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의 술은 특별합니다-152화 (152/175)

< 152잔. 지나간. >

1.

“챔피언께서 등장하십니다아아아아아!!!!”

당당한 걸음으로 익숙한 골목을 걸어가자, 이내 익숙한 윤수의 목소리가 크게 울려 퍼진다.

나는 듯 걸어와서일까. 평소라면 낯부끄러웠을 저 목소리가 오늘따라 친근하게만 느껴져 정환은 미소 지었다.

- 팡! 팡! 팡!

- 빵! 빵! 빵!

대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서자 좌우에서는 연신 굉음이 터져 나온다.

놀랐지만 무슨 소리인지는 예상이 가는 것들.

우리 가게에서 팔지도 않는 비싼 샴페인과 폭죽이 연신 터져가며 정환의 머리 위에는 거품과 폭죽의 잔해가 쌓여 갔다.

그리고 이어지는 건.

- 짝짝짝짝짝!

- 휘이이이이익!

- 왔다아아아!!

친숙한 이들의 환호.

정환을 위해 모인 이들은 여러 소리를 내며 오늘의 주인공을 맞이하는 것에 여념이 없었다.

“사장님! 축하해요! 아니, 스승님!”

정신을 못 차리며 머리와 어깨에 나린 것들을 정리하는 정환. 그런 정환을 향해 윤수가 몸을 날리듯 안기며 감격에 찬 표정을 보여준다.

화면을 통해 현장을 지켜보던 윤수의 눈가는 이미 퉁퉁 불어난 지 오래였다.

“축하해요! 정환 씨! 해낼 줄 알았어요!”

“축하해요! 종로를 제대로 알리고 오셨네요!”

“정말, 믿기지 않는 분입니다, 정환 씨는! 축하합니다!”

재훈과 주용, 동경도 차례대로 정환에게 축하를 전한다. 종로를 함께 꾸며가며 범상치 않은 인물이란 건 알았지만.

차정환이라는 바텐더가 이 정도일 줄은 오늘에야 다시금 깨닫는 이들이다.

“짜식. 이제 좀 실감이 나지? 일루와! 한 번 안아보자!”

하나씩 주변 지인들이 스쳐 가자, 먼저 대회장을 나와 아실로 향했던 정우가 나타난다.

대기실에서는 정환을 생각해 아무렇지 않은 척했던 그도, 여기서는 속에 품은 감정을 숨기지 않는다.

“고생했어. 자랑스럽다. 정환아.”

덤덤히 정우의 뒤에서 나와 정환을 어루만져 주는 기준. 기준의 눈에는 자신이 말한 것처럼, 대상을 자랑스러워 하는 눈빛이 가득 담겨 있다.

그리고.

“정환 씨.”

그런 뒤에서 인자하게 정환을 바라보고 있는 한 사람.

아르센의 마스터이자, 정환이 스승이라 부르던 명진이었다.

“마스터···.”

“해내셨군요. 자랑스럽습니다.”

언제나 절제된 감정으로 제자들을 대하던 명진 역시 오늘은 조금 감정적이다.

명진은 정우처럼 꼬옥은 아니지만, 가볍게 정환을 안아 주고는 그를 토닥였다.

마치, 아직은 끝나지 않았기에 조금은 참겠다는 사람처럼.

“감사해요. 정말요.”

결심과 또 변화의 중심에는 언제나 명진이 큰 역할을 맡아줬다. 이를 모르지 않는 정환은 명진의 품에 안겨 그의 손길에 몸을 맡긴다.

떠들썩하던 아실의 앞마당이 조금은 조용해지는 순간이었다.

명진은 정환을 토닥이고는 그를 아실 안으로 데려간다. 자리가 가득 찬 아실 안은.

“차 사장! 전부 지켜봤네! 내가 단골로 있는 가게의 바텐더가 챔피언이라니!”

“사장님! 대박!”

“축하해요! 사장님! 응원하고 있었어요!!! 대애박!!”

“축하해요! 흐흐. 해낼 줄 알았다니까! 나도 도운 거죠? 맞죠?”

“멋지셨습니다. 암요. 그 시절의 바텐더보다도!”

“약속을 그대로 지켜 내셨군요. 아니, 그 이상이었습니다.”

“정환 군! 아실은 이제 대박이네!”

