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의 술은 특별합니다-150화 (150/175)

< 150잔. 다시, 날다. >

5.

심사는 고요하게 진행되어 갔다.

대화도 없이 각자 맡은 잔을 뜯어보며 심사를 진행하는 심사 위원들.

서로의 평가가 서로에게 영향을 줄 수 있기에 이들은 대화를 나누는 게 서로 금지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이들이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건 오로지, 이들의 앞에 서 있는 참가자뿐이었다.

“팔로마에 소금은 안으로 넣으신 거죠? 이유가 있을까요?”

“리밍된 잔도 좋지만, 맛에 소금의 짠맛을 더하고 싶었습니다. 리밍보다는 술에 녹이는 게 더 맛을 풍성하게 할 수 있을 것 같아 그렇게 했습니다.”

“음. 그렇군요.”

오가는 이야기 중 의미심장하거나 숨은 뜻이 있는 그런 대화는 없다.

결승은 주제 없이 던져진 하나의 스피드 런이었을 뿐.

이제야 심사 위원들의 비중이 조금 커졌다지만, 원래라면 이들의 역할은 그리 크지 않았을 것이다.

애초에 30초 이상의 시간 차이가 생긴다면 이는 심사로도 뒤집을 수 없는 차이로 본다.

30초 이내라면 뒤집힐 수 있지만 어려운 정도. 15초 차이라면 맛에서 극적인 반전을 노려볼 수 있을 정도.

그리고 10초 이내는, 차이가 무색하다고 볼 정도일 것이다.

허나, 오늘은 조금 다른 날.

오늘은 두 사람의 기록이 정확히 동점을 이룬 날로 이들은 최종 결정권을 손에 쥐었다.

정환에게 다가선 세 사람의 심사 위원은 차분히 잔을 들어 노즈와 팔레트, 피니쉬를 평가했다.

맛을 본 이들은 저마다 고개를 끄덕였고 작은 카드에 무언가를 적어가기 시작했다.

떨릴 법도 하지만 정환은 덤덤히 이를 바라보고 있다. 아직은. 본격적인 심사가 아님을 그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두 명의 바텐더가 만들어 낸 같은 종류의 칵테일을 평가할 때면 언제가 가장 본격적인 순간인지를 그는 모르지 않았다.

세 사람이 최대한 표정을 숨긴 채 정환의 잔을 맛보고는 옆으로 물러선다.

시윤의 부스로 향해가는 셋. 그리고 그와 동시에.

시윤의 부스에서는 네 사람의 심사 위원이 정환을 향해 다가왔다.

정환은, 이제야 본격적인 심사가 시작됨을 알 수 있었다.

비교군이라는 게 있는 심사는 늘 이렇다. 하나를 맛봤을 때는 알기 어렵던 기준점이, 또 다른 하나를 맛볼 때는 명확해지는 것.

특히나 둘 모두 결승까지 올라올 정도에 실력자라면. 이는 두 개의 잔을 모두 맛본 후에야 차이가 명확히 갈릴 것이다.

두 번째 심사팀으로 온 이들 중에는 익숙한 얼굴이 있다. 인 바 저징 때부터 정환을 담당해 온 백성민 바텐더.

그는 눈으로 가볍게 인사하고는 정환의 잔을 살폈다.

‘역시.’

두 사람 모두 간단히 평을 내릴 수 있는 참가자들은 아니다. 백성민 바텐더는 잔을 보는 순간 그런 느낌을 받았다.

특히나 방금 시윤의 잔을 마시고 온 그에게는, 정환의 잔을 마시고 또 둘 사이에 우열을 가린다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일 것만 같았다.

잔 사이를 오가던 그의 손이 처음 닿은 잔은 프렌치 마티니였다.

“가니쉬는 어떻게 먹는 걸 추천하시죠?”

“편하게 드시면 됩니다. 먼저 드셔도 좋을 겁니다.”

“그럼.”

핀에 꽂힌 라즈베리를 한입에 물고는 그대로 잔을 삼키는 백성민 바텐더.

포근한 느낌의 프렌치 마티니가 그의 입안을 채우며 달콤한 향이 코까지 올라온다.

잘 만든 프렌치 마티니의 본연의 맛이 그대로 그의 몸을 감쌌다.

‘잘 만들었어. 하지만···’

앞에 마신 오시윤 바텐더의 잔과 차별성을 느끼진 못하겠다. 성민은 그런 생각이 들었다.

