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의 술은 특별합니다-169화 (169/175)

< 169잔. 서서히. >

3.

“이야기를 들어서 알고는 있었습니다.”

그저 사람을 마주하고, 또 그에 맞춰주고. 또, 적절히 알맞은 잔을 건네고.

바텐더의 일이라는 건 겉으로 보기에는 그게 전부처럼 보일 때도 있다.

허나, 실상은. 그 안에 제법 많은 제약이 바텐더에게도 따르고 있었는데, 손님이 먼저 꺼내지 않는 이야기는.

절대 바텐더가 먼저 꺼내서는 안 된다는 거였다.

전체적인 대화의 흐름이나 상식 등을 이야기하는 건 아니다. 이건 손님과 바텐더 사이에 흐르는 한 줄기의 정보에 관한 이야기.

바텐더는 손님에 대해 아는 게 있어도. 손님의 소식 중 들은 것이 있어도.

절대, 손님이 이를 먼저 언급하기 전에는 손님에게 꺼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여러 이유가 담긴 규칙이지만, 간단히 설명하자면 더욱 간단해지는 이유다.

바란 육중한 문을 통해 현실과의 단절을 가져오는 공간. 그런 공간에서, 때로는 현실의 자신을 잊고 싶은 이들도 있기 때문이다.

지금, 앞에 앉은 손님은 아닌 것 같지만 말이다.

“언쟁이 크게 한판 붙었다죠?”

“알고 계셨군요.”

“츠바사 놈이 또···. 부디, 예의 없게 군 걸 대신 용서해 주셨으면 합니다.”

스승이 제자의 잘못을 사죄하며 고개를 깊게 숙인다. 정환은 부담스러운 모습에 어쩔 줄을 모른다.

“굳이 쿠즈하라 상께서 사죄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제자의 잘못은 곧 스승의 잘못입니다. 반대로, 차 군의 잘남은 리 상의 자랑이겠지요. 부럽습니다.”

“···아뇨. 자랑이어도, 못난 모습만 보이고 있어서요. 또, 사지마 츠바사 바텐더가 더 좋은 성적을 거두고 있는걸요.”

성적이란 말이 나오자, 쿠즈하라 미즈오의 표정이 굳어갔다. 그는 사지마가 거뒀다는 수석이라는 성적이 그리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이다.

“아구창이나 한 대 세게 때려주지 그랬습니까?”

“네?”

“놈이 또 시비를 걸었다는 건 차 군이 그만큼 됨됨이가 된 바텐더라는 증거겠지요. 압니다. 이미. 그런 바텐더에게 한 대 세게 맞았다면 정신이 번쩍 들었을지도 모르거늘. 쯧.”

“이런 일이 한두 번이 아니란 말씀이군요.”

“더러 있었지요. 몇 번. 열정적이고 마음가짐이 올바른 바텐더를 츠바사 놈이 망친 적은.”

쿠즈하라 미즈오는 이내 나오는 이야기가 무거운 듯 앞에 놓인 여러 집기를 만지작거리며 말을 이어갔다.

오래전부터 그가 가지고 있던 작은 습관이었다.

“해서, 솔직하게 말해보자면 차 군을 멀리서나마 응원하고는 있었습니다.”

!

“저를 말씀이세요?”

“츠바사 놈에게 이번에는 누군가 한 방을 먹여주길 바라며 말이지요. 그게 아구창이 아니더라도. 허허.”

“어째서 제자가 아니라···?”

“제자기 때문입니다.”

!

무언가를 만지작거리던 손이 멈추고는 아래로 향했던 노인 바텐더의 시선이 위로 올라온다.

그리고 정환과 마주하는 그의 깊고 속을 알 수 없는 눈빛. 그는 정환의 속을 들여다보듯 눈빛을 깊게 뿜고는 이내 말을 이었다.

“놈은 한 번은 큰 실패를 맛봐야 할 겁니다.”

“아직···, 실패를 맛본 적이 없다는 말로도 들리네요.”

솔직히 말해보자면 무언가 사정이 있을 거란 생각은 있었다. 대게 그렇지 않나.

어떤 실패를 한 번 맛본 불운의 천재가 자신의 처지를 비관해 결국에는 삐뚤어지는 전형적인 이야기.

정환은 이해할 생각도, 동감할 생각도 없는 그런 자질구레한 이야기 정도는 사지마 츠바사에게 있을 거라 여겼다.

허나, 나오는 쿠즈하라 미즈오의 말이 마치 그런 사정 따위는 없다는 것만 같다.

“사정이야 있겠지요. 허나, 그걸 고작 실패로 여긴다면 놈은 더는 날지 못할 뿐입니다.”

“있긴 있는 거군요.”

“전형적인 이야기입니다. 이 늙은이의 품 안에서 곱게 자랐고, 주변에서는 천재라 떠받들어지던 놈이었지요. 다만, 독립한 후에는···”

- 뭐야. 신의 손의 제자라더니. 이게 전부야?

