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6잔. 활주. >
3.
“화장은 가볍게만 할게요. 피부 톤이랑 눈썹, 아이라인, 입술 정도는 꼭 해야 할 텐데, 괜찮으시죠?”
“입술···까지요?”
“무대 위에는 조명이 강해서요. 화면에 입술이 없는 것처럼 나오실 수도 있어요. 너무 걱정은 마시구요. 최대한 기본 살색을 살려서 해드릴게요.”
“네···. 부탁드립니다. 과하지 않게···.”
- 톡. 톡. 톡. 톡. 톡.
자리에 앉은 이의 주문을 받은 분장사는 답 대신 톡톡 두드리는 소리로 알아들었음을 전해온다.
널찍한 의자에 앉아 강한 조명이 비추는 거울을 바라보는 이는 다름 아닌 바텐더 차정환.
정환은 오늘 있을 월드 클래스 코리아 대회의 최종 결선을 맞아 이렇게 미리 대비하고 있다.
직접 샵을 찾아 메이크업을 받는 그런 정성을 들인 건 아니다. 월드 클래스라는 이름이 붙었고 또 코리아라는 수식어까지 붙어 국가대표를 뽑는 자리인 만큼.
주최사에서는 마지막 자리에 제법 정성을 쏟는 모습이다.
핀으로 머리를 집어 올리고 분칠을 하는 자신의 얼굴이 어색하기 그지없다.
정환은 그렇게 분칠을 한참 한 뒤 뜨거운 바람으로 머리까지 세팅하고는 자유로워질 수 있었다.
아직은 무대에 서기까지는 시간이 조금 남은 때.
- 똑똑.
누군가 정환의 대기실을 두드리며 안으로 들어선다.
“괜찮지?”
정환의 사형이자 절친한 바텐더인 정우였다.
“형! 오신 거예요?”
“짜식. 그럼, 당연히 와야지. 인마. 형이 너 응원하러 안 올까 봐?”
“감사해요. 정말. 들어와요. 앉아요.”
정환은 홀로 다독이던 마음이 여의치 않았던 때, 적절히 찾아준 정우에게 반가움을 표했다.
썰렁하던 대기실이 조금은 들어차는 기분이다.
“혼자 온 건 아냐. 잠시만.”
그렇지. 정우가 온 곳이라면 기준도 또, 다른 사람도 함께일 테지.
정환은 그런 생각에 고개를 쭈욱 빼며 정우의 뒤를 살핀다. 기대가 잔뜩 걸린 정환의 얼굴을 보고는 정우가 고개를 절레 젓는다.
“아쉽게도 아냐.”
“네?”
“같이 온 거 아니라고. 마스터.”
“아···. 그럼?”
“다들 들어와.”
정우가 가볍게 손짓하자 뒤에서는 제법 많은 무리의 사람들이 우루루 대기실로 들어선다.
정환은 들어온 이들을 모르지 않았다.
“다들···?”
“응원은 좀 부담스럽겠고. 그냥, 견학시키러 온 거야.”
이곳을 찾은 이들은 정환이 그레인 호텔에서 세미나를 열었을 때 참석했던 신입 바텐더들이다.
“전부 다요? ”
그렇게 전부 오면 스케줄 시프트가 돌아는 가냐. 정환은 놀란 표정을 지어본다.
하지만.
“제가 추진했습니다.”
연이어 들려오는 다른 목소리가 그의 의문을 풀어줬다. 그레인 호텔에서 F&B를 총괄하는 윤현민 부장이다.
“아. 윤 부장님.”
“긴장되시죠? 다들 몰려오는 게 독일 수는 있지만···, 치프가 통솔을 해야 해서요. 금방 물러들 갈 겁니다. 물론, 저도.”
“찾아주신 게 감사하죠.”
“그렇게 말씀해주시니, 한결 마음이 편합니다. 다들, 많이 배웠으면 해서 이렇게 모두 모시고 왔습니다.”
월드 클래스 대회는 명실상부 바씬에서 가장 권위 있는 대회다. 우승자에게 실력이 최고란 말은 무리일지 몰라도 가장 트렌디하며 가장 앞서가는 바텐더란 말은 충분한 대회가 바로 이 대회.
그렇다면, 그런 트렌디함과 앞서가는 기술을 신입에게도 보여줄 가치가 있을 것이란 게 윤현민 부장의 생각이었다.
특히나, 마리아주 챌린지를 직접 관전하며 정환의 진면목을 봤던 그는 신입들에게도 그 모습을 꼭 보여주고 싶었다.
그때 그가 봤던 모습은 업계에 깊게 몸담은 이라도 쉽게 볼 수 있는 광경은 아니었다.
배울 수 있는 영역인지는 알 수 없다. 배움에도 단계가 있고 한계도 있으니까.
허나, 하나라도 저 움직임 저 기술 속에서 느끼는 바가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신입에게는 충분할 것이다.
