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4잔. 같지만, 다른. >
3.
어색하다.
감히 말로 전부 표현할 수 없을 정도의 어색함에 정환은 지금 떠 올리는 이 숟가락이 입으로 향하는지 다른 곳으로 향하는지 알 수 없을 정도였다.
‘원래도···’
그렇게 친한 사이는 아니었는데. 지금은 더 어색하다. 정환은 지금 자신에게 이런 어색함을 느끼게 하는 앞에 앉은 이를 바라봤다.
그는 이전 생에서 자신의 사형이었고, 또 지금은 경쟁을 펼치고 있는 바텐더 사지마 츠바사.
깔끔하게 머리를 끌어 올리고는 쓰리피스 정장까지 갖춰 입은 그가 조용히 입을 열며 식사를 즐겨 갔다.
‘이럴 거면 왜···.’
여기 앉아서 같이 먹는다고 했을까. 차라리 무어라 말이라도 걸어줬다면.
정환은 아무 말 없이 정말 같이 밥만 먹는 그를 보며 여전히 속을 알 수 없는 이라 느꼈다.
이건 조금 이상한 일로 보일 수는 있다. 바텐더들은 밖에서 만나도 친근함을 내보이는 성격인 것이 대다수.
직업적으로 사람과 사이에서 어색함을 내보이는 것이 바텐더에게는 더욱 어색하기 때문이다.
헌데도, 이 사지마 츠바사라는 바텐더는 오히려 이런 어색함을 즐기는 것만 같다.
- 툭.
- 슥. 슥.
츠바사는 자신이 가져온 플레이트를 깔끔히 비우고는 식기를 내려둔다.
절도마저 있어 보이는 동작 다음에 이어지는 건 고급스러운 손동작.
그는 입을 조용히 닦고는 차분한 자세로 정환을 기다렸다.
“다···드신 건가요?”
손에 포크와 나이프를 들고는 눈이 마주치자 꺼내 보는 정환의 첫마디.
그러자 츠바사는 그저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고는 정환의 진행 상황을 물어온다.
정환은 들었던 포크를 내려두고는.
“저도 거의···.”
속에도 없는 말을 내보일 뿐이다.
“다행이군요. 식사 중에는 방해가 될 거 같아 딱히 말을 걸지 않았습니다. 편안한 식사가 되셨길 바랄 뿐입니다.”
아뇨. 덕분에 속이 더부룩해졌습니다. 정환은 그런 말이 목 끝에 걸렸지만 애써 내리누르며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일본에서도 제법 오래 살았지만, 이건 문화 차이가 아닌 사람의 차이인 모양이다.
“의외네요. 사지마 상께서 먼저 식사를 권할 줄은 몰랐습니다.”
“그런가요? 저번부터 말씀드렸을 텐데요. 차정환 바텐더와는 닮은 점이 많아 보였다고. 관심 역시 깊게 가지고 있습니다.”
“아. 저번에 무슨 하실 말씀이 있다고 하셨었죠?”
“그전에.”
그래도 대화를 시작하니 딱히 막힘은 없다. 벽이 뚫려 조금은 마음이 가벼워지는 기분.
정환은 역시 처음이라 그랬다며, 얼른 반색하고 목소리를 높이려 했다.
사지마 츠바사는 여전히 차분하기만 하다.
“이번 마켓 투어에서 보여주신 잔, 인상 깊었습니다. 직접 블렌딩을 하시다니, 과연 제 눈이 틀린 것 같지 않아 보이더군요.”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저 역시, 사지마 상이 만드신 잔에서 많은 걸 배웠습니다. 분자 칵테일을 그렇게 접목할 줄은 몰랐거든요. 용안을 쓰신 것도 그렇고 베르무트도 드라이를 쓰신 게 참 과감하게 느껴졌습니다!”
이어지는 이야기는 각자가 만들었던 칵테일 이야기들. 이건 어떤 바텐더끼리 만나더라도 어색함이 돌 수 없는 이야기다.
정환은 자신과 가장 치열하게 맞붙고 있는 경쟁자가 사지마 츠바사임도 잊고는 기쁘게 떠들기 바쁘다.
사지마 츠바사 역시 표정이 밝아지며 정환의 말에 장단을 맞췄다.
