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이단우는 죽었다.
‘아니, 살아 있긴 하지.’
실은 죽기 직전이었는데 아무래도 죽을 모양이었다. 던전에 함께 들어온 팀원이 검을 들고 휘적휘적 다가오는데, 단우에게 좋은 의도를 가진 것 같지는 않았다.
살아남으려면 저놈에게 맞서 싸워야 할 텐데, 단우는 지금 사지가 경련하고 내장이 뒤틀리고 있었다. 고개를 간신히 옆으로 돌리자 목구멍 어딘가를 틀어막아 숨도 못 쉬게 하던 핏덩이가 왈칵 쏟아졌다. 눈과 코에서도 피가 흘러내리는 것 같은 게, 누적 데미지를 견디지 못하고 몸이 위험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힐러는 어디 갔지…….’
눈을 깜빡여 봐도 보이는 게 없었다. 사방이 검고 붉었으며, 귀로는 이명이 들려서 머리가 아팠다. 몸은 뜨거운지 차가운지 여러 감각이 혼재했다. 피가 잘 돌지 않아 손발은 시렸고, 입에서는 잘 들리지도 않는 이상한 신음 같은 것이 흘러나왔다.
이단우도 자신의 죽음을 상상해 본 적이 있었다.
‘어느 순간 고꾸라져 절명하지 않을까.’
그렇게 죽으면 고통스럽지는 않겠지.
애초에 살아 있는 게 용한 몸이었다. 무리하게 복용한 약물의 양이 허용치를 진작 넘었기 때문이다. 그 상태로 몸이 부서져라 움직였으니 내구도가 남아날 리 없다.
상상은 쉬웠고 현실은 고통스러웠다.
마력 보충제의 남용 탓에 감각은 최고조로 예민해져 있었다.
덕분에 속이 경련하고 온몸의 뼈와 근육이 제자리에서 이탈하는 듯한 고통을, 단우는 평소보다 몇 배는 더 예민한 신경으로 느꼈다.
이대로 일 분만 방치해도 쇼크사할 듯했다.
‘최악이다.’
아닌가? 최악은 면했다.
던전은 클리어했으니까.
다른 팀원들이 어떻게 됐는지는 모르겠고…….
단 한 명 눈에 보이는 팀원이 단우 앞에 멈춰 섰다.
그가 들고 있는 검이 어둠 속에서도 잘 보였다.
수백 마리의 몬스터를 베어도 흠집 하나 나지 않고 피가 달라붙지도 않는다. 검신 자체의 아름다운 빛을 한시도 잃지 않는, 성검이 팀원의 손에 들려 있었다.
그 성검의 주인은 단우였다.
“검 돌려주러 왔으면 내려놔라.”
단우는 울컥 치미는 피를 다시 토하고 앞에 선 팀원에게 제안했다.
물론 팀원은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리더. 리더가 형을 죽였어요?”
예리한 검 끝이 단우의 목 끝에 닿아서, 단우는 숨도 쉬기 힘들었다.
‘피라도 좀 뱉자…….’
싶었지만 역시 상대는 배려해 줄 생각이 없는 듯했다.
단우는 비린 피를 삼켜 대며 깜빡이는 정신으로 팀원을 올려다봤다.
‘형이라는 건 역시 차우원이겠지.’
이번 공략에서야 단우가 팀장이랍시고 ‘리더’ 소리 듣고 다니긴 했으나, 본래 단우는 차우원 공격대의 팀원이었다.
단우가 주인이랍시고 들고 들어온 저 성검의 주인도 본래는 차우원이었다.
‘성검의 주인’ 차우원.
사람들이 원한 영웅…….
차우원의 그 단정하게 잘생긴 얼굴과, 저 팀원의 얼굴은 닮았다.
누가 봐도 둘이 형제라는 걸 알 수 있어서, 그가 ‘저를 팀에 받아 주세요.’ 했을 때 단우는 ‘그건 좀 아니지’ 싶기는 했다.
던전 안에서 살해당하는 건 단우의 취향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력 좋은 팀원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인 세상이었다. 등 찔릴 위험이 있다고 거절하기에, 차우원의 동생은 실력이 좀 많이 대단했다.