- 생각보다 별거 없네. 꼴에 가격은.

- 다시 만들어 와! 이게 무슨 쿠즈하라 상의 제자라고!

- 쳇. 잘난 척하기는.

등. 쿠즈하라 미즈오의 입에서는 독립한 후 사지마 츠바사가 겪은 일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그는 생각보다 제자의 일에 대해 자세히 알아본 것만 같았다.

“전형적인 일이네요. 큰 그늘에 가려져 있던 바텐더가 땡볕에 나왔을 때 처음 겪는.”

“맞습니다. 전형적인 일이죠. 그리고···”

“그걸 실패라 부르기에는 모자라다. 이런 말씀인 거구요.”

손님에게 악의에 찬 말을 듣는다. 그리고 뛰어나다는 스승과의 비교까지.

누구는 호랑이 밑에 개가 나왔다며 비꼬기까지. 어디까지나 본인의 일이라면 적당히 감상에 빠질 만 한 일들이지만.

정환과 쿠즈하라 미즈오는 이런 생각에 동의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정확합니다. 그걸 실패라고 부르기에는 또 다른 바텐더들에게 너무 미안한 일이지요. 그저, 스승을 잘 만나 탄탄대로만을 걸었던 놈이 만난 하나의 작은 시행착오. 그 정도가 충분할 겁니다. 아니, 그랬어야 했었습니다.”

많은 바텐더들이 손님에게는 들을 말 못 들을 말을 들어가며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술이라는 존재와 어쩔 수 없이 늘 함께 하는 이들의 숙명이자 과제가 이것.

쿠즈하라 미즈오라는 거목의 그늘에서 엄선된 손님들에게 점잖은 말만을 들어왔던 그에게는, 이게 하나의 충격일 순 있었어도 말이다.

“너무 오래 밑에 두었던 것만 같습니다. 때로는 세상에 내보내 무언가를 배우게 해야 했던 걸지도.”

“첫 제자셨으니,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위로를 전하는 이와 위로를 받는 이가 바뀐 것만 같다. 손님은 어느새 위로를 전하는 이로 자리를 바꾼 채 대화를 이어간다.

“독립하고 그런 일을 겪은 후 놈은 바뀌었습니다. 모든 걸 다른 탓을 하는 대신 스스로의 실력 탓으로 몰아갔지요. 그리고 이내 닿은 결론은 완벽한 잔으로 손님을 압도하겠다는 것. 자신의 탓을 한 것까지는 이해합니다. 진절머리가 났을 테니 오죽하긴 하겠습니까···. 다만 결론은···!”

“동의할 순 없지만, 저도 고민까지는 이해할 수 있습니다. 결론이 잘못되었다는 생각도 변함은 없구요. 누군가가 잘못을 했다면, 그건 그 손님의 탓이지 모든 손님의 탓은 아닐 겁니다.”

“올바른 생각이군요. 리 상이 제자를 키우는 것에 있어서는 이 늙은이보다 한 수, 아니 여러 수 위인 모양입니다.”

그건 알 수 없다. 정환이 뱉어가는 말은 분명 쿠즈하라 미즈오의 사상도 투영되어 있을 테니까.

다만, 그걸 전하지 못하는 정환은 못내 아쉬울 뿐이다.

“해서, 놈이 제대로 실패를 맛봤으면 합니다. 실패는 언제나 바텐더를 성장시키는 법. 믿는 게 철저하게 부서지는 그런 실패. 그게 츠바사를 원래대로 돌려줄 거라, 이 늙은이는 믿고 있습니다.”

소리 지르고 고함을 치고 또 놈이라 부르고. 서로 오가던 말 속에는 가시가 자리했지만, 그 가시 역시 이내 뿌리를 지키는 수단일 뿐이다.

쿠즈하라 미즈오의 말 속에는 제자를 향한 따뜻한 마음이 그대로 묻어 있다.

이건, 정환이 내부인이 아닌 손님이기에 바텐더도 편히 털어놓을 수 있는 말일 것이다.

“······.”

“쉽지는 않으신 모양이더군요. 아닙니까?”

“계속···지고만 있습니다. 사실, 결승전에서도 자신이···”

“흠. 이런 모습도 가지고 계셨군요. 인간적인 면모라. 츠바사 놈이 차 군에게 실패를 선사한 겁니까?”

“아직 실패라 부르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럼, 이 늙은이를 찾아온 이유는 따로 있겠군요.”

!

“답을 알고 싶다. 그런 겁니까?”

잔잔히. 그리고 다시. 손에는 컵과 마른 수건을 든 늙은 바텐더가 잔을 닦으며 젊은 손님의 속을 뚫어본다.

정환은 벌거벗겨진 느낌이 들어 그대로 그의 눈을 바라보지 못한다.

“스승님을 두고는 왜?”

“스승님께서 이리로 가보라 하셨습니다.”