“선배님! 파이팅입니다!”
“응원하겠습니다!”
“힘내세요!”
정환에게 짧은 강연을 들으며 배운 게 많은 이들은 저마다 손을 모으며 응원을 전했다.
정우는 잠시 그걸 보고 있더니.
“자자. 여기까지만 하자. 얼굴 봤으니 됐지? 다들 돌아가서 자리에 앉는다. 실시!”
“넵!”
일시에 이들을 호령하며 상황을 정리해 버린다. 응원이 때로는 부담이 됨을 그는 모르지 않았다.
“나도 간다?”
“벌써요? 조금 더 있다가 가시지···.”
“일하러 온 거잖아. 뭐, 응원 필요해?”
“조금은요?”
“잘할 거면서.”
“에이. 뭐에요. 힘을 주셔야죠.”
“힘줄 사람은···. 곧 올 거다. 그리고 내가 힘 안 줘도 잘할 거 알고 있고. 네가 못하는 게 있었나?”
“···없긴 하죠.”
- 씨익.
정우는 돌아서기 전 마지막 대화를 나누며 믿음이 가득한 눈빛으로 정환을 쓸었다.
마주하며 진하게 웃어 보이는 둘.
몇 마디 전하지 않은 말이지만, 백 마디의 말보다 묵직한 응원이 속에 들어찬 것만 같았다.
“그러니까.”
정우는 마지막 말을 남기고는 미련 없이 대기실을 떠났다. 윤현민 부장 역시 힘내라는 말이 마지막 말이었다.
정우와 그레인 호텔의 이들이 떠난 후에도 응원은 계속되었다.
아직은 남은 시간이 많았기에 쉴 틈을 주지 않는 이들.
다음으로 대기실을 찾은 이들은 함께 대회에 참가했던 바텐더인 지웅과 창혁이다.
“이깁시다. 내 허세를 위해서라도. 우승자한테 졌다. 실은 내가 2등이다. 뭐 이런 허세? 괜찮죠?”
“그런 시윤 씨께 허락을 구하셔야···.”
“그건, 뭐. 저쪽이랑 합의 볼 일이고요. 어쨌든 파이팅입니다. 긴장하지 말아요. 오늘도 먹었죠? 청심환.”
“물론이죠.”
“이건 시윤 씨 가져다줘야겠네.”
“그렇게 치면, 전 반대편을 응원해야겠는데요?”
“지웅 씨.”
“농담입니다. 그래도 같은 스터디 출신을 조금 더 응원하고 싶은걸요. 지연이죠. 힘내십쇼.”
둘은 가벼운 농담으로 정환의 긴장을 털어주며 응원을 전했다.
금방 자리를 비켜주는 모습이 참가자의 심정을 가장 잘 아는 이들 다웠다.
아쉽게도 재훈과 주용, 또 연희와 윤수, 동경 같은 종로의 바텐더들은 이곳에 함께하지 못했다.
오늘은 평범한 영업일. 당장에 자신의 바를 끌어가는 이들에게는 언제나처럼 손님을 맞이해야 할 날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직접 방문하지 못한 아쉬움을 전화로 달랬다.
- 결선 시작 때는 다들 인터넷 방송으로 보고 있을 겁니다. 아실도, 숲도, 봉황당도. 손님들과 함께 응원하겠습니다. 가게는 걱정하지 마세요. 윤수 씨도, 또 저희도 있으니까요.
각자의 자리에서 정환의 모습을 지켜보겠다는 것. 다행히 대회의 실황이 인터넷 방송으로 송출된다는 말을 들었기에 이들은 정환의 모습을 함께 할 수 있을 것이다.
- 똑똑.
폭풍 같던 응원 방문은 이제 끝을 향해 달려간다. 더는 올 사람도 없는 지금.
마지막으로 정환의 방문을 두드린 사람은.
“괜찮아?”
웬일로 정우와 따로 온 기준이었다.
“기준 형!”
그리고 기준의 뒤에는, 정환이 그토록 기다리던 사람 역시 함께였다.
인자해 보이는 중년인이 따스한 표정으로 정환을 아래위로 훑었다.
“마스터!”
정환의 스승이자, 이전 가게의 사장인 명진이다.
“정우 형은 신입들 통솔해야 한다고 하셔서. 오늘은 내가 모시고 왔어.”
“잘하셨어요! 들어오세요. 얼른요. 마스터. 안쪽으로요.”
정환은 누구보다 둘을 반가워하며 안으로 이들을 맞았다. 명진은 안으로 들어선 후에야 조곤조곤한 말투로 정환의 상태를 살핀다.
“긴장되는 모양이군요. 정환 씨.”
“솔직하게 말하면···, 떨려요. 마스터.”
“적당한 긴장은 절대 나쁜 게 아닙니다. 바텐더라면, 오히려 필요한 편이죠.”
“그런가요···?”
