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의 술은 특별합니다-163화 (163/175)

< 163잔. 거울. >

1.

“차정환 바텐더의 칵테일은 거리의 문화라 부르기 부족함이 없는 태국만의 향취를 그대로 고급스러운 잔에 담아냈고 스스로 만들어 낸 블렌딩 럼 역시 극찬을 아끼지 않을 수 없다. 그가 직접 밝힌 블렌딩 비율에 따르면··· ···했고, 그래서 태국의 대중적인 술인 쌤송의 활용 방안을 찾은 점에서 높은 점수를 줄 수 있었다. 태국에서, 태국 마켓에서. 그는 찾아낼 수 있는 최고의 맛을 찾아냈고 이를 자신의 혀로 다시 발산하였다. 이는 월드 클래스 글로벌이 추구하는···”

모두가 숨을 죽인 가운데 강성용 주임이 발표된 심사평을 차분히 번역해 나갔다.

김태현 교수는 고개를 끄덕였고 명진 역시 만족스럽게 듣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정환만이 정신이 다른 곳으로 옮겨진 모습이다.

“극찬이군, 결국. 그렇지 않나? 하하. 시작부터 큰 걸 해냈어.”

“좋은 평을 받았네요. 평단의 심사가 객관적인 모양입니다.”

“그, 그렇죠! 첫 과제부터 2위라니, 굉장한 거죠! 여기, 심사평과 레시피를 출력해간 횟수도 보세요! 다들 바텐더님이 제출한 레시피를 뽑아가기 바쁘다니까요!”

들려오는 말들은 저마다 정환이 거둔 성적에 대한 만족스러운 말들.

첫 과제부터 2위라니, 과연 나쁘지 않은 성적이다. 최종 결선에 나가는 이들이 총 8인이고 과제는 총 4개가 치러질 예정이니, 정환은 이제 선방만 잘 해낸다면 자연스레 결선에 향할 수 있을 것이다.

헌데, 그럼에도 정환의 정신은 다른 곳에 팔려있다. 정환은 무엇에 이렇게 정신을 빼앗긴 걸까.

혹, 1등을 차지하지 못한 아쉬움? 아쉽게도, 그런 건 아니었는데. 정환이 이렇게 정신을 빼놓은 건, 다른 이의 레시피가 그의 정신을 훅, 가져가 버렸기 때문이었다.

“사지마 츠바사 바텐더의 평은···?”

“아. 그 용안···을 이용한 칵테일 말씀이세요?”

용안(龍眼)을 이용한 칵테일. 이건, 정환이 버킷 칵테일을 맛보기 전 잠시나마 머리에 떠올렸던 바로 그 칵테일과 닮아있었다.

당연히 재료와 메이킹이 완벽하게 겹치는 건 아니다. 차이는 제법 커 보였고 비슷했던 건 어디까지나 재료일 뿐.

허나, 동문에 또 옆 나라 출신에. 비슷한 게 많아 보이는 이가 자신과 비슷한 재료를 택했다는 사실이 정환에게는 놀라울 뿐이다.

“여기 있네요. 읽어 볼까요?”

“해보게, 얼른. 나도 듣고 싶으니.”

“네. 갑니다! 사지마 츠바사는 명불허전의 실력을 보여줬다. 그가 만든 용안 칵테일은 고급스러움을 가득 안은 맛으로 바텐더가 보여줄 수 있는 고급화의 정점을 보여줬다고 말하기 모자라지 않았다. 특히 기법으로 활용된 스페리? 스피리···?”

“스페리피케이션(spherification).”

성용이 하나씩 츠바사 바텐더의 잔에 대한 평을 읽어가다 처음 보는 단어에 막히고 만다.

정환이 나서서, 그 단어의 발음을 알려준다.

“아. 특히 기법으로 활용된 스페리피케이션이 적절한 효과를 발하며 입안에 텍스처를 줘 용안을 직접 씹어 먹는 것과 같은 기분을 들게 했다. 이는 분자 믹솔로지와 클래식 믹솔로지의 환상적인 만남이며 앞으로 글로벌 바텐딩의 발전이 나아가야 할 길을 그가 미리 보여준 것이기도 하다. 또한···”

이어지는 건 극찬에 극찬을 더한 하나의 찬양이다. 이는 대회에서 1등이라는 순위를 차지한 이에게만 주어지는 영광.

앞서 들려왔던 정환의 잔에 대한 극찬에 무언가를 한 스푼 더 얹은 듯한 느낌이었다.

“···해서, 1등에 선정했다. 여기, 새로운 길로 나아가는 레시피를 보라! ···끝입니다.”

“······.”

“······.”

성용의 해석이 끝나자, 김태현 교수와 명진은 잠시 입을 닫고 말을 잃는다.