“사장님! 오늘 본 것도! 차차 알려주셔야 해요!”

잔으로 스쳐 지나간 많은 인연들이, 정환을 기다리고 있었다.

아이리쉬 위스키의 서성훈 부장, 카이칸 피즈의 주민경 기자, 브랜디 알렉산더의 가수 유미, 그리고 밀리언 달러의 노신사.

거기에 이전부터 연을 이어왔던 프로즌 다이키리의 강성원 사장과 사이드카와 사제락의 김태현 교수, 그리고 마티니의 윤현민 부장에 에스프레소 마티니인 그레인 호텔의 신입들도.

잔으로 기억에 남은 이들이 정환을 반기며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이들은 모두 모여, 이 좁은 아실이라는 공간에서 정환의 하루를 지켜본 것이다.

“다들···.”

정환은 이렇게까지 다들 모여줄 거란 생각은 하지 못했던 사람처럼 잠시 자리에 멈춰 이들을 아련하게 바라봤다.

오늘 바에는 술이 아닌 다른 액체가 조금 흥건할지도 모르겠다.

“자자! 감상은 여기까지만 빠지고! 이대로 보낼 수는 없잖아? 다들 안 그래요?”

“그렇죠오오오!”

“오늘, 우리 챔피언 실력 한 번 다시 봅시다! 우리가 검증을 다시 해줘야지!”

“옳소!”

“당장 바 안으로 들어가라!”

하지만, 사람이 모이면, 언제나 분위기는 밝아진다. 감상에 빠지려던 정환을 얼른 건져내 장난스레 말을 이어가는 정우.

정우의 바람잡이에 다들 장난스러운 말을 건네며 분위기를 몰아갔다.

아직은 쉬기에는, 하루가 긴 바텐더다.

“아니, 사장님 힘들어요! 다들 너무해요!”

“바텐더가 말이야! 응? 몇 잔 만들었다고 지치면 되겠어? 안 그래요, 마스터?”

“흠···. 하루에 여섯 잔은 조금 적죠.”

“마스터···?”

“봐봐! 마스터도 그렇게 말씀하시잖아!”

“사장님! 결승전에서 만든 칵테일! 그거 만들어 주세요!”

“난 프렌치 마티니!”

“난 클로버 클럽!”

명진마저 인자한 표정으로 장난을 이어가자, 정환이 빠져나갈 구석이 없다.

정환은 이런 보챔이 싫지 않아 밝게 웃고는 서둘러 바 안으로 뛰어든다.

“그럼, 다들 제 솜씨를 조금 보여드릴까요?”

- 와아아아아!

환호에 보답하는 정환의 말.

사람이 너무 많아 이미 마당까지 스탠딩으로 가득 찬 아실은 유독 소리가 울려 퍼지는 것만 같다.

정환은 고이 모셔둔 트로피를 꺼내 아실의 백바에 올리고는 서둘러 앞치마를 둘러맸다.

“오늘, 마음껏 드십시오! 오늘도! 제가 쏩니다!”

바텐더의 하루는 아직, 끝나지 않았으니까.

늦은 밤, 강남 출신의 바텐더가 있는 곳. 또 종로에 처음으로 생긴 한옥 바.

잘생긴 바텐더가 있는 곳, 바 골목의 대부가 있는 곳 등. 여러 수식어 붙은 아실은 여전히 불빛을 뿜어낸다.

오늘은 특별한 날.

수많은 수식어가 붙은 아실에는.

대한민국 최고의 바텐더가 있는 곳이라는 또 하나의 수식어가 붙은 날이다.

허나, 이 수식어 역시.

조만간 다른 단어로 바뀔지도 모른다.

조금은 더 큰, 그리고 거창한 단어로.

2.

늦은 밤.

오가는 차들이 듬성한 대로변에는 여전히 밝은 불빛이 나려 아직 이 도시는 한창임을 알려주고 있다.

대로를 끼고 높은 건물로 둘러싸인 작은 도시 속의 숲. 그리고 그런 숲을 장식하는 수많은 명품매장.

한눈에 봐도 고급스러워 보이는 이 거리를, 사람들은 ‘긴자’라 부른다.

제법 늦은 시간임에도, 이곳은 여전히 성업 중이다.

