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의 술은 특별합니다-165화 (165/175)

< 165잔. 고개를 들다. >

1.

- 쾅!

“정환 군! 대박이네! 벌써 받은 제안이 몇 개인 줄 알고 있나! 하하하! 라이프 시즌스의 모리슨이 설설 기어가는 모습을 자네가 직접 봤어야 하는 건데! 뿐만이 아니네! 자네, 어쩌면 대회가 끝나고는 월드 투어를 준비해야 할지도 모르겠네! 싱가포르, 상해, 홍콩! 벌써 게스트 바텐딩 문의가 빗발을 친다네!”

가끔은 그렇다. 평생을 호텔맨으로 살아오며 사람의 기분을 살피는 것에는 일가견이 있다는 사람도.

가끔은 이렇게 분위기를 읽지 못하고는 목청을 높이고는 한다.

잘 나갈 때는 손님의 표정만 보고도 무엇이 필요한지 곧바로 알았다는 전설의 호텔맨인 김태현 교수도.

지금은 방안을 감도는 묵직한 분위기를 좀처럼 알아채지 못하는 모습이다.

아마, 조금 전 오갔던 큰일들이 그의 관심을 가져갔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목청을 높이며 밝고 큰 몸동작으로 방 안에 들어선 김태현 교수가 무색하게, 방안은 고요함으로 가득한 와중이다.

벙찐 표정으로 주변을 돌아보는 김태현 교수에게 강성용 주임이 애써 표정을 구겨가며 입가에 손가락을 가져다 댄다.

조용히 하라는 뜻이었다.

“무, 무슨 일들이 있나···? 왜?”

“쉬잇! 가만히 계셔요. 쉿.”

넓디넓은 스위트룸에는 짜오프라야강 전경을 내려다보는 쇼파와 그 쇼파에 몸을 파묻은 정환.

그리고 그 쇼파에서 멀찍이 떨어져 최대한 존재감을 숨기고 있는 성용과 명진이 있을 뿐이다.

조금 늦게 돌아온 김태현 교수는 방 안의 분위기를 읽어가기 바쁘다.

“무슨···일이 있군. 있어.”

“한 판 붙었다고 해요.”

“한 판? 뭘? 바텐딩?”

“설마요! 사지마 츠바사 바텐더요! 무슨 이야기를 나눴는지는 몰라도 크게 싸웠다나 봐요.”

“사, 사지마 츠바사랑 정환 군이? 왜?”

“그야 저희도 모르죠! 알면 조금 나을 텐데. 어휴. 1시간 후면 챌린지인데···”

이제야 모든 상황이 파악된 김태현 교수는 서둘러 몸을 웅크리며 존재감을 죽인다.

슬쩍 발뒤꿈치를 들고는 구석으로 향하는 그의 모습이 처량했다.

“후우.”

꺼지듯 나오는 정환의 한숨.

평소 함께 지내던 이들 앞에서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는 정환이었기에, 주변의 인물들은 더욱 이런 모습이 심상치 않게만 느껴졌다.

결국.

이를 지켜보던 김태현 교수와 강성용 주임의 얼굴이, 이 모든 상황을 타개할 수 있는 유일한 출구를 향한다.

그들의 시선이 닿은 곳은 이들과 함께 멀찍이 서 있던 명진의 얼굴이다.

그나마 여기서 정환에게 다가갈 수 있는 사람은 그의 스승인 명진이 유일할 것이다.

“···?”

“마스터. 믿습니다.”

“이대로 챌린지에 나가면 영향이 있을지도 몰라요. 부탁드립니다. 이명진 마스터님.”

“······.”

아니, 제자라도 가끔은 건드리지 않는 게 좋을 때도 있는 법인데.

명진은 걱정도 되지만, 너무도 격정적인 정환의 모습에 식은땀을 살짝 흘리며 그에게 다가선다.

명진이 바로 옆까지 다가올 동안도, 창밖을 보느라 이를 알아채지 못하는 정환이다.

“정환 씨?”

“···아. 네. 마스터.”

정환은 명진이 그의 어깨를 건드리고 나서야. 겨우 명진을 돌아본다.

명진은 자신과 마주친 제자의 얼굴에 깊은 그림자가 드리웠음을 단박에 알아챌 수 있었다.

이럴 때는 어떤 말을 해줘야 할까. 무슨 일이 있었냐며 물어보고 듣고 또 그에 맞는 조언?

김태현 교수와 강성용 주임은 둘 사이를 조용히 지켜보며 명진이 이 일을 해결해 주기만을 바란다.

하지만.

“조금 쉬시죠. 너무. 너무 힘을 주고 있는 건 좋지 않아요.”

명진은 지금의 상태에 대해 별다른 언급 없이 정환에게 휴식만을 권할 뿐이다.

쇼파에서 무려 2시간을 이렇게 쉬고 있던 사람에게 말이다.

“···마스터가 지금 뭐라고?”

“제대로 들으신 것 같은데요?”

