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의 술은 특별합니다-148화 (148/175)

< 148잔. 도약. >

2.

프렌치 마티니에 라스트 워드, 그리고 클로버 클럽, 팔로마와 로지타. 마지막으로는 바텐더의 선택까지.

만만해 보이지 않는 과제가 화면을 채운다.

“······.”

정환은 잠시 입을 닫고는 조용히 화면을 응시하며 하나씩 떠오르는 레시피를 머리로 입력했다.

여섯 개나 되는 많은 레시피지만 유독 정환의 시선을 사로잡는 과제가 따로 있다.

그건 마지막에 장식된 바텐더의 선택.

이는 칵테일의 이름이 아닌, 아무 칵테일이나 만들라는 제법 어려운 과제처럼 보였다.

주제가 있고 그에 맞춰 잔을 만들어 내는 것이라면 바텐더에게는 어려운 일이 아니다.

바텐더는 언제나 손님을 상대하고 손님과 오가는 대화 속에서 적절한 잔을 찾는 사람이니까.

그런 관점에서 보자면, 아무런 맥락도 주제도 없이 던져진 저 바텐더의 선택은 절대 쉬운 과제는 아님이 분명했다.

하지만, 마지막에 던져진 난제가 조금 난처해도 거기에 머물러 있을 순 없다.

지금의 과제는 스피드 런으로 어떻게든 시간을 줄여 점수를 얻어야 하는 챌린지.

생각을 오래 하면 오래 할수록, 이는 독이 되고 말 것이다.

정환은 우선 앞에 나온 다섯 개의 칵테일의 레시피와 메이킹을 빠르게 머릿속으로 그려갔다.

‘프렌치 마티니와 라스트 워드, 클로버 클럽은 셰이킹. 팔로마와 로지타는 빌드와 스터. 재료는 보드카, 진, 데킬라···’

세 개의 셰이킹 칵테일과 두 개의 스터 칵테일. 단순한 조합이 딱 대회와 대결이라는 컨셉에 맞게 제시된 것만 같았다.

방향은 팔로마와 로지타를 함께, 그리고 프렌치 마티니와 라스트 워드, 클로버 클럽을 동시에 만드는 쪽으로 그려져 가고 있었다.

메이킹에 대한 계획이 끝났다면 다음으로 해야 할 일은 명확했다.

재료를 준비하는 것.

정환은 곧바로 뒤를 돌아 백바에 자리한 술들 사이로 손을 오가며 재료를 준비해 갔다.

보드카와 데킬라, 진과 여러 재료가 순식간에 정환의 부스 안 테이블 위로 향했다.

화면에 그려진 스톱워치는 무심하게 계속해서 시간을 더해가고 있었다.

똑딱거리는 소리는 전혀 나지 않는 현장인데. 관객석에 앉은 이들도 마치 그런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이야···. 살 떨리네요.”

“그렇죠? 빨리 만들라면 할 수는 있어도 이렇게 시간을 재면···”

더 긴장되기 마련이다. 정우와 함께 관객석에서 눈을 크게 뜨고 두 바텐더의 모습을 보던 그레인 호텔의 신입들은 그런 말을 하고 있었다.

자신들은 저 위에 서 있기만 해도 그대로 굳을 것만 같은데.

화면을 보고는 잠시 고개만 끄덕이더니 이내 기계처럼 움직이는 저 두 바텐더의 모습이 그들에게는 놀랍기만 했다.

“잘 봐 둬들. 손님이 곧 스톱워치인 법이야. 호텔 손님은 때로는 시간에 쫓기는 사람도 있다고. 그때는 스톱워치처럼 정석적으로 시간이 흐르지도 않을 거고.”

바텐더는 여러 손님을 마주한다. 때로는 불같은 성격의 소유자도 만날 수 있는 법.

그때 바텐더의 손을 보며 시간을 기다리는 손님의 시계는 지금 화면의 스톱워치보다 빠르게 시간을 세어갈 것이다.

정우는 오늘 후배들을 독려하며 자신의 눈도 정환에게서 떼지 않았다.

“셰이킹이 먼저일까요? 아님, 스터?”

“스터로 보이네요.”

눈을 떼지 않는 건 창혁과 지웅을 비롯한 다른 바텐더들 역시 마찬가지.

이들은 자신들을 꺾고 저 자리에 선 이들의 실력을 두 눈으로 다시금 확인하려 눈에 불을 켜는 중이다.

창혁의 말이 떨어짐과 동시에 두 사람의 손은 하나의 칵테일을 완성해 갔다.

“같은 칵테일?”

둘이 완성해 코스터 위로 올리는 칵테일의 색이 닮아있다.

“로지타군요.”

“흠. 재료가 가장 많이 들어가는 칵테일부터 쳐낸다는 건가요. 합리적인데요.”

“그렇죠. 그런 생각을 둘이 동시에 했다는 거고.”

두 사람이 동시에 완성한 칵테일은 로지타. 데킬라 베이스에 드라이와 스위트 베르무트, 그리고 캄파리를 섞은 후 비터스를 한 방울 더 첨가하는 칵테일이 로지타로 복잡하면서도 간단한 칵테일이 바로, 로지타였다.

