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의 술은 특별합니다-173화 (173/175)

< 173잔. 월드 클래스 바텐더. >

2.

“정환 군!”

“바텐더님!”

음악이 죽었고 조명은 살아났다. 하늘에서 내려온 건 날개를 단 천사도, 하나의 낙하산도 아닌 그저 한줄기 밝은 빛.

익숙한 풍경이었다. 마치, 한국 대회에서 우승했을 때처럼 손을 들어 빛을 가려보는 정환.

정환을 단독으로 길게 내리쬐는 한 줄기 빛은.

세계 대회의 우승자를 알려주는 하나의 영광스러운 이정표였다.

모두가 무채색으로 변한 무대 위, 정환만이 색을 입고는 우뚝 서 있다.

- 와다다다다다!

“축하하네!”

“해낼 줄 알았어요! 정말이지!”

“잘했습니다. 정말. 잘···. 정환 씨.”

우승자가 발표되자, 순식간에 관객석은 뜨겁게 불타올랐다. 당장에 꽃다발을 들고 무대로 뛰어오른 김태현 교수와 강성용 주임.

그리고 차분하지만, 감격에 벅차오르는 표정의 명진과 어느덧 다가와 트로피를 건넨 대회 관계자들까지.

승자의 세레모니를 누가 감히 방해하겠나. 그의 승리를 축복하는 같은 팀원의 이런 행동을 누구도 만류하지 않았다.

그리고.

- 짝짝짝짝짝!

- 짝짝짝짝짝!

쏟아지는 우레와 같은 박수. 관객석에서, 또 같은 무대의 양옆에서.

저마다 한 업계의 세계 챔피언이 탄생한 것에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그저 대회에서 우승한 것이 아니다. 역대급이라 불러도 모자라지 않을 정도의 퍼포먼스를 펼치고 우승한 것.

거기에.

“미스터 차! 만장일치라니. 믿기 지가 않군요. 미국에 꼭 들려주십시오. 게스트 바텐딩.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같이 레시피도 연구하고 술도 마실 수 있길.”

심사위원의 평가까지 만장일치였으니, 누구도 감히 정환의 우승을 부정하지 못했다.

“무슨 소리! 브라질로 오십시오. 미녀가 많아요. 챔피언.”

“가까운 상해부터 들립시다!”

“태국에 얼마나 머물 겁니까? 제가 바 가이드라도!”

같은 업계에서 함께 싸운 이들의 인정보다 더한 증명은 없다. 하나의 경쟁이자 축제의 막이 내리자 쏟아지는 더없는 존경의 표시들.

다들, 같은 바텐더이기에. 저 차정환이라는 바텐더가 보여준 것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모르지 않는 것이다.

딱, 한 사람.

정환의 바로 옆에 섰던 사람만 빼고 말이다.

“······.”

저마다 무대 중앙을 향해 몸을 틀고는 찬사와 농담, 박수를 보내는 와중에 단 한 사람이 고개를 떨군다.

부르르 떨리는 것만 같은 그의 몸. 그의 주먹은 양손에서 꽉 쥐어져 온몸에 힘이 가득 들어간 것처럼 보였다.

멀리서 김태현 교수와 강성용 주임의 품을 오가던 정환은 그 모습을 놓치지 않는다.

정환은 축하를 받으면서도 그들의 어깨너머로 다른 곳을 바라보고 있다.

그리고.

“츠바사. 인정하지 못하는 것이냐?”

정환보다 더 가까이서 그에게 다가서는 한 사람.

“···좋으시겠군요. 스승님은.”

그의 스승이자, 정환의 전 스승이었던 신의 손. 쿠즈하라 미즈오였다.

저마다 업계에서 가장 큰 행사가 끝을 알리자 무대로 일행을 부르며 즐거움을 함께 나누고 있다.

결과가 어떻든, 그들에게는 상관없는 것이 지금의 순간.

다만, 결과가 상관있는 그에게도. 다가오는 사람은 있었다. 쿠즈하라 미즈오는 행사를 즐기는 이들을 피해 조심히, 자신의 제자 곁으로 다가갔다.

“못난 놈! 좋겠느냐? 지금! 네놈이 이런 모습을 보이고 있거늘 말이다!”

쿠즈하라는 남들 모두 웃고 떠들며 기뻐하는 무대 위에서 홀로 노성을 토해냈다.

모두가 바쁜 와중이기에 이런 모습이 남들의 눈에 실리지 않은 건 다행일지도 모른다.

“질 수 있다! 져도 된다는 말이다! 헌데, 이 모습은 무어란 말이더냐! 진 걸 인정도 하지 못하는 못난 놈일 줄이야!”

“···인정이라. 말씀은 쉽게 하시는군요. 그게···”

어디 그렇게 쉬운 일인 줄 아시냐. 실패란 걸 해본 적이 없는 당신은 모를 거다.