그런 거리와 대비되는 남루한 정장의 중년 사내가 거리를 차근히 걸어간다.

사내는 잠시 주변을 둘러보고는 한 골목을 향해 들어갔다. 골목이라고는 부르지만, 여전히 고급스러움과 깔끔함을 자랑하는 골목이다.

그런 골목의 중간쯤에 자리한 고작 5층 정도 높이의 오래된 작은 건물.

사내는 고개를 들어 간판을 확인하고는 그 엘리베이터에 몸을 실었다.

- 띵. 띵. 띵.

3개의 층을 올라가니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린다. 그리고 나타나는 건 현실과의 단절을 의미하는 육중한 크기의 문.

한때는 총알도 막아주는 역할을 했다는 이 문이, 언제나 반가운 사내였다.

- 끼익.

거친 소리를 내며 문이 열린다. 마치, 사내가 앞에 온 것을 안다는 듯.

그리고 문이 열린 공간 뒤에는 어둡고 고풍스러운, 퍽 마음에 드는 풍경이 사내를 맞았다.

엘리베이터가 3층에 멈춤을 안에서도 볼 수 있는 모양이다.

플로어 스태프라 불리는 두 사람의 견습 바텐더가 문을 열고는 사내를 안으로 안내했다.

자주 오는 곳인 듯 정중앙에 자리를 비워둔 바 테이블로 사내는 몸을 안착했다.

“역시나 오셨군요.”

사내가 자리에 앉자, 옆자리에 있던 사내가 먼저 반응한다. 남루한 차림의 사내와 비교되는 깔끔하고 비싼 차림의 중년인이 그를 향해 인사했다.

남루한 사내도 그를 보며 반가워했다.

“야나기 대표. 아. 이제는 완전히 이름을 바꿨다지? 유정호 대표.”

“오랜만에 뵙습니다. 지동철 교수님.”

먼 땅에서 마주한 두 사람은 지동철 교수와 유정호 대표. 아실이라는 곳에서 마주한 두 사람은 일본이라는 공통점 덕분에 빠르게 친해질 수 있었다.

바를 좋아하고 또 일본과 관련이 깊은 두 사람은 바다를 건너 타국 땅에서도 이렇게 교류를 이어가고 있다.

“이쪽으로 오실 거 같아 미리 와 있었습니다. 안 오시면 연락이라도 드리려 했었죠.”

“허허. 사람 참. 미리 연락하지. 뭐, 자네가 생각났던 건 나도 마찬가지라네. 혹시나가 역시나였군.”

“바 호퍼들이 생각하는 건 비슷하니 말이죠. 특히나 오늘 같은 날에는요.”

유정호 대표는 가볍게 잔을 들어 지동철 교수를 반긴다. 외투를 전부 벗어 플로어 스태프에게 넘긴 지동철 교수가 이제야 온전히 자리에 앉는다.

들어 올린 유정호 대표의 잔에는 올드 파로 만든 하이볼이 담겨 있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교수님. 수건, 준비해 드리겠습니다. 체이서는 늘 드시던 미네랄 워터가 어떨까요?”

“그렇게 부탁하네. 고맙네.”

지동철 교수가 완전히 자리를 잡고 앉자, 이곳에서 가장 비싸 보이는 정장을 입은 바텐더가 다가왔다.

무뚝뚝한 인상이지만 깔끔한 차림. 머릿기름으로 올려 바른 머리는 보는 것만으로도 전문성을 느끼게 했다.

그의 명찰에는 ‘오너 바텐더’란 글자가 영어로 멋들어지게 휘갈겨져 있다.

많게 쳐줘도 30대 후반이 되지 않아 보이는 나이인데. 제법 성공한 바텐더처럼 보였다.

“주문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나야 뭐. 늘 똑같지 않나. 사제락으로 부탁하네. 아, 브랜디로. 위스키가 들어간 건 다음에.”

“브랜디 사제락. 확인했습니다.”

바텐더는 고개를 까딱하며 주문을 받고는 메이킹에 들어간다. 얼음부터 잔과 술병, 그리고 가니쉬까지.

일하는 바텐더는 많지만 자기 손으로 모두를 챙기는 그였다.

“조촐하지만, 우리끼리 축하 자리군요. 거긴, 떠들썩할 테죠?”

