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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인성 교육-3화 (3/170)
  • 3.

    버스에 앉아서 단우는 생각했다.

    ‘헌터 시험이란 말이지.’

    죽기 전 이단우는 A급(엘리트) 헌터였다. 그러나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고, 그가 A급으로 올라선 건 헌터가 된 뒤로도 몇 년이 흐른 뒤였다.

    애초에 이단우는 헌터로서의 재능이라곤 쥐뿔도 없는 인간이었기 때문이다.

    모든 헌터는 각성자였다. 스스로의 스탯과 스킬을 볼 수 있는 인간들이었는데, 각성하는 순간 상태창이 알아서 눈앞에 떠오르기 때문에 스스로가 각성자라는 사실을 모를 수가 없었다.

    그는 열아홉 살에 각성했는데, 각성하자마자 상태창을 보고 놀랐다.

    ‘진짜냐.’

    〔이단우〕

    ▷직업: ?

    ▷칭호: ?

    ▷체력: F

    ▷근력: F

    ▷마력: F

    ▷민첩: C

    ▷운: F

    ▷저항: F

    [스킬]

    ??? (?)

    전부 F랭크에 민첩 스탯만 C다.

    헌터로서 활동하기 위한 필수 스킬, 흔히들 ‘시그니처 스킬’이라고 말할 만한 것도 단우에게는 없었다.

    스킬창의 ‘???(?)’라고 적혀 있는 게 스킬인가? 근데 저걸 뭐 어떻게 하라는 건가? 등급 표시도 안 되어 있는데.

    시그니처 스킬이 중요한 이유는, 이후 그 각성자의 성장 방향을 알려 주기 때문이다.

    각성자가 ‘공격계’인지 ‘방어계’인지 ‘보조계’인지도, 시그니처 스킬을 통해 짐작할 수 있었다.

    각성한 이단우는 누가 봐도 헌터가 돼서는 안 될 인간이었다.

    ‘남들보다 약간 튼튼한 몸을 갖고 앞으로 평범하게 계속 살아라.’고 누가 계시라도 내려 준 듯한 스탯이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단우는 헌터가 되기로 했다.

    세상에는 헌터가 되어야만 할 수 있는 일도 있었기 때문이다.

    던전 안에서 돌아가신 부모님의 시신을 찾아오는 일이 그랬다.

    그래서 이단우는 스물이 되자마자 헌터 시험을 치러 갔다.

    ‘그리고 떨어졌지.’

    최하위 헌터 등급이 E등급이었다. E등급 헌터가 던전 안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짐꾼 정도였지만.

    그러나 짐꾼도 자기 몸 정도는 챙길 줄 알아야 하지 않겠는가? 몬스터가 덮쳐 오면 도망칠 신체 스탯은 되어야 했다.

    이단우는 그보다 못했다.

    그런데도 포기하지 않고 이 년을 더 도전해서, E급 헌터가 됐다.

    모든 문제는 거기서 시작됐다는 생각이 들지만…….

    ‘근데 저건 왜 따라오냐.’

    단우가 뒤를 보자 김지규가 움찔했다.

    “왜, 뭘 봐?”

    “너 어디 가.”

    “네가 언제부터 내가 어디 가는지 관심 있었다고 질문이야?”

    “관심 있어서 묻는 거겠냐? 왜 따라오냐고.”

    “너 따라가는 거 아니거든? 나도 갈 데 있어서 탄 거거든?”

    김지규가 다리 한짝을 떨며 말했다. 그 때문에 앞자리에 앉은 단우는 의자가 털털 떨렸다.

    단우가 물끄러미 쳐다보자 김지규는 움직이던 다리를 멈췄다. 두 다리를 모으더니 그 위에 손도 올렸다. 그리고 시선을 창밖으로 돌렸다.

    생각보다 멍청하지 않다.

    단우는 그제야 떠올랐다.

    ‘그래, 예전에 쟤도 시험 쳤지.’

    과거 단우가 처음 헌터 시험을 쳤을 때 김지규도 시험장에 있었다. 그건 이상한 일이었는데, 이모가 허락했을 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모는 여동생 부부를 헌터 일로 잃었다. 김지규가 헌터가 되겠다고 나섰다면 펄쩍 뛰었을 것이다. 그러나 아침을 먹을 때도 이모는 아무 말도 없었고, 단우에게 ‘오늘 무슨 시험을 치는데?’ 하고 묻기까지 했다.

