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어찌 됐건 얼굴 봐서 좋을 사이는 아니었다.
그런 놈이 단우를 보고 대뜸 웃었다. 입을 벌려 히죽거리는 게 상대방을 즐겁게 해 주려고 짓는 미소는 아니었다.
‘왜 쪼개냐.’
“뭔데.”
“야, 너 헌터 자격 시험 본다며.”
“……?”
단우는 이미 헌터였다. 자격증 시험을 두 번 치는 놈이 어디 있단 말인가?
“너 마력 F랭크잖아. 근데 시험을 보겠다고? 아무리 각성자는 자격 시험 정도야 다 치게 해 준다고 해도, 국가적인 인력 낭비 아니냐? 안 그래도 헌터들은 바쁘잖아.”
단우는 예전부터 사촌에게 궁금한 점이 있었다.
“너 어디 모자라?”
“뭐?”
“만성적으로 인력이 부족하니까 시험을 치겠지. 헌터를 더 뽑아야 일을 시킬 거 아냐.”
“뭐, 아니…….”
“너 여기 왜 있는데.”
몇 년 만에 본 사촌이 왜 단우의 공간에 들어와 있단 말인가? 이놈을 가족이랍시고 면회를 시켜 줬을 리는 없고…….
단우는 방을 둘러보다가 이곳이 정말 익숙한 공간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단우가 과거 이모네 얹혀살 때 자던 방이다.
“이 방 원래 내 방이었어!”
사촌이 길길이 날뛰었다.
“내 방에 내가 들어오겠다는데 네가 막아? 야, 너 뭔가 착각하는데. 이 방 네 방 아니야. 내 공부방 불쌍해서 잠깐 내준 거라고.”
단우는 자기 뺨을 때렸다.
짝!
따귀가 얼얼하고 머리가 띵한데 정신은 돌아오지 않았다.
맞은 곳만 얼얼해서 단우는 뺨을 쓰다듬었다. 그리고 자신의 손바닥이 놀랍도록 부드럽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건 또 왜 이런단 말인가?
단우의 주력 무기는 검이었다. 검을 오래 쥔 손은 그 모양대로 굳은살이 박여 만지기만 해도 단단한 느낌이 있었다.
“야……. 너 미쳤냐? 마력이 F랭크라 절망해서 죽고 싶어졌어? 그럼 나가서 죽어. 우리 집 옥상 말고 다른 데서. 집값 떨어지니까.”
김지규가 말했다.
‘이런 새끼였지.’
저 말이 전부 진심이라는 게 김지규의 대단한 점이었다. 이제 스물 된 놈이 저렇게 싹이 노랗기도 힘들 것이다.
김지규는 단우가 이모네 들어왔을 때부터 그를 싫어했는데, 그때 단우는 부모님을 잃은 상황이었다.
불행한 일을 당한 동갑 사촌을 김지규는 지독하게 괴롭혀 댔다.
단우는 전학 간 학교에 처음 등교한 날, 이미 자신에 대한 소문이 다른 애들에게 퍼져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단우는 고아에 거지새끼였고, 김지규네서 신세 지고 있는 기분 나쁜 애였다.
그런 상황에서 제대로 된 학창 생활이 가능할 리 없었다.
“네가 헌터가 돼서 뭐 하게? 될 수 있을 리도 없지만. 네 부모도 던전에서 죽었잖아. 아, 너도 따라가게?”
나오는 대로 지껄이던 김지규가 알겠다는 듯 말했다.
단우는 이 어리고 싸가지 없는 새끼를 어떻게 할지 잠시 생각했다.
“헌터증이라도 얻으면 네가 뭐라도 될 것 같아? 야…….”
단우가 말이 없자 겁먹었다고 생각했는지 김지규는 기고만장해졌다. 그가 뭐라는지 더 듣기 싫어서, 단우는 발을 들어 그의 배를 걷어찼다.
퍽!
“어억…….”
쓰러진 놈의 명치를 밟고 바닥에 짓누르니 김지규는 얼굴이 노랗게 떠서 숨도 제대로 쉬지 못했다.
단우는 잠깐 발을 뗐다.
“너, 너, 이 미친놈이……. 우욱!”
다시 꽉 밟자 김지규가 헛구역질을 했다. 방에 토사물을 쏟을까 봐 단우는 눈을 찡그리며 발을 들었다.