잘 만든 잔일수록 우열을 가리기 힘든 건 당연한 이야기다. 특히나 같은 종류라면 더욱.

잔이 혀와 목을 지나 피니쉬로 다시금 코를 찌를 때까지, 그는 두 프렌치 마티니 사이의 우열을 정할 수 없어 보였다.

“후우.”

피니쉬가 아닌 한숨을 한 번 쉬고는 다음 잔으로 그의 손이 향했다.

그가 택한 두 번째 잔은 클로버 클럽.

라즈베리가 들어가 맛의 결이 비슷한 둘을 한 번에 평가해 보려는 그였다.

‘이것도···.’

어렵다. 재료 본연의 향과 맛을 잘 살렸지만 그건 앞서 마신 잔 역시 마찬가지.

진의 솔향과 적절히 섞인 베리류 과일의 맛을 바텐더가 극한으로 끌어 올린 건 두 잔 모두 마찬가지였다.

‘어렵군. 정말.’

고개를 절레절레 저은 그가 찡그린 표정으로 다음 잔을 향해 간다.

이렇게 맛있는 칵테일을 연속으로 마시면서, 이런 표정은 처음 지어보는 그였다.

라스트 워드와 로지타. 연달아 두 잔을 마실 때는 그래도 조금의 우열을 가릴 순 있었다.

다만, 라스트 워드는 정환 쪽이, 로지타는 시윤 쪽이 앞서는 것 같아 또 머리가 복잡해지는 것만 같다.

백성민 바텐더는 조심히 고개를 돌려 다른 심사 위원들의 눈치를 살핀다.

그들의 얼굴에도 복잡함이 아려있어 자신과 같은 고민에 빠진 것만 같다.

이제 남은 건 팔로마와 김렛.

하나 있는 바텐더의 선택마저 같은 둘의 잔 앞에서 그는 손을 조금 망설이고 있다.

여기서도 결착을 지을 차이를 두지 못한다면, 이는 취향의 문제가 되고 만다.

맛에서 객관적인 차이를 느끼지 못한다면 심사 위원들은 각자 취향에 맞는 잔을 고를 터.

이건, 앞서 보여준 멋들어진 대결에 비하면 조금은 힘이 빠지는 결과가 될지도 모른다.

‘제발···’

이런 말이 조금 미안하지만 한 명의 잔이 결격이 있어라. 같은 바텐더로서, 또 뛰어난 모습을 보여준 두 사람에 대한 헌사로서.

백성민 바텐더는 그런 불경한 생각마저 하고 있었다.

그는 간절한 마음을 담아 팔로마를 입으로 가져갔다.

- 호르르륵.

간절하면 통한다던데. 그 말이 맞는 걸까. 정환이 만든 팔로마가 그의 입술을 타고 혀에 닿는 순간.

!

한 줄기 빛이 백성민 바텐더의 머리를 스친다.

이건.

제법 우열을 가려볼 수 있겠다.

그런 생각이 드는 백성민 바텐더.

뭐가 더 나은 잔인지는 확언할 수 없다.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건 확연히 두 잔의 성질이 다르다는 것.

한 명은 잔 테두리에 소금을 리밍했고 한 명은 잔 속에 소금을 넣어 술에 섞어 내었다.

이 작은 차이가 불러온 건, 분명 취향의 차이가 아닌 맛과 완성도의 차이임이 그의 머리에서는 선명해지고 있었다.

생기를 가져가며 조금은 굳건해지는 그의 눈빛이 서둘러 다음 잔인 김렛을 향해 갔다.

어쩌면 여기서도 승부를 볼 수 있을지 모른다. 김렛은 고상하지만 친숙하며 또 간단하지만 복잡한 칵테일.

누군가의 정수를 담기에는 모자람이 없는 잔이다.

- 호르르륵.

시트러스함을 잔뜩 품은 향이 호르르륵 소리와 함께 코를 찌른다.

술은 분명 입으로 향하고 있는데 어떻게 이렇게 코가 즐거울 수 있을까.

그런 생각에 싱긋 웃으며 잔을 만끽하는 그.

김렛이 온전히 그의 목을 전부 적시고 나자.

- 파아앙!

하는 한줄기 라임의 폭탄이 입안에서 터져버리고 만다. 코로 전해졌던 건 마치 예고편처럼 느껴지는 그.