    단우는 ‘자격증이요.’라고 대답했고 김지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이모의 관심은 거기서 끝났다.

    ‘이 새끼 따라오려고 마음먹고 말 안 한 거잖아.’

    단우는 깨달았다.

    과거에 김지규는 단우와 따로 출발해 시험장에 도착했다. 그리고 시험장에서 다시 단우를 따라다녔다. 어떻게 구했는지 단우의 스탯까지 알아내서 ‘F랭크, F랭크’ 하고 노래를 불렀다. 아마 그때 단우 주변에 있던 모든 응시생이 단우가 시험에서 떨어지리라는 걸 알았을 터였다.

    단우는 몰랐지만.

    ‘시험 신청 용지를 봤군.’

    단우는 과거 김지규가 단우의 스탯을 알아챈 경로도 깨달았다. 헌터 시험 응시표에 응시자의 신체 스탯을 써 넣는 칸이 있었던 것이다.

    남의 방에 들어와 신청 용지나 훔쳐보다니, 음흉하고 기분 나쁜 게 김지규나 할 짓이었다.

    거기까지 생각하던 단우는 익숙한 인영을 발견하고 머리가 하얗게 비어서 정면을 응시했다.

    버스 안으로 모자를 눌러쓴 남자가 들어오고 있었다. 그가 계단에서 주춤해서 버스 문 닫히는 시간이 늦었다.

    그는 지갑째로 대도 되는 걸 굳이 카드를 꺼내서 리더기에 찍더니, ‘삑’ 소리가 나는 기계를 신기하다는 듯 쳐다봤다.

    그리고 안으로 쭉 들어와 단우의 옆에 앉았다.

    빈자리가 거의 없긴 했다.

    단우는 심장이 떨어졌다. 몸에 피가 돌지 않는 기분이었다. 손은 차갑고 이상하게 축축했다. 그는 바지에 손을 문지르고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다시 옆을 봤다.

    “……?”

    차우원이 이단우를 보고 있었다.

    살아 있는 차우원은…… 깜짝 놀랄 정도로 앳되고 순진한 느낌이었다.

    차분하게 잘생긴 얼굴은 잘 교육받은 도련님 같았다. 약간 무표정했고 대체로 온화했다. 단우는 그가 당장이라도 입을 열어서 말할 것 같았다.

    -뻔히 잡힐 경로로 왜 도망을 가. 단우야, 머리를 써. 내가 잡아 주길 바라는 거야? 가만 보면 단우는 좀 멍청한 것 같아.

    사람 열받게 하던 차분한 목소리로 차우원이 물었다.

    “괜찮으세요? 식은땀이 나는데.”

    단우를 모르는 어린 차우원이 말했다.

    갈비뼈 안에서 심장이 뛰었다. 너무 뛰어서 입 밖으로 튀어나올 것 같았다.

    ‘좀 닥쳐 봐.’

    제 심박 소리가 밖까지 들릴 것 같다. 차우원의 신체 능력이라면 듣지 못할 리가 없다. 단우는 가슴을 쳐서 좀 닥치게 만들고 싶었으나 이제는 온몸이 뛰고 있었다.

    ‘네’라는 목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단우의 속마음은 이랬다.

    ‘괜찮겠냐, 미친놈아.’

    단우는 간신히 고개를 끄덕였다.

    “울고 계신데요.”

    차우원이 알려 줬다.

    ‘알아.’

    단우는 차우원도 좀 닥쳤으면 했다.

    차우원이 갑자기 죽어 버려서 단우는 어딘가 이상해졌다. 사실 차우원이 죽기 전부터 그랬는데, 정확히 언제부터 이랬는지는 기억나지 않았다.

    아무튼 이단우의 정신에는 문제가 있었고, 가끔 시도 때도 없이 눈물이 나오거나 웃음이 나오거나 했다.

    지금은 눈물샘이 부푸는 중이었다.

    이단우는 버스 안에 앉아 있었다. 헌터 시험을 치러 나온 게 아니라는 생각은 머릿속으로 하고 있었다. 사실 그는 자신이 왜 여기 앉아 있는지도 몰랐다.

