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의 술은 특별합니다-153화 (153/175)

< 153잔. 날아오르는 것은. >

3.

축하는 한 번으로 만족할 수 없다. 특히나 축하하고 싶은 이가 많다면 이건 당연한 논리.

월드 클래스 코리아 대회에서 우승한 정환은, 평범하게 아실을 운영하고 있었지만, 이미 몇 날 며칠째. 아실은 파티가 연속이다.

몇 차례 거창한 파티가 끝난 후.

정환은 비몽사몽한 몸을 겨우 가누며 몸을 일으켰다. 전날 마신 과한 술의 여파가, 여전히 그의 몸을 괴롭히고 있었다.

‘역시 섞어 마시면···’

바텐더가 할 말은 아니지만. 아무튼, 술에 취한 이들의 후회는 모두 같은 모양이다.

“커허.”

몸을 일으켜 주방에서 시원한 냉수를 한잔 꺼내 마신다. 살기 위한 작은 몸부림 후 자리에 앉은 후에야 몰려오는 건 며칠 전의 아름다운 기억.

“우승···.”

우승했다. 하나의 대회에서. 그것도 국가대표를 뽑는 자리에서.

정환은 그런 생각이 갑작스레 찾아오니, 다시금 또 미소를 짓는 모습이다.

요즘은 이 생각만 나면, 저도 몰래 바보처럼 웃곤 하는 그였다.

“우우우욱!”

물론.

갑작스레 찾아온 건 그런 감동적인 생각만은 아니었지만.

한차례 화장실에서 먹은 것과 먹었을 거라 예상했던 것, 그리고 먹었는지도 몰랐던 것을 전부 토해낸 정환이 겨우 정신을 차리며 밖으로 나왔다.

아직은 조금 이른 시간.

조금은 더 여유를 즐기고, 출근해도 부족하진 않아 보였다.

그렇게 정환이 겨우 몸을 가누며 회복에 전념하고 있을 때.

- 띠링.

정환의 휴대폰이 울리며 무언가 도착했음을 알린다. 어디서 무언가를 본 누군가의 축하 문자일까.

그런 생각도 잠시, 이내 화면에 적힌 이름은 정환이 받은 문자의 정체를 알려준다.

- 오시윤 바텐더.

라 적힌 발신인이 껌뻑이는 휴대폰의 화면을 채우고 있다.

‘시윤 씨?’

딱히. 그리고 벌써. 이런 말이 떠올랐다. 연락을 주고받을 만큼 가까운 이는 아니었기에 떠오른 말들.

정환은 서둘러 시윤이 보낸 문자를 확인했다.

- 말씀드린 영상, 방금 보냈습니다. 확인해 보세요.

문자의 내용은 간결했다. 대회가 끝나고 찾아온 대기실에서 그가 던지듯 남겼던 말.

일본 대회 결승전 영상을 보내주겠다던 말을 그는 잊지 않은 모양이다.

- 감사해요. 잘 보겠습니다^^. :)

정환은 어색한 답을 보내고는 몸을 노트북 앞으로 옮겼다.

눈이 조금 작아지는 안경을 쓰고, 또 머리를 흘러내리지 않게 하는 머리띠를 해주고.

가장 편안한 자세로 한쪽 다리를 의자에 올리고는 노트북을 딸각거리는 정환.

몇 개의 화면이 바뀌니, 이내 메일함이 나오며 시윤이 말한 메일이 보였다.

- 월드 클래스 재팬 파이널.avi.

재팬과 avi.라니. 어디서 많이 보던 이름이다. 정환은 그런 지극히 평범한 생각을 하며 영상을 다운 받는다.

평소와는 조금 다른 영상이다.

- 와아아아아아아아!

- 와-ㄹ드 크라스 자판! 화이날 찬린지! 스타토!

영상을 재생하니 익숙한 분위기와 익숙한 장면이 스쳐 간다. 조금 다른 점이 있다면, 한국보다야 이 문화를 향유 하는 관객이 더 많아 보인다는 점이다.

대회가 열린 장소도 훨씬 크고 무대도 화려하다. 바 문화에 접근하기 쉬운 일본인 만큼, 대회도 훨씬 성대한 모습이다.

‘그래도···’

여긴 나가고 싶지 않았다. 이건 오래전부터 정환이 가지고 있던 낡은 생각.

아무런 의미도 철학도 신념도 없는, 그저 홀로 가지고 있던 낡은 생각이었을 뿐이다.

일본 결승전도 한국과 같은 챌린지가 결승 과제로 선정된 것처럼 보였다.

눈에 보이는 건 며칠 전 자신이 활약했던 무대와 같은 구성.