“차정환 바텐더의 시도 역시 과감했습니다. 거리의 맛을 그렇게 고급스럽게 바꿀 수 있다니요. 그것도 바텐더의 기술로 말이죠. 그야말로 미각의 진수였습니다.”
“아직 멀었습니다. 특히 전 그 용안 구체 안에 라임즙을 넣으신 시도를 보고는 충격을 받았으니까요.”
“아닙니다. 드라이한 잔에서는 심심한 맛이 느껴지니까요. 조금은 위트를 주고 싶었을 뿐이죠.”
.
.
두 사람은 언제 어색했던 사이였냐는 듯 대화를 꽃 피워갔다. 대회 첫 과제에서의 수석과 차석의 깊은 대화.
지나가던 바텐더들 역시 둘 사이에 끼고 싶었지만. 둘 사이를 오가는 대화가 모두 일본어였기에 강 건너에서 구경만 하는 이들이다.
“그렇죠. 그런 재미를 주고 또 반전을 주면···”
“맞습니다. 그런 재해석을 통해···”
손까지 써가며 밝은 톤으로 대화를 나누던 둘. 그러던 중 둘 사이에서 일시에 대화가 겹치며 둘의 마지막 말이 동시에 입을 탄다.
동시에 열리는 두 사람의 입은.
“손님이 더 잔을 즐길 수가 있죠!”
“잔은 그 자체로 더욱 완벽해지는 거겠죠.”
사뭇 다른 곳을 향하는 말이었다.
둘은 서로의 말이 겹쳤지만, 서로가 뱉은 말을 분명히 알아들은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방금 뭐라고 하셨죠?”
해맑은 표정의 정환과 달리 조금은 굳어진 사지마 츠바사의 얼굴.
츠바사는 정환에게 방금 뱉은 말을 재차 물어갔다. 정환은 해맑음을 얼굴에 가득 안고는 자신이 뱉었던 말을 다시 들려준다.
“손님들이 더 잔을 풍성하게 즐길 수 있다구요. 그렇지 않나요?”
“······.”
“어떤 잔이든 손님이 만족할 수 있는 한 잔. 결국은 그게 중요한 거니까요.”
늘 정환이 입에 달고 살던 말을 들은 츠바사는 어느 때보다 차가운 표정을 짓고는 손에 들고 있던 커피잔을 내렸다.
마치, 자리를 떠날 준비를 하는 이의 모습이다.
정환은 그의 얼굴에서 무언가 분위기가 달라졌음을 빠르게 알아챌 수 있었다.
“사지마 상?”
“···제가 착각했던 모양이군요.”
“네? 그게 무슨?”
“아. 아닙니다. 가끔은 이럴 때도 있으니. 오늘 대화는 즐거웠습니다. 이만, 가봐야겠군요.”
그는 무언가 의미심장한 말을 남기고는 자신이 마시던 잔과 사용했던 식기를 가지런히 정리했다.
입가를 닦아 가는 모습이 열기가 팍! 하고 식어 버린 사람의 모습이다.
“혹시 제가 한 말 중에 무슨 실수라도 있었나요?”
호의적인 분위기였다. 이건 불과 몇 초 전까지 분명한 상황. 처음에야 어색했지만, 곧 얼음이 깨지고는 두 사람 모두 표정이 밝지 않았나.
정환은 일순간에 식어 버린 상대의 열기에 당황을 금치 못했다.
“실수라. 글쎄요. 차정환 바텐더의 실수는 아닐 겁니다. 예. 처음부터 다른 거였을 뿐인데 말이죠. 괜찮습니다. 이건 제 실수니. 같은 잔을 추구하는 사람이라 ‘착각’했을 뿐입니다. 조금···, 아쉬움은 남는군요. 비슷한 잔을 추구하는 사람을 만났다고 생각했거늘.”
“···사지마 상?”
말 속에 묘하게 한기가 서려 있다. 이건 듣는 이라면 누구나 알 수 있을 터.
조금 전까지 친근하기 그지없던 이의 모습은 간 곳이 없다.
“실례했습니다.”
“이유라도 알려주고 가시죠. 갑자기, 이러시는 이유가 있을 거 아닙니까?”
자신을 냉대하는 이에게 좋은 표정을 짓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정환은 어느덧 자신도 표정을 굳히고는 상대의 무례에 정면으로 맞선다.
겉은 철저히 그럴듯하게 포장된 그의 말투였지만, 먼저 다가왔던 이도. 또 만약 착각이 있었다면 착각을 했던 이도 사지마 츠바사로 무례한 건 저쪽일 것이다.