잘게 썰린 레몬껍질까지 더해진 로지타는 빠른 시간에 완성되었음에도 날림으로 만들어진 것처럼 보이진 않았다.

“다음은 팔로마겠군요. 그럼.”

이어지는 두 사람의 손동작이 또 닮아있다. 마치 데칼코마니처럼 움직이는 두 사람의 모습.

앞서 먼저 만든 칵테일이 스터였기에 두 사람의 손은 연이어 다른 스터 칵테일인 팔로마로 향하는 듯했다.

팔로마 역시 데킬라 베이스의 칵테일이기에 재료도 통하는 면이 있어 보였다.

두 사람은 기다란 롱드링크 잔을 두고는 거기에 소금을 더한다.

여기서 갈라지는 두 사람의 모습.

시윤은 잔 테두리에 소금을 묻히는 리밍을, 정환은 잔 속에 그대로 소금을 넣는 방식을 택하며 둘의 모습이 데칼코마니를 깨트리고 만다.

하지만, 만들어 가는 속도는 여전히 닮은 둘이다.

시윤이 리밍으로 잔을 섬세히 돌리느라 쓰는 시간을 정환은 소금을 잔에 녹여내는 데 쓰고 만 것.

결국은 다른 길을 갔지만, 잔의 완성에 쓰인 시간은 같은 둘이었다.

잔에 라임 주스와 데킬라가 더해지고 마지막으로 자몽 소다가 필업되며 잔이 완성되어 간다.

둘은 비슷한 듯 다른 모양의 라임 가니쉬를 더하고는 완성된 팔로마를 코스터 위에 거의 동시에 올려두었다.

- 탓!

- 탓!

하는 소리가 시차 없이 연달아 들려와 관객석에도 속도감이 전해지는 현장이다.

“와···.”

“저렇게 비슷한 시간에 잔을 만드는 건···, 무슨 의미죠, 치프?”

이를 바라보던 신입들은 두 사람의 메이킹 시간이 닮아 있는 이유를 모르는 눈치다.

“···이런 말은 조금 그렇지만, 사람이 한 잔의 칵테일을 만들 때 필요한 최소한의 시간이라는 게 있어. 아무리 손재주가 좋고 빨라도 꼭 필요한 시간은 있잖아? 지금 저 둘이 걸린 시간이 딱 그거라고 보면 되는 거야. 로지타, 그리고 팔로마를 바텐더가 만들어 낼 수 있는 가장 빠른 시간. 그게 아마 저걸 거다. 둘 모두 거기에 맞춘 거고···.”

생각을 어쩌면 바꿔야 할지도 모르겠다. 정우는 문득 두 잔 정도가 지나갈 때 그런 생각을 떠올리고 있었다.

신입을 데려오길 잘했다는 생각도 잠시. 두 사람이 보여주는 모습이 아직은 신입들에게 너무 빠른 것만 같아, 정우는 후회가 살짝 찾아오는 중이다.

그리고 정우의 이런 후회는.

“저···, 치프?”

“응?”

“저, 아까부터 이상했는데···, 저거···”

곧, 진심이 되어 버리고 만다.

정우와 함께 온 한 명의 어린 바텐더가 조심히 손을 들어 화면을 가리켰다.

화면에는 셰이커에 술을 붓고 있는 정환의 손이 크게 클로즈업되어 있었다.

“지거가 없어요···.”

“그, 그렇네요? 저거···!”

그들이 바라보고 있던 화면 속 정환의 손에는 술을 계량하는 작은 계량컵인 지거가 보이지 않았다.

“앞에는 너무 자연스러워서 몰랐어요. 근데, 생각해보니까···”

앞선 잔을 만들 때부터 지거는 보이지 않았다. 신입 바텐더는 그런 말을 하려던 것 같았다.

거리가 너무 멀어서, 또 클로즈업이 제 때에 이루어지지 않아서.

그때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이제는 주변의 모든 사람의 눈에 선명히 보이기 시작했다.

“프리 푸어링(FreePouring)···. 미친 놈···!”

정우는 그제야 눈에 선명히 들어오는 정환의 손을 보고는 속삭이듯 프리 푸어링이란 말을 내뱉는다.

이는 바텐더의 기술 중 하나.

원래는, 지금의 모습과는 조금 다른 걸 말하지만. 저걸 표현하기에는 이 단어밖에는 없어 보였다.

“프리 푸어링이요? 그건 푸어러를 끼고 하는 거 아니에요?”

원래 프리 푸어링이란 푸어러라 불리는 작은 도구로 술병의 입구에 꽂아 일정하게 술을 흐르게 도와주는 도구를 말했다.

바텐더는 저마다 사용하는 도구가 다르다. 즉, 푸어러를 쓰는 바텐더도 있고 없는 바텐더도 있다는 말.

보통은 푸어러를 꽂은 채 지거를 함께 쓰며 계량을 하기도 했고, 또 어떤 바텐더는 지거 없이 그저 푸어러만으로 계량을 하기도 했다.

