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7잔. 가속. >
1.
“오늘 여기서! 결전을 치를 주인공은 이제 모두 모였습니다! 대망의 월드 클래스 코리아 파이널 최종전! 국가 대표 바텐더를 뽑는 그 현장을 여러분은 함께 하고 계십니다!”
무대 위로 정환과 시윤이 올라서자, 사회자는 재차 흥을 돋운다.
오페라 무대를 적당히 꾸민 무대는 아래로 관객석이 자리하고 있어 더욱 주목받기 좋은 위치였다.
무대 위에 놓인 두 개의 부스는 정면을 바라보며 관객에게 마치 쇼를 보여주는 듯한 연출을 이루고 있다.
만약 이게 하나의 쇼라면 정환과 시윤은 오늘 무대의 두 명의 주연들.
둘은 백바라 불리는 바텐더와는 절대 뗄 수 없는 무대를 배경으로 나란히 서 쏟아지는 관심을 온몸으로 버티고 있다.
‘자리가···’
제법 가득 들어찼다. 바텐더들의 대회를 누가 와서 볼까 라고 하지만, 예상 외로 관객석은 채우고 남을 정도였다.
다른 대회와 달리, 월드 클래스 코리아는 말 그대로 국가 대표를 정하는 하나의 선발전과 같은 대회다.
주최사가 아닌 다른 주류 회사의 관계자들도, 또 호텔이나 유명 레스토랑도.
거기에 대회에 참가했던 바텐더와 참가하지 않은 다른 바텐더들도.
마지막으로 이들의 최종적인 손님까지도. 저마다 관객석을 채우며 오늘의 최종 주인공이 될 사람을 기다리고 있다.
조명이 너무 강하게 비추는 덕에 앉은 이들의 얼굴이 전부 보이진 않았지만, 예상보다는 많은 이들이 온 것은 확실히 알 수 있는 정환이다.
“오늘 최종 결선에서 우승하는 바텐더는 세계 여러 국가의 국가 대표 바텐더들이 모여 겨루는 월드 클래스 월드 파이널에 대한민국의 대표 자격으로 출전하게 됩니다! 다들 그 주인공을 만날 준비가 되셨나요?”
- 네에에에에에에!
모인 이들이 많기에 작은 대답에도 무대가 떨려오는 것만 같다.
사회자의 진행에 이어 터지는 함성이 조금은 무서울 지경.
허나, 반대로.
이는 우승자에게 쏟아질 업계의 큰 관심이자 주목이며, 또 기회라는 걸 정환은 모르지 않았다.
단순한 성공을 말하는 건 아니다. 그저 일개 바의 오너로서 무언가를 하겠다는 것과 타이틀이라는 걸 손에 쥔 바텐더가 할 수 있는 영역이 다르지 않나.
누구나 편히 와서 쉴 수 있는 공간. 또 그런 공간이 모인 골목. 최종적으로 그런 골목이 곳곳에 모여, 바 문화 자체에 대한 인식을 한 단계 올려두는 것.
정환은 이 자리가, 그 모든 것을 위한 기회라 여기고 있었다.
아직은 어떤 과제가 나올지 모르는 상황이지만, 이미 마음을 다독인 정환은 무엇이든 맞설 준비가 되어 있었다.
“우선, 두 결선 참가자의 앞선 챌린지 영상을 잠시 보고 오겠습니다! 다들 화면을 주목해 주십시오!”
결선은 참가자가 딱 둘 뿐이다. 이는 내용적으로 다룰 게 많지는 않다는 뜻.
그에 맞춰 주최 측은 앞선 챌린지 영상으로 잠시 시간을 보내며 행사를 채우려 한다.
이 자리에는 앞선 챌린지를 보지 못했던 이들도 있었기에 영상을 틀어 기대감을 고조시키려는 것이다.
다른 때라면 그저 그런 시간으로 여겨질 수 있다. 다만, 이번은 조금 다를 터.