“이유라. 글쎄요. 그저 다른 길을 가는 사람이라서 그렇다고 해두죠. 여기서 만드는 모든 잔에 손님을 향한 마음이 담겨 있어야 한다고 하셨습니까?”
“네. 그랬습니다.”
“그게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아니. 다 떠나서. 그게 바텐더가 만드는 잔과는 무슨 상관인 거죠?”
!
이럴 수가. 정환은 순간 같은 뿌리를 가졌다고 생각했던 이의 입에서 나온 말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적어도 앞에 선 저 바텐더와 자신이 배운 이는 같은 스승일 터.
정환의 기억에 따르면, 스승의 가르침 속에 저런 말투는 전혀 남아 있지 않았다.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바텐더라면 당연히 그래야 하는 거 아닙니까? 한잔, 한잔 마실 손님에 맞춰···”
“잔 그 자체로 완벽한 잔을 내밀면 어떤 손님이라도 만족하게 되어 있습니다. 손님의 성향이 어떻고, 또 어떤 상황인지는 전혀 중요하지 않죠. 그걸 하나씩 다 생각하며 잔을 만드는 바텐더의 손기술이 완벽할 리는 없습니다.”
!
“······.”
너무나 자신과 반대되는 상황을 마주하면 사람은 말을 잃고 만다.
정환은 자신이 알던 것 뒤에 가려진 사형의 본 모습을 이제야 처음으로 마주했다.
친하지 않아서. 또 자신과 대립하는 스승의 제자라서. 어쩌면 그는 자신의 모습을 철저히 감춰왔던 것일지도 모른다.
이제야 마주한 그의 사상이 속에서부터 강한 거부감을 불러오는 것만 같았다.
츠바사는 할 말이 끝났다는 듯 자리를 털고 일어설 준비를 끝낸다.
- 드르륵.
몸을 일으키는 그에게.
“후즈하라 상의 제자가···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겁니까?”
정환은 이를 꽉 깨물며 한마디를 던져 본다. 그러자, 돌아오는 건.
“스승님의 실력이나 명성을 부정하는 건 아닙니다. 다만, 스승님이 핀트를 잘못 잡으신 것뿐이라고 생각할 뿐이죠. 스승님의 잔이 존경받는 이유는 손님에게 아양을 떨어서가 아닙니다.”
“아양이라니요! 어떻게 그걸···! 바라는 공간을 그런 식으로 말씀하실 순 없습니다!”
“누구도 딴죽을 걸 수 없는 완벽한 잔을 내밀면.”
감정이 조금 차오르는 정환과 대조적으로 건조한 츠바사의 말. 츠바사는 마치 오래전부터 가졌던 생각인 것처럼 곧바로 답이 나오는 모습이다.
“손님은 자연스럽게 만족하게 되어있습니다. 상황이니, 기분이니. 그런 것 따위를 운운하는 건···. 복에 겨운 소리로 보이는군요. 그건 아마 차정환 바텐더가 아직 그런 아양을 받아주는 손님만을 만나 왔기 때문일 겁니다. 언제고 완벽하지 않은 잔으로 아양을 떨었을 때. 그때. 느끼실 겁니다. 결국, 바텐더에게 중요한 건 잔 그 자체를 완벽하게 만드는 것이란 걸 말입니다.”
“그 말에 절대 동의할 수 없습니다. 절대!”
정환은 눈을 부릅뜨고는 자신과 반대되는 사상을 가진 이를 강렬하게 바라봤다.
츠바사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숨을 한번 내쉬고는 다시금 감정이 빠진 말을 들려준다.
“차정환 바텐더에게 악감정은 없습니다. 생각이 다를 뿐이겠죠.”
“틀린 생각이라고 봅니다. 전.”
“그렇습니까? 저도 실은 그렇습니다. 다만, 굳이 적의를 보이려던 건 아니었다는 말입니다. 감정을 손님에게 숨기는 건 바텐더의 기본이죠.”
“그것도 손님을 위해서가 아닌가요?”
“잔을 위해서죠. 무미건조한 상황에서야. 비로소 잔을 그대로 즐길 수 있을 테니까. 트러블도 피할 수 있고. 또한, 당신을 사상적으로 교화시킬 생각도 없고, 제 생각을 강요할 생각도 없습니다.”