물론 대회 입장에서야 1등을 띄워 주는 게 최고의 마케팅이긴 하겠지만.

그래도 한 대회에서 첫 과제에 나온 극찬치고는 제법 과한 것도 사실이었다.

두 사람은 조용히 정환의 눈치를 살폈다. 다른 누구보다, 아쉽게 1등을 놓친 정환이 이를 가장 신경 쓸 거라 여기며.

하지만.

“레시피는 이게 전부인 거죠?”

정환은 들려왔던 평은 잊은 지 오래고 어느덧 시선을 그 밑에 놓인 사지마 츠바사의 레시피로 옮긴 지 오래였다.

잔에 전해진 평론보다는, 그 잔이 더욱 궁금한 정환이다.

정환은 빠르게 그가 공개한 세세한 레시피를 전부 읽어가며 고개를 끄덕이기 시작했다.

자신이 구상했던 칵테일과는 조금 다르지만, 이해가 되지 않는 대목은 없는 레시피였다.

어쩌면 쏟아진 극찬은 과한 게 아닐지도 모른다.

“저, 바텐더님?”

“네. 강 주임님.”

“그, 아까 스페리피케이션? 그건 뭔가요?”

성용은 조용히 레시피를 뜯어 보던 정환에게 조금 전 자신이 버벅댔던 단어를 물어본다.

이건, 전문 용어라. 그는 확신하는 모습이다.

“액체를 구체화(球體化)하는 기법을 말해요. 분자 요리에서 주로 소스에 쓰이는 기법이기도 하죠.”

“구체화요?”

“음. 이걸 뭐라고 말씀드려야 하죠? 그러니까···.”

정환은 재차 물어오는 성용에게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잠시 고민하던 표정을 짓더니 이내 몸을 자리에서 일으킨다.

넓디넓은 스위트 룸. 그리고 그런 스위트 룸에 마련된 주방 쪽으로 향하는 정환.

정환은 몇 개의 재료를 준비하더니 이내 마켓 투어 때 구매했지만 전부 사용하지 않았던 재료들 역시 가져온다.

그리고 연이어 그가 꺼내는 건.

그의 손발과도 같은 바툴이다.

“한 번 보여드리는 게 나을 거 같네요.”

“지, 지금요?”

“저도 마침 이걸 한 번 만들어 보려던 참이라서요. 대신, 이것들을 조금 구해다 주실 수 있으실까요?”

정환은 준비를 마치고는 몇 개 더 필요한 재료를 성용에게 부탁한다.

그는 정환이 건넨 종이를 받아들고는 얼른 본부로 내려가 재료를 구해왔다.

사실은 칵테일 재료라기보다는, 무언가 과학실에 어울릴 것 같은 재료들이었다.

“저, 전부 구해왔습니다!”

재료가 전부 모이자 정환이 조주인 듯 조주 아닌 조주 같은 과정을 시작한다.

알긴산나트륨이니 염화칼슘이니 구연산나트륨이니. 그리고 뭐? 잔탄검? 같은 알 수 없는 재료를 차분히 다루는 정환.

정환은 레시피에 적힌 방법대로 용안의 즙을 채취한 후 이를 과학 실험하듯 다뤄 작은 캐비어와 같은 구체들을 만들어 냈다.

이제야 스페리피케이션이 무엇인지, 알 것 같은 성용이다.

“이렇게 만들어서 구체화라 부르는 거군요! 캐비어 같아요!”

강 주임이 이해를 끝낸 것과는 별개로 정환은 메이킹을 이어간다.

이건 자신이 만든 건 아닌 타인의 레시피. 그럼에도 손이 움직이는 모습은 자연스럽기 그지없다.

‘여기서 스위트가 아닌 드라이 베르무트를? 츠바사 상, 과감하네.’

선택이 조금씩 자신의 것과 어긋난다. 허나, 이런 어긋남에서 정환이 느끼는 건 새로운 걸 깨달아 간다는 것.

자신이 보지 못한 곳을 보고 있는 바텐더를 만난 것만 같았다.

재료를 더해 셰이킹을 마친 정환이 기다란 잔에 술을 부어낸다. 그리고 술 속으로 빠지는 건 얼음과 구체화 된 용안 주스.

용안을 짜낸 즙에 라임즙과 몇 개의 재료를 더 한 작은 구체들이 마치 밀크티 속의 타피오카 펄처럼 잔에 들어갔다.

크기는 딱, 용안의 원래 크기가 비슷한 정도였다.

“이건가?”

“흠.”

정환이 잔을 완성하자 조용히 이를 지켜보던 명진과 김 교수 역시 다가온다.