저놈 이상 가는 팀원을 구할 수 있을 것인가? 아닐 것 같다.
그래서 단우는 ‘그래.’라고 대답했고…….
결국 이 꼴이었다.
‘던전은 클리어해서 다행인가.’
클리어 전에 살해당했다면 그만큼 억울할 일이 없었을 것이다.
이단우는 애초에 이 던전을 클리어하고 싶은 생각도 없었기 때문이다.
<최후의 던전>을 막지 못하면 종말이다. 모두가 죽어 버리겠지만.
그게 이단우와 무슨 상관인가?
그는 더 살고 싶은 의욕도 없는데.
단우가 꾸역꾸역 새 팀원을 모아 <최후의 던전>에 진입했던 건, 이미 죽은 차우원 때문이었다.
그 자식이 <최후의 던전>에서 이단우를 살리고 죽어 버려서, 단우는 다시 이곳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곳에 차우원의 시신이 있었기 때문에.
‘빌어먹을 차우원.’
<최후의 던전> 첫 공략에서, 차우원 팀은 전멸했다.
이단우를 제외하고 모든 팀원이 죽었다.
유일하게 살아남은 이단우는 밖으로 나가서 모든 비난을 한 몸에 받았다.
‘성검의 주인’이자 S급 헌터인 차우원이 죽었는데, 공략팀에서 가장 실력이 떨어지는 이단우가 살아남은 게 가당하기나 한 일인가? 자신이 당사자가 아니었다면 저라도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끝없이 수군댔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왜 이단우가 성검을 가지고 나온 건데?
-차우원 헌터가 죽을 리 없잖아…….
의문은 하나로 모였다.
-이단우가 배신한 거 아니야?
차우원의 동생이 목에 검을 겨누고 물었다.
“대답하라고! 당신이 형을 죽였어? 형을 배신하고, 성검을 강탈했냐고, 내가 묻고 있잖아요!”
이단우는 ‘아니’라고 대답했다. 사람들 앞에서, 돌아간 길드에서, 어디서든 ‘아니’라고 대답했고, 아무도 듣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은 뒤로 입을 다물었다.
그러나 지금 이단우에게 묻고 있는 사람은 차우원의 동생이었다.
쓸데없이 사람 좋은 차우원의 동생답게 이놈도 성격이 물러 터진 놈이었다.
그리고 클리어된 던전은 무너지고 있었다.
이단우는 <최후의 던전>이 클리어된 뒤 스스로 무너지는 이벤트까지 준비하고 있을 줄은 몰랐다.
단우는 생각했다.
‘내가 아니라고 대답하면 뭐가 달라지나?’
누가 믿나?
차우원의 동생이라면 그래, 믿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래서…… 변하는 게 있나?
차우원의 동생이, 단우를 업고 탈출 게이트로 달리느라 또 시간을 지체하기나 하지 않겠는가?
지금도 시간은 빠듯했다.
저 멍청한 놈은 다 죽어 가는 원수를 보느라 천장이 무너지는 것도 안 보이는 것 같은데…….
그것도 바보 같은 일이었다.
가만 놔둬도 이단우는 죽을 텐데.
자신이 저놈 도움을 받아서 살아야 하나?
역시, 아무리 생각해도…….
아니었다.
이단우는 죽고 싶었다. 그는 오늘 죽기로 했다. 정확히 오늘이 아니어도, <최후의 던전>을 클리어한 순간, 그는 죽자고 생각했다. 던전에 들어오기 전부터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차우원의 동생을 팀원으로 받았고 많은 문제를 방치했다.
이단우가 살아야 할 이유는 이미 예전에 사라졌는데, 개같은 차우원이 <최후의 던전>에서 죽어 버려서 그는 더 살아가는 수밖에 없었다.
차우원의 시신을 이곳에 버려둘 수는 없었으니까.
“어, 내가 죽였어.”
단우는 망설이지 않고 말했다.
조금 웃음이 나올 것도 같았다. 실은 이 말을 누군가에게 하고 싶었던 것 같기도 했다.