“그렇지? 쉬던 사람에게 쉬라고?”

“···예, 뭐. 혹시 바텐더 사이의 암호문 같은 그런 건···?”

“내 비록 가라 바텐더지만 그런 게 있다면 모를 리는 없네. 아마 아닐 걸세.”

지켜보던 이들은 알 수 없는 두 사람의 대화다.

“시간이, 얼마나 남았죠?”

“이제 한 시간 후면 시작입니다. 조금은 쉬어 두세요.”

“벌써 그렇게 되었군요.”

“너무 무리하는 건 좋지 않습니다. 휴식도 하나의 훈련이지 않습니까?”

“···그렇죠. 조금 쉬어야겠네요.”

“샤워라도 하고 오세요. 곧 치열하게 싸울 테니.”

“샤워. 좋네요. 감사해요, 마스터. 적당히 끊어 주셔서.”

“아닙니다. 다녀와요.”

“네.”

정환은 자신의 어깨에 올려진 명진의 손을 한번 쓰윽 쓸고는 고개를 끄덕인다.

명진의 얼굴에는 언제나처럼 인자한 표정만이 걸려 있다. 정환은 그 표정을 보더니, 무겁던 표정을 풀고는 자리에서 일어난다.

샤워실로 향하는 그의 모습이 조금 지친 이의 발걸음이다.

“마스터, 이게 대체? 지금까지 쉬던 거 아니었습니까?”

“그, 이번 일에 대해서는?”

정환이 샤워실로 향하자, 곧바로 쏟아지는 건 다른 이들의 물음이다.

명진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는.

“기다립시다. 그리고, 정환 씨는 쉬고 있던 게 아니었을 겁니다. 적어도, 제가 아는 차정환이라는 이는 저런 표정을 지을 때면 무엇이든 머리를 움직이고 있을 때니까요. 아마, 머리로 수백 번, 수천 번. 앞으로 있을 챌린지를 그리고 있었을 겁니다.”

자신이 보았던 제자에 대한 감상을 들려준다. 살을 부대끼며 지낸 지 며칠이 지난 이들 중에서, 명진만이 이를 알아본 것이다.

“손이 아니라 머리로 그, 시뮬레이션? 그런 걸 하고 있었다는 건가요?”

“아마 그럴 겁니다.”

“허. 정환 군이 사지마랑 한 판 붙더니, 이상해 진 게 아닙니까? 그건 안 물어도 되는 겁니까?”

“만약 제가 필요하다면, 먼저 정환 군이 말을 꺼낼 겁니다. 지금은, 기다리는 게 답이죠. 먼저 묻는 것이 능사는 아닙니다.”

조금은 방식을 바꿔 적극적으로 나가볼까. 그런 생각도 해본 적이 없는 명진은 아니다.

지금은 대회 중이고, 자신은 정환의 멘탈을 케어하기 위해 온 사람이니까.

허나, 정환이 자신을 부러 초청했을 때는 이유가 있었을 터.

정환은 평소답지 않은 명진의 모습보다는 평소같은 명진의 모습을 기대하며 명진을 초대했을 게 분명했다.

해서, 명진은. 그저 늘 하던 대로 멀리서 기다리며 정환의 마음을 편하게 만드는 것에 최선을 다하기로 했다.

그의 방법이, 정환을 더욱 편하게 만든 것만 같았다.

“괜찮은 겁니까?”

“다른 건 모르겠습니다. 다만···. 이건 확실해 보이는군요. 정환 씨가 무언가. 큰 결심을 한 것만 같아 보입니다.”

명진도 전부 알 수는 없다. 그가 능구렁이고 또 달관에 이르렀어도 모르는 건 모르는 거니까.

다만, 제자의 얼굴에서 보았던 건. 무언가에 짙게 깔린 노기와 함께 강해 보이던 하나의 결심.

그걸 본 명진은 우선은 정환을 그대로 두어도 좋겠다는 생각을 한 것이다.

- 솨아아아아.

샤워실에서는 고요한 와중에 물줄기 떨어지는 소리만이 들려온다.

무언가 바뀐 걸까. 아직은 알 수 없다.

2.

- 솨아아아아아.

쏟아지는 물줄기를 받아내는 정환의 얼굴에서 눈이 부릅! 하고 떠진다.

정환은 받아내던 물줄기에서 얼굴을 빼내며 머리를 쓸어 올렸다.

- 하나만 묻죠. 그렇게 손님을 생각한다는 사람이 여기서 뭘 하는 겁니까?

떠오르는 건 지나가듯 이죽거리며 던졌던 사지마 츠바사의 한마디.

자신은 여기서 뭘 하는 걸까. 아마, 정환은 그 물음에 제대로 답하지 못했던 것만 같다.

깊이 타고 들어간다면 당연히 할 말은 있다. 이어지는 논리 역시 존재할 거고.

다만, 표면적으로 전해지는 말 자체가 자신의 논리를 무너트리는 것만 같이 느껴져 정환은 그 말이 계속 걸려온다.