이때 지거 없이 푸어러만으로 술을 계량하는 스킬을 프리 푸어링이라 불렀다.

푸어러는 일정한 시간에 일정한 양의 액체만을 흐르게 만드는 도구를 말한다.

즉, 액체가 흐르는 시간으로 지거라 불리는 계량컵을 대체할 수 있는 것.

그렇기에 서양에서는 지거보다 더욱 대중화된 계량 방식이 푸어러이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 눈 앞에 펼쳐지는 상황은 같은 단어를 써도 조금은 다른 상황이다.

지거가 없는 건 사실이지만 푸어러 역시 술병의 입구에서는 그 모습을 찾아볼 수가 없다.

- 졸졸졸.

그저 뚫린 술병의 입구에서는 한줄기 술이 너무 높지도, 또 너무 낮지도 않은 위치에서 아래로 향하고 있을 뿐이다.

“저것도··· 프리 푸어링처럼 연습하면 되는 건가요?”

그 모습을 한동안 입을 쩍! 벌리고 바라보던 한 신입이 정우에게 말을 묻는다.

저건 어떻게 해야 하냐는 신입이라면 당연히 할 수 있는 질문.

허나, 이번에는. 답이 나가기가 조금 어렵다.

“···연습이 답이긴 하지···.”

연습하면 할 수 있다. 이건 당연한 논리다. 저렇게 프리 푸어링을 하는 바텐더가 없는 것도 아니고.

하지만, 누구나 할 수 있다! 라고 확답을 하기에는 정우는 조금 망설여 지고 있었다.

‘그게 대회에서, 또 갑작스레 주어진 칵테일을 만들 때도 가능하단 보장은 없지만···.’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또 곧바로 보이기에는 절대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술은 유체(流體) 중에서도 특별한 존재다. 진, 보드카, 위스키, 리큐르, 럼, 데킬라 등등!

수많은 술은 저마다 비중도 다르고 점도(粘度) 등 특성이 전부 다르다.

그렇기에 어떤 술을 얼마나 기울였을 때 얼마의 술이 나올지는 전부 해보지 않는다면 알 수 없다.

이건, 연습이란 말이 조금 부족한, 그러니까 정말이지 어디 몸이 하나 탈이 날 때까지 연습하지 않는다면.

그러니까, 모든 술이 흐르는 속도, 또 그 속도에 맞춰 나오는 용량 등을 알고 있지가 않다면.

절대 불가능한 일임을 정우는 모르지 않았다.

맛은 보장하지 못할 수도 있긴 하다. 때로는 손이 엉켜, 또 계산이 틀려 칵테일을 망칠 수도.

허나, 정우가 아는 저 차정환이라는 바텐더는. 절대 그럴 일이 없기에.

이제는 확실히 신입을 데려와 저 모습을 보여준 것이 조금은 후회되고 있는 정우였다.

“치프! 저쪽도 보세요!”

정우가 깊은 눈을 하며 마른 입술에 침을 바르며 집중하고 있을 때. 또 다른 신입 바텐더가 이번에는 정환을 비추는 화면, 옆쪽에 놓인 다른 화면을 가리킨다.

거기에는.

“오오오오!”

“이야!”

하는 반응을 끌어내는 오시윤 바텐더의 손이 클로즈업되어 있다.

그의 손에는.

“저쪽도···?”

정환의 손과 같은 풍경이 펼쳐지고 있다.

셰이커를 두고는 푸어러와 지거 없이 그대로 술을 따르고 있는 오시윤 바텐더.

그 역시, 프리 푸어링을 택한 것처럼 보였다.

“결승은 결승이군요···.”

“두 사람, 완전히 불이 붙었는데요? 저기서···.”

“허. 참. 결승에 못 올라간 게 다행인가 싶기도 하고···.”

지거에 술을 따르고 다시 이를 셰이커에 넣는다. 말로 설명해도 짧은 과정이지만, 이는 적어도 1초의 시간은 걸리는 행위다.

스피드 런이란 그런 1초로 승부가 갈리는 냉정한 경기.

두 사람은 마치 그 1초를 용납할 수 없다는 듯 이번에도 같은 선택을 한 것처럼 보였다.

두 사람은 앞에 나란히 놓인 네 개의 셰이커에 각각 다른 술을 프리 푸어링으로 부어가며 현장의 분위기를 고조시켰다.

같은 모습, 또 같은 기술로 기량을 겨루는 두 사람의 모습이 마치 치열하게 몸싸움을 벌이는 스포츠처럼 보여, 관중들은 감히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시선이 한창 주목되며 시간이 2분 30초쯤을 지나가고 있을 때.

- 착! 탓! 탁!

- 착! 탓! 탁!

두 사람의 셰이커가 동시에 닫히는 소리를 내더니 이내 각자의 앞에는 두 개의 셰이커가 뚜껑을 닫고는 자태를 뽐낸다.

두 사람은 잠시 숨을 고르더니.

두 개의 셰이커를 각자.

동시에 들어 올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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