“···고맙다고 해야 하나요?”
“무시하면 되는 겁니다. 열심히 하십시오. 다만, 그런 마음가짐으로는···. 예. 완벽한 잔은 힘들 겁니다. 주변의 기온, 습도, 또 조명과 채도. 술의 에어링 정도와 상온 유지 기간, 얼음 등. 바텐더는 손님 따위가 아니어도 집중할 건 많을 테니까요.”
“전 손님이 빠진 그런 잔을 완벽하다고 부르지 않을 겁니다.”
“글쎄요. 그건 차정환 바텐더의 생각일 뿐이죠. 지켜봅시다. 대회의 결과가, 결국은 말해줄 테니 말입니다. 모두가 제 잔을 완벽하다고 부를 때도. 차정환 바텐더가 아니라 말할 수 있을지 궁금하군요.”
“우승을···노린다는 말씀이군요.”
“안 될 거 같습니까?”
“전 그런 사람을 챔피언으로 인정할 수 없습니다!”
“글쎄요. 그게 그렇게 말한다고 되려나요. 하지만, 이건 확실해 보이는군요. 오늘 대화로 분명히 알 수 있었습니다만. 다른 바텐더라면 몰라도, 차정환 바텐더에게만은 제가 질 것 같지 않은데 말입니다. 무얼 하실 수 있을지는···.”
건조하기만 하던 츠바사의 입꼬리가 슬쩍 떨린다. 이건 정환의 말이 아닌 태도가 가져온 변화.
적당히 넘길 기회를 몇 번이고 주었음에도 아득바득 자신의 발목을 잡아 오는 그의 모습이 마치 자신의 스승과 닮아 있어 츠바사는 슬쩍 짜증이 난 모양이다.
건조하던 그의 말 속에 처음으로 감정이 아렸다.
“두고 보시죠. 저도 다른 사람은 몰라도 그쪽이 우승하는 것만은 볼 수 없을 것 같으니까요. 적어도 전. 손님을 ‘따위’라고 부르는 사람을 바텐더라고 부르고 싶진 않습니다. 그런 사람에게 바텐더의 타이틀은 더더욱···!”
정환은 그에 굴하지 않고 자신의 속에 든 말을 가감 없이 표해본다.
츠바사는 알겠다는 듯 표정으로 으쓱하고는 몸을 완전히 돌린다.
정환이 있는 곳과는 반대로 향하는 그의 모습이다.
- 뚜벅.
그가 몇 걸음을 걸어가다 잠시 멈칫한다. 그리고 정환을 돌아보는 츠바사.
정환의 눈에는 여전히 이글거리는 감정이 남아 있다.
이제까지 자신이 만났던 스승들. 그런 스승들로부터 배웠던 모든 기본을 부정당한 이의 분노가 눈으로 발한 것이다.
츠바사는 그런 눈빛을 잠시 보고는.
“하나만 묻죠. 그렇게 손님을 생각한다는 사람이 여기서 뭘 하는 겁니까?”
!
이죽거리는 입과 함께 던지듯 말을 남긴다.
“그렇게 손님을 생각한다면 대회 같은 곳이 아니라 당장 손님 앞에나 서 있으면 될 일이 아닙니까? 결국에는 스스로의 성취를 노려서 이곳까지 왔으면서 그런 이상론을 펼치는 건···. 보기 좋지 않군요.”
“사지마 상!”
“대회장에서 뵙죠. 그럼.”
마지막은 조금 악의적이었다. 이건, 완전히 반대되는 모습을 본 이가 어쩔 수 없이 느끼는 거부감 때문일 터.
사지마 츠바사는 스스로가 왜 쓸데없는 말을 했는가 고민하며 걸음을 서두른다.
평소답지 않게, 조금은 감정적으로 대한 것만 같았다.
정환은 한참이나 남겨진 자리에서 그가 떠나간 뒷모습을 바라봤다.
눈가에 발하던 빛이 가실 줄을 모르던 정환.
정환은 한참이 지난 후에야 겨우 마음을 다독이고는 무언가 결심이 아린 걸음으로 사지마가 사라진 곳과는 반대 방향을 향해 걸어갔다.
이글거리던 그의 눈에는 정확히 조준된 하나의 목표가 새겨진 것만 같았다.
세계 대회 우승이라는, 명확한 목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