“리 상이 그러셨다라. 뜻이야 있겠지만, 이 늙은이는 알 수가 없군요. 말씀드렸듯, 리 상이 이쪽에서는 저보다 한 수 위인지라.”

“현역에서 물러난 자신은 할 말이 없다고 하셨습니다.”

“허허허! 과연. 리 상다운 말씀이군요.”

답을 알려주기 싫은 걸까. 어쩌면 정말 모를지도. 쿠즈하라 미즈오는 들려오는 명진의 답에 크게 웃음을 터트리고는 별다른 반응이 없다.

정환은 한없이 눈만이 깊어질 뿐이다.

“사지마 바텐더의 이야기를 들었어도 전 변한 건 없다고 생각합니다···. 사람으로서 공감은 가능하지만, 바텐더는 그런 생각을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옳은 생각입니다. 누군가의 잘못을 한 집단의 잘못으로 여기는 멍청함을 가져선 안 되지요.”

“다만, 그의 실력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더군요. 직접 만든 잔을 보면 가끔은 저 정도로 완벽한 잔이라면···, 그런 생각도 들 정도였습니다.”

“흠.”

깊어진 정환의 눈이 쿠즈하라의 눈빛에 걸리고 만다. 쿠즈하라 미즈오라 불리는 늙은 바텐더는 무언가를 잡아낸 것처럼 정환을 정면으로 응시했다.

“무슨 말을 들은 겁니까?”

“네?”

“츠바사가 대체 차 군에게 어떤 말을 남겼길래 이렇게 혼란스러워하냐는 말입니다.”

!

“네?”

“무슨 말을 들었고. 그 말속에서 흔들림이 있었다. 그래서, 때로는 내 생각이 의심된다. 이런 거 아닙니까? 제가 틀렸습니까?”

“아니, 그런 건···”

아니다. 라고 말하기에는 무언가 걸리는 게 있다. 속을 훤히 들여다보인 정환은 차마 이를 수습하는 말을 전부 뱉지 못한다.

“실은 그와 언쟁을 나누던 중 답하지 못한 말이 있긴 합니다.”

“무슨 말이었죠?”

“왜 여기에 있냐고. 그렇게 손님을 생각하는 바텐더라면 왜 대회까지 나온 거냐고. 당장에 손님을 찾아 동네 바에나 있어야 하는 게 아니냐는 그런 물음이었습니다. 전···. 답하지 못했던 거 같습니다.”

자신은 왜 여기에 있을까. 무엇을 위해. 실은 세계 최고라 불리는 허영에 어쩌면 자신도 관심이 있었던 건 아닐까.

손님을 완전히 배제한 하나의 타이틀을 위한 자리에서 들은 말에 정환은 쉽게 답하지 못했었다.

그리고 그 말에 답을 하지 못해서였을까. 그 말은 계속해서, 사지마 츠바사에게 밀릴 때마다.

서서히 정환을 옥죄어 오고 있었다.

“흠.”

쿠즈하라 미즈오는 그런 말을 뱉어오는 젊은 바텐더 정환을 아래위로 훑고는 고개를 끄덕인다.

마치, 환자의 상태를 진찰하는 것만 같은 눈빛의 그에게서 뿜어졌다.

끄덕이는 고개는, 답이 나왔다는 뜻일 것이다.

“잔이 비었군요. 간단한 잔이지만, 한 잔 더. 어떻습니까?”

진단이 끝난 의사는 치료를 가져오고 답이 나온 바텐더는 잔을 가져온다.

그가 먼저 이런 말을 물었을 때는 보여주고 싶은 잔이 있는 걸지도 모른다.

정환은 그를 알아채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부탁드립니다.”

쿠즈하라 미즈오는 손님의 허락이 떨어지자, 제자를 불러 무언가를 가져오라 명한다.

뱀부 바의 백 바는 모자란 술이 없어 보였지만. 이번에 보여줄 술은 더 특별한 모양이다.

“손님을 위하는 바텐더가 왜 손님이 아니라 여기에 있냐라. 츠바사 놈도 악의적인 말을 뱉었군요. 이 역시, 사죄드립니다.”

“아닙니다. 부분적으로는···. 틀린 말도 아닌걸요.”

“틀린 말입니다.”

!

“또한, 차 군이 원하는 답 역시. 제가 낼 수 있는 한 최대한 내어 보이겠습니다.”

!

“정답일 거라는 생각은 마십시오. 그저 이건 바텐더 쿠즈하라 미즈오의 답일 뿐.”

“답을 구하러 온 건 아닙니다. 그저, 가는 방향이나마 배우고 싶었습니다.”

쿠즈하라 미즈오는 정환의 답이 마음에 든 듯 고개를 끄덕이고는 잔을 만들 준비를 마친다.

그의 손에는 일본어가 가득 적힌 술병이 하나 들려 주어질 잔에 대한 기대감을 품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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