김지규가 바르작거리며 도망치려는 모습이 보였다.
어렸을 때, 단우는 김지규가 두려웠다. 김지규를 ‘성가시다’고 생각했고 붙어서 싸우면 이기리라 생각했으나, 그는 싸울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다. 이 집은 이모의 집이고 김지규는 이모의 아들이었으니까.
김지규가 욕을 하면 단우는 못 들은 척했고 그가 모욕을 주면 못 본 척했다. 그게 쌓여서 단우는 김지규를 보는 것만으로도 식은땀이 났다. 지금도 손이 떨리고 숨이 가빠지는 게 느껴져서 단우는 황당했다.
‘뭐냐.’
꿈치고는 현실감이 심하지 않은가.
단우는 숨도 못 쉬는 김지규를 발로 밟아 엎어뜨리고, 그의 어깨에 다리를 걸었다.
그 상태로 팔을 꺾자 김지규가 비명을 질렀다.
“아아악! 팔! 팔 부러져!”
“뭐니? 무슨 일이야?”
밖에서 뭐가 끓던 소리가 멈추더니 이모가 물었다.
단우는 평소와 같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지규 넘어졌어요.”
“세상에. 조심해야지.”
다시 아침 준비하는 소리가 들렸다. 단우는 잡히는 대로 양말을 김지규의 입 안에 쑤셔 넣고 입을 틀어막았다.
그리고 생각했다.
어리고 멍청한 김지규.
이모네 집.
헌터 자격 시험.
시험 날 아침부터 난입한 김지규…….
이단우는 이 모든 일이 익숙했다. 어떤 일이 이전에도 일어난 적 있었던 것처럼 느껴지는 현상을 데자뷔라고 한다는데, 이건 아니었고…….
그냥 정말 한 번 있었던 일이었다.
이단우는 헌터로서 대단한 재능은 없었다. 오히려 몹시 뒤떨어지는 편에 속했는데, 그가 <최후의 던전>을 클리어할 수 있었던 건 그에게 생각하는 재주가 있기 때문이었다.
“너 체대 실기 언제야.”
“으읍!”
김지규는 입 막힌 소리를 냈다. 그에 아랑곳하지 않은 단우가 재차 물었다.
“실기 쳤어?”
“으으읍!”
그가 고개를 저었다.
“지금 팔 부러지면 곤란할 텐데. 네가 갑자기 미쳐서 머리에 개념을 박아 넣을 리는 없고.”
김지규의 눈이 공포에 질렸다.
“내가 박아 줘?”
“으으읍!”
“잘할래?”
“읍!”
김지규가 고개를 끄덕였다.
“알아서 잘하자. 사촌끼리 친하게 지내야지.”
단우는 김지규를 놓아줬다. 친절하게 양말을 빼 주자 침으로 축축해져서 냄새나는 천 뭉치가 빠져나왔다.
단우가 인상을 쓰는데 옆에서 김지규가 발딱 일어났다. 그는 말귀를 잘 알아듣는 인간이 아니었다.
“엄마……!”
“나이 먹고 엄마 부르지 말고.”
쿵!
덩치 큰 놈을 다시 엎어뜨리려니 단우는 숨이 찼다.
단우는 A급 헌터였으나 지금은 헌터 자격을 취득하기도 전이었다. A급 헌터로 인정받은 뒤에도 그의 장기는 힘이 아니었다.
“남의 엄마 모욕해 놓고 네 엄마는 왜 불러? 사람 서럽게.”
단우가 체중을 실어 깔아뭉개자, 김지규는 말도 못 하고 ‘어억……’ 하며 바닥을 긁었다.
입에서 바람 빠지는 소리만 내던 김지규가 더듬거렸다.
“너…… 너 이게 뭐야……. 너 누구야? 이단우야?”
“내가 누구인가 중요하지…….”
이단우는 한숨을 쉬었다. 두통이 심했다. 이곳이 어디고 자신이 누구인지 정말 알 수 없어서 다시 어지러웠다.
하지만 이곳이 정말 이모네 집이라면 이단우가 할 행동은 하나뿐이었다.
“나 집 나갈 거야.”
“뭐?”
“이 집 나간다고. 이 방을 쓰든 말든, 이모 관심 독차지하고 애교를 떨든 지랄을 하든 네 마음대로 하고……. 저 방문 다시 열면 네 팔 조각날 줄 알아.”