두 사람이 앞선 챌린지에서 보여줬던 기량은, 여기 모인 관객들에게 기대감을 심어주기 충분해 보였다.
시윤의 투 핸드 셰이킹이 나올 때, ‘오오오오!’ 하던 관객석의 반응이 정환의 투 핸드 셰이킹이 나오자, ‘와아아아!’ 하는 반응으로 바뀌어 버린다.
따로따로 봤을 때는 몰랐던 둘의 전초전이, 조금은 더 생동감 있게 느껴지는 관객들이다.
“아, 영상이 아주 긴장감이 넘치는데요! 여러분! 영상 속의 두 사람이 오늘은 어떤 주제로 자웅을 겨루게 될지, 궁금하지 않습니까?”
- 네에에에에에!
주최 측의 이런 의도는 딱 맞게 떨어져 나간다. 이전보다 더욱 커진 함성이 바로 그 증거.
아직 결선의 주제가 될 과제는 공개하지 않았기에 관객들은 더욱 호기심을 느끼며 시선을 무대 위로 집중해 갔다.
정우가 데려온 그레인 호텔의 신입 바텐더들은 마치 영화를 보는 것처럼 온 눈에 기대감을 비추고 있다.
“치프, 결선 챌린지는 뭘까요?”
“복잡한 건 아닐 거야. 무대랑 객석이 있고 관객도 있잖아? 직관적인 대결이 되지 않을까.”
“예를 들면요?”
“부스 구성을 보면 주제를 주고 한 잔을 만들게 하는 거나 아니면 여러 잔을 만들게 하는 클래식 챌린지일 수도 있을 거 같은데?”
“클래식 챌린지요?”
“같은 종류의 칵테일을 만들어서 순순히 맛으로, 또 외관으로 비교하는 거지. 지금에야 엔터테이먼트 적으로 많이 발전한 대회들이지만, 몇 년 전까지는 다들 그런 식이었거든.”
“에이. 그건 너무 시시하지 않나요? 이렇게 기대감을 고조해 놓고?”
“그렇지? 그래서 나도 궁금해지네. 과연 뭘 하려고 이렇게까지 하는 건지.”
과제는 아직 공개되지 않았다. 이건 절대 깨지지 않았던 오랜 규칙.
결선에 비해 앞선 챌린지들은 과제를 미리 공개한 덕에 준비라도 할 수 있었지만, 오늘 이 자리는 그저 자신의 실력으로만 부딪혀야 하는 자리다.
경력이 제법 오래된 정우도, 좀처럼 갈피를 잡지 못하는 결선 과제였다.
“지금부터, 월드 클래스 코리아 파이널 결선! 과제를 여러분께 공개하도록 하겠습니다! 과제의 공개는! 주최사인 디아지오 코리아의 지사장이신···”
기다리던 시간이 다가온다. 사회자의 입에서 길게 나오는 누군가에 대한 소개보다 귀에 들어오는 건 이제야 과제를 공개한다는 것.
양복을 잘 차려입은 나이 많은 아저씨가 무대로 손을 흔들며 올라왔지만, 누구도 그에게 관심을 주는 이는 없었다.
그저, 그 사람의 손에 들린 작은 종이봉투에 관심이 있을 뿐.
그는 멋쩍게 반응 없는 관객석에 손을 몇 번 흔들고는 사회자가 건네주는 마이크를 손에 쥐었다.
“본부장님께서 결선 과제를 소개해 주시겠습니다!”
“아아. 월드 클래스 코리아 파이널 결선의 수행 과제는···”
말과 함께 봉투를 열어보고는 관객의 반응을 살피던 그. 그는 마침내 결선의 과제를 모두에게 알려준다.
“스피드 런.”
!!!
“스, 스피드 런?”
“와···. 작정했네. 이놈들.”
스피드 런이란 과제가 공개되자 다양한 반응이 쏟아진다. 정우는 혀를 차며 주최사가 제대로 작정했다며 고개를 절레 젓는다.