사지마의 목에는 마치 그런 말이 걸린 것만 같았다.

그는 아직. 자신의 패배가 납득 되지 않는 모양이다. 사지마는 천천히 떨며 고개를 들어 정환을 바라봤다.

그러자, 마주치는 두 사람의 눈.

지켜보고 있던 걸까. 승자의 세레모니로? 그런 생각에 인상이 구겨지는 사지마 츠바사.

허나, 정환은.

‘테.이.블.’

뻐끔거리는 입으로 주변의 반응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사지마에게 무언가를 전해올 뿐이다.

사지마는 입과 함께 정환의 손이 가리키는 곳을 바라봤다. 결과가 발표되기 전까지. 정환이 대기하던 부스가 그의 눈에 들어왔다.

‘칵테일···?’

그리고 보이는 건 그런 테이블 위에 놓인 제출하지 않은 완성된 한 잔.

이건, 저 차정환이라는 바텐더가 결승전에 제출한 그 칵테일과 같은 칵테일로 보였다.

이름이 ‘파라슈트’라는 그 칵테일과.

‘이 사람이···!’

그걸 보자 사지마는 일시에 눈을 번뜩이며 고개를 휙! 돌렸다. 이건 무슨 의미일까. 마셔보고 깨달으란 말일까.

아님, 인정할 수 없다면 마셔보란 뜻? 무엇이든. 아직, 자신이 인정하지 않고 있다는 걸 저 바텐더가 예상한 것처럼만 보여 그에게 부끄러움이 몰려왔다.

그는 잔을 애써 외면하려다.

“마시지 않을 거냐? 왜? 또 도망치려는 것이더냐? 또 다른 이유를 찾으며?”

그의 뒤에서 들려오는 스승의 목소리에 차마 이를 외면하지 못한다.

입술을 잘게 깨문 그가 다시 몸을 돌려 잔을 들어 올린다.

‘오냐. 마셔주마. 대신 마시고 인정은···!’

기대도 하지 마라. 내가 추구하는 완벽한 잔이 이 잔과 같을 거란 생각 따윈 없다.

사지마 츠바사는 그런 오기로 잔을 입으로 향했다.

이걸 통해 무언가를 느끼려는 건 아니다. 그저, 뜬구름이나 잡는 소리가 통하는 그런 세상이 아니란 걸 직접 느꼈을 뿐.

하지만, 그런 생각도 정환이 만든 파라슈트를 입에 넣는 순간.

- 휘이이익! 펄럭!

!!!

하나의 심상이 펼쳐지며 이내 사지마의 턱을 잔뜩 하늘 위로 들려 버리게 만들고 만다.

마치 무언가에 놀랐지만. 그 놀람이 기분 나쁜 놀람이 아닌 걸 그가 몸으로 표현하는 것만 같았다.

‘이게···’

뭘로 만든 거지? 바텐더로 10년이 넘는 세월을 보내며 이제는 어떤 칵테일을 마셔도 그 재료를 알 수 있는 경지에 오른 그.

허나, 그는 방금 마신 잔에 무엇이 들어간 것인지 가늠조차 할 수 없었다.

놀람과 호기심이 재빠르게 스치고 간 자리에는 여운이 돌아온다.

분명 찬 냉기가 가득한 잔인데 무언가 따스히 속을 덥히는 것만 같은 기분.

기분 좋은 따뜻함에 사지마의 턱은 더 높이 들리고 이내 그는 눈을 감고 만다.

무언가를 제대로 감상하듯 여운 속에서 헤엄치는 모습이 그의 얼굴을 탔다.

- 후우우우.

맛을 모두 느낀 그가 그대로 잔향을 뿜어내며 다음을 향해 달린다.

놀람과 호기심, 그리고 여운을 넘은 그를 마주한 건.

- 괜찮다. 그래도, 괜찮다.

!!

들려오는 누군가의 목소리와 같은 위로.

‘아···!’

사지마 츠바사는 그제야 눈을 뜨고는 잔을 만든 바텐더를 똑바로 바라보고 만다.

그의 뒤로는 무언가가 떨어져 나가고, 새로운 무언가가 붙은 것만 같다.

오만과 독선, 아집으로 그를 떨어트리던 하나의 날개가 떨어지고.

지금 눈을 마주하는 사내가 달아준 낙하산.

그런 낙하산이 하나 생긴 것만 같은 기분. 사지마의 눈에는 어느새 바텐더가 의도하지 않은 액체가 흐르고 있다.

‘파라슈트···’

이름 그대로의 뜻이 제대로 묻은 잔이었다. 바닥에 닿으려던 그가, 두둥실 떠오르는 것만 같다.

“괜찮다.”

그리고 들려오던 목소리가 선명해져 간다. 이건, 환상이나 환청이 아닌.

