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의 술은 특별합니다-166화 (166/175)

< 166잔. 벽. >

4.

- 털썩!

방으로 돌아온 정환이 그대로 몸을 침대로 내던진다. 오늘은 월드 클래스 글로벌 두 번째 챌린지인 마리아주가 있던 날.

글로벌 대회라는 부담감에 마리아주라는 쉽지 않은 과제까지 겹치니, 하루를 끝낸 정환의 몸이 고단한 건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였다.

정환은 그대로 침대에 몸을 던지고는 베개에 고개를 묻었다. 미동도 없는 모습이 힘이 쭉 빠진 사람의 모습이다.

“괜찮으세요?”

“두게. 잠시 쉴 시간이 필요할 테니.”

“그래도···”

“스타일이 다르지 않겠나. 정환 군이야 홀로 이겨낼 시간이 필요할 걸세.”

“그럼, 필요한 게 있으시면 언제든 불러주세요. 거실에 있겠습니다.”

그런 정환을 걱정스럽게 바라보는 두 사람. 강성용 주임과 김태현 교수는 작게 속삭이듯 정환을 살피며 대화를 나눈다.

정환은 마지막에 들려온 강 주임의 목소리에 겨우 손만 들어 이해했음을 표했다.

아직은 몸을 일으키고 싶어 보이지 않은 그의 모습이다.

명진은 그저 홀로 거실에 앉아, 방안을 걱정스럽게 바라본다.

제자가 무언가를 홀로 가져가려는 모습이지만, 쉽게 먼저 말을 꺼내지 않기에 다가서기는 힘든 그였다.

풍경이 퍽 수상하다. 마리아주 챌린지에서 무슨 일이라도 있었던 걸까.

정환의 성적이 시원찮아서? 방 안에 감도는 분위기만을 본다면, 아마 그런 추론도 제법 설득력을 얻을지도 모른다.

다들 정환의 눈치만을 보며 몸을 조심하는 모습들이니까.

하지만.

“성적은···좋은 편 아닌가요?”

의외로.

정환이 두 번째 과제에서 거둔 성적은 전혀 나쁘지 않았는데.

“당연하지. 연속으로 탑5에 든 게 아닌가! 이건, 우승 후보라 불러도 모자람이 없을 정도네. 거기에 탑 5에 연속으로 든 건 딱 3명이 전부라네. 40명 중 3명!”

정환은 이번 과제에서도 선방하며 탑 5에 이름을 올렸기 때문이다.

결승에 올라가는 것이 평균을 낸 후 8인이니, 이는 유리한 고지를 선점한 것이 분명해 보였다.

1. 니코 데 브랑(Fra)

2. 사지마 츠바사(Jap)

3. 차 정 환(Kor)

4. 플리포 치아렐로(Ita)

5. 수파위 마타라나(Thai)

.

.

.

김태현 교수는 순위를 찍어둔 휴대폰을 가리키며 연신 침을 튀겨 갔다.

1위야 어쩔 수 없었다. 이건, 각자가 강한 분야가 분명 있는 거니까.

프랑스 출신의 바텐더가 언제나 마리아주에 있어서는 강세를 보였던 것이 사실.

첫 과제에서 중위권을 기록했던 그가 마리아주에서는 큰 두각을 나타내며 수석을 가져갔다.

이탈리아 바텐더의 선전 역시 예상이 가능했던 영역이다. 아페리티프나 식전주 같은 문화는 프랑스보다 이탈리아가 앞섰다는 기록도 있을 정도니 오죽하겠나.

거기에 태국 바텐더의 선전은 이번에도 적용된 약간의 홈 어드밴티지.

여러 코스 요리 중에는 태국식 퓨전이 가미된 경향도 없지 않았기에 그런 요리에 쓰이는 허브를 잘 알던 그는 적당히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었다.

모두의 예상을 깬 이들이라면 당연히 정환과 사지마 츠바사였다.

일본이야 바씬에서 이미 그 실력을 알아준다지만 마리아주에서까지 이렇게 선전한 건 처음.

거기에 바씬의 불모지에 가까운 한국에서 3등을 하는 바텐더가 나왔다니.

그리고 그 두 사람이 첫 과제에서 나란히 수석과 차석을 했던 사람이라니.

대회를 지켜보던 이들에게는 새로운 가십이 하나 생긴 것만 같았다.