사회자가 한껏 함성을 끌어내더니, 대회가 시작되려 한다.

한 명씩 바텐더의 이름을 소개하는 사회자.

‘이때는 진짜 아찔했지.’

정환은 당시를 떠올리니, 다시금 그때의 긴장감이 찾아올 것만 같았다.

- 카와카미 히-로에!

- 와아아아아아아아!

온갖 함성을 받으며 한 여성 바텐더가 무대로 뛰어든다. 30줄 초반으로 보이는 여성 바텐더.

일본은, 젊은 바텐더가 단기간에 성장하기에는 좋은 환경은 아니다.

서서히 익어가는 거라면 몰라도.

이를 증명하듯, 결승에 오른 바텐더도 나이가 제법 들어 보였다.

어색한 웃음으로 손을 흔들며 여성 바텐더는 부스를 향해 갔다.

그리고 연달아 나오는 이름.

- 사지마! 츠-!바사!

!!

사지마 츠바사.

정화은 그 이름이 나오는 순간, 몸을 굳히고 만다. 손에 들고 있던 잔을 슬쩍 떨어트리고 마는 정환.

입으로 겨우 손을 가져간 정환은 재차 키보드를 눌러가며 방금 자신이 들은 이름을 확인했다.

또렷하게 들려오는 이름은 역시.

- 사지마 츠-!바사!

사지마 츠바사.

이때였나. 정환은 그 생각이 스치고 만다. 일본에서도 자신이 바텐더를 하기 전이라서. 아니, 어쩌면 그때도 대회에는 관심을 크게 두지 않아 몰랐을 수도 있고.

그저 그때는 그가 보여주는 모든 게 정환에게 새롭고 신비하며, 또 대단하게만 보였을 뿐이다.

그는, 다름 아닌 정환의 사형이었다.

‘사지마 상···.’

그리 친했던 관계는 아니었다. 그저 멀리서 보고 배운 사이일 뿐.

정환이 입문했을 때는, 그는 벌써 스승의 곁을 떠난 독립한 후였기 때문이다.

그래도 교류는 계속해서 이어졌다. 도제 문화가 깊은 일본은 독립한 후에도 스승과 계속해서 연을 쌓아 간다.

특히나 스승이라 불리는 바텐더들이 40년이고 50년이고 한자리에서 버티는 긴자라면.

이런 연은 쉽게 끊을 수 있는 게 아니다.

정환은 공부 삼아 찾아갔던, 그의 가게를 잊을 수가 없다.

‘긴자 명품거리 두 번째 골목 중심부. 5층 건물, 그리고 3층···.’

엘리베이터가 멈추는 순간 스태프가 나와 문을 열어주던 그 광경이 어찌 쉽게 잊히겠나.

거기에 실력까지 완벽했으니, 당시 처음으로 바텐딩을 배우던 정환에게는 이는 잊을 수 없는 경험이었다.

정환이 옛 기억에 빠진 채로도 영상은 계속해서 흘러간다. 한국 대회와 같이 스피드 런으로 진행되는 경기.

두 사람은 여섯 잔의 칵테일을 만들며 자웅을 겨뤘다. 가와카미 히로에라 불리던 여성 바텐더 역시 만만한 실력은 아니었다.

허나, 경기가 중반에 치닫자, 명확해지는 결과.

- 삐이!

아직 다섯 잔을 전부 채우지 못한 그녀를 두고, 사지마의 부저가 먼저 울리고 만 것이다.

화면에 뜨는 기록은 ‘05:05’. 정환과 시윤보다, 10초나 단축한 기록이었다.

여성 바텐더 역시 곧 메이킹을 완성한다. ‘05:30’이라는 준수한 성적.

다른 때라면, 우승도 노릴 수 있는 기록이다.

- 승자는 사지마 츠바사아아아아!

판정도 쉽게 나온다. 만장일치. 모두가 사지마를 뜻하는 붉은 깃발을 들어 올리며 그의 승리를 표했다.

치열했던 한국 결승에 비하면, 결과는 조금 시시하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의 일본 대회였다.

“······.”

정환은 입을 다물고는 계속해서 앞부분을 돌려본다. 계속해서 나오는 건 사지마 바텐더의 기록인 ‘05:05’.

정환의 시선은 거기서 떼어지지 않는다.

고작 10초 차이인데. 왜 이토록 정환은 저 기록에 집착하는 걸까.

그건, 같은 10초라도, 영역이 다르기 때문이다.

육상 선수들은 9초대에 진입한 후 0.1초를 줄이기 위해 수년, 수십 년을 연습하고 또 연습한다.