정환의 잔을 누르고 1등을 차지한 잔을 살펴보는 이들. 과연 분자 믹솔로지도 적절히 활용하며 지역색도 적당히 들어간. 그리고 클래식한 맛도 있어 보이는 잔이었다.

“그래도 제일 중요한 건 맛이겠지.”

“마셔봐도 되겠습니까?”

- 꿀꺽.

정환을 제외한 세 사람의 눈에도 잔에 대한 호기심이 빛을 발한다.

정환은 완성한 잔을 4 등분한 후, 이를 각자의 앞으로 내밀었다.

동시에 잔을 받고는 이를 올려 드는 이들이다.

- 호르르륵.

얼마 되지 않는 칵테일이 각자의 입으로 들어간다. 레시피에 적힌 음용법은 그대로 마시되 알갱이는 직접 씹어 먹을 것.

이들은 그에 맞춰 잔을 그대로 음용해 본다.

입안을 채우는 느낌은 고급진 맛이다. 허나, 그런 고급짐 속에서 알갱이를 터트릴 때 오는 건 강하게 퍼지는 달콤함과 상쾌함.

술 자체는 드라이한 느낌이기에, 알갱이가 주는 시트러스함이 드라이함과 적절히 섞여들어 마치 클래식 칵테일을 마시는 느낌이다.

“······.”

“······.”

다들 말수가 적어지는 게, 아마 이 잔에 대한 적절한 반응일 것이다.

“자자. 지, 지나간 과제가 아닌가! 응? 당장 내일 있을 다른 챌린지도 있고! 이건, 아쉬운 대로 털어 버리세!”

김태현 교수는 이런 반응이 길어지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 얼른 잊고 다음 챌린지를 준비하자는 그의 말.

“좋은 잔입니다. 허나, 이건 챌린지 별로 특성에 따라 바뀔 수 있는 것들입니다. 좋은 잔에서 배울 건 배우고. 잊을 건 잊읍시다.”

명진 역시 잊지 않고 정환을 격려하며 이를 얼른 털어 버리자 말한다.

주변의 이런 반응에도.

한동안 자신이 삼킨 후 비어버린 잔에서 시선을 떼어내지 못하던 정환이다.

2.

“차정환 바텐더?”

마켓 투어 챌린지가 끝나고 다음 날. 저녁부터 시작될 다음 챌린지에 앞서 바텐더들에게는 약간의 자유 시간이 주어졌다.

자유 시간이라 불러도 딱히 무언가를 하기에는, 애매한 시간이다.

그저 휴식을 취하며 저녁을 대비하는 게 최선일 터.

바텐더들은 그저 호텔을 돌아다니며 배를 채우거나 여러 다른 바텐더들과 교류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다.

그리고 그런 바텐더들이 가득한 공간에 잠시 배를 채우러 나온 정환.

그런 정환을 알아보는 이들이 제법 있어 보였다.

“네? 왜 그러시죠?”

정환은 자신에게 다가온 이를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처음 보는 사람이었다.

“아. 저는 라이프 시즌스 호텔에서 아시아 지역 마케팅을 담당하는 케인 모리슨이라 합니다. 한국, 서울에도 저희 라이프 시즌스 호텔이 하나 있죠. 하하. 혹시, 아시나요?”

“물론입니다. 라이프 시즌스야 모를 수가 없죠.”

“이거 영광이군요. 반갑습니다.”

라이프 시즌스는 제법 큰 호텔 체인에 속하는 브랜드였다. 그런 브랜드의 아시아 마케팅 담당이면 임원급에 속할 터.

그런 이가 다가오자, 정환은 잠깐 놀란 눈치다.

“1차전 레시피 감명 깊게 보았습니다. 저희가 요즘 동아시아를 중심으로 마케팅을 공격적으로 늘려가는 중입니다. 혹, 괜찮으시다면 저희와 잠시 차담이라도 어떠실지?”

간단한 인사가 끝나자 그는 곧바로 본론을 향해 달려간다. 여긴 하나의 대회이자 또 사업의 장.

바 씬과 관련된 이들은 모두 모이는 자리이기에 이런 제안이 이상한 건 아니었다.

당장 1차전부터 일줄은 몰랐지만, 예상도 했었고.

“자자. 그런 이야기는 저랑 하시죠. 미스터 모리슨.”

“미스터 킴?”

그렇기에 함께 온 사람이 김태현 교수다. 김태현 교수는 어느새 정환의 뒤에서 앞으로 나와 모리슨과 손을 맞잡았다.

“당신은 분명 그레인 호텔에서···”

“아뇨. 그만둔 지 오래입니다. 지금은 차정환 바텐더의 매니저로 일하고 있죠. 사업 이야기라면 저를 통하면 됩니다. 가실까요? 차담. 진하게 나눠보죠.”