지금 고요한 위쪽의 방과는 달리, 아래쪽에는 불시에 벌어진 한일 바텐더의 각축전 덕분에 모두가 흥미롭게 대회를 살피는 중이다.

1차 과제와 2차 과제를 합산하면 당연히 수석과 차석은 여전히 사지마 츠바사와 정환.

결선에서야 앞선 과제의 성적이 반영되지 않는다고는 하더라도.

우승 후보로 두 사람을 점치는 이들이 이미 반수를 넘어가는 지금이다.

물론.

이런 의미와는 별개로.

정환은 썩.

자신의 성적이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이지만 말이다.

“하아.”

문을 닫고 밖으로 나가려는 두 사람의 뒤로 정환의 깊은 한숨이 들려온다.

두 사람은 애써 눈을 찔끔 감고는 얼른 문을 닫아 버렸다.

무언가를 서포트해주기 위해 이곳에 있는 이들이지만. 이건, 이들이 다룰 수 있는 영역은 아니었다.

다음 날이 될 때까지. 방에서는 나온 적이 없는 정환이었다.

5.

“월드 클래스 글로벌 세 번째 챌린지! 칵테일 파티를 여기서 끝내겠습니다!”

하루가 지나고 다시 시작된 월드 클래스 글로벌 챌린지. 오늘로 세 번째 과제를 끝낸 대회는 어느덧 결승으로 향하는 이들의 윤곽이 점점 그려지는 와중이다.

몇몇은 벌써 탈락을 예감하고는 여러 시도를 접목하고 있다. 이건, 대회지만 바텐더에게도 하나의 기회가 될 수 있는 자리.

누구는 여기서 배움에 목적을 두기도 하고, 누구는 실험에도 목적을 두며 다들 무언가를 하나라도 더 얻어가려 애를 쓰는 와중이다.

물론.

그런 것과는 상관없이, 선두 그룹에서는 여전히 치열한 경쟁이 한창이고.

“결과를 지금 발표합니다.”

결과를 발표한다는 사회자의 말에 갈리는 두 그룹의 표정이 누가 선두에 속한 이들인지. 또 누가 이미 짐을 쌀 준비를 끝낸 이들인지를 알게 했다.

정환은 이번에는. 이라는 단어를 연신 머리로 떠올리며 화면을 바라봤다.

칵테일 파티 챌린지에서 그가 쳐낸 잔이 적지 않았기에 결과를 조금 기대해 보는 그였다.

하지만.

- 두둥!

1. 사지마 츠바사(Jap) - 213잔.

2. 차 정 환(Kor) - 194잔.

3. 제이미 로스(USA) - 168잔.

4. 구프닝 바리요(Bra) - 165잔.

5. 마 원 평(HK) - 131잔.

.

.

화면을 장식하는 결과는 이번에도 정환의 이름 앞에 다른 이름을 두고 만다.

정환은 살짝 충격을 받은 표정을 지으며 슬쩍 한 발을 뒤로 물렸다.

물론, 칵테일 파티라는 챌린지 특성상 정환이 추구하는 손님을 위한 잔이라는 의미를 살리기가 쉽지는 않다.

정해진 시간 안에 정해진 메뉴로 손님을 받는 것이 칵테일 파티 챌린지이지 않나.

그럼에도, 무언가에 대한 하나의 믿음으로 누군가를 상대한다는 결심을 했던 이에게는.

충격을 주기에 모자람이 없는 결과였다.

‘세 번을 붙어서···’

세 번을 전부 지고 말았다.

일본에서 지내던 시절 ‘최고’라 불렸던 정환은, 자신의 바로 한 세대 전.

그러니까 자신에게 ‘최고’라는 칭호를 물려줬던 이를 만나 커다란 벽을 느끼고 만다.

일본에서 정환이 활동할 때야 그는 이미 한풀이 꺾인 바텐더였다.

나이가 들수록 익어가는 것이 바텐더라지만, 기술이라는 건 젊은 시절을 당해내지 못한다.

물론, 그게 마스터라던가, 명인이라는 칭호에는 못 미쳐도 말이다.

정환이 최고이던 시절 사지마 츠바사는 이미 전성기를 지난 나이였다.

몰랐던 그의 전성기 모습을 마주하니, 정환은 자신을 가로막는 커다란 벽이 생긴 것만 같다.