물론, 걸리는 건 사지마 츠바사의 말 중 그 말만은 아니다. 전부. 그래, 전부라는 말이 어울릴지도.

그가 뱉었던 모든 말들이 정환의 심기를 건드렸고, 정환은그 어떤 말에도 동의할 수 없었다.

‘손님을 빼고 잔을 만드는 바텐더라니.’

이해할 수 없다. 아니, 이해하고 싶지도 않고. 언제나 바텐더로서 일하며 정환은 손님을 최우선 순위에 두곤 했었다.

맛. 맛도 중요할지도 모른다. 완벽이라는 말이 맛에만 한정되는 건 아니겠지만, 하여튼.

허나, 칵테일이 맛있어야 하는 건 당연한 일이지 않나.

무엇이 완벽이고, 또 무엇을 위해 완벽해야 하는 건지. 정환은 재차 생각해도 같은 결론에 닿을 뿐이다.

손님이라는, 언제나 같은 결론에.

‘왜?’

츠바사는 왜. 왜 저런 생각을 가지게 되었을까. 그런 생각도 드는 정환.

허나, 정환은 이내 물줄기에 얼굴을 대고는 그런 생각을 지워 버린다.

이유야 어떻든, 그런 생각을 가진 바텐더를 인정할 순 없지 않나.

거기에 그가 세계 최고라는 타이틀을 노린다면 이는 더욱 막아야 할 터.

해서, 정환은 돌아온 순간부터 계속해서 머리를 되감으며 앞으로 있을 챌린지에 대비했다.

우선은 시작이 나쁘지 않다. 사지마 츠바사보다야 조금 뒤처졌지만, 어쨌든 결선에 도움은 될 순위.

앞으로 있을 챌린지에서 그를 이겨가며, 정환은 꼭 자신이 틀리지 않았음을 증명할 예정이다.

명진에게 이를 털어놓고 조언을 구하는 것도 나쁘지 않은 선택지였을 수도 있다.

허나, 그러지 않았던 정환. 이건, 자신이 답을 모르는 난제가 아닌.

답이 정해져 있는 하나의 과제이기 때문이다.

‘보여주는 거야. 내 방식으로.’

상대가 그토록 무시하는 방식으로 만들어진 잔으로 상대를 납득시킨다.

이게 정환이 추구하는 바텐더의 방식일 터.

정환은 그런 생각에 눈빛을 굳힌다.

- 뚝.

물줄기가 그친 자리에서 돌아서는 정환의 어깨는 이미 넓게 펴진 지 오래였다.

3.

“월드 클래스 글로벌. 두 번째 챌린지. 마리아주 챌린지를 곧 시작하겠습니다.”

휴식을 끝낸 정환은 어느새 행사장에 내려와 두 번째 과제를 마주할 준비를 끝냈다.

그리고 연달아 나오는 건 두 번째 챌린지인 마리아주.

이미 한국 대회에서 한 번 겪은 적이 있는 과제이기에 정환에게도 어렵진 않을 것이다.

다만, 방식은 한국 대회 때랑은 조금 달랐는데, 이번에는 그 자리에서 하나씩 칵테일을 평가받는 것이 아닌.

매번 실물을 만들고 또 레시피를 제출해가며 최종적으로 결과만을 받아드는 것이다.

글로벌 대회의 심사 방식은, 매번 이런 식이다.

앞서 치러졌던 마켓 투어 챌린지와 달리 마리아주는 평범한 축에 속하는 챌린지다.

창의성보다는 주어지는 음식과의 조화가 더 중요한 분야.

정환은 창의성에서 뒤처졌던 지난 챌린지를 떠올리며, 여기서 격차를 메꿀 구상을 마친다.

수석이니 차석이니 그런 건 중요하지 않다. 그저 정환이 이기고 싶은 건.

‘저기인가.’

지금 눈빛을 마주하는 쓰리피스에 머리를 말끔하게 위로 올린 저 일본인 바텐더.

앞서 부딪혔던 언쟁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고개를 까딱하며 인사를 건네는 그의 모습이 조금은 얄미운 정환이다.

정환 역시 굳은 표정으로 고개만 까딱하고는 그에게서 시선을 거둔다.

이미 두 사람의 충돌을 식당에서 지켜봤던 바텐더들은 그 모습을 재밌게 바라봤다.

화합의 장인 줄만 알았던 이 대회의 본질이. 결국에는 경쟁에 있음을 다시금 떠올리게 하는 두 사람이다.

“마리아주 챌린지. 그 첫 번째 코스를 공개합니다. 참가자분들은 모두 메이킹을 준비해 주십시오.”

눈빛 교환이 끝나자 이내 챌린지가 시작된다.

- 삐이!

하는 소리와 함께 바텐더들에게 공개되는 첫 번째 음식. 정환은 주어진 음식을 가볍게 맛보고는 곧바로 손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평소보다 더 빠르고, 더 진중한.

그의 손길이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