    ‘과거로 돌아온 것 같아.’

    잠에서 깨어난 뒤 그렇게 생각했지만.

    꿈인지 아닌지도 모르는 채, 과거에 자신이 그랬던 것처럼 헌터 시험장으로 출발했다.

    이단우는 자신이 왜 그랬는지 깨달았다. 그래야만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살아 있는 차우원을.

    차우원이 정말로 살아 있고, 이곳이 과거고, 차우원이 정말로 살아서, 피가 도는 몸과 따듯한 피부를 가지고 앉아서, 이단우에게 말을 걸고, 걱정 어린 표정을 지을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싶어서.

    “야, 너 울어?”

    뒤에서 김지규가 갑자기 소리쳐서 단우는 눈물이 가셨다.

    차우원이 고개를 기울이고 단우를 쳐다보고 있는데, 젖살이 다 빠져 날렵한 얼굴인데도 기억하던 것보다 확연히 어렸다. 앳되고 순진해 보였다.

    앳되고 순진한 차우원이라니.

    단우는 갑자기 웃음이 나왔다.

    “하하…….”

    그러자 차우원의 눈이 동그래졌다.

    ‘이 사람 진짜 문제 있는 것 같은데.’

    그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보였다.

    차우원도 할 생각을 김지규가 입 밖으로 말했다.

    “이단우 미쳤냐?”

    “넌 지금부터 나한테 말 걸지 말고.”

    “……말 걸면 어떻게 할 건데?”

    “걸어 봐.”

    “…….”

    얼마 전에 맞은 보람이 있어 김지규의 기억력은 제대로 작동했다. 그가 입을 다물자, 차우원은 김지규를 쳐다봤다. 그리고 다시 이단우를 돌아봤다.

    둘의 관계를 궁금해하는 듯했다.

    이단우는 김지규랑 엮이고 싶지 않았고, 차우원이 왜 버스에 앉아 있는지가 궁금했다.

    과거, 이단우가 첫 번째로 치른 헌터 시험에서 차우원은 경찰차에 탄 채 시험장에 도착했다…….

    ‘…….’

    생각해 보니 그것도 이상한 일이었다. 이단우가 그때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던 이유는 다른 사람들 반응 때문이었지만.

    -차우원이다.

    -쟤가 차우원…….

    수군거림은 들불처럼 퍼지다가, 차우원이 경찰과 대화를 마치고 시험장 안으로 들어온 순간 뚝 끊겼다.

    차우원이 경찰차를 타고 온 건 문제가 안 되고 그냥 차우원 자체가 별스러운 인물이라는 반응이었다.

    ‘뭐야.’

    단우도 차우원을 쳐다봤다. 모든 수험생이 그러고 있었으니 티가 나진 않았을 것이다.

    ‘공권력 남용?’

    경찰이 태워다 주는 헌터 시험 응시생? 뭐 하는 놈인지 상상이 되질 않아서, 단우는 잘사는 집 개념 없는 아들놈인가 했다. 그런 것치고는 반듯하게 잘생긴 얼굴이었지만…….

    그 생각이 잘못된 것도 아니었던 게, 차우원은 잘사는 집 놈이 맞았다. 살면서 버스를 타본 게 이번이 처음인 듯한 꼴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아무튼 그때 경찰들은 차우원만 내려 준 뒤 돌아갔고 시험은 시작됐다.

    그 뒤 이단우는 첫 시험에서 떨어졌고 차우원은 붙어서 5대 길드 중 하나인 청연에 들어갔다.

    그가 청연 길드장의 조카이자 ‘영웅’ 차문경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단우는 나중에 알았다.

    그리고 단우는 지금 차우원이 경찰차에 타게 된 경위를 보고 있는 듯했다.

    “다들 손 들어! 꼼짝 마!”

    버스에 올라탄 남자가 외쳤다. 그는 두 손을 내밀고 있었는데, 뭔가를 감싸고 있는 듯 애매한 몸짓이었다.

    그의 두 손바닥 안에서 휘몰아치고 있는 건 그냥 봐도 위험해 보이는 마력 다발이었다.

    스킬 <에너지 볼>.

    원거리 딜러, 마법사들의 무속성 기본 스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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