역시나 잘 만든 김렛이라. 그는 만족하며 잔을 내려두었다.

‘아쉽군. 잘 만든 김렛이야. 하지만···.’

그건 저쪽 김렛도 마찬가지다. 그가 앞선 잔들과 같은 생각을 하며 팔로마에서 내린 결론으로 자신의 표를 결정하려 할 때.

‘잠깐!’

그의 머릿속에 또 다른 빛이 하나 스친다. 그리고 서둘러 손목을 돌려 자신의 시계를 확인하는 그.

그는 잠시 멍한 표정으로 시계를 살펴보고는 그대로 돌아서 오시윤 바텐더의 부스로 향했다.

“잠시, 실례하겠습니다.”

그리고.

이런 움직임은 그에게서만 나온 건 아니었다.

“저도, 잠시.”

반대로 정환을 스쳐 오시윤 바텐더에게 갔던 다른 심사 위원 역시 정환에게 돌아왔다.

백성민 바텐더와 별다른 신호를 주고받지 않았음에도 같은 결의 생각을 한 것 같은 그.

백성민 바텐더와 다른 심사 위원은 마치 미리 말을 맞춘 사람처럼.

“김렛을 한 번 더 맛봐도 되겠습니까?”

“죄송하지만, 김렛을 다시 마셔보겠습니다.”

두 사람의 김렛을 향해 다시금 손을 뻗는다.

한 번 맛본 잔을, 다시금 찾는 둘이다.

이건 제법 많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한 번 마신 잔이 좋아 다시 찾는 그런 간단한 이유는 아닐 터.

누군가의 잔을 평가하는 이들이 이렇게 잔을 다시 찾는 건, 시간이 흐른 후 잔의 변화를 보기 위한 것.

두 사람은 같은 시간이 흐른 후 미묘하게 변한 김렛의 맛에서 정환과 시윤의 승부를 결정 지을 단서를 찾은 것처럼 보였다.

- 호르르르륵.

- 호르르르륵.

동시에 잔을 다시 맛본 둘은 역시나! 라는 표정을 지어가며 무언가 확신이 서린 표정이다.

김렛처럼 강한 셰이킹이 들어간 칵테일은 처음 나온 직후가 가장 맛난 법이다.

이는 셰이킹을 통해 재료의 개성을 죽일 곳은 죽이고 살릴 곳은 살리며 서로의 조화를 끌어내는 과정에서 온 하나의 결과물.

그렇다면. 완성도라는 이름에 걸맞을 잘 만든 김렛이란. 시간이 한참을 흐른 후에도.

그 처음의 첫맛을 간직한 김렛일 것이다.

두 사람의 반응을 본 다른 심사 위원들 역시 의도를 알겠다는 듯 지나간 잔을 다시금 찾아본다.

누구는 잔을 만들고 얼마가 지나지 않아 정환의 잔을 맛봤고 누구는 시간이 한참 지난 후 정환의 잔을 맛봤다.

이건 반대로 시윤의 잔도 마찬가지.

그렇다면. 비슷하게 시간이 흐른 후 처음 맛을 본 잔을 다시 맛본다면 어떨까.

그때도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아 마셨던 잔의 맛을 유지하고 있다면.

그건, 바텐더의 실력이 잔에 녹아든 탓일 것이다.

‘하다 하다···’

이런 짓까지 하며 심사를 하게 될 줄은 몰랐다. 대결의 치열했던 여파는 심사 위원들까지 휩쓸리게 만들고 만다.

원래는 시간과 완성도에서 언제나 큰 차이가 나기에 이렇게까지는 해본 적이 없는 심사 위원들이었다.

“자! 이제 평가를 끝마쳐 주시길 바랍니다! 곧, 심사 위원분들의 결과 발표가 있겠습니다!”

힘들었던 심사 시간이 끝나가고 사회자가 다시금 마이크를 잡는다.

들고 있던 잔을 정리하며 머릿속으로 결론을 내려가는 심사 위원들.

“심사 위원분들은 모두 무대 중앙으로 모여주시길 바랍니다.”

그들은 손에 들었던 작은 메모지를 훑으며 최종 선택을 내려간다.

무대 중앙으로 나오는 이들의 양손에는 이제, 두 개의 깃발만이 들려 있을 뿐이다.