“스피드 런이라···. 제대로 붙여보겠다는 거군요.”
“···이건 정말 정면 승부네요.”
창혁과 지웅을 비롯한 결선 탈락자들 역시 비슷한 반응. 이들은 질린다는 표정을 지어가며 이번 과제의 무게감이 가볍지 않음을 표한다.
스피드 런이란.
이제까지 겪었던 그 어떤 과제보다도.
직관적인 챌린지였기 때문이다.
다양한 칵테일을 몇 잔 정해두고는 그를 빠른 시간 안에 만들어 낸다.
그리고 그 시간을 측정해 점수를 부여하는 게 바로 스피드 런.
물론, 맛과 완성도를 전혀 보지 않는 건 아니다. 이는 사후 심사를 통해 점수를 매기긴 하지만 그래도 가장 중요한 건 눈에 보이는 시간 기록.
이는 비전문가인 관객들 역시 눈으로 즐길 수 있는 오락거리이기도 하며, 한눈에 바텐더들 사이에 격차를 보여 줄 수 있는 과제이기도 했다.
칵테일 파티야 취향의 문제였고 전략의 문제라며 피해갈 수 있었다.
마리아주 역시 전략과 예상 등의 문제로 피해갈 수 있고.
허나, 스피드 런 챌린지라면.
패배는 곧 기량의 부족이라는 평가를 누구도 피해갈 수 없을 것이다.
둘이서 진행하는 챌린지기에 더욱 그런 부담감은 막중하다. 과제를 잘못 만나서, 또 원래 잘하는 것과는 달라서.
그런 말은 여기서 통하지 않는다.
어떻게 본다면, 말 그대로 파이널이자 결선에 가장 어울리는 과제가 이, 스피드 런 일지도 모르겠다.
“네! 월드 클래스 코리아 파이널 챌린지 과제는 바로 스피드 런! 입니다! 이번 파이널 챌린지 스피드 런은 총 여섯 잔의 칵테일을 빠른 시간에 만들어 내며 완성도까지 함께 가져가야 하는 어려운 과제인데요! 역시나 반응이 후끈하군요!”
격한 반응은 사회자에게 좋은 먹잇감이 된다. 사회자는 어디까지나 주최 측의 편.
반대로 과제를 듣고 화면에 뜬 스피드 런이란 단어를 보는 참가자 둘은.
덤덤하기 그지없어 보였다.
‘스피드 런···.’
자신 없는 종목은 아니다. 화면에 뜬 정환은 남들은 모두 어려울 거라, 또 부담일 거라 여기는 과제를 보며 그런 생각을 떠올리고 있었다.
마냥 빠르게 만드는 게 해답이 아님은 안다. 다만, 바텐더로 오래 살았기에 손에 익은 게 있을 뿐.
또한, 오시윤이라는 저 실력 좋은 바텐더와는 어정쩡한 다른 과제가 아닌 이런 정면 대결을 바랐던 게 정환의 내심일지도 모른다.
오시윤 바텐더 역시 덤덤한 표정으로 턱을 당기며 승부에 임할 준비를 마친 것처럼 보인다.
그 역시 정면 대결이 나쁘지 않은 모양이다.
“제시된 여섯 잔의 칵테일을 모두 완성한 후 부스에 놓인 부저를 울려주시면 스톱워치가 멈추게 됩니다! 완성의 기준은 코스터 위 제출이며, 부저가 울린 후에는 어떠한 메이킹 행위도 할 수 없습니다!”
사회자는 계속해서 결선 챌린지의 규칙을 관객들에게 설명해 간다.
관계자가 아닌 이들도 있기에, 또 인터넷 방송으로 중계 중이기에, 조금은 자세한 설명이다.
“완성된 잔은 총 7명의 심사 위원이 평가하게 됩니다! 그리고 최종 승자는 시간 점수와 심사 위원 평가를 합산해 더 우수한 성적을 거둔 바텐더! 그가 바로 대한민국의 국가 대표 바텐더가 될 것입니다!!”