“당연하잖아. 아니면 차우원이 어떻게 죽어. 내가 클리어한 던전을, 차우원이 무슨 수로 클리어를 못 해? 너처럼 시야도 좁고 사람도 잘 믿어서, 쉽던데.”
“거짓말.”
차우원의 동생은 멍청하게 굴었다. 그의 옆으로 돌무더기가 떨어져서 단우는 조급해졌다.
한쪽 눈은 거의 보이지 않고, 이제 숨도 모자란 기분이 든다. 혀는 제대로 움직여서 다행이었다.
“……내가 성검을 갖고 싶어서, 영웅 소리도 들어 보고 싶고, 영광을 독차지하고 싶어서. 그래서 죽였어. 내가 차우원 질투했잖아. 너도 모를 리 없을 텐데? 차우원 옆에 그런 놈이 한 무더기였잖아. 나도 그런 새끼였는데.”
“거짓말.”
목에서 흔들리던 검 끝이 휙 치켜 올라갔다.
거의 보이지도 않는 시야로, 단우는 마지막 광경을 봤다.
차우원을 닮은, 깨끗하게까지 느껴지는 반듯한 얼굴이 눈물로 일그러져 있었다. 그가 검을 찔러 내렸다.
“거짓말…….”
띠링!
[최후의 던전을 클리어했습니다.]
[보상을 선택하세요.]
.
.
.
[보상이 수령되었습니다.]
그런 소리를 들은 것도 같았다.
* * *
이단우는 죽었다.
검이 목을 찌르고 천장이 무너지는데 살아남을 수 있는 사람은 없는 법이다.
이단우는 막연하게 평온이나 휴식, 끝과 같은 단어를 생각했다. 일단 등 뒤가 푹신하고 공기 중 마력도 희박해서 평온하다면 평온한 공간이었는데…….
이상한 소리가 들리고 있었다.
쾅쾅쾅!
“이단우! 이단우!”
쾅쾅쾅!
“야, 이단우! 일어나라고!”
죽어 가는 사람도 깨울 만한 소음이었다. 밖에서 타박 소리가 들렸다.
“단우 자라고 둬. 왜 새벽부터 애를 깨우니?”
“쟤 시험 있잖아요. 일어나라고 도와주는 건데? 야! 빨리 안 일어나?”
단우는 눈을 떴다.
‘씨발, 뭐야.’
기름 냄새가 났다. 누군가 음식을 하고 있다.
사지가 경련하던 통증도 메스꺼운 두통도 사라지고 없었다. 단우는 무너진 던전이 아닌 부드러운 침구가 있는 침대 위에 누워 있었다.
차우원의 동생이 마지막에 마음을 바꿔 먹고 단우를 끌고 나왔나? 그럴 만큼 무른 놈이긴 했지만…….
그러나 장소가 이상했다.
‘병원이 아니다.’
방문을 부서져라 두드려 대는 소음이 익숙했다. 이유를 생각하기도 전에 잠금쇠 풀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문이 벌컥 열렸다.
단우는 몇 년 만에 보는 얼굴을 마주했다. 사촌의 얼굴이었다. 키가 크고, 이단우와 닮은 데 없는 산도적 같은 놈이 놀란 표정을 짓고 있었다.
“뭐야! 너 왜 깨어 있어?”
‘……?’
기억 속에서도 까마득한 얼굴이 나타나니 이단우는 꿈인가 싶었다.
“계속 자길 원했으면 수탉처럼 짖지나 말든가.”
“수탉이 울지 짖냐? 시험 때문에 일찍 일어났어? 와, 너도 긴장이란 걸 하는구나. 너 진짜 네가 통과할 수 있을 것 같냐?”
‘시험?’
사촌 김지규는 이모의 아들이었다. 단우는 그의 얼굴을 얼마나 오래 안 봤는지 떠올렸다.
단우가 독립한 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이모에게 독립 의사를 밝히고, 단우는 모아 둔 돈을 털어 방을 얻어 나갔다.
그 뒤로 될 수 있는 한 얼굴을 안 보고 살았으니 6, 7년쯤 됐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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