이건 일정 영역에 닿은 후 작은 시간이라도 단축하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를 표하는 하나의 증거.

바텐딩 역시, 이와 비슷했다.

정환이 기록한 건 5분 15초라는 뛰어난 성적이다. 허나, 여기서 조금씩 초를 줄여나가는 건.

말처럼 절대, 쉬운 영역은 아닐 것이다.

‘···지금···.’

다시 한다면 몇 초를 기록할 수 있을까. 최고의 컨디션을 상정하고 머리로 그림을 그려보는 정환.

‘5분 10초···.’

몇 번이고 다시금 그때를 돌려가며 실수를 줄이고 속력을 내보아도.

정환은 감히 그 이상을 기록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이전 생에서 알던 사람을 만난다는 반가움과 또 쉽지 않을 것만 같은 세계 대회에 대한 예감이 동시에 정환을 쓸고 갔다.

아무래도.

방콕은 쉽지 않을 것만 같다.

4.

“차정환 환자.”

“예.”

“2번 진료실로 가실 게요.”

무심한 말투의 간호사는 환자의 얼굴을 한 번 스윽 보고는 고갯짓으로 오른쪽을 가리켰다.

그녀의 얼굴이 향한 곳에는 차례대로 순번을 매긴 진료실이 기다리고 있었다.

10년 전이나 그 후나. 저 간호사의 무심한 말투는 변함이 없나 보다.

이전 생에 연을 맺었던 이를 다시 만난다는 반가움도, 또 그 사람과 만날 일이 쉽지만은 않을 것 같다는 불길한 예감도.

오늘은 정환을 지배하는 하나의 감정이 되지 못한다.

오늘은 다른 감정이 조금 앞서는 날.

정환은 걱정과 함께 불안함, 그리고 기대감을 합치며 뚜벅이며 한때 사형 선고를 받았던 그 재판장으로 들어섰다.

이곳의 판사는 하얀 가운을 걸치고 있다.

“손 때문에 오셨다고요. 맞습니까?”

본격적으로 힘을 쓰기 시작하면서. 또, 써야 할 때를 대비해서. 정환은 한 번 더 미리. 손목에 신경을 써보려는 것이다.

이미 자세를 바꾸며 훨씬 안정되었다고 여겼다.

허나, 이건 어디까지나 자세의 영역이고 건강이란 별개의 것. 전문적인 의사의 소견이, 정환에게는 조금 더 중요한 시점이다.

“유전 병력도 있고, 또 직업상 상하는 일이 많다고 들어서요.”

정환은 적당히 꾸며댄 말로, 이전에는 비참하게 앉았던 자리에서, 사형을 선고했던 의사와 다시금 마주한다.

오늘따라 그의 얼굴이 더욱 수려하게 보이는 게, 제법 괜찮은 판결이 나올지도 모른다.

“흠. 손목을 평소에도 많이 쓰시나요?”

“바텐더입니다.”

굳이 직업을 밝히는 게 좋겠지. 그런 생각을 하며 정환은 의사의 소견을 기다렸다.

의사는 미리 찍어둔 손목 엑스레이를 보며 고개를 끄덕이기 시작했다.

파악은 끝난 모습이다.

“바텐더면 손목을 많이 쓰시겠네요. 보자아. 손목을 많이 쓰신다고는 하지만, 흐음···. 딱히 엑스레이에 보이는 건 없네요. 과한 걱정이신 것 같습니다.”

“예?”

“걱정하실 부분이 없어 보인다는 말입니다.”

“저어···.”

“더 궁금하신 게 있으신가요?”

너무도 간단히 나오는 의사의 답. 정환은 듣고 싶었던 말을 들었지만, 자리에서는 쉽게 일어나지 못한다.

원래라면 저 의사가 뱉었던 말을, 정환이 먼저 토해보기로 한다.

“월상골 무혈성 괴사라고···. 그런 병은?”

“네?”

월상골 무혈성 괴사.

발음하기도 어려운 이름을 정환은 잊지도 않고 기억하고 있다. 자신의 날개를 꺾어 버린 그 이름을 어찌 쉽게 잊을 수 있겠나.

의사는 마치 네가 그걸 어떻게 아냐는 표정을 지으며 정환을 바라본다.

“참. 이상한 분이시네요. 그, 흔하지도 않은 병을 어떻게 아십니까?”

“주변에 걸리신 분이 있으셔서요···. 듣기로는 손목에 월상골이라 부르는 관절을 빼내는 수술을 해야 한다고···. 또 여러 번···.”

제법 전문적인 태도로 나오는 정환의 답변에 의사는 안경테 너머로 정환을 빤히 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하하하하.”

터지는 의사의 웃음.