“오-. 마이, 갓. 어쩐지.”

어리숙한 바텐더를 하나 잘 물었다고 생각했던 모리슨의 얼굴에는 살짝 그림자가 드리웠다.

어리고, 또 씬에서 처음 얼굴을 알리는 이였기에. 얼른 입도선매에 나서려던 그는 호텔 업계에 잔뼈가 굵은 김태현 교수를 만나 버리고 만다.

그레인 호텔 역시 작은 체인은 아니었기에 서로 면식이 있던 둘은 불편한 차담을 이으려 자리를 옮겼다.

정환의 인선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다.

정환은 두 사람이 떠나자 식사를 이어가려 했다. 호텔에서 제공되는 뷔페를 언제나 즐길 수 있다는 건 이번 대회의 큰 장점이기도 했다.

다만, 그 뷔페를 즐기는 과정이, 험난하진 않았지만.

“미스터 차?”

“쌩솜으로 만든 레시피 잘 봤습니다.”

“잠시, 저희 제품에 대한 설명을···”

“게스트 바텐딩 일정이 있으신가요? 시간만 맞춰 주시면 홍콩에서···”

한 과제에서 5위 안에만 들어도 업계에는 큰 주목을 받는다. 총 40인 중에서. 그것도 챔피언만이 모인 40인 중에서 5위 안에 들었다는 건 엄청난 성과지 않나.

정환은 그런 5인 안에서도 차석. 업계에서 주목을 받기에는 모자람이 없는 순위였다.

정환은 음식이 가득 든 접시를 들고는 한참을 자리에 앉지 못한 지 오래였다.

“자자. 정환 군. 가시게. 내가 맡겠네.”

차담을 얼른 끝낸 김태현 교수가 돌아오고 나서야 정환이 자유로워진다.

지금은 정환이 아닌 김태현 교수의 시간. 그는 호텔 업계에서 쌓은 역량을 아낌없이 발휘한다.

이쪽 업계에 다시 몸담을 일은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이렇게 돌아오니, 다시금 혈색이 도는 그였다.

“후우.”

밥 한번 먹기가 힘들다. 정환은 그런 생각을 하며 겨우 자리에 몸을 앉혔다.

그리고 여전히 정환에게 향해 있는 몇 개의 시선들.

이제는 사업과는 조금 먼. 대신 다른 의미로 가까운. 다른 바텐더들의 시선이 정환을 향한다.

몇몇은 대놓고 정환에게 인사까지 건네며 말이나 붙여보는 분위기다.

“미스터 차.”

“미스터 로스.”

긴말은 이어지지 않는다. 아직은 교류보다는 경쟁의 때. 하지만, 이들은 가벼운 인사말로 서로에 대한 존경을 표했다.

그저 이름을 부르는 것. 허나, 서로에 대해 안다는 이 표시는 강한 존경의 의미일 것이다.

정환은 이런 분위기가 싫지 않아 옅게 미소 지었다.

이제는 그런 인사도 사그라들고 정환이 정말로 한술을 뜨려던 때.

“차정환 바텐더?”

익숙한 목소리가 정환을 또 멈추게 한다. 한술을 뜨기가 참 쉽지 않은 하루다.

정환은 고개를 들어 목소리의 주인공을 바라봤다. 익숙한 목소리의 주인공은.

“츠바사 상?”

“괜찮으시다면, 식사를 함께해도 될까요?”

일본의 대표 바텐더 사지마 츠바사.

그는 자연스레 정환의 앞에 접시를 들고 서서는 답을 기다리고 있다.

“아, 앉으시죠.”

“그럼, 감사히.”

정환은 당황하며 얼른 그에게 자리를 권했다.

아무래도 편히 밥을 먹기는 그른 것 같았다.

***

1. 스페리피케이션(Spherification).

- 분자 요리에도 자주 등장하는 개념이죠, 스페리피케이션. 어휴. 발음이 어렵슴돳..

- 오늘 소개할 방법은 두 가지 입니다. 활용법이야 다양하지만, 칵테일에 가장 많이 활용되는 건 두 개 인 것 같습니다.

- 우선은 첫 사진과 작중 모습처럼 음료 안에 알갱이를 더하는 것입니다. 주로 강한 향이나 맛을 가진 리큐르 종류를 구체화 해서 다른 술 속에 담그는 방법입니다.

- 두 번째는 모찌모찌합니다. 술 자체를 구체화 하는 방법이죠.

- 애초에 시도는 두 번째가 먼저였다고 알고 있습니다. 분자 요리에서 소스를 다룰 때 주로 쓰던 방법입니다.

- 모히토 모찌라. 먹어보고 싶네요.

- 작중 언급과 실제 이론 및 결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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