웅장하고 길던 설명이 드디어 끝을 맞이한다. 그에 맞춰 떠오르는 건 무대 뒤에 자리한 화면을 채우는 커다란 스톱워치.
‘00:00’에 맞춰진 화면이 정환과 시윤의 등 뒤에서 반짝이고 있다.
오늘 저 0으로 맞춰진 숫자가 적은 사람이, 승자에 더욱 가까워지는 사람일 것이다.
“두 사람이 메이킹으로 만들 여섯 잔은 칵테일! 그 정체를 공개! ···하기 전에!”
- 우우우우우우!
사회자의 작은 장난이 이어지자, 더는 기다리지 못하겠던 관객들이 아우성을 성토한다.
사회자는 재밌다는 듯 웃고는 작은 신호를 보내자, 바텐더들 뒤로 자리한 숫자가 ‘02:00’으로 바뀌어 버린다.
“두 참가자에게는 부스와 백바를 돌아볼 시간을 2분간 드리겠습니다! 바툴과 술 병의 위치, 그리고 부저와 코스터의 위치까지. 메이킹에 필요한 모든 요소를 이 시간 안에 점검해야 합니다!”
주어지는 건 2분이라는 짧은 시간.
백바도, 바툴도. 바텐더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준비된 공정한 상황이기에 이를 둘러볼 시간 역시 둘에게는 똑같이 주어진다.
작은 요소만이라도 한쪽에 기우는 순간 승패가 틀어질 수 있는 정면 승부기에, 주최 측도 많은 정성을 기울인 모습이다.
“2분! 시작합니다!”
사회자의 말과 함께 전광판의 숫자가 줄어들기 시작한다. 정환과 시윤은 덤덤히 기다리던 자세를 고치고는 여기저기 부스를 뜯어보기 시작했다.
‘브라운 스피릿은 뒷줄, 진과 보드카, 데킬라···, 화이트 스피릿은 앞줄인가? 잠깐만. 리큐르도···’
정환은 먼저 손을 움직일 때 제일 중요한 술병의 위치부터 익혀간다.
필요한 술이 제 때에 손에 잡히느냐 마느냐, 또 재료를 한 번에 딱! 알맞게 준비했냐 못했냐는 이번 승부에서 찰나의 승부를 결정짓는 중요한 부분이다.
술병을 돌아본 정환은 바 테이블처럼 생긴 부스의 아래쪽을 살핀다.
아래에는 과일과 얼음을 비롯한 부재료와 함께 셰이커와 지거, 믹싱 글라스 등이 부족하지 않게 준비되어 있다.
“툴과 술병에는 손을 대시면 안 됩니다!”
사회자의 유의사항에 맞춰 오직 눈으로만 훑어보는 정환이다.
‘이 정도면···.’
눈에는 전부 넣어둔 것 같다. 정환이 숙였던 상체를 겨우 위로 들어 올렸을 때.
“자! 2분! 종료합니다! 두 사람은 모두 제자리에 멈춰주십시오! 곧 여섯 잔의 칵테일이 공개된 후면, 두 사람은 곧바로 메이킹에 들어가야 합니다!”
어느덧 전광판의 시간은 모두 줄어 다시금 ‘00:00’에 맞춰진 모습이다.
옆 부스에 선 시윤 역시 정환처럼 모두 둘러본 후 정갈히 자세를 고쳤다.
둘 모두.
만반의 준비는 끝난 상태였다.
“그럼, 이제! 승부를 결정지을 여섯 잔의 칵테일을 공개해 주십시오!”
웬일로 빠른 사회자의 마지막 외침이 들리자, 화면에는.
- French Martini.
- Last Word.
- Clover Club.
- Paloma.
- Rosita.
- Bartender’s Choice.
두 바텐더의 승부를 결정지을 여섯 잔의 칵테일이 그 이름을 드러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