높은 벽을 마주한 정환이 아래로 시선을 잠시 내려본다. 그리고 그때 위에서 내려오는 것만 같은 하나의 목소리.

“일이 잘 안 풀립니까?”

익숙하고, 또 조금은 거부감이 드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이건 일본어.

목소리의 주인공은, 언제나처럼 정환의 앞에 이름을 올렸던 사지마 츠바사였다.

“···조롱하러 오신 겁니까?”

“그럴 리가요. 누구보다 차정환 바텐더를 응원하고 있는 게 저일 겁니다.”

“그건 무슨 소리죠?”

“뭐. 제가 틀렸다는 걸 증명하겠다고 하신 분이 아닙니까? 만약, 제가 잘못 알고 있는 영역이 있다면, 배워야죠. 반대로···”

그는 표정에 아무런 감정을 담지 않고는 차분히 정환을 향해 말을 뱉어간다.

겉으로야 악의가 없어 보이지만, 여전히 의미심장한 그의 말들이다.

“차정환 바텐더 역시 틀렸다는 걸 아셨다면, 새로 배우시면 되는 겁니다.”

!

“사지마 상!”

“그만하죠. 또 언성을 높일 순 없으니. 다만, 같은 의미 아닙니까? 제가 틀렸다는 걸 차정환 바텐더가 실력으로 증명하겠다는 것처럼. 제가 이긴다면, 차정환 바텐더가 틀린 것이 증명되는 거겠죠. 아닙니까?”

“그건···.”

“두고 보죠. 결과를 보아하니, 결선에는 둘 모두 올라갈 것 같군요. 앞선 챌린지의 결과가 반영되지 않는다고는 하지만···. 뭐. 결과야.”

“끝까지, 가봐야 아는 겁니다.”

“끝까지. 가봅시다. 그럼, 이만.”

슬쩍 불이 죽어갈 즈음에 땔감처럼 다가와 투지를 다시 태워주고 간다.

이건 감사하다는 말을 전해야 하는 걸까.

정환은 자신에게 다가와 굳이 말을 던지고 가는 사지마 츠바사를 향해 강렬한 눈빛을 보내줬다.

한풀 꺾일 뻔한 위기를, 그가 넘기게 해준 것이다.

반대로 츠바사는 여전히 자신을 향해 강렬한 눈빛을 정환을 보더니 무미건조한 표정에 금이 가기 시작한다.

조금은 더 악의적으로 변해가는 그의 말들.

자신과 반대되는 모습을 가진 바텐더가. 꺾으려고, 꺾으려고 계속해서 바람을 붙여봐도.

더욱 강렬하게 타오르기만 하는 모습이 그는 퍽 마음에 들지 않은 모양이다.

돌아서 정환에게 등을 보인 그의 입꼬리가 미세하게 떨려왔다.

마치, 보기 싫은 모습을 본 사람처럼 말이다.

두 사람은 여전히 반대 방향으로 멀어질 뿐이다.

6.

“월드 클래스 글로벌 예선전, 마지막 챌린지를 시작합니다. 마지막 챌린지는···”

대망의 월드 클래스 글로벌 예선전 마지막의 날. 이미 성적이 어느 정도 정해진 이들이 대부분이지만, 여전히 긴장감은 장내에 남아있다.

아직은 결선 진출을 확정 짓지 못한 애매한 성적의 이들도 있었고, 이대로 대회장을 떠나기 아쉬워 어떻게든 유의미한 성적을 한 번이라도 내보려는 이들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성적과는 조금 다른 이유로 투지를 불태우는 이들도 있었는데.

그건, 이번 대회에서 가장 큰 주목을 받는 두 바텐더. 바로, 사지마 츠바사와 차정환이라는 바텐더일 것이다.

마지막 챌린지야 이제 남은 게 하나니 모두가 예상할 수 있었다.

그런 만큼 칼을 갈아온 이들도 많을 챌린지가 이번 챌린지.

대망의 예선 마지막을 장식할 챌린지는, 바로 스피드 런 챌린지였다.

이전에는 1대1로 진행되던 것과 다르게 소규모로 그룹을 여러 개 나눠 시간을 기록하는 글로벌 스피드 런 챌린지.

정환은 브라질과 상해, 그리고 독일을 바텐더와 한 조를 이뤘다.

정환과 같은 조에 배정되자, 이내 얼굴에 그림자가 크게 드리우는 이들이다.

