 헌터라면 마력에 예민하게 반응한다.

    마력은 위협, 헌터에게 해를 입힐 수 있는 힘이기 때문이다.

    마력이 담긴 목소리를 차우원은 무시하지 않았다. 그가 고개를 숙였고, 단우의 두 손이 <에너지 볼>을 덮었다.

    파지지지직!

    ‘……!’

    연기와 함께 손이 익는 듯한 냄새가 났다. 비명이 절로 나올 지경이었다.

    ‘착각이다.’

    단우는 이를 악물었다. 그의 마력이 손을 보호하고 있었다.

    과거로 돌아오며 단우의 스킬도 스탯도 모두 초기화됐다. 지금 그는 아무것도 아닌 E급 이하의 각성자였다. 객관적인 스탯으로는 그렇게 측정되겠지만.

    그에게는 수도 없이 마력을 다뤄 온 경험이 있었다.

    그의 손가락 사이로 빛이 터져 나왔다. 마치 양손으로 빛의 구를 구기는 듯했다.

    화악!

    단우가 처음부터 A급 헌터였던 건 아니었다.

    그는 마력 F급의 일명 ‘폐급’이었다. 그 상태로 일꾼 취급 받는 E급 헌터부터 시작했다.

    그건 그에게 마력이 전혀 없으며, 헌터로서의 재능도 무엇도 없다는 의미였다.

    단우에게는 시그니처 스킬조차 없었다.

    ‘있는데 개화를 못 한 거였지만.’

    그게 그거였기 때문에, 단우는 다른 헌터라면 절대 시도하지 않을 짓을 할 수 있었다. 스킬 없이 마력을 직접 사용하는 짓이었다.

    어쨌든 헌터 활동을 해야 먹고살지 않겠는가?

    남들이 안 하는 짓에는 이유가 있어서, 단우는 수십 번쯤 죽을 뻔했다.

    그러나 죽진 않았고, 살아남은 단우는 쥐꼬리만 한 마력을 직접 운용할 수 있는 E급 헌터가 됐다.

    과거로 돌아와 모든 스탯과 스킬을 잃은 지금도 단우의 쥐꼬리만 한 마력은 잘 움직였다.

    “뭐, 뭐야!”

    강도가 팔을 휘둘렀다. 단우는 피하려는 시도도 하지 않았다.

    강도가 단우를 치기 전에, 차우원은 강도의 팔을 꺾어 제압했다.

    쾅!

    ‘그럴 줄 알았다.’

    차우원은 머리도 좋고 눈치도 빠른 놈이었다. 사실 성격도 좋아서 주변에 추종자가 가득했다. 단우에게 하는 꼴만 제외하면 그가 어디서 빠지는 면이 있겠는가?

    그사이 단우는 <에너지 볼>을 완전히 소멸시켰다.

    동시에 체내의 마력이 바닥났다.

    ‘말이 되냐.’

    단우는 놀라웠다. 과거의 이단우는 이 몸을 끌고 헌터가 되려고 들었단 말인가?

    그의 경악과 관계없이 승객들은 환호하며 벌떡 일어났다.

    “사라졌다!”

    “시, 신고해! 119! 아니 112!”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헌터세요?”

    “아니야, 어린데? 학생 같은데!”

    단우는 현기증이 나서 주저앉은 채 차우원이 사람들에게 둘러싸인 광경을 봤다.

    그 모습이 익숙했다.

    “이 사람한테 너무 접근 안 하시는 게 좋을 것 같은데요. 혹시 몰라서요.”

    쑥스러운 듯 웃는 얼굴이 신뢰감을 줘서, 승객들은 말을 잘 따랐다.

    “야……. 너 방금 뭐 했냐?”

    김지규가 뒤에서 물었다. 단우는 헐떡이는 숨을 참았다.

    “말 걸지 말라고.”

    “아니, 그것도 스킬이야? 스킬끼리 부딪히면 터진다며. 어떻게 소멸이 돼? 너 그런 것도 연습했어?”

    단우는 김지규의 얼굴을 밀어 버렸다.

    손이 닿지도 않았는데 김지규는 “으허억” 하는 소리를 내며 뒤로 엎어졌다.

    “……그러면 어떻게 해, 딸아이가 아픈데! 애를 그대로 죽게 할까! 너라면 그렇게 하겠어?!”

    “그래도 강도는 아니죠……. 다친 사람이 없으니 참작되는 부분이 있을 거예요. 병원비 문제는 재단에 문의해 지원 방법을 찾아볼게요.”

    “그냥 놓아주면 되잖아! 다신 이런 짓 안 할 테니까! 내가 실수를 했어. 너무 애가 걱정이 돼서 판단을 잘못했어! 그래, 아무도 다치게 할 생각이 아니었다고! 너도 말했잖아!”

    저 앞에서는 강도가 차우원을 붙잡고 인생사를 털어놓고 있었다.

    ‘자기 아들뻘인 애를 잡고 저러고 싶나.’

    그런데 차우원은 받아 주고 있었다. 모범생처럼 차분한 얼굴인데도 난처해하는 기색이 눈에 보였다.

    ‘정말 그런가?’ 하고 고민하는 기색이라 단우는 기가 막혔다.

    “……?”

    ‘뭐 하냐.’

    저 강도는 버스를 날려 버리려고 했는데 차우원은 동정하고 있다.

    과거의 차우원이라면 저럴 리 없었다.

    이단우가 아는 차우원은. 스물네 살, 스물다섯 살, 스물여섯 살의 차우원은 어떤 일에도 동요하는 법이 없었다.

    그가 결정하면 일은 그대로 흘러갔다. 그가 그렇다면 그런 것이었다.

    처벌에 관해서도 그랬다.

    차우원을 두 번째로 봤을 때 단우는 그를 죽이려고 덤벼들었고, 차우원에게 죽기 직전까지 맞았다.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못하는 단우 앞에 차우원은 쪼그려 앉았다. 그리고 턱을 괸 채 단우를 내려다봤다.

    -이렇게 하자. 단우야, 넌 내 팀에 들어오는 거야. 참고로 내 팀의 규칙은 ‘리더에게 반항하지 않는다’야.

    -좆 까.

    -단우는 말부터 예쁘게 하자.

    이단우를 어떻게 처벌할지 차우원이 결정해서, 이단우는 <차우원 팀>의 팀원이 되었다.

    다른 팀원들은 이단우를 싫어했으나 누구도 차우원에게 ‘이단우를 빼자’는 말은 하지 못했다.

    차우원은 독재자였다.

    그런데 이단우의 눈앞에는 뇌가 말랑말랑한 어린 차우원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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