애써 덤덤한 척하던 모습이 명진의 앞에서는 사라진다. 이건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의 앞에서 나오는 자연스러운 모습.
명진은 그런 제자의 어깨를 따스하게 토닥이곤 인자하게 웃어 보였다.
“손님 앞에서도 늘 긴장하는 게 바텐더지 않습니까? 긴장을 즐기십시오. 제가 아는 차정환이라는 바텐더는 손님 앞에서 늘 긴장하고 있었습니다. 부족한 건 없을까, 잔은 입에 맞을까, 하며. 다만, 그게 여유롭지 않았다는 뜻은 아니죠. 긴장했기에 오히려 주변을 살필 수 있고 여유를 가질 수 있는 사람. 그게 바텐더라는 이들입니다. 지금의 긴장을 이용해 보세요. 늘 그랬던 것처럼.”
그리고 전해지는 건 언제나처럼 따스한 한마디의 말. 그의 양손이 정환의 어깨를 쓸고 정장의 깃을 조금 다듬어주자, 어느새 정환의 몸에 미세하던 떨림이 멈춘 것만 같다.
늘 손님 앞에서 가지고 있던 긴장을 유지하라는 말. 대회에 참석했고 앞에는 손님이 없어도 결국, 이들은 바텐더인 법이다.
“조금 더 편해진 모양이군요.”
“덕분에요. 마스터. 감사합니다.”
늘 중심을 잡아주는 이는 이렇게 중요하다. 오가던 사람을 만나며 아무렇지 않게 대화하고 농담하고.
그러던 중에도 평소와는 다르게 묻어 나오던 떨림이 딱 한 사람과의 만남으로 멎어 버린다.
우린, 이런 사람을 멘토라 부른다.
“관객석에서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다녀오세요.”
명진은 마지막 말로 응원을 마치고는 뒤로 돌아선다. 잘하란 말도 할 수 있을 거란 말도 없다.
마치, 아직은 이런 응원이 어울릴 때가 아니라는 듯이.
“힘내. 응원하고 있을게. 나중에 보자.”
“네. 형. 고마워요. 마스터, 잘 부탁드려요.”
기준은 그런 명진을 서둘러 따라가며 대기실을 나섰다. 이제는 온전히, 정환이 홀로 감당해야 하는 시간이다.
떠들썩했던 조금 전 덕분에 더욱 고요한 대기실이 차게만 느껴진다. 하지만, 메이크업을 막 끝냈을 때보다는 더욱 편안해진 마음.
정환은 이제야 자신을 완벽히 다독이며 밖으로 나설 준비를 마친 것만 같다.
“차정환 바텐더님! 무대 입장 10분 전입니다!”
때에 맞춰 진행 요원이 대기실의 문을 두드리고는 스쳐간다. 정환은 주변을 정리하고는 숨을 한번 고르며 문고리를 돌렸다.
큰 오페라 공연장을 빌려 진행되는 행사장은 무대로 향하는 복도마저 제법 길게만 느껴졌다.
- 뚜벅. 뚜벅. 뚜벅.
그런 복도를 차분하고 또 강단 있게 걸어가는 정환의 뒷모습. 함께 걸어가는 이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반대편에서 걸어오는 다른 사람이 한 명 있을 뿐.
정환은 그런 반대편의 사람과 가볍게 눈인사만 나누고는 무대 뒤로 연결된 작은 계단에 섰다.
두꺼운 천으로 가려진 무대 뒤는 앞에서 전해지는 소리가 그대로 전달되어 현장감을 더해갔다.
“대망의 월드 클래스 코리아 파이널! 오늘, 이 자리에서 대한민국의 바텐더를 대표할 한 명의 바텐더가 정해집니다! 모두, 그 바텐더를 맞이할 준비가 되셨나요?”
무대 위에서 바람을 잡아가는 사회자의 소리도.
- 네에에에에에에!
그리 많지는 않지만, 관계자와 관객으로 가득 찬 관객석의 소리도 모두 전해지는 지금.
“지금부터 그 주인공이 될 후보 두 사람을 무대 위로 모셔보겠습니다! 첫 번째 참가자입니다! 바 야흐로의 오너 바텐더! 오! 시! 윤! 바텐더!”
- 와아아아아아아!
정환은 더 높은 곳으로 향할 준비를 모두 마쳤다.
그리고 이내.
“소개합니다! 두 번째 결선 참가자! 종로의 바 아실의 오너 바텐더! 차! 정! 환! 바텐더!”
- 촤아아아아악!
자신을 호명하는 소리와 함께 붉은 천이 걷히자.
- 탓. 탓. 탓.
정환은 그대로 무대에 향하는 계단을 박차며 위로 향했다. 강한 조명이 그대로 정환을 비췄다.
조명을 그대로 받은 정환은 조금의 찌푸림도, 또 손을 올려 드는 모습도 없이 당당히 무대로 나섰다.
뒤로 번져가는 그의 그림자가 유독 커다랗게만 보였다.