“스피드 런 챌린지를 시작합니다!”

이미 다들 겪어본 챌린지인만큼 가타부타 설명 없이 챌린지는 시작된다.

조별로 같은 종류의 칵테일을 6잔 만들어 가는 스피드 런 챌린지.

정환은 화면에 나온 잔의 종류를 빠르게 훑고는 그대로 장비를 손에 쥔다.

한국 대회에서 보여줬던 모습보다 훨씬 빠른 정환의 움직임. 정환은 일본 대회 영상을 본 후, 사지마 츠바사의 속도를 따라잡기 위해 따로 연습을 해왔었다.

아마, 그런 연습이 이번에는 빛을 보는 것만 같다.

물론, 그때는 지금처럼 대립각을 세울 걸 예상했던 건 아니다. 그저, 순수하게 바텐더로서 한 사람을 따라잡고 싶어 연습했던 것일 뿐.

헌데, 그때 해왔던 연습이, 이렇게 정환에게 날개를 달아 준다.

- 탓, 탓, 탓!

- 살가가가각! 살가가가각!

정환은 빠르게 두 개의 셰이커를 준비하고는 그대로 이를 양손에 올려든다.

특유의 그. 투 핸드 셰이킹이 세계 무대에서 빛을 뽐낸다.

“오오오오.”

“와우! 양손이 일정하게!”

“아냐! 조금 달라! 두 칵테일의 종류가 다르니까!”

세계 무대인 만큼, 투 핸드 셰이킹, 그리고 프리 푸어링 정도는 누구나 쉽게 구사한다.

다만, 그 속에서도 오는 차이는 존재하는 법.

그리고 이 대회를 지켜보는 이들은, 그 차이를 명백히 알아챌 수 있는 전문가들이 대부분이다.

이들은, 저 한국에서 온 바텐더가 보여주는 모습이 다른 바텐더들의 것과는 결이 다른 것임을 모르지 않았다.

- 삐익!

정환은 빠르게 메이킹을 마치고는 그대로 부저를 눌러버린다. 조금의 기다림도 여유도, 또 자비도 없는 모습으로 제일 먼저 부저를 강타하는 정환의 모습.

다른 이들에게는 미안하지만, 지금은 남들을 배려할 순간이 아니다.

무언가를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해 싸워야 할 때일 뿐.

정환의 부저가 눌러지고 한참이 지나서야, 두 번째 부저가 소리를 뽐낸다.

- 1. 차 정 환(Kor) - 5분 04초.

- 2. 그레텐 마이허(Ger) - 6분 36초.

그리고 뒤늦게 나오는 건 정환의 기록. 앞서 한국 대회에서 기록했던 5분 15초에서 10초 이상을 단축한 대기록이 화면을 번쩍였다.

그러자.

“5분 04초!??”

“1분 이상 차이를 냈다고???”

터지는 건 엄청난 반응들. 저마다 정환의 신기에 가까운 손놀림에 혀를 내두르는 반응이다.

이번 챌린지 역시, 상위는 저 바텐더의 차지일 것처럼만 보였다.

“후.”

정환은 가볍게 손을 털고는 무대에서 몸을 나렸다. 화면에 뜬 기록이 만족스러운 눈치였다.

‘사지마 츠바사의 기록이 5분 05초였으니까.’

그보다 1초를 앞섰다. 이 정도라면 해볼 만하겠지. 그런 안일한 생각까지 해보는 정환.

하지만.

- 삐이이익!

잠시 후, 자신이 몸을 빼낸 무대 위에서 들려온 소리에 정환은 또 한 번 넋을 잃고 만다.

그가 바라보던 곳에는, 자신의 다음 조로 무대에 올라간 사지마 츠바사가 부저를 때린 후, 마치 객석에 앉은 자신을 바라보듯 시선을 보내고 있었다.

그리고 화면을 장식한 그의 기록은.

- 1. 사지마 츠바사(Jap) - 5분 01초.

라는 말도 안 되는 기록. 두 사람 모두 맛과 완성도에서는 만점을 받았기에 감히 날림이라 말을 더할 수도 없는 기록일 것이다.

조금은 따라왔다고 생각했었는데. 상대는 어느덧 더 멀리 도망친 후다.

마치 자신을 찾듯 바라보는 그의 눈빛을, 똑바로 마주할 수 없는 정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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