“그렇겠지. 왜 안 그렇겠나? 거긴 또 그런 맛이 있는 곳이 아닌가.”

“그립군요. 벌써.”

“원. 저번 달에도 다녀왔다는 사람이. 벌써 반년째 한국 근처로도 못 간 내 앞에서 할 말인가, 그게?”

“그래도 그리운 건 그리운 겁니다. 허허. 교수님. 부러우신 모양입니다?”

“사람하고는.”

- 파파파파팟!

시답잖은 말을 주고받는 두 사람 앞에서 바텐더는 묵묵히 얼음을 깎아간다.

정확히 모서리만을 때려가며 간결한 자세로 얼음을 깎는 그의 모습이 예사롭지 않다.

“잘하는군.”

“당연한 말씀이죠. 누구인데요.”

“그렇지. 그래서 온 게 아닌가. 자네도, 나도.”

“어떻게 보십니까? 교수님은. 구력이야, 저보다 오래되시지 않았습니까?”

“어디 구력은 세월로 딴다나? 특히 이쪽 업계는 다르지. 그걸, 오늘 그 친구가 증명하지 않았나.”

“그렇게 보면, 또 맞는 말이군요. 허허. 그 친구. 참 대단합니다.”

두 사람은 쉬지 않고 한 사람을 칭찬하기 바쁘다. 오늘 이들이 여기 모여 누군가를 축하하는 자리도 그 사람이 주인공인 것만 같았다.

- 척. 척.

대화가 흘러가는 사이 어느덧 얼음이 완성된다. 구체였다는 걸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반듯하게 네모난 모습을 갖춘 얼음.

바텐더는 그 얼음을 잔에 넣어 두고는 사제락을 만들어 갔다. 재료를 잔에 넣고는 그대로 스푼을 들어 이를 돌리는 바텐더.

- ······.

아무런 소리도 없이, 잔에는 얼음과 함께 술이 스터로 섞여가며 잔이 완성되어 나온다.

스터에, 소리가 정확히 지워진 모습이다.

“참···. 볼 때마다 감탄스럽군.”

“그러게 말입니다. 허허.”

“그 친구도 험난하겠어.”

“예측이신가요? 아까는 모르시겠다더니.”

“걱정이라고 해두세. 걱정. 내 이리 보여도, 거기 투자자가 아닌가.”

지동철 교수의 마지막 말에 이어 잔이 조심히 그의 앞에 서빙되어 나온다.

진한 향을 품어 잘 만들어진 사제락이 그를 향해 손을 흔드는 것만 같았다.

유정호 대표는 조금 떨어져 앉은 자리까지 풍기는 사제락의 향기에 연신 감탄할 뿐이다.

“사제락, 나왔습니다.”

“잘 마시겠네.”

“그럼.”

바텐더는 잔을 줬으니 되었다는 표정으로 자리를 물러난다. 과한 대화도, 맛에 대한 걱정이나 기다림도, 전혀 자리하지 그의 얼굴이다.

- 호르르륵.

소리 없이 섞여간 사제락이 그대로 입술을 적시고 입안을 채운다. 강하지만 부드러우면서 향긋한 맛.

말도 안 되는 맛이 지동철 교수의 입안을 채우며 그의 고개가 들리게 했다.

이런 반응은 쉽게 나오는 반응은 아니었다.

“과연.”

그리고 나오는 한마디의 감탄사는 과연이란 말. 원래 이 바텐더의 실력을 알고 있었던 걸까.

지동철 교수와 유정호 대표는 말없이 이 잔을 만들어 낸 바텐더를 바라봤다.

그제야 조명이 바뀌며 빛나는 그의 명찰.

‘사지마 츠바사’.

그런 이름이었던 걸로 보였다.

홀로 잔을 닦으며 무표정한 얼굴을 유지하는 바텐더. 그의 뒤로는 빛을 뿜는 백바가 자리하고 있다.

그리고 그런 백바에서도 유독 한줄기 강한 빛을 뿜는 무언가.

어두운색으로 도색된 상징물이 유광으로 마무리되어 더욱 빛이 밝게만 보였다.

마치 광채를 뿜는 듯한 무언가.

그 무언가에는.

- World Class Bartender Japan Champion.

이라는 멋들어진 글이 적혀 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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