“뭘 걱정하시는 건지 알 것 같습니다. 예. 그런 병이 있죠. 손목을 무리하게 쓰는 분들에게 오기도 하고요. 하지만, 보자. 지금 차정환 환자분의 경과를 보면, 그런 병은 걱정하지 않으셔도 될 거 같습니다.”

“장기적으로 봤을 때는 어떤가요? 예를 들면 한 15년 후 라던가···”

참. 별 걸 다 묻는다. 의사는 그런 생각을 한번 하고는 정환의 시선을 엑스레이 사진이 걸린 판으로 향하게 했다.

“여기 초승달 모양의 뼈가 보이십니까?”

“네. 보입니다.”

“이게 월상골이라는 겁니다. 원래는 주변에 근육이 잘 자리하지 않는 뼈죠. 보호를 못 받는다고 할까요? 그래서 상하는 겁니다. 주로 월상골이 괴사하는 이유는 근육이 없어서입니다. 그것도 흔하진 않지만.”

“그럼?”

“지금 차정환 환자분의 사진을 보세요. 여기. 월상골을 둘러싼 작은 근육이 있죠? 이상하지 않나요?”

“그, 그렇네요! 이상하네요? 이건···?”

“월상골을 둘러싼 근육이 아닌 다른 근육이 여기까지 커져서 이 빈 곳을 채운 겁니다. 원래라면 손목을 까딱까딱하는 움직임을 많이 가지죠. 그럼, 이 근육은 발달하지 않습니다. 반대로 손목을 요리조리 돌려가는 분들. 그런 분들의 근육이 이런 모습을 많이 나타내죠. 이런 식으로 커지기도 하고.”

듣는 순간 떠오르는 게 없진 않았다. 바꿨던 자세. 정환은 원래 스트로크와 함께 앞뒤로 주던 스냅을 구사하던 바텐더였다.

허나, 명진과 함께 대화를 나눈 후 바꾼 자세는 정확히 이와 반대.

앞뒤로 주던 스냅대신, 정환은 양옆으로 트위스트를 주는 형식으로 셰이킹 자세를 바꾼 지 오래였다.

아무래도 그때 바꾼 자세가.

이렇게 돌아온 모양이다.

“그럼, 이 근육이 있는 사람들은···?”

“월상골 무혈성 괴사가 올 가능성이 현격히 낮아지죠. 아니, 원래 그 병 자체가 원인은 있어도 아무에게나 오는 병이 아닙니다. 아주 드문 병이죠. 근데, 차정환 님은 이제 그 병이 올 조금의 여지도 지워버리셨네요. 대답이 되었나요? 이건, 뼈가 죽고 싶어도 못 죽어요. 근육 때문에.”

!!

“도대체 손목으로 뭘 하신 겁니까? 하하. 운동선수도 이 정도로 이 부위에 근육이 생기는 경우는···. 대단하십니다. 정말.”

손목이 탱탱해졌다는 느낌은 있었다.

그저 그 탱탱함이 젊어서, 또 쓰인 적이 없어서 그런 줄로만 알았을 뿐.

몇 년은 쓰고 병원을 가려던 마음을 바꿔, 이렇게 일찍 찾은 게 오히려 큰 안심이 되고 만다.

이전에는 차갑게 다가왔던 의사의 말이, 이번에는 반대로 너무나 따스한 정환이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이상한 분이군요. 하하하. 제가 뭘 했어야 그런 말을 듣죠. 환자분이 하신 겁니다. 이만 가보시죠. 건강하시니.”

의사는 기분 좋게 웃고는 정환에게 축객령을 내린다. 떠밀리듯, 마치 네가 있을 곳이 아니란 것처럼 쫓겨나는 정환.

정환은 병실을 나서는 순간, 양손에 얼굴을 파묻고 만다.

- 유감입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수저를 겨우 잡는 정도. 그게 한계입니다.

스쳐 가는 이전 생에 들었던 사형 선고. 그 말이 점점 희미해지며 정환에게서 멀어져 갔다.

‘드디어···!’

두려웠다. 조금은 무거웠고. 이대로 써도 되는 걸까. 그런 마음에 망설였던 적도 있고.

그런 무거운 짐이, 일시에 정환의 등에서 저 말과 함께 사라지는 것만 같았다.

“차정환 환자. 수납할게요!”

그리고 들은 적 없던 간호사의 밝은 마무리 멘트. 이는 진료의 끝을 알리는 퇴장음이다.

정환은 한껏 가벼워진 걸음으로 데스크로 향했다.

그리고 병원을 나서자 또 한 번 몰려오는 격한 감정.

부러졌던 날개가.

새롭게 돋아난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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