“쿠즈하라 선생님···.”

스승의 목소리. 괜찮다고. 그런 일이 있었냐고. 다 이해한다고. 누구나 겪는 일이라고.

잔이 들려줬던 말을 스승이 직접 전해오는 것만 같다. 스승은 잔을 마셔보지 않았음에도, 담긴 이야기가 전해지는 모양이다.

“이 말을 꼭 해주고 싶었다. 나도 몰랐다고. 누구나 실패를 겪는 것이다. 네 잘못이 아니다. 츠바사. 실패를 가르치지 못한 내 잘못이니, 이건 네 실패이자 내 실패이니라. 우리 함께···. 이걸 배워보자꾸나.”

그리고 이어지는 건 스승의 전하지 못한 진심. 자신도 처음이어서.

그래서. 제자에게 전하지 못한 말을 스승은 이제야 전하고 만다.

사지마 츠바사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그의 품에서 흐르는 무언가를 하염없이 쏟아낼 뿐이다.

조금은 후련한 그 무언가를.

스승의 어깨너머로, 마지막으로 잔을 만든 바텐더를 바라보는 사지마 츠바사.

여전히. 잔을 받아 든 자신을 바라보는 바텐더의 모습이 들어온다.

마시는 잔에는 신경도 쓰지 않는 눈빛이다. 이토록 완벽한 잔 그 자체를 만들었음에도 오직 신경은 이를 마시는 이에게만 집중한 그.

‘도저히···’

이길 수가 없구나. 사지마 츠바사는 이제야 모든 걸 받아드릴 수밖에 없다.

정환은 눈을 감고는 인정한다는 의미로 고개를 끄덕이는 사지마 츠바사에게 마지막 인사를 전한다.

- 마셔주셔서 감사합니다. 덕분에 잔을 만들 수 있었습니다.

마치 그렇게 말하는 것만 같은 정환의 인사에 사지마는 함께 고개를 숙여 답을 전했다.

- 감사히 내려가겠습니다. 곧, 다시 뵙겠습니다.

라고.

언제고 위에서. 다시 만날 것만 같은 그였다.

“자자. 이러지 말고, 세레모니를 제대로 해야지! 정환 군! 무언가라도 해보게! 다들 보고 있으니!”

“맞아요! 멋지게! 바텐더님 얼른!”

“헤이, 차! 세레모니! 허리 업!”

“바모스!”

한쪽이 일단락되니, 이제 남은 건 자리를 즐기는 일이다. 모두는 정환을 위해 뒤로 한발 물러서며 자리를 만들어 준다.

정환이 앞으로 나오자 터지는 건.

- 짝짝짝짝짝!

- 챔피언! 축하합니다!

- 파라슈트! 한국에 가면 마실 수 있는 거죠?

- 차정환! 차정환! 차정환!

손님이었던. 손님인. 그리고 손님이 될 사람들의 환호와 열렬한 축하.

정환은 그 모습을 바라보며, 결국은 이곳 무대도 바라는 하나의 공간과 다르지 않음을 느낀다.

어디든, 중요한 건 손님의 앞이라는 것.

손님이 있는 곳이라면 그게 무대이든, 동네의 작은 바이든. 절대 중요치 않을 것이다.

정환은 그런 마음을 가득 담아 자신이 손님에게 전할 수 있는 최고의 인사를 건네보려 한다.

한 손에는 ‘World Class Champion.’이라 적힌 커다란 트로피가.

또 다른 손에는 언제 전해졌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 꽃다발이 들린 그의 모습.

그는 그 모든 걸 가진 채 그대로 앞을 바라봤다. 어느덧 관객들은 모두 자리에서 일어서 새롭게 탄생한 챔피언을 맞이할 준비를 마쳤다.

그는 조용히. 그리고 또 천천히. 그대로 허리를 접으며 관객석을 향해 바텐더의 인사를 건넨다.

- 감사했습니다. 다녀오십시오. 여기서 늘 기다리겠습니다.

마치, 바를 떠나 현실로 돌아가는 손님에게 마지막으로 응원을 전하는 것만 같은 그의 인사.

바텐더는 안녕이란 말을 하지 않는다. 다녀오라는 말. 또 오라는 말. 기다리겠다는 말을 남길 뿐.

정환은 언제고 다시 만날 이들을 위해 그저 과하지 않게, 그렇다고 예에 어긋나지도 않게.

그렇게 허리를 접을 뿐이다.

‘만약···’

이런 순간이 온다면. 언제고 바텐더라 불리는 모두를 대표해 손님이라 불릴 수 있는 이들을 마주할 수 있다면.

정환은 아마 이렇게 인사하고 싶었다고. 그런 생각을 했던 것만 같다.

작지만 오래된.

챔피언의 낡은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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