“뭐…….”
단우는 멍청하게 구는 김지규를 내보내고 문을 잠갔다.
잠금장치는 별 소용 없겠지만 마음의 문제였다. 김지규에겐 이 방 열쇠가 있었으니까.
‘그랬지.’
단우는 김지규가 그를 싫어했던 이유가 떠올랐다.
이 방은 김지규의 공부방이었다.
김지규가 이 방에서 공부를 했다는 뜻은 아니지만, 단우가 들어와서 그는 자신의 것을 잃었다.
김지규는 자신에게 향하는 관심 한 톨도 나누기 싫어하는 성격이었다. 부모 잃은 조카가 집에 들어오고 일주일 동안 말이 없어서, 이모는 그동안 단우를 살뜰히 챙겼다.
그때 단우가 무슨 생각을 했는지는 기억나지 않았다. 자신이 어디에 와 있는지도 눈치채지 못했던 것 같다. 장례식장에서부터의 기억을 포함해, 완전히 도려내진 그 단절된 시기를 끝낸 건 어처구니없게도 김지규였다.
-야! 벙어리 새끼야!
하고 김지규가 단우를 공처럼 걷어차서, 단우는 정신을 차렸다.
그렇다고 단우가 김지규에게 고마워한 건 아니었지만.
지금도 그때와 비슷한 상황이었다.
김지규를 친 손발이 욱신거려서 단우는 정신이 들었다. 꿈이 이렇게 생생할 수는 없다.
휴대폰을 찾아보니 몇 년 전 쓰던 디자인의 것이 침대 위에 나뒹굴고 있었다.
-20XX년 1월 7일. 7:11 AM.
심장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침착해. 이상한 생각 하지 마. 헛생각 말고, 꿈이면 빨리 깨고…….’
단우는 다시 한번 뺨을 갈겼다. 이번에는 주먹이었다.
제대로 쥐고 때렸는데도 관절과 손목까지 아파서, 단우는 이 형편없는 몸이 자신의 것이라는 자각이 들었다.
과거 이단우의 것이었다.
마르고 창백하며 운동이라고는 거의 해본 적 없는 쓸모없는 몸이 거울에 비쳤다. 약간 긴 앞머리는 이마와 눈썹을 덮어 답답했다.
저런 답답한 얼굴로 겁에 질린 표정을 해서는 쏘다녔으니 헌터든 몬스터든 그를 두려워했을 리가 없다.
단우는 무작정 밖으로 뛰쳐나갔다.
“단우야? 단우야! 아침 먹어야지!”
이모가 부르는 소리를 외면하고 숨이 턱이 차도록 달렸다. 그리고 멀쩡한 세상을 눈으로 봤다.
하늘은 파랗고 구름 몇 점이 떠다니고 있었다.
무너진 건물, 빛 없는 하늘, 숨도 못 쉬게 만들던 지독한 독연과 갈라진 바닥, 그곳에서 기어 나오던 몬스터들……. <최후의 던전>에 잡아먹혔던 흔적은 온데간데없었다.
팀원들이 죽고, 차우원이 죽고, 혼자 <최후의 던전>을 빠져나오면서…….
단우가 무엇을 바랐던가?
개를 유모차에 태워 산책시키는 노인이 보였다. 백내장이 와서 눈이 하얀 개는 헥헥거리며 얌전히 유모차 안에 앉아 있었다.
그 평화로운 꼴을 보니 단우는 현기증이 났다.
다시 휴대폰을 봤다.
-20XX년 1월 7일. 7:15 AM.
이날 단우는 김지규 때문에 아침을 망치고, 얼마 자지도 못한 상태로 헌터 자격 시험장에 들어갔다.
그리고 차우원을 만났다.
그게 이단우와 차우원의 첫 만남이었다.
단우는 심장이 뛰었다.
아직 차우원을 만나지 않았고, 이단우가 아무것도 망치지 않은 이 상황이…….
‘현실인가?’
마지막으로 들은 알림음이 떠올랐다.
[최후의 던전을 클리어했습니다.]
[보상을 선택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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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상이 수령되었습니다.]
던전 클리어 보상.
후회하는 일이라면 얼마든 있다. 그중 가장 후회되는 일이 시작되기 전으로, 단우는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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