오른쪽에 들린 붉은색 깃발은 시윤을, 왼쪽에 들린 초록색 깃발은 정환을 의미하고 있었다.

“어떻게 보세요, 치프?”

“나도 모르겠다···. 저건 진짜 안 마셔본 사람이면 알 수가 없는 거니까.”

“그럼?”

“결과는 나와봐야 안다는 거야. 취향 문제일 수도 있고···.”

바라보는 이들은 한 치 앞의 결과도 예측하지 못한다. 직관적으로 즐기라며 준비한 스피드 런에서 발생한 초유의 사태.

덕분에, 끝까지 결과를 알 수 없어 긴장감은 더욱 짙어져만 간다.

“진짜 마셔보고 싶을 정도로 답답하네요. 살이 떨려요. 안 그래요, 지웅 씨?”

“그러게요. 이걸, 참. 알 수가 없으니.”

“마스터, 괜찮겠죠?”

“믿어야죠. 정환 씨라면. 네. 정환 씨라면.”

“제발···! 제발···! 사장님! 아니, 스승님!!”

“가자! 가자! 정환 씨! 갑시다!”

참가자와 관객, 관계자, 그리고 시청자까지. 모두의 시선이 무대 중앙으로 향하자, 사회자는 마지막 고지를 향해 달린다.

“지금부터! 최종 결과 발표가 있겠습니다! 심사 위원분들께서는 더 높은 점수를 준 참가자를 상징하는 깃발을 높이! 아주 높이! 들어 올려 주시면 되겠습니다!”

조명이 꺼지고 심사 위원을 비추는 화면에서만 빛이 조금 새어 나오는 순간.

긴장감을 유발하는 느리지만 묵직한 템포의 음악이 깔리고 이내 꺼졌던 조명은 깃발의 색과 닮은 빨강과 초록빛을 오가며 미러볼처럼 회전하기 시작했다.

깜빡이는 화려한 불빛 아래. 시윤과 정환은 두 눈을 감고는 들려올 소리에 집중하기로 한다.

모든 순간 덤덤했던 두 사람도, 지금만큼은 뜬 눈으로 결과를 마주하지 못할 것만 같다.

“관객 여러분! 다 함께 카운트 다운을 외쳐 주십시오! 다 같이! 셋!”

- 셋!

“둘!”

- 둘!

“하나아-!”

- 하나아-!

웅장한 관객들의 목소리가 겹쳐지며 극장 안을 채우자 이내 고조되던 음악이 탁! 하고 멈춰 버린다.

정환은 음악이 죽은 후 유독 크게 들리는 심장 뛰는 소리에 더욱 입이 말라가는 것만 같았다.

그리고 동시에.

- 툭!

하고 꺼지는 모든 조명.

이제는 무언가 가슴에 내려앉는 기분마저 정환을 스쳐 갈 때.

- 슥!

- 슥!

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잔잔한 바람이 일며 주변에 모든 소리가 일시에 멎어 버린다.

이건, 깃발이 바람을 가르며 위로 향하는 소리다.

이제 무언가 들려와야겠지. 정환은 그 소리를 제대로 마주할 자신이 없어 그대로 눈을 꾸욱 감고 얼굴에 힘을 줬다.

하지만.

아무런 소리가 들려오지 않는다. 정적. 정적이라 부르기 딱 맞는 고요한 순간.

정환은 자신도 모르게 눈을 떠버리고 만다.

그러자.

- 팡!

정환이 눈을 뜬 앞에는 모든 순간이 느려지는 것처럼 보이며 천정에서 한 줄기 조명이 아래로 내려오기 시작했다.

조명의 색은, 초록빛이었다.

그리고.

“월드 클래스 코리아 파이널! 최종 우승자이자, 세계 대회에서 대한민국을 대표할 국가대표 바텐더는! 차! 정! 환! 바텐더입니다아아아아!!!!”

혼신의 힘을 실은 사회자의 승자 선언이 들려오자.

- 처억!

정환은 자신도 모르게 양손을 하늘 높이 척! 하고 뻗어 버리고 말았다.

모든 감정이 복합적으로 담긴 승자의 손짓.

짧고 단출한, 새로운 챔피언의 세레모니였다.

- 와아아아아아아아!

- 와아아아아아아아아!

그제야 느릿한 모든 시야가 풀리며 정환은 귓가에